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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여행

마야의 마천루 Tikal

2024년 3월 8일(금) 맑고 무더움

쓴돈(께찰)

투어비 200×2=400
아침식사 100
입장료 150×2=300
배삯 10×2=20
저녁  160
토마토 당근 10

우리가 여기 플로레스를 온 이유는 당연히 과테말라
최대의 마야 유적지 띠깔이다.
숙소 매니저한태 물어 보니 트랜스퍼랑 영어 가이드 가능한 투어가 200이란다.
그리고 새벽 6시 플로레스에서 출발 하는 것을 추천한단다.  그러려면 5시반에 숙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우린 좀더 싸게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색했는데
배를 타고 나가야하는
산 미구엘에서는 별 뾰족한 수가 없다.
특히 날씨가 한 낮에 40도까지 오르기 때문에
새벽에 가야하는데 새벽 배를 탈 방법도 없고.
할  수없이 숙소 투어를 이용하기로 했다.
돈을 쓰고 시간과 체력을 아끼기로 한 것이다.

새벽 5시. 알람소리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5시반 매니저가 태워주는
트럭과 배를 번갈아 타며
플로레스 투어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배를 타서 본 여명은 너무도 예뻤다.
가는 눈썹같은 달과 새벽별도 시리게 아름다웠고.
우리만 탄 배안에서
이 페텐잇차(peten Iza) 호수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비싼 투어비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15인승 투어버스
버스 상태는 양호했다. 에어컨도 빵빵하고
좌삭도 편안하고
버스는  잘 닦인 도로를 1시간 20분 정도 달렸다.
먼저 표부터 사고(1인 150께찰)
표 살 때 여권이 필요하다.

표 사는 곳

관람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출보려고 6시 이전에 들어가는
사람은 표를 두번시야한단다.
우리는 일출은 커녕
다섯시에 일어나는 것만도 엄청힘들었다.

표를 사고 더 들어가서
아침을 먹고 유적지 탐방에 들어갔다.

아침 먹은 식당. 사진이 흔들려서 먹은 밥 사진은 생략.

티꺌 유적지 내 식당에서 아침식사.
생각보다 비씨지는 않았다.

밥을 먹고 가이드를 따라
밀림 속을 20여분 걷다보니
Gran Plaza가 나왔다.

밀림 사이로
우뚝솟은 피라미드의 도시, 티칼
미야문명은 지금의
멕시코인 유카탄 반도의 치첸 이차, 팔렌케,
과테말라의 티깔
온두라스의 코판 등을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다.
그 중 마야의 뉴욕이라 불리우는 티칼은
종교와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티칼은
1979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티칼은 기원전 80년 마아인이 쳐음 정착하여
도시를 이루었고,
기원전 20년경에는 북쪽의 성채가 지어졌다. 전성기였던 90년경에
오늘과 같은 도시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최전성기의 티칼은 인구 10만 명에 이르는
뉴욕의 맨해튼 규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밀림 속에 어떻게 돌을 운반해
거대한 피라미드형 신전과 도시를 세웠는지는
여전히 미스테리이다.
이렇듯 영화를 누리던 티칼은
10세기 무럽 돌연히 정글 속에 버려졌다.


마야의 신성한 나무 세이바
(생명의 나무라고도 불린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 둥치에서 팔이
뻗어나가듯 벌어진 나뭇가지의 자태에서
뭔가 영험한 기운이 느꺼졌다.
마야인들은 세이바 나무를 생명의 나무,
즉 우주의 나무로 여겨 신성하게 모셨다.
마야인들은
세상이 인간 세계와
천상의 세계(신의 세계),
지하의 세계(저승의 세계)로이루어져 있고
이들은 다시 하나의 구조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세이바 나무는 9층의 지하세계와
지구의 표면(세속), 13층의 신의 세계를 나타내는 마야의 우주관을 상징하는 나무로 숭상되었다. 이 생명의 나무는 십자가 모양을 기본으로
청록식을 띠고 있다.
16세기 원주민들에게 가톨릭을 전도할 때 마야의 세이바 나무에 대한 믿음 때
문에 쉬웠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양쪽 종교의 상징이 십자가 모양이었으니
가톨릭의 전래를 예언한 것인지
아니면 마야와 서양 종교의 공통점 일지는
알 수없는 일이다.
티칼은 마야 유적뿐 아니라 천연의 원시림 속에서 마호가니 나무, 추잉검의 원료인 치클 나무,
너구리의 일종인 코아티(coati),
검은 부리와 목 부분이 노란 딱다구리의 일종인 토우칸(toucan) 새까지 볼 수 있는
생태 체험의 현장이었다

코아티
티깔은 밀림속을 걷기도 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 넓게 퍼져있는 밀림을 바라 볼 수도 잏어서 좋았다.

1호 신전.재규어의 신전

티깔의 피라미드는 다른 피라미드 보다.
더 높고 더욱 가파른 계단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피라미드 정상에 있는 신전 건물의 상단부와
 지붕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신전 내부는 공간이 작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재규어의 신전이라고도 불리는 1호 신전은
50미터 높이의 매우 웅장한 피라미드로
저승 세계를 상징하는 9단의 기단으로만들어졌다.
이는 신전 기능 외에도 마야의 우주관을 보여 주는 건축 양식이란다.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올라간 피라미드는 티깔 건축의 백미라 할 수 있단다.

신전 위에는 건물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구멍을 낸
우아한 루프콤(roofcoomb)이 얹혀있다.
6기의 신전 중 규모가 가장 큰 1호 신전은
인간이 신에게 더욱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단다.
이 루프콤의 청소는 사제와 귀족만이 출입했고 
평민들은 피라미드 아래 광장에서의식에 참여했다고 한다.
1958년 이 피라미드 내부에서 8세기 마야의 왕으로 추정되는 이의 무덤이 발굴되었다.
옥으로 된 장식품과 토기,장신구 등 부장품들을 등해
당시 호화로웠던 왕족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티칼의 2호 신전(가면의 신전)
 
그란 광장을 사이에 두고
1호 신전과 2호 신전은 나란히 있다.
2호 신전은 신전
상단부의 장식 지붕에 얼굴 부조를 새겨 놓아
가면의 신전 이라 불린다.
수직적상승감이 모던한 건축의 느낌을 주며 마야인들의 뛰어난 건축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이 2호 신전은 높이 38미터로 6개의 신전 중 가장 낮다.

구기장 마야의 유적에서 거의 나타나고 있다

2호 신전 상단부
피라미드 꼭대기신전에 올라 지붕의 가면을 볼 수 있는데 많이 조각이 쇠락해 있었다.

2호신전,가면의 신전, 올라 갈 수 있어 주변을 조망해보기 좋았다.
맞은 편의 1호 신전은 올라가 볼 수 없었다.

2호 신전에 올라가서

 

대광장을 떠나 다시 밀림을 잠시 걷는다.


4호 신전에 올라 서 본 티칼의 모습. 진한 밀림 퍼레이드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란 광장과 궁전 건물을 지나 정글 숲으로 결어가다 보면 우뚝 솟은 신전이 나타난다.
높이 70미터에 이르는 4호 신전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의 아
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신전 계단은 밀림의 나무 뿌리로 얽혀 있다.


엄청 많은 계단을 올라 정상까지 올라가니 밀림이 펼쳐져 있는 풍광이 범접하지 못할 자연을 느끼게한다. 
광대한 정글 속에 티깔의 피라미드 유적들 꼭대기부분만이 보였다.

검은 부리와 목 부분이 노란 딱따구리의 일종인 툭칸(toucan)새를 보았는데 사진에 잘 안나온다.

360도 전망이 있는 이 피라미드는 이름을 잘 모르겠다.
전망이 너무 좋아 헐떡거리며 올라간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이 전망좋은 피라미드를 끝으로 우리는 
밀림을 걸어 다시 입구로 나왔다.
날이 너무나 뜨거워 땀이 줄줄 흐른다.
새벽부터 시작해 이제 끝난 것을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해본다.

돌길이 깔린 플로레스 골목길. 햇살이 뜨겁다.

다시 배를 타고 호텔로...

 
새벽 5시에 일어나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두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티깔 유적지를 탐방하는 시간이 아홉시간가량이나
걸린것이다.
티깔은 여지껏 본
마야 유적지 중 최고였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peten 잇짜  호수도 좋고.
마음이 가득 채워진 느낌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더워 땀이 줄줄 흘렀다.
에어컨 있는 방이 천국이다.
 
저녁에는 돌아다닐 엄두가 안나 
호텔에서 식사. 꽤 맛있고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