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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길을 걷다..

오르비고에서 사모자까지(25.2km)

8월 5일 (금)

오늘 새벽 진짜 어이 없는 일이 벌어졌다.

새벽 3시 조금 넘은 시간부터 사람들이 짐을 꾸려 나가는 것이었다.

세상에 깜작 놀랐다.

그래도 꿋꿋하게 잠을 자는데 5시 15분경 시계를 확인하는데 방안엔 옆 침대의 독일 할머니 한명만 남아있을 뿐 아무도 없다.

그녀마저도 일어나 짐을 꾸리고 있었고...

혼자 다니지만 혼자 뭐든 할 수 없는 나.

순간 당황해서 벌떡 일어나 짐을 꾸리고 세수를 하고 단장을 하며서 떠날 채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다행이 나보다 30분 먼저 준비를 시작한 독일 할머니들과 함께 출발할 수 있었다.

아직 어두컴컴하고 하늘엔 별들이 가득하다. 공기는 신선하고 고요하고....

아 이래서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구나를 느끼게 하는....

얼마후엔 이탈리아 청년들이 와서 길안내를 한다.

어둡지만 하늘 가득한 별밭들을 이고 걷는다.

밝음이 서서히 나타나는 신새벽도 좋다. 아 이래서 새벽길이 좋구나...

독일 할머니들은 은근 나한테 함께 걷기를 원하고 난 나대로 그들과 길행보가 맞을 거 같아서 오케이다. 혼자가 아니라 길동무가 있다는 것. 이것이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할머니들은 천천히 걷고 많이 쉬어서 좋았다.

카페 두군데와 순례자들을 위한 무료 바를 거친 다음에 우린 아스토로가에 도착했다.

아스토로가는 분지로 형성된 작은 도시다. 사방이 첩첩산중 큰 산들로 담처럼 둘러싸여있다. 과거 저 산의 금과 구리는 로마 군단을 불러들였단다. 아스토르가는 동프랑스 보르도에서 시작하여 서쪽 산티아고로 뻗은 비아트라이아나와 스페인 남쪽 세비아에서 출발해 북으로 뻗은 카미노 모사라베가 만나는 지점이다. 전성기에는 순례자 숙소가 21개나 되던 큰 도시였단다.

아스토르가 예쁜 동네다.

일단 동네안으로 들어가서 가우디의 작품인 주교의 대저택과 박물관, 로마 광장을 둘러보았다.  이 쯤에서 독일 할머니들은 가우디 건물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초콜렛 가게를 찾아 가고 난 대저택 안을 둘러보기 위해 일단 헤어졌다. 잠시 뒤 대성당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가우디란 인물. 그이 무한한 상상력과 정감에 완전 호감이 간다.

거듭해서 재건축 되었던 로마 성벽은 나폴레옹 군대가 점령했을 때 결국 거의 허물어져버리고 지금은 대략 2km 정도 남은 것 같았다. 엄청나게 활력이 넘쳤다던 아스토르가가 이제는 나같은 순례자들이 훅 둘러보는 작은 도시로 남아 버렸다.

대성당앞에서 만나기로 한 할머니들을 못만나고 노란 표지판을 따라 혼자 길을 걷는데 왠지 쓸쓸하다. 함께한 길동무가 없어서일까?

그러나 곧 어제 오르비고에서 만난 강지를 길에서 또 만났다. 그와 다시 말이 통하는 길동무가 되었다.

그는 나처럼 마스크로 얼굴도 가리고 긴팔도 입고.. 히히. 정감이 간다.

오늘 길은 어제 길보다 훨 운치있고 좋다. 다시 산티아고 풀코스에 도전할 욕심이 생긴다.

혼자라면 명상을 했을 법한 단조로운 길이지만 강지와 함께니까 괜찮다.

중간에 레스토랑에서 파에야와 맥주로 식사를 하는데 여기에서 아까 아스토르가에서 헤어진 독일 할머니들을 다시 만났다.

우린 기쁨에 얼싸안고... 그리고 우리가 먼저 출발.

오후 3시 사모자에 도착.

입구에 알베르게가 두개있는데 우린 두번째 알베르게에 묵었다. (5유로) 그리고 씻고 빨래를 한 후 다시 독일 할머니들을 기다리다 그녀들과 재회. 그녀들도 이 곳에 묵다.

레온에서 오르비고 가는길의 지치고 힘들었을 때 만났었던 스페인남도 이 알베르게에서 재회.

이 곳 사모자는 아무것도 없고 폐가들이 조금있는 정말 할일 없는 한가한 마을이다. 그래서 더욱 좋은...

강지와 마을을 이곳 저곳 돌아다녀보았지만 그다지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와인 한병을 시켜 마셔본다.

이 할 일 없음이 좋다. 내일? 되는대로 걷자.

지금 생각으로는 생각을 깊이있게 하지말고 12일 산티아고 입성 날만 어떻게 맞추어 보자.하고 새각하고 있다.

아무생각없이 길을 걷는 것.

이것이 걷는자가 가진 특권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 대부분이 너무도 많이 책자에 의존하며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