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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여행

메리다에서 플라야 데 까미노로(중간에 치첸잇짜를 들르고)

2024년 3월 2일(토) 맑음

메리다 버스 터미널

칫첸잇짜

플라야 델 카르멘

 

쓴돈

메리다 터미널 가는 디디 팁포함 45

아침 서브웨이 207(음료수 포함)

치첸잇짜 입장료 95(2인 190)

치첸잇짜 자연 보호비 548(2인 1096)

스타벅스 아이스커피 1잔 95

치첸잇짜 세툐테 앞 매점에서 하드 두개와 젤리 155

 

 

치첸이싸는 메리다와 플라야 델 카르멘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어디에서건 머물면서 다녀 올래면 왕복을 해야하는 데 

오늘 우리는 카르멘을 가면서 들르기로 하였다.

메리다에서 아침 9시 30분 출발한 버스는 2시간만에 치첸잇짜에 도착하였다.

도착해서 일단 짐 보관소를 찾는데 다 유적지 매표소 앞에 있었다

트렁크 두개와 등에 매는 백팩 하나를 맡기는데 250페소.

정말 너무 비쌌지만 짐을 들고 다닐 수도없고

울며 겨자 먹기로 맡길 수 밖에

짐을 맡기고 표를 사는 데 표도 엄청 비쌌다.

여기까지 와서 안 들어갈 수도 없고.

모든 관광객들이 비싼 표를 군말없이 사고 있다.

1인당 643페소(약 5만원 가량)

지난번 욱스말이 비싸다 했는데 이 치첸잇짜는 더 비싸다.

그래도 엄청 많은 사람들로 입구의 건물은 북새통이었다.

 

중앙 아메리카 남부의 밀림에 번성해 온 마야 문명.

수 많은 도시의 유적이 이 땅에 흩어져 있는데 

치첸이싸는 200년 이상 유카탄의 예술,종교. 경제의 중심이었단다.

 

치첸이싸는 마야어로 '우물가 Itza의 집'이라는 의미란다.

유카탄 반도 최대의 세노떼(성스러운 샘)를 중심으로

도시가 번성한 점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불리워졌던 것 같다.

유적군은 마야의 특징이 두드러진 6세기경의 마야 고전기에 속하는 구 치첸이싸와

똘떼까 문화와 융합한 10세기 이후의 후고전기에 속하는 신 치첸이싸의 2개 지역으로나뉜다.

7세기에 융성한치첸이싸는 마침내 쇠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10세기에 중앙고원의 패권을 장악한 전투 부족인 똘떼까인과 손을 잡아 

다시 한번 번성하게 된다.

손을 잡은 유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이렇게 탄생한 것이 마야 똘떼까 문명이라고 불리는데 

새로운 유적의 모티브에 잘 나타나 있다.

지금까지 비의 신인 차끄(Chac)만을 모시건 소박한 모티브에

호전적인 병사의 상과 똘떼까의 상징인 꾸꿀칸(깃털을 가진 뱀)이 새롭게 그려진 것이다.

이 후 군사국가로 변화여 영화를 누리다가

13세기 초 멸망하면서 그 오랜 역사를 마감했다.

입구에서 들어가자 마자 마주친 엘 까스티요(El Castillo)

까스티요란 스페인어로 성이라는 뜻이다

바닥 둘레 55m  높이 23미터의 이 피라미드형 신전은 9세기 초에 완성된 거대한 건축물이다.

이 까스티요는 그 자체로 마야의 달력을 나타내고 있단다.

사방의 계단이 각 91개씩 있으므로 (91*4=364)

여기에 정상의 한단을 더하면 1년인 365개가 된다.

또한 이 신전은 9층의 기단으로 구성되어, 그것이 중앙 계단으로 구성되어 그것이 

중앙계단으로 나뉘기 때문에 (9*2-18) 이 것은 1년을 18개월로 나뉘던 하부력의 달수를 나타낸다.

더욱이 각 기단에는 패널(움푹 파인 부분)이  한면에 52개씩 있다.

이 것은 농경에 사용된 하부력(1년 365이)과 제사용 초로낀력(1년 260일)의 

2가지가 겹치는 52년의 달력의 주기를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신전 내부에는 작은 신전이 있는데,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면

비취의 눈을 가진 빨간 재규어 상과 차끄물 상이 있다는데 

지금은 올라갈 수가 없었다.

 

 

전사의 신전

3층의 기단을 가진 신전 주변에 전사의 부조가 새겨진 석주군이다.

'천개의 기둥을 가진 신전'이라고도 부른다.

똘떼까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석주나 계단을 지지하는 19개의 아뜰라스인의 두상 등은 

중앙 고원의 뚤라 유적과 비슷하단다.

상단의 입구에는 차끄 몰이 누워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똘떼까의 분위기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재규어의 신전.  숲속에 사는 재규어는 마야 인에게 공포의 대상이면 강인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쏨판뜰리

구기장 옆에 있는 이 대좌는 산 제물의 해골을 대중에게 드러낸 장소였다.

역시 마야의 전통적인 문화와는 이질적인 것으로 중앙고원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란다.

벽 한면에는 다양한 표정의 두개골이 새겨져 있다.

멕시코 시티의 템플로 마야에서도 본 기억이 있었다.

 

구기장(Juego de Pelota)

길이 150미터의 중미 최대의 경기장이다

내벽의 기단 부분에는 승리자의 목을 잘라 제물로 바쳐서

흘러내린 피가 7마리의 뱀이 되어 용솟음 치고있으며,

그 앞에는 화초에서 싹이 나는 그림이 있다.

또한 오른손에 칼, 왼손에는목을 가진 군인과해골이 겨겨진 공을 둘러싼 양쪽의 선수가 그려져 있다.

코트의 양쪽은 선수의 소리가 끝에서 끝까지 닿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 골대에 어떻게 공을 넣을 수 있는지 상상이 안갔다.

구기장을 나와 엘 카스티요를 등 뒤로하고 상점들이 늘어선 길로 들어가면 세뇨떼가 나온다.

이 유까딴 반도 최대의 세노떼는 비의 신인 차끄가 산다고 여겨졌던 '성스러운 샘'이다.

 

더위에 지친 우리는 이 세뇨떼 앞 매점에서 하드 하나씩을 사먹는데 그 가격이 놀랍게 비쌌다.

이 곳은 다 비싸다.

유적지 안을 거닐다 보면 거의 폐허가 된 구 치첸이싸 유적지도 접할 수 있었다.

 

약 3시간 여를 돌아다닌 것 같다. 그래도 군데 군데 그늘이 있어 견딜만 했다.

나와서 메인 건물안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려 했으나 너무 비싸고

식사의 내용도 부실해 그냥 음료수랑 땅콩스낵으로 대신하기로 하였다.

 

이제 짐을 찾아 카르멘 가는 버스 정류장에 갔는데

마침 버스가 와 있어서 냉큼 올라탔다.

버스는 냉방도 잘되고 편안했으나 너무나 돌아간다.

3시간 걸릴 여정이 4시간 반이나 걸려 버렸다.

 

플라야 델 카르멘 ADO 터미널 앞 

디디도 우버도 불러지질 않는다. 택시는 9분거리인데 200페소를 달라고 한다.

걸어서 25분 거리 

초행길을 짐을 잔뜩 끌고 다니기에 무리가 있다.

다른 차편을 모르겠고.

울며 겨자 먹기로 200페소에 숙소까지 왔다.

무인 체크인인 숙소는

메일로 비번과 와이파이 넘버 등이 다 전달 받아 놓았었다.

다행스럽게 우리의 멕시코 마지막 숙소는

큰 방에 거실겸 주방이 있는 깔끔하고도 조용한 숙소였다.

간결하지만 냉장고 주방식기 등 필요한 것은 다 있다.

5분 거리에 해변도 있고. 쉴 조건이 완벽하다.

편의점 과일 과게 야채가게도 근처에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