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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길을 걷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

8월 13일(토)

 

열흘만에 처음으로 7시 30분에 일어났다.

매일 5시나 5시 30분에 일어나는 것이 일이었는데 늦게 일어나니까 그나마 피곤이 풀리는 것 같다.

운동화와 양말을 드라이어로 열심히 말리는데 성공하여 걷는 내내 구질 구질했던 발 패션이 다소 반짝일 듯.

이제 보무도 당당하게 아침 부페를 먹으러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역시 호텔 아침 부페는 푸짐했다. 생오렌지쥬스와 또 다른 과일쥬스, 커피, 햄,치즈, 각종 빵 다섯가지 이상의 쨈. 버터 과일 등 등.

먹을거 앞에서 난 또 이성을 잃었다. 배를 두드릴 정도로 가져다 먹는 실수를... 난 지금 체중조절을 해야할 판인데...

걷는 내내 맥주다 와인이다. 또 스테이크다 먹어대서 그렇게 강행군을 했는데도 살이 전혀 빠지질 않았다.

나의 이 못말릴 먹성이여.

아침을 먹고 이제 짐을 꾸려 대성당을 향해 걸어가니 이미 10시가 넘었다.

길에서 만난 두 슬로바키아 여성의 도움으로 성당 사무실에 도착해서 순례길 증명서를 받으려 하니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조금 더 일찍 나오는 건데.. 산티아고에 도착했어도 게으름을 피우면 안되었었다.

30분쯤 줄을 서있다가 드디어 증명서를 받았다.

완주 증명서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증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모두다 뿌듯하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삶이 권태롭고 지루한 사람들. 모두 까미노길을 지루하게 걸어보라!

그 마지막 산티아고에서 지루함을 깨는 행복을 맛볼 것이다.

단순하게 노란 화살표만을 따라 걷는 길. 나중에 그 노란 화살표에 광신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 단순한 성취에서 극한 행복감을 맛보는 사람들. 그즐이 까미노꾼들이다.

두 다리로 그냥 걷는길.

나도 그랬다. 비록 반절도 못되는 길을 걸었지만 증서를 받을 즈음 많이 떨렸으니까.

나도 보란듯이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증명사진을 찍었으니까...

증명서를 받고나서 그냥 헤실헤실 웃으며 주변사람들에게 헤픈 웃음을 날렸으니까.

증명서를 받고나서 난 이제 숙소를 찾아 나섰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성취감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은 알베르게였다.

그러나 찾아간 알베르게는 이미 full이었고,  알베르게 오피스 여성은 다른 알베르게도 마찬가지일거란다.

역시나 오늘 내가 너무 게으름을 피운 탓이다. 

낭패한 얼굴로 길을 걷는 나에게 다가온 동네 아저씨. 자기집에 가잔다. 방이 있다고.

그를 따라가니 성당 바로뒤 조용한 골목에 있는 민박집이었다.

샤워실 딸린, 더블룸. 부엌도 마음대로 쓸 수 있단다. 25유로에 쿨하게 묵기로 한다. 비록 남들과 성취감을 나눌 수는 없어도 혼자 묵는 자유가 있다.

 방값을 지불하고 배낭만 방에 넣어 놓은채로 대성당으로 향했다.

대성당앞 광장은 저마다의 감격에 빠진 사람들로 복잡했다.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은 자전거를 광장 한복판에 뉘어놓고 본인도 드러누어버렸고.... 걸어온 사람들도 배낭을 베고 광장에 누워버렸다. 그래도 시선은 일제히 대성당을 향하고...

12시 대미사가 있단다.

성당안으로 들어가니 좌석이 없다. 서서 미사에 참석. 그 넓은 성당이 사람들로 가득찼다.

단체로 온 학생들. 걸어온 사람들. 자전거 타고 온 사람들. 버스 타고 온 순례객, 그리고 관광객들...

각국에서 온 사제들도 참석하고...

드뎌 대사제가 각국의 순례자들 소개하는데 꼬레아 소개도 한다. 뭉클한 마음.

그리고 게속 미사진행. 하일라이트는 연기가 피워나는 화로를 공중에 그네 띄우는 것이었다.

엄숙한 듯한 미사가 이 화로의식으로 들뜬 축제로 변하고 말았다. 화로 의식이 끝나자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놀랍고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미사가 끝나고나서 오른손에 성경을 왼손에 지팡이를 든 야고보상을 보려고 대성당 입구로 가는데 세상에 그처럼 혼잡한 곳에서 실비야를 다시 보다니...

순간 벽력같은 환호성이 나도 모르게 터져나오고 혈육을 만난 것 이상으로 반가운 마음에 막 끌어안았다. 그녀는 방금 도착했단다.

이 들뜬 도시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로웠던 나에게도 지인이 생긴것이다.

실비야와  그의 길에서 만난 친구 이탈리아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갔다. 9.5유로짜리 메뉴델 디아를 먹다.

나는 또 와인을 시켰는데 나를 따라 와인을 시킨 실비야가 취하는 듯. 이마를 찌푸리면서  "인영, 너는 어떻게 이 걸 매번 마시냐?한다. 나도 취한다.

이탈리아 부부 중 남편은 10년전에 산티아고를 왔었는데 그 때에 비해 산티아고가 너무도 상업적으로 변했다고 한탄했다.

우리가 매번 어디를 가든 그러는 것 처럼. 그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 곳도 변했겠지.

점심을 먹고나서 실비야 일행과 헤어지고 성당을 다시 들어가 못본 곳을 더보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선물가게 구경을 했다. 거리는 온통 축제분위기.

그러나 너무 피곤하다.

5시 숙소에 들어가 잠시 시에스타를 즐기다. 성당 근처의 숙소라 할 수 있는 특혜다.

2시간 가량 쉬고난 뒤 다시 대성당으로 가보니 완전 난리다. 단체를 중심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이 어디에도 동양인은 나밖에 없다. 그냥 그들의 축제속에 들어가 버린다.

이제 성당을 뒤로 돌아 칸타나 광장으로 향하다.

칸타나 고아장에서 콩가거리의 경사로를 올라가 Calderieia거리를 돌아 유서깊은 대학을 만났다. 고아장마다 음악회가 열려 발길을 멈추게 한다.  언덕을 향해 걷다보니 주택가. 이 곳은 사람의 그림자도 없어 조용했다. 거리를 걷는 내가 이상할 정도로...

긴 산책을 끝내고 다시 구시가.

두 군데 바를 들러 파타스를 곁득인 와인을 한잔씩 마시다.

그리고 성당앞 너른 광장.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사람들로 붐빈다.

한쪽에선 댄스파티가 열리고 있었고, 단체의 함성도 여전하다.

내 숙소가 성당과 아주 가까워 12시가 가까운 때에도 이렇게 즐길 수 있다. 내일의 일정을 생각해서 아쉬운 마음을 접고 숙소에 들어가니 12시가 다 되었다.

아 내일이면 이 기쁨의 도시 산티아고를 떠나는 구나... 아쉬운 마음을 안고 잠자리에 들다.

8월 14일(일)

오늘 7시 30분 기상.

머리감고. 누릉지 끓여먹고(나의 비상식품이 동이 났다.) 그제 사놓은 사과 하나도 마저 먹고... 몇개 없는 짐도 꾸리고.

성당앞에 가니 8시 30분경.

아 그곳에서 일본인 카메라맨 일행을 만났다. 나보다 2일뒤에 도착해서 오늘 방금 성당앞에 그들은 선 것이다.

그저 반가워 악수도 하고 그들과 기념촬영도 하고.. 그들에게 성당 사무실을 알려주고 헤어진다.

그 헤어짐도 잠시 또 엘 악세보에서 나에게 물집을 터트릴 바늘을 준 스페인 청년도 만났다. 이 만남도 반가워 뺨을 비비는 스페인 식 인사까지 하게 되었다. 와! 진짜 반갑다.

그와 헤어져 다시 거리 산책. 일찍부터 온 까미노 꾼들이 성당 오피스 줄을 길게 서있다.

안가 본 거리를 가본다. 시장이 있는....

걷다가 카페에서 커피도 시켜 마셔보고...

11시쯤. 숙소에 가서 배낭을 지고 성당 박물관 구경. 오늘 성당 12시 미사는 더 굉장한 듯. 일요일이라서인가?

11시 20분밖에 안되었는데 성당안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는 시간상 이 미사에 참석할 수 없다.

성당을 나와 선물가게에서 야고보상 하나를 사고. 뭔가를 먹어볼까하며 식당을 기웃거리다 그냥 기차역으로 가기로 하였다.

기차역 바로 앞 식당에서 메뉴델 디아를 시켰는데 파스타도 뜨겁고 맛있고, 본메뉴의 샐러드도 신선하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와인 한병. 이것이 문제다 다 마시고 나니 취했고, 속이 쓰렸다. 이제 와인은 그만 마셔야겠다.

식당에서 만난 세고비아에서 온 노부부와 까미노에 관한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야와 루벤스 등 그림에 조예가 깊은 노인들이다.  내가 내일 톨레도에 간다니까 아름다운 마을이란다. 그리고 자기들이 사는 세고비아도 아름다운 곳이니까 한번 들러보란다.

드뎌 기차가 산티아고를 떠난다... 마드리드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