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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꼴까타

1월 31일(토)

 밤새 덜컹거리는 상태에서 자다가 깨어 주섬 주섬 챙기고 얼마 안있어 기차는 꼴까따 하우라역에 도착하였다.

 기차안에서 우리에게 많은 유용한 정보를 준 모자에게는 인사도 못하고 어찌하다 헤어지고 말았다. 버스 정류장을 찾다가 귀찮아서 택시를 탔다.

 합승택시. 2명에 50루피에 협상. 기차역에서 한참 길이 막힌 택시는 역을 벗어나자 순조롭게 달려 금방 서더스트리트에 도착하였다.

 이리 저리 숙소를 찾아 돌아다녔지만 마땅하게 깨끗한 곳이 없다. 결국 찾아든 곳이 삐끼를 따라간 VIP CONTINATAL 호텔이었다. 길거리 방이라 시끄럽지만 온수,텔레비젼, 가구 등이 딸린 깨끗한 방이었다. 흠이라면 카펫이 깔려있다는 것. 그러나 열심히 청소해서 그다지 불결해보이지는 않는다. 무지 비싼 550루피에 묶었다.

대충 얼굴만 씻고 아침을 모모 팰리스에서 닭죽으로 먹고 인디언 뮤지엄으로 갔다.

뮤지엄은 8년전과 별반 다를바 없지만 입장료가 3루피에서150루피로 대폭 인상되었다.

그러나 전시물 하나 하나는 언제 보았냐는 듯 새롭다.

아쇼카 석주의 사자상도 그대로 있었고, 산치에서 출토된 벽돌 토라나 등이 오래된 냄새를 풍기면서 그대로 있다.

수많은 간다라 불상들, 그리고 카주라호에서 출토된 조각들. 반갑게도 인도네시아의 보르보르도유적이나 브남빠난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인도네시아 분위기를 듬뿍지닌채 전시되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행복했던 여행이 새록 새록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2층에는 새들, 공룡,물고기들이 박제되어 있었고 천공예 등도 있었다.

 아쉽게도 3층 전시장은 보수 중이라 닫았단다. 3층엔 회화 갤러리가 있어 무굴 세밀화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박물관은 대충 보는 데도 두시간여가 소요되었다.

 박물관에서 나와 한참을 걸어 빅토리아 메모리얼로 갔다.

 타지마할과 같은 대리석으로 만들었다는 빅토리아 메모리얼. 이 곳도 웬지 기억만 아련할 뿐 새롭다. 규모도 크고, 무굴 양식의 돔 그리고 전반적으로 전형적인 이탈리아 양식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대뎡제국의 전성기를 열었던 빅토리아 여왕의 추모기념관은 여왕을 기리기 위해 모은 7백 50만 루피를 쏟아부어 지은 건물로 1906년에 건설을 시작해 1921년에 완공되었단다.

 빅토리아 메모리얼 밖 공원에는 젊은 남녀들이 여기 저기 앉아 달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메모리얼 내부는 15시부터 관람이 허용되는데 이 또한 150루피이다. 예전에 보았을 때 별 감흥이 없었던 것이 기억나 우리는 겉에서 본 거에 만족하고 이 돈으로 스테이크를 먹기로 마음을 먹었다.

 메모리얼에서 나와 벌라천문관을 지나 성 바울 성당으로 갔다. 고딕양식의 커다란 건물. 깨끗하고 차분한 분위기이다.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더욱 고풍스럽고 차분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엇다. 기차안에서 만난 남자는 성당이 별로라고 했는데 난 이 성당의 느낌가 분위기가 좋다. 아마 그가 힌두라서 반감이 섞였을 듯 싶다.

성당에서 한참 앉아 있다가 다시 거리로 나섰다.

 역시 꼴까따의 매연은 죽음 그 자체였다. 하늘을 가리는 매연, 숨쉬기조차 힘들다. 아까 기차역 근처에서 본 거의 매연에 덮힌 나무등걸같던 거리가 생각난다.

 물어 물어 찾아간 판타롱 백화점은 인도에서 드문 현대식 백화점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물건은 별로 없다.

 선영이의 펀자비를 하나 샀다.

 돌아오는 길에 다리가 아파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연신 기분좋게 웃어대더니 나중에 영어를 모르는 척 하면서 50루피짜리 한장을 주었더니 잔돈을 주지 않는다. 항의를 해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8루피만을 거슬러 받는 것으로 그만두었다. 24루피 바가지를 쓴셈이다. 미터로가도 이렇게 황당할 수가...

 저녁엔 리튼호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우아하게 먹었다. 양도 많고 맛도 좋다. 단지 스프를 안주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맥주는 Happy hour라  40퍼센트 할인하여 1병 마셨다.

식당에서 나와 걸어서 상가를 구경하다. 숙소로 돌아오다.

2월 1일(일)

 어제밤에 길거리가 왁자해지더니 작은 축제를 하는 듯 하였다.

 결혼식 행렬인 듯. 악단을 선두로 신랑인 듯한 사람이 지나갔다. 

 방 창문을 열고 구경하다 사진을 두컷 찍었으나 잘 나오지 않았다.

 방은 벌레는 없는 것 같았다.

 길거리 방이라 약간의 소음은 있었지만 벌레에 대한 공포없이 잠들 수 있었다.

 아침부터 숙소의 웨이터는 벨을 눌어대며 아침을 먹으라고 난리다. 그러나 안 먹는다고 하고 밖의 블루 스카이 카페에 가서 정말 맛있는 오트밀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짐을 꾸려놓아 카운터에 카펫이 안 깔린 방이 나오면 옮겨달라고 요청을 하고는 길을 나섰다.

 이 곳 꼴까따는 일요일엔 지하철이 오후 2시 30분엔 문을 연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버스 3C/1을 타고 깔리 사원을 갔다. 사원앞은 제기 장수들이 웨어싸고 있었고 사원안에는 희생될 염소들이 구슬프게 묶여있었다.-목 부위에 털이 깍인 상태로-

 긴 줄에 섞여 사원안으로 들어가니 깔리여신상이 있는 곳에서 얌전하게 줄을 섰던 사람들의 태도가 돌변한다. 

 광적으로 사람들을 밀치고 서로 자기 꽃을 깔리상에 던지려고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광기가 느껴졌다. 비록 깔리상은 못 보았지만 그들의 종교에 대한 광적인 행동에 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선영이는 찐득찐득한 바닥에 맨발로 다니는 것과 광적인 그들과 섞이는 것에 무척 짜증을 냈다. 난 새로운 경험에-8년전에 똑같은 경험을 했을텐데 새롭다. -신기할 따름인데..... 

깔리 사원을 나와 물어 물어 버스를 타고 비비디 박까지가서 그 곳에서 메트로 시네마 홀까지 걸어가서 영화표를 예매했다. 3시표(40루피)예매했다. 시간이 남는다. 비비디 박으로 가서 거리를 구경하고 웨스트 벵갈 투어리스트 오피스를 찾았으나 이미 문을 단은 상태였다. 트램을 타고 꼴리지 스트리트로 갔으나 허름한 동네인데 책방으로 둘러싸인 동네였다. 배가 고파 인디언 커피 하우스로 갔는데 사람들이 왁자하게 떠드는 분위기가 대학안의 매점같은 분위기였다.

 나이 지긋한 교수같은 사람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Time over라고 밥을 주지 않는다.

 안의 사람들도 쫒겨나는 분위기고...

다시 트램ㅇ르 타고 극장으로 와서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ㄷ.

그리고 극장가 쇼핑거리에서 아이 쇼핑도 하고....

영화 메트로 영화관은 꽤 크고 좋았다. 영화관에는 바도 있어 맥주나 양주도 판다.

영화는 전형적인 인도 영화와는 약간 달랐다.

멜로물인데 배경이 미국이다. 결혼식의 화려한 의상이 인상에 남는다.  영화의 제목은 'Kal he naa ho' 언어는 몰라도 내용은 알겠다.

중간에 10분 휴식시간엔 철망을 사이에 두고 장사치들이 군것질 거리를 파느라 난리다. 우리도 감자칲을 하나 사서 먹는다. 영화는 3시간여 상영되었다. 밖으로 나오니 컴컴하다.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은 인도의 인도의 탈 거리 중 가장 현대적이었다. - 숙소로 돌아오니 우리 방이 아직 정해지지 않앗다. 저녁을 먹고.- 저녁은 조조 식당에서 먹는데 온통 우리나라 여행자 판이다. -돌아와도 그냥 기다리란다.

 어제와 같은 조건의 카펫이 깔린 방, 바로 옆방에 400루피에 있게 되엇다.

 9시가 안되어서 피곤하고 눈이 감겨 잠들고 말았다.

2월 2일(월)

 떠나기 하루 전이다.

 Blue sky cafe에 가서 무슬림 커드를 먹었는데 이 음식은 커드에 뻥튀기, 땅콩, 각종 과일 등을 섞은 고열량식이었다.

 오늘 처음 시작한 곳은 타고르 하우스였다.

 지하철을 타고 Ginish park역에서 내린 후 걸어서 물어 물어 간 타고르 하우스는 가이드북과는 달리 월요일 휴관이란다.

주변만 둘러보고 사진을 한컷 찍었는데 다시 타고르의 상을 클로즈업해서 찍으려하자 사진은 찍지 말란다.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나와 타고르 하우스에서 만난 우리나라 여성과 함께 오토릭샤를 타고 쉬딸다뜨지 자인교 사원으로 갔다.

인도 동부지역의 자인교 사원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가진 이 사원.캘커타에서 드물게 깨끗한 장소였다. 깨끗하고 화려하고 사원안의 경건함이 황홀할 지경이었다. 

 자인교는 깨끗하고 비폭력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종교라고 설명한다. 

 이 자인교 사원에서 오랫만의 쾌적함을 누릴 수 있었다. 사람들도 무엇을 달라거나 하며 둘러 붙지 않아 좋다.

자인교사원을 나와 또 걸었다. 

 한참을 걸어 메트로 역까지 가서 메트로를 타고 M.G로드로 가서 도 걸어 나코다 모스크를 찾아갔다. 

나코다 모스크는 모스크자체보다 거리가 흥미로웠다. 마치 중동의 한 거리를 다니고 있는 듯 무슬림들의 거리였고 인도에서는 보기드문 가축을 도살하고 내장을 씻어내고 있는 아낙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이들은 조악한 거리의 놀이 기구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고 여행객이 거의 없는 거리인 듯 우리가 지나가니까 다들 칮절하고 정감있는 태도로 대해준다. 커다란 빵을 팔고있는 청년을 사진찍고 폴랄로이드 사진을 한장 찍어주자 서로 자기를 찍어달라고 난리다.

 물어 물어 찾아간 모스크의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은 13시였고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이었다. 선영이가 들어가기 싫다고 하는 바람에 잠시 고민하다 거리를 본 것에 만족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릭샤를 타고 다시 메트로역에가서 esplanad로 갔다.  점심을 먹고 거금(우리돈으로 3만원정도?)을 주고 선영이의 보석박힌 샌들을 하나 샀다. 이 샌들 하나를 사는데 상점 점원들이 우리를 귀빈 대접을 한다. 하긴 이 곳에서는 이 돈이 꽤 크니까. 우리는 또 메단시장으로 가서 침대커버 3개를 샀다. 터번을 두른 시크교도가 주인인데 정찰제로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무거운 침대커버를 쌕에 집어넣고 벨루드 마뜨를 가는 버스를 찾는 우리에게 한 청년이 일일이 버스 정류장까지 데리고 가서 한참만에 오는 버스를 태워준다. 아무 댓가도 없이...

오늘은 인도에 와서 겪는 신기한 일들이 많았다. 모두가 댓가없이 우리에게 무척 친절하게 대해준다. 아까 무슬림거리를 갔을 때 행색이 초라한 아저씨도 일부러와서 알려주었다.

벨루르 마뜨는 버스 종점에 있었다. 기차역도 깨끗하고 마뜨가 있는 구역도 상당히 깨끗하여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 싶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정갈하고... 마뜨내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모바일도 안되고. 종교의 다원성을 설파한 라마크리쉬나 선교회의 총본부.벨루르 마뜨의 본간 건물은 단색으로 깔끔한 매력이 있었다. 벵갈식으로 지어졌지만 곳곳에 다른 종교의 건축 요소도 가미되어 있어 보는 방위에 따라 힌두사원으로도 모스크로도 교회로도 보인다. 내부로 들어가니 텅빈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마치 모스크인양 싶었다.

 건물도 아름답지만 잘 가꾸어진 정원과 옆에 흐르는 후글리강도 낭만적이었다. 벨루르 마뜨에서 가지는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이 좋다.

 마뜨에서 선착장가는 길에 사모사파는 노점이 있었다. 선영이가 사모사를 손으로 집어먹자 주변의 손님이 알려준다. 인도이 관습상 손님은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다고... 순간 머쓱하여 미안하다고 하니 상인은 웃는다.

 사람을 가득 실은 작은 배는 후글리 강을 나아갔다.

 20분후쯤 닥신네스와리 깔리 사원에 도착하였다. 벵갈이 낳은 힌두교의 영적 스승인 스리라마크리쉬나 파라 마힌사가 평생을 보낸 사원. 전형적인 벵갈양식으로 지어졌다는 사원은 외관이 아름다웠다. 규모도 크고 깔리가트에 있는 사원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 곳의 광적이고 질척한 분위기와는 다른 정갈하고 뭔가 진지한 분위기가 있었다.

 밝고 아름다운 사원 건물탓인지 분위기도 밝았다.

 사원 밖은 역시나 제기 그릇 상점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이 곳에서도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버스를 쉽게 탈 수 있었다.

 오늘의 일정은 깨끗하고 칮절하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그런 일정이었다.

 꼴까따에 대한 다른 면을 발견한 듯하다.

 돌아오는 길은 심한 교통 체증에 시달렸다. 매연도 심하다. 버스에서 중가네 내려 헤나를 사고 메트로를 탔다. park street에서 내리니 어느새 8시가 다되어간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금용반점에 가서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 위해 돼지고기 볶음과 야채덮밥과  중국차를 먹었다. 중국차는 담백하고 향기롱ㄴ 맛이 일품이고 다 맛있었다.

 우리는 약간 미진함을 달래기 위해 치킨 1인분을 포장해서 럼주를 사다가 숙소에서 인도에 대한 이별의식을 했다.

 내일은 돌아가는 날인데 꼴까따에서 모든 차랑이 정지하고 상점이 문을 닫는 다는 bunt란다. 공항까지 가는 길이 걱정이다. 오후 6시면 끝난다니까 그 때 움직이면 되겠지?

2월 3일(화)

오늘은 인도를 떠나는 날. 정말 번트의 맛을 제대로 보았다.

도로에는 차가 하나도 없고 상점이란 상점은 죄다 문을 닫았다. 그동안 무거워서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쇼핑을 못했는데 그래서 오늘 하려고 미루어 놓았었는데 도저히 문을 연 상점을 찾을 수가 없다. 몇무리의 사람들만이 깃발을 들고 동네를 돌아다닐 뿐이다. 

 그러나 덕분에 항상 매연에 뿌옇던 꼴까따가 맑은 꼴까따가 되었다. 도로 한가운데를 활개를 치고 걸어도 된다.

 걸어서 꼴까따의 예술극장으로 가서 인도의 현재를 그린 예술영화 하나를 보다. 깊은 인도의 내면을 훔쳐 본 느낌이다.

 영화를 본 후 유일하게 하나 다니는 버스를 타고 공원으로 가서 동물원을 돌아보며 여유를 부리니 어느새 떠날 시간이다. 

 다행스럽게도 오후 6시에 번트가 끝나 도시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공항엔 여유롭게 골인하고.... 

 다시 온 인도. 처음온 인도보다는 여유롭고 편안했지만 인도는 인도였다. 징하면서도 강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쟁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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