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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여행

키르키르스탄 비쉬케크 시내

2024년 10월 11일(흐리고 살짝 추워짐)

오늘 아침은 어제 장본 야채들(감자 양파오이 당근 등)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약간의 밑반찬 등으로
아침식사를 장만하기로 하였다.
밥을하고 고추장 찌개를 하고 오이를 무치고
제법 그럴듯한 한식상이 나왔다.

숭늉까지 야무지게 끓여 먹었다.

오늘은 여행친구 A님이 집에서 쉬기로.
H님과  느지막히 시내 투어를 하기로 하였다.

오늘  들른 곳
알라 토 광장-레닌 동상-국립 박물관-오크공원
-푸룬제 레스토랑-오페라 발레 극장-승리광장

얀덱스 택시를 불러 알라 토 광장으로 갔다.
마침 광장에는 국기 게양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45m높이의 국기 게양대. 여기에선 2시간마다 근위병의 교대식이 벌어 진단다.

민족적 영웅 마나스 동상. 실존 인물은 아니고 민족 서사시 '마나스'의 주인공이란다.

이 모습을 사진 찍으려 했더니  군인들이 못 찍게해서 길건너 편으로 가서야 찍을 수 있었다.
뒤편 하얀 건물이 국립 박물관

이 알라투 광장(Ala-Too Square)은 1984년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 창립 6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비슈케크의 중앙광장으로 비슈케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레닌(Lenin)동상이 광장 중심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레닌 광장'으로 불렸단다.
그 후 1991년 독립과 함께 광장의 광장의 이름이 바뀌었고 2011년에는 키르기스스탄의 독립20주년 계기에 키르기스스탄의 민족적 영웅인 마나스(Manas)의 동상이 레닌 동상 자리에 세워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레닌 동상 앞면
레닌 동상 뒷면

국립 역사 박물관 뒤에는
소련 공산당 창립자인 레닌 동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1991년 소련 붕괴 직후 중앙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는 레닌 동상이 사라졌는데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레닌 동상이 철거 되지 않고, 원래 있던 장소에서 오랜 기간을 있다가 2003년이 되어서야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세워져 있다.
1916년 제정 러시아가 독일과의 전쟁에서 키르기스인들을 방패 역할로 이용하려는 것에 저항하여 일어난 '피의 항쟁'을 종식시켜 준 사람이 레닌이란다.
그래서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의 레닌에 대한 생각은 우호적이었고 레닌 동상은 철거되지않고 자리를 옮겨 현재에 이른 것이다.

우린 레닌 동상을보고
국립 역사 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역사 박물관 (오전9시부터 오후 6시까지 ,
입장료 1인 200솜)

크고 멋있는 이 건물은 1984년에 레닌 박물관으로 지어졌다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후
키르기스스탄 국립역사 박물관(National Historical Museum of the Kyrgyz Republic)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린 박물관의 4층부터 관람하였다.

여기에서도 레닌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한무리의 알바니아에서 온 여성들이 이 상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
I love Lenin' 이라고 하여 레닌이 그렇게 좋으냐고 했더니
스탈린보다 스마트해서 좋단다.


레닌 관련 전시 물들


박물관의 전시물들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선교사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슈케크 근교에서 발견된 십자가 도안들이다.
네스토리우스파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리스의 종대 주교인 네스토리우스가 주창한 신학을 따르는 기독교 종파를 말한단다.
실크로드 상에서 발굴되는 기독교 교회는 모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교회이다. 이같이 실크로드를 통해서 상업적인 무역 거래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상과 지식, 그리고 종교도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르트도 전시되어 있었고.

이 박물관의 백미는 황금가면이었다.
그러나 이 샴시 유적의 황금 가면은 촬영이 금지되었다.
황금 가면은 샴시 유적지에서 발굴된 여러 황금 유물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항상 관리인이 지켜보면서
사진을 못 찍게 하였다.
어두운 배경에서 뿜어내는 황금 빛이 감탄을 하게 만들었다.
황금의 아름다움!

이 박물관 5층에는 대한민국이 기증한 신라 금관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도 사진 촬영 불가다.


박물관 옆 마당에는 석인상들이 늘어서 있었다.
부라나 타워 근처에 있었던 그 모습의 석인상들이다.

박물관에서 나와 우린 Oak Park로 발길을 옮겼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공원인 오크 팤

이 오크 공원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다정히 이야기하는 동상이있었다.
이 자리에는 과거에 스탈린의 동상이 있었는데
독립 후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으로 대체되었단다.
키르기스스탄의 레닌 동상과 마르크스 엥겔스 동상으로 보아 키르기스스탄 사회가 스탈린 같은 공산 독재는 배격하지만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큰 거부감이 없는 듯 보였다.

오크 공원을 걸어 나오면서 만난 프룬제 레스토랑.
유럽식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이지만 들아가 보기로 했다.

건물의 외관이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였고
식사하는 사람들 모습도 우아했다.
벽면에는 다양한 그림도 전시 되어있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우리도 테이블을 안내받아 우아하게 음식을 주문했고

샐러드와 메인 메뉴 양갈비와 송어요리.
다 너무나 맛있었다.
퀄리티가 높으면서도 전혀 부담되지않은 가격이라 너무 기분이 좋았다.

흡족한 점심을 먹고 우리가 다음에 간 곳은
국립 오페라 발레 극장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수준 높은 공연을 볼 수 있는 극장이지만 우리가 비슈케크에 있는 동안에는 공연이 없었다. 너무나 아쉽다.
극장 내부라도 봤으면 했는데 꼭 꼭 닫혀있었다.

키르키르스탄의 세계적인 발레리나인 부부사라 베이셰날리여바(Bubusara Beyshenalieva, 1926-1973)
부부사라 바이셰날리예바는 오랫동안 키르키르스탄의 '프리마돈나'로 여겨졌던 발레리나란다.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녀를 기념하가 위해 비슈케크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거리가 만들어졌고 키르키르스탄 국립예술원도 그녀의 이름을 따라 명명 되었으며 5솜 지폐에는 그녀의 초상화가 그려져있다.

키르키르스탄의 화폐들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5솜지폐가 앖었다.

러시아의 유명한 시인, 음악가, 그리고 이야기꾼인 모카나이(Мокморан). 이름 옆에 나와 있는 생몰연도는 1854-1933년으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활동했던 인물이다.

모카나이는 전통적인 악기와 구술 전통을 통해 민속 문화를 보존하고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주로 시와 노래를 통해 당시 사회와 문화를 표현했단다.

아쉬움을 가득 안고 우리는
승리의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승리의 광장(Victory square)

사진의 중앙에 보이는 큰 아치는 전쟁에서 승리와 평화를 상징하며, 중앙 아치 아래에는 영원한 불꽃(Eternal Flame)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불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한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항상 켜져 있다.

이 광장은 1984년에 제2차 세계대전 승리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단다.

이 승리의 광장을 끝으로
우리의 비슈케크 시내 탐방을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독한 감기가 여행친구 H님을 힘들게하고 있었다.
빨리 감기가 물러나기를!
집이 좋으니 집에가는 발걸음도 가볍다.
오늘은 여기까지.

쉬엄쉬엄
슬렁슬렁이 이번 여행의 컨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