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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길을 걷다..

사모자에서 엘 악세보까지.(27.8km)

8월 6일(토)

오늘 5시 20분 기상. 5시 50분 숙소 출발.

오늘은 아무도 일찍 출발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직도 깜깜한 어둠속을 홀로 출발한다.

깜깜한 어둠속. 두렵기는 했지만 길이 단순하고 일직선이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동네를 벗어나기전에 어제 봐둔 동네 놀이터 음료수대에서 물병에 물을 받아넣고 출발하는데 개한마리가 나를 보호해 주듯 따라다닌다.

고것이 무섭기보다 생명이라고 위안이 된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출발. 길은 깜깜한데 어제 만큼의 별은 없다. 그래도 무서움은 잠시 홀로 걷는다는 자유로움과 햇빛으로부터 벗어난다는 홀가분함이 있었다.

느리적 느리적 주변을 감상하며 걷는다.

EL Ganso 6시 50분 도착. 그곳의 알베르게에선 사람들이 한참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 어둠은 완전히 걷히지 않고 있고 길에는 걷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이 신새벽의 길은 오로지 나의 소유다.

라바날 델 까미노까지 가는데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이 곳 바에서 오믈렛을 낀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 나오자니 스페인인 가브리엘이 와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더우기 서양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나의 풀네임을 정확하게 발음까지 하면서...

나보다 훨 늦게 출발했을 텐데 벌써 따라온거다.

라바날은 12세기에 템플라 기사단이 주둔했던 곳이란다. 폰페라다로 가려고 아이라고 산을 넘는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 라바날을 지나 산티아고 길에서 3대 난코스 중 하나인 아이라고 산을 넘어야한다. 1200미터에서 1500미터로 가파르게 산등성이를 올라가야하는 것이 오늘 가야 할 길인 것이다.

오늘은 새벽녁에 걸어나오는 길도 좋았고 모든 길들이 운치가 있고 좋다.

라바날까지 오는 길에 여행자들이 철망사이로 얽어 놓은 수많은 십자가들도 흥미롭고 굉장히 날씬한 멋쟁이 할머니들이 등산용 스틱을 양손에 집고 핫팬티를 입고 빠르게 걸어가는 모습도 재미있다.

라바날을 지나면서는 순례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내가 헐렁거리면서 느리게 걷는 바람에 늦게 출발한 사람들이 다 나를 따라잡은 것이다.

라바날을 지나면서 비가 오기 시작한다. 우비를 꺼내입고 걷는데 아직은 운동화가 젖지는 않는다.

폐허의 마을 혼세바동에서 또다시 강지와 조우.그가 내가 출발하고 얼마후에 출발했는가 보다.

허물어진 돌집들 사이를 걷다가 만난 언덕위 작은 바에서 강지는 사과를 먹고 있었다. 나도 이 곳에서 사과를 사고 커피도 한잔 더 마신다. 이 페허의 마을 혼세바동에서 수레를 끌고 걷고있는 순례자와 만나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혼세바동에서 2키로쯤 오르니 크로스데히에로가 나왔다. 어제 내가 버스로 이 곳을 뛰어 넘으려고 하니까 강지가 이 철의 십자가가 영험하다고 이 곳을 꼭 가봐야한다고 강권해서 오늘 이 길을 걸은 것이다.

강지와 난 옆서에 정성껏 소원을 적어 철십자가에 끼어놓았다. 난 아픈 친구 H와 가족들 나의 모든 사랑하는 친구들의 건강과 행복을 가득 적어놓았다. 그리고 앞으로 나의 남은 인생이 외롭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아직 어린 소년 둘(10살도 안되어 보이는....)이 자전거를 타고 이 곳까지 올라와 주변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었다.

모든 의식이 끝난 우리는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하고..

날씨가 꽤 쌀쌀해 강지보고 먼저가라고 하고 옷과 우비를 입는 사이 강지와 영영 헤어지고 말았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만자린을 지나고나서 빗속을 한참을 걷다보니 바지와 신발이 다 젖어 버렸다.

무엇보다 발의 안전이 걱정된다. 이제 길에는 사람들이 거의 안보인다.

안개와 빗속을 부지런히 걷다보니 이탈ㄹ아 부부가 천천히 걷고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이제 발은 아픈지도 모르겠다. 마을이 안보이는 것에만 신경이 쓰여서...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저 산너머에서 햇살이 반짝거리면서 비가 걷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찬란한 광경이란...

그리고 보이는 밝고 예쁘게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이 EL Acebo란다. 마을에 알베르게가 있었다.

역시 오늘도 오후 3시경에 걷기를 접는다.

알베르게는 여지껏 묵은 곳 중에서 가장 열악했다. 그래도 어쩌랴. 신발은 젖었고 더이상 갈 수가 없는 걸...

짐을 부리고 젖은 신발과 젖은 바지를 빨아 널고 샤워를 하고 부지런히 식당으로 내려가서 아슬하게 메뉴 델 디아를 시킬 수 있었다.

오랫마네 국물있는 스프와 한병가득 와인과 스테이크. 과일 통조림 등으로 격식잇는 식사를 하다.

식사를 하는 데 페트라와 안나, 두 독일 할머니들이 아주 지친 모습을 하며 들어온다. 이 때가 4시 20분경.

배고픈 그녀들은 나와 식사를 함께 하려했으나 식사시간이 지나 줄 수가 없단다.

그냥 간단한 간식거리를 시켜 나와 합석을 하였다.

61세, 안나 하나 밖에 없는 딸을 3년전에 잃었단다. 그래서 가슴에 딸을 품고 까미노를 걷고 있다고.. 65세 페트라, 참 소녀같은 감성을 지닌 맑은 여성이다. 자녀가 4명인데 내일이 첫 아들 생일이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웃사이인데 까미노를 함께 가는 것에 의기 투합해서 오게 되었다고..

오늘 내가 먼저 출발해서 따로 걸은 걷게 되었는데 내일은 꼭 같이 출발하자고 신신당부한다.

내일은 오전만 걸어야하니까 같이 걸어야겠다.

식사를 하고 숙소로 올라가 좀 쉬다가 스페인 청년에게 바늘을 얻어 물집을 터트렸다. 그도 레온에서부터 걷기 시작 3일째 걷는 중이란다. 알베르게 계단에 나란히 앉아 그의 바늘과 그의 소독약으로 그와 난 물집을 터트리고 소독을 하고...

밤의 EL Acebo 마을은 축제중이었다.

아랫마을의 알베르게 옆 잉글리쉬교회에서 빠에야와 상그리아를 모든 사람에게 서빙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 곳을 찾은 까미노꾼들이 배불리 먹고 기뻐했다. 나도 물론 그 줄에서서 얻어 먹었고. 커다란 철판에 담겨나온 빠에야는 정말 맛있었다. 닭고기와 홍합이 듬뿍 들어간 빠에야. 그리고 각종 과일이 푸짐하게 들어간 상그리아. 주변을 둘러보니 아시아인은 나뿐이다. 그래서인지 유독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의 손을 잡고 많이 먹으라고 난리다.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작은 악단도 있고.  저 산아래 노을은 멋지고 아름답고.

정말 이 마을에 잘 머물렀ㄷ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레온에서부터 만나온 이탈리아 아저씨는 반갑다고 뺨을 비벼대고...

이 작은 마을의 축제에 나도 한명의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다.

분위기에 취해 어울려 놀다. 밤 10시가 훨 넘어 우리 알베르게로 올라가니 바로 그 앞에 는 더욱 푸짐하고 세련된 음식상-수십가지의 예쁜 타파스와 와인, 상그리아,등-을 차려놓고 나를 부른다. 이미 배가 부를대로 부른 난 또 거절을 못하고...

사실 오늘은 거한 메뉴델 디아를 먹어서 저녁을 굶으려 했는데....

한시간 정도를 이 윗동네 축제에서 함께 놀다가 적당하게 '아디오스'를 외치고 난 알베르게 내 침대로 들어간다.

아 오늘 정말 피곤하면서도 멋진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