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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길을 걷다..

아르주아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40km)

8월 12일(금)

오늘 13시간을 걸었다.

오늘 새벽 5시 30분.

다들 잠자고 있는데 홀로 조용히 일어나 어둠속에서 감각을 이용해 조용히 짐을 꾸려 놓고 부엌으로 가서 마지막 누릉지를 끓여 먹고 어둠속 아무도 없는 길을 나선다.

어제 많이 걸어서 조금은 삐걱거리는 다리가 행여 망가질까봐 천천히 걸었다.

출발은 나 홀로 시작했는데 얼마 안있어 늦게 출발한 사람들이 나를 추월하기 시작하였다.

출발한 지 한시간 쯤 조금은 번화한 포장된 거리가 나오더니 불을 밝혀 영업을 시작한 바가 보인다.

까미노 꾼들이 커피와 크로와상으로 아침을 먹고 있었다.

마침 커피 생각이 간절했던지라 반가운 마음으로 바에 들어가 나도 그들처럼 커피와 크로와상으로 요기를 했다.

아침을 누릉지만으로 때울려는 나의 마음이 또 무너지는 순간이다. 많이 걸으면 무엇하랴. 이렇게 많이 먹는데...

이제 산티아고에 가까워서일까? 정말로 걷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기름 기름한 다리로 성큼 성큼 잘도 걷는다. 모두들 나보다 빨리 걷는다. 불안해진 나는 나의 걷는 속도를 체크해 보는데 꼭 시속 4키로미터의 속도였다.

이 길, 아름다운 풍경 사이로 수북하게 쌓인 소똥. 그냥 걷는 것에 마취되어서일까? 나에겐 소똥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는데 함께 걷고 있는 스페인 10대들이 손으로 키득거리면서 손으로 가르키는 것을 보니 여기 저기 소똥이다.

오늘 길엔 유난히 개를 데리고 까미노길을 걷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12시쯤. 알카도피노에 도착했다. 1시에 문을 여는 알베르게 문 앞에 가방들이 벌써 길게 줄지어 서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까지 걷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 산티아고에 가능한한 빨리 도착한다는 플랜을 가지고 있었다.

나도 모두가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내게 남을 시간이 없다. 난 오늘 중으로 산티아고에 입성해야만 오래 전에 예약해놓은 호텔에 묵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틀 정도 여유있게 산티아고를 즐길 수 있는 것이고...

이제 유칼립투스 숲길을 걷는다. 그렇게 많았던 걷는 사람들이 다들 알베르게에서 쉬고 있는 지 나 홀로 걷고 있었다.

2시쯤. 외롭게 외롭게 걷다 만난 산속의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인 정식을 먹었다. 홀로 걷다 만난 레스토랑엔 의외로 까미노꾼들로 가득차있었다.  발바닥은 아프고 종아리는 퉁퉁붓고... 그런데도 밥을 먹으면서도 신발을 벗어 놓을 수 없다. 레스토랑 규칙이 신발을 못벋게 함으로...

몬테델고조에 다다르니 '페레그리노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이름의 벽화가 눈에 띄었다. 1982년 이곳을 순례한 교황을 기념해서 만든 기념물이란다.

어느 순간 산티아고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이어 나타난 언덕.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바로 밑 가까이 보이는 산티아고를 조망해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곳에서도 걷고 또 걸어서야 난 산티아고  구시가의 칸타냐 광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시간은 이미 7시가 다 되었다. 아직도 환한 거리지만 난 정말 녹초가 되었다. 오늘 13시간 동안 길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 중 점심먹고 중간 중간에 바에서 차나 맥주를 마시면서 쉬는 시간을 뺀다면 꼬박 10시간동안 나의 가엾은 다리를 움직인 것이다.

내가 서울에서부터 예약했던 호텔 Husa는 적당한 크기의 호텔이었지만 방을 조금 낡았고 좁았다. 그렇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참으로 오랫만에 나 혼자만의 방과 욕실을 차지한 나는 바에 들어가자마자 훌렁 훌렁 벗어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하고 또 꾸질 꾸질한 운동화를 빨아 드라이어로 물기를 빼고... 아 스마트폰을 와이파이 번호를 받아서 인터넷 연결도 하고... 어느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것이 일인용 싱글룸 호텔에 있었다. 고된 걷기가 끝났다는 홀가분함도 있고... 이제 더이상 걸을 수 없다는 서운함도 있고.. 

이제는 시원하게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러 나갔다.

거리에선 나도 모르게 두리번 거리게 되었다. 혹여 아는 얼굴이 만나질까?해서.. 그러나 내가 이틀동안 40키로씩 무리해서 걸었기 때문에 길에서 만난 익숙한 얼굴들을 찾을 수 없다. 순간 몹시도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와인과 치즈를 사와 혼자 호텔에서 산티아고 입성을 축하하며 축배를 들었다. 그동안 못보았던 텔레비젼도 틀어놓고...

산티아고 순례의 최종 목적지이자 기독교 3대 성지로 알려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산티아고'란 스페인어로 성 야곱을, '데 콤포스텔라'는 별이 내리는 들판을 뜻한단다.

주교 테오드미로가 숟사들과 함께 성 야곱의 무덤을 발견한 것은 813년으로 추정된다. 그 소식을 들은 당시 아스투리아스의 왕 알폰소 2세는 왕국의 수도인 오비에도에서 산티아고로 향했고, 그 땅에 성 야곱을 기리는 성당을 건축할 것을 명했다. 이 조그만 성당이 지금 볼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카테드랄의 기초가 됐는데 순례의 긴 역사는 여기에서 시작됐다고....이 산티아고 대성당과 거리는 내일 만나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