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까미노 길을 걷다..

레온에서 오르비고까지 (36.4km)

8월 4일(목)

오늘은 보란듯이 5시 30분에 일어나서 6시에 2층 식당으로 올라가 수녀원에서 제공해주는 빵과 커피와 꿀로 아침 식사를 하고는 곧장 출발하였다.

20명가까이 된 사람들이 출발해서 그들만 따라가면 된다. 레온시내를 빠져나가는데도 한참걸렸다.

7시 15분 드뎌 레온시를 벗어나다.

사람들은 보폭도 크게 잘도 걷는다.

내 짧은 다리로는 도저히 그들을 따라 갈 수가 없다. 중간에 쉴 곳도 마땅치 않는 건조한 길이다.

3시간만에 카페하나 발견. 커피와 케잌을 먹고. 아 그전에 어제 사놓은 복숭아 1개를 먹었다.

그리고 카페 바로 전에 누군가가 까미노꾼을 위해 내놓은 자두도 먹고.

길은 계속해서 찻길을 따라 이어졌다. 빌라단고스델 파라모 쯤. 카페하나 더 발견했는데 이곳에서 한국인 정현이와 만나 맥주 한잔을 더 마셔주었다.

그리고는 빨리 걸어 가겠다는 그와 헤어져 외롭고 힘들게 걷는다. 땡볕길.. 별반 쉴 곳도 없는 길. 고행이다.

이제 순례꾼들도 잘 만나지지가 않는다. 산마르틴 13시 15분 도착.

여기에서 잠시 갈등을 겪었다. 머물까 말까? 오르비고까지 7km남았단다.

이제 더 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래도 고속도로변의 숙소가 마음에 안들어 계속 걷기로한다.

그런데 이 길이 이를 악물고가게 만드는 길이다. 이제 길에는 두 남자(핀란드인과 스페인인)밖에 없다.

자기 나라는 매일 매일 비가 온다고 뭐라 뭐라하는 핀란드 남은 빠르게 앞서가고 이제 믿을 사람은 스페인 남자 뿐이다.

그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까미노를 수십번 왔단단. 휴가 때마다 조금씩 나누어서 걷고 있다고. 직업은 변호사. 영어를 썩잘한다.

어떻게 한국사람들이 까미노를 알고 많이 오는지 신기하단다. 유럽사람들이 많이 오는 건 이해가 가지만.

그에게 한국에 까미노에 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고, TV에서도 소개되었었다고. 또 현재 한국에선 걷기열풍이 들어 이렇게 마음놓고 걸을 수 있는 까미노길에 열광하고 있는거라고.... 아무튼 나도 워낙 오늘 외롭게 걸었던 참에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도 오르비고까지 간다기에 알베르게를 함께 가기로 했으나 내가 워낙 지쳐서 느리게 가는 바람에 그보고 먼저 가라고 해서 헤어지고 말았다. 길에는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아무도 없고 온통 햇살로 하얗다.

오후 3시. 오르비고 도착. 간신히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할아버지를 붙들고 알베르게를 물으니 아주 친절하게 잘 가르쳐 준다.

오르비고. 정말 예쁘고 아기자기한 마을이다. 돌다리가 인상적인 마을. 오스피탈데오르비고. 중세축제가 해마다 열리는 곳이다.

고딕양식의 긴 다리가 그동안 건조했던 길에 대한 피로감을 희석시켜준다. 힘들었지만 이 곳까지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도 아주 대만족.

인테리어가 아기자기하고 안마당이 예쁘고 뒷마당도 너르고 빨래터도 흡족하다. 길고 푸짐한 햇볕을 받는 빨래줄도 마음에 든다.

어쨋든 잘왔다. 이곳에서 제주도에서 온 강지와 조우. 내가 빨래를 해서 널고 샤워를 하고 난 뒤 느긋한 마음으로 길거리 카페에서 맥주를 한잔하고 있는데 아주 지친 모습으로 나타났었다. 그런 그에게 알베르게를 가르쳐주고 또 먼저 온 자의 여유로 맥주도 한잔 권하면서 친해졌다. 순수하고 순진한 청년이다. 이번이 해외여행 처음이란다. 함께 동네 탐색도 하러다니고...

오늘도 이렇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