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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여행

키르키르스탄 카라콜 1(제티 오구즈,시내)

2024년 10월 6일(일) 맑음

오늘의 일정
제티오구즈-성삼위 대성당-카라콜 박물관-둔간족 모스크

어제의 국경 넘기가 힘들었다고 느낀  우리는
오늘은 카라콜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쉼을 가질 생각이었다.
8시 조식을 먹고
이 집은 전형적인 러시아식 조식인 듯 우유로 끓인 쌀 죽이 나왔다.

아침을 먹고 서둘러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집 대문 앞에서 얀덱스 택시를 불러 제티 오구즈로 향한다.
정말 낡은 차, 앞 유리창도 깨져 금이 갔다.
안전벨트도 없고..

그래도 잘도 달린다.
제티 오구즈 마을 앞에서 내리라던
기사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돈을 더 주겠다고 하니
제티 오구즈 바워까지 데려다주었다.
마을에서도 한참 달려왔다.

제티 오구즈(Jeti-Oguz) 계곡은
키르기스스탄의 유명한 관광 명소로,
그 이름과 관련된 전설이 있단다.
. 제티 오구즈는 키르기스어로  
'일곱 마리 황소'라는 뜻이라고

전설에 따르면, 한 위대한 칸이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고,
그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
그의 친구였던 다른 칸이 이 부인을 탐내며 전쟁을 일으켰고, 결국 칸은 부인을 잃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때, 부인의 피가 흘러내려 일곱 마리의 붉은 황소 모양의 바위가 형성되었다고 전해진단다.
이 바위는 제티 오구즈 계곡의 상징으로 남아 있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전설을 기억하며
계곡을 찾고 있다.

이 전설은 슬픈 사랑 이야기로, 지역 주민들 사이에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단다

이 제티오구즈 주변에는 좋은 트래킹 코스도
있는데 우리는 시간상 꼭대기에 올라가
감상하는 것으로 끝냈다.

여기에서 폭포까지 가는 트래킹 코스는 8킬로 정도라는데
시간이 모자란 우리는 주변을 조금 걸어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참으로 비싼 커피 한잔을 여기에서 멋진 야외 카페였다.
그러나 커피 맛은 쏘쏘.

상쾌한 공기와 멋진 전경의 제티오구즈

좋았다.

다시 입구로 내려와
주변을 살피는데 차가 한대 달려 온다.
손을 들어 세우니
제티오구즈 마을까지 간단다.
대뜸 고맙다고 타니 안에는 꼬마가 있었다.
꼬마에게 과자를 주니 수줍어 하면서도 받는다.
한참을 달려 제티오구즈 마을에 도착.
운전사에게 초콜릿과 삼백솜을 주니
환하게 웃는다.
마침 카라콜가는 마르슈르트카(소형버스)가 서 있어
올라타니 자리가 세개가 있었다.
운좋게 앉아 가는데
나중에 앉아있는 사람의 세배가 넘는 사람들이
꾸역 꾸역 끼어 탔다.
정말 몇십년만에 겪는 만원버스였다.
버스비는 편도 일인당 40솜

카라 콜 도착해서 제일 먼저 간 곳은
성삼위 대성당이다.

나무사이에 평화롭게 자리잡고 있는 큰 목조 건물로 꼭대기는 초록색 지붕의 탑들과 황금빛에 가까운 양파형 돔으로 장식했다.
1872년에 지은 원래의 석조 건물은 1890년에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기존의 기단부에 목조로 지어올린 새건물은 1895년에 완성되어 볼세비키 당원들의 클럽으로 이용되었으며
이들은 1930년대에 5개의 양파형 돔도 없애버렸다.
1961년에 대대적인 재건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예배가 재개 된 것은 1991년 이란다.
내부에선 스카프로 머리를 가려야했고 사진 촬영은 공식적으로 불가였다.

성당의 분위기가 넘 좋아 한참을 어슬렁거녔다.

성당 뒤 사과 밭의 수확물 들. 사과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성당에서 나와 우린 근처 현지인들이 북적거리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전통 국수 요리인 라그만과 감자를 넣어 튀긴 빵만을 파는 전문 식당. 사람들로 꽉 찼다.

라그만과 감자 도넛 전통음료수.
이 감자 도넛은 맛있어
두개를 더시켜 먹었다.

점심을 먹고는
카라콜 박물관으로!
가는 도중에 우유를 잔뜩 넣은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진한 우유맛이 느껴지는 아이스 크림이었다.

이제는 카라콜 박물관으로


박물관은 소박하지만 카라콜을 조금이나마 보여준  듯 했다.
이 지역에 사는 동물들의 박제도 있었고.
박물관에서 나와 마지막으로 간 곳은
둔간족 모스크(입장료  1인50솜)

이슬람유적인 이 곳은 1910년에 지은 이 화려한 색깔의 모스크는 마치 몽골의 불교 사찰처럼 보인다.
볼세비키 집권 초기에 이 도시의 다른 8개의 모스크가 파과되었을 때에도 이 모스크는 무사히 살아 남았으나
1933년~43년에는 페쇠되어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단다.
지금도 내부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내외부의 중국식 기와가 인상적.

이 모스크를 마지막으로 오늘의 일정은 끝
우리는 얀덱스를 불러 집으로 일찍 돌아왔다.
집이 좋으니 나가기가 싫은 단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