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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길을 걷다..

엘 악세보에서 폰페라다(16.4km)

8월 7일(일)

깨어나보니 6시 40분경이었다.

깜작 놀라 서두르니 안나와 페트라도 금방 일어나 챙긴다.

7시 10분경 출발. 사방이 많이 밝아 있으나 상당히 춥다.

페트라는 나에게 잠바가 없다고 걱정하고....

1시간 채 못가서 Ambros도착. 이 작은 마을은 아무 것도 없다. 쵸콜릿 등 가지고 있는 것만 나누고 그냥 지나친다.

이어지는 산길. 그다지 험한 길이 아닌데도 두 여인네는 힘들어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고 있다. 특히 페트라가 돌과 바위투성이의 비탈길을 몹시 힘들어하고 있었다.

한국의 산에 익숙한 나에게는 별로 힘든길이 아닌 듯 느껴지는데.... 하긴 페트라는 올해 65세이니 우리나이로 치면 67세쯤.

무릎이 아프고 힘들만도 하다.

10시경. 몰리나세카에 도착. -아주 예쁜 마을이었다. 처음 만난 바에서 커피랑 크로와상으로 요기를 하고는 안나와 페트라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먼저 일어났다.

혹 폰페라다에서의 버스시간이 걱정되어서다.

안나와 페트라의 속도로는 너무 늦을 듯 싶어.... 깊은 포옹을 하고 우린 헤어졌다. 참 좋은 사람들인데...

이메일을 하기로 약속에 약속을 더했다.--헌데 내가 받아온 안나의 이메일 주소가 잘 못되었단다. -연락할 길이 없다.

그들이 어떻게 까미노길을 마무리했는지 많이 궁금한데....

11시 30분. 폰페라다 도착.

폰페라다는 고대 켈트족 마을에 자리 잡은 곳이다. 가까이에 광산이 있어 로마제국 때부터 도시로 성장했단다. 로마 멸망 후엔 고트족이, 이어서 무슬림제국이, 다시 재정복한 후 기사들에 의해 보호되며 성장한 곳이다. 오늘날은 탄광 개발과 철도 개통으로 과거처럼 산업도시로 새로운 성장을 하는 곳이 되었고.

그 가운데 기사 성이 있는 올드 타운이 있었다. 13세기에 지어진 이 기사의 성채가 오늘날 관광객을 부르는 주요 자원이란다.

이상하게 다리가 무거워진 나도 이 기사의 성을 그냥 지나칠 수 는 없었다. 입장료 6유로를 주고 티켓을 끊어 들어가 본다.

배낭은 매표소에 맡기고.. 나처럼 걷는 중인 순례꾼들 몇명도 들어와 돌아보고 있지만 대부분 가족단위로 놀러온 관광객들이 많았다.

조금은 들뜬 분위기이기도 하고...

성안엔 기사의 복장 등 다양한 전시실도 있었다. 대체로 견고한 요새같은 느낌을 주는 성이었다.

중세 시대에 순례자들을 위해 이 지역을  흐르는 강에 다리를 놓았는데, 그 다리 난간을 철로 만들어서 다리명이 '철의 다리'를 의미하는 폰페라다라고 붙여졌고, 후에 그것이 이 도시의 이름이 되었단다.

기사의 성을 나와 버스정류장을 찾아 가는데 도시를 가로질러 한참을 걸어야했다.

그러나 그렇게 찾아간 버스 정류장엔 내가 가야할 곳의 버스가 없단다. 순간 난감하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아무리 계산을 해도

그냥 걸어가기엔 턱 부족이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일정 거리를 가기로 하였다. 택시기사가 처음엔 calbor까지 40유로에 간다고 하고는 금방 오리발이다. 90유로를 내라고... 어이가 없다. 한참을 실갱이를 하다가 그냥 vega de valcarce까지 가기로 합의를 본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어떻게 되겠지.  vega de valcarce 알베르게 4유로. 오피스에 아무도 없어 내 마음대로 침대를 골라 짐을 풀었다.

샤워하고 빨래까지 다 하고 나서야 관리인이 왔다. 택시로 40키로 정도를 추월하다보니 이 알베르게엔 친숙한 얼굴들이 한명도 없다.

다 새로운 인물들.... 그들도 내가 낯선가보다.

이 마을은 아주 산골의 전경을 지니고 있다. 이 산골 마을의 알베르게에도 까미노 꾼들이 꾸역 꾸역 찾아오고 있다.

갑자기 레스토랑 찾아가기가 싫어 슈퍼에가서 재료를 사다가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오믈렛과 샌드위치.그리고 맥주. 또 내일 아침과 점심을 먹을 샌드위치까지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계란도 삶아놓고.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하고 배도 부르다.

내가 부엌에서 열심히 만들어서 저녘을 먹고 있으니 몇몇 사람들이 식탁에 앉아 말을 걸어온다. 그 중 프랑스에서 왔다는 여성은 자기 집에서부터 걸어왔다고... 와! 말로만 듣던 사람을 직접 만났다. 그리고 또 한 스페인 커플. 그들은 내가 좋아했던 발렌시아에서왔는데 오세브레이로만을 걸을려고 짧은 휴가를 이용해서 왔단다. 함께 이야기할 때에는 평범하고 고지식한 커플처럼 보였는데 밥을 먹고 나서 까미노꾼들이 거의 다 밖을 나가 사람들이 거의 없는 알베르게 침대에서 벌인 이들의 애정행각은 참으로 진했다. 30여개의 침대 중 나와 그 커플만이 방에 있었는데 내가 계속 남아있기가 민망할 정도..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 이 곳에서 실비아를 만났다. 레온에서부터 함께 걸었던... 그녀는 하루에 40키로씩 이틀을 강행군하여 이 곳에 왔단다. 아주 피곤한 얼굴로 저녘에 도착하였다. 그녀가 이 낯섬 속에서 어찌나 반가운지.... 사실 그 전에 길에서 보았을 때는 눈인사 정도만 했었는데 이 곳에서 만나자마자 통성명도 하고 이것 저것 이야기도 하고.... 뭐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