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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마두라이,폰티첼리,마말라뿌람.

1월 21일(수)

새벽 4시쯤 되니 여전히 기도 소리가 시끄럽고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숙소에서는 밖의 소음과 옆방 복도의 소리가 거르지 않고 들린다.

6시에 일어나 주섬 주섬 짐을 챙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짐을 짊어지고 기차역까지 가자니 생각보다 꽤 멀다. 한 20분쯤 걸었을까? 등에 땀이 쭉 나고 어깨가 빠질 것 같다.

릭샤를 탈 걸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6시 50분 라메스와람역 도착. 표를 끊었는데 금방 끊어 시간 여유가 있었다. 무언가로 아침을 먹을 생각으로 역주위를 두리번 거렸으나 먹을만한 것이 없고 그 흔한 바나나도 딱 한군데에서만 팔뿐이었다.

바나나 4개를 사서 2개씩 나누어 먹는 것으로 아침을 대신하였다.

곧이어 기차를 타니 기차는 딱딱한 나무의자였다.

출발시간은 정확하게 7시 30분.

기차는 놀랍게도 바다 가까이. 바다를 사이에 끼고 달렸다.

기차안에서 맑고 투명한 바닷물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조금 가다가 비릿한 생선 내음이 나는 어촌에 멈추어 생선 양동이를 든 아낙들을 태우니 갑자기 기차안이 걷잡을 수 없는 수다의 소용돌이에 빠져 엄청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난 졸다가 깨다가하니 어느새 마두라이 입구에 다다랐고 기찻길옆에는 예의 빈민굴이 보였다. 썩은 시궁창곁에 자리잡은 작은 몸하나 누일 수 있을 것 같은 집들. 그 집앞에서 어린아이들과 아낙들이 웅숭거리고 있다.

12시 30분 마두라이 역에 도착하자 삐끼가 한명 달려들어 자기가 말하는 숙소에 가자고 난리다. 그 극성스러움에 따라갔지만 비싸기만하고 별로다. 그를 따돌리고 한군데 더 갔지만 삭막하고 벌레가 나올 것만 같았다. 우리는 즉시 릭샤를 타고 지난번 미국 할머니가 말해준 ARATHY 호텔에 갔다. 이 호텔은 청결하고 설비도 잘 되어있고 무엇보다 고다르 와라까르 사원이 앞에 있어 전망이 캡 좋았다. 객실에 단독 발코니가 있어 더욱 좋았다. 할머니한테 감사할 따름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행을 하면서 호사스러움을 원하진 않지만 평균수준의 쾌적함을 원하게 되었다.

 또 그것이 정보를 빨리 얻거나 발품을 조금만 더 팔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짐을 던져놓고 오늘 거의 먹지 못했던 우리는 밥을 먹으러 갔다. 루비 레스토랑에서 볶음밥과 탄도리 치킨과 라시를 시켰으나 값만 비싸고 맛이 없다. 지저분하고...  우리는 또 다시 여행자 레스토랑을 찾지 말자고 다짐한다.

 배를 채우고 난 후 기차역에 가서 첸나이-부반네스와르, 캘커다-푸리행 기차표를 예약했으나 첸나이쪽 기차표가 웨이팅에 걸렸다.  풀리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어 거리를 돌아다니려 하자 릭쌰꾼들이 우리를 가만히 놓아두질않는다. 릭샤를 타고 스리 미낙쉬 사원으로 갔으나  그는 북쪽 입구에 우리를 내려주고 어느 선물가게를 들어가라고 한다. 시간이 있어 선물가게를 구경했으나 물건이 넘 비싸 그냥 나오려고 하자 릭샤왈라와 가게 주인이 다 난리를 떤다.

 단호하게 거절하고 우리는 사원 담을 걸어 돌기 시작하였다. 길은 혼잡의 극치였다.

중간에 앵부새로 점을 쳐주는 사람을 구경하는데 점을 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오랫만에 깔끔해보이는 쥬스가게에서 오렌지쥬스 한잔을 마시고 혼잡하고 정신없는 거리를 마구 돌아다녔다.

 스리 미낙쉬 사원의 남쪽 고푸람에서 신발을 맡기고 드뎌 사원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스리 미낙쉬 사원은 무엇보다도 4개의 고푸람들의 크리과 조각들이 사람들을 압도한다. 천연색의 양감있는 33000여개의 신과 악마들의 조각들. 종교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은 느꼈다.

 긴 점심시간을 끝내고 4시가 되어야 들어갈 수 있는 사원내부. 수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사진 촬영권을 팔고 있었다. 본당 2곳은 힌두인들에게만 10루피를 받고 입장을 시킨다.

 남뽁 문옆의 네모난 연못이 무굴 양식의 건물임을 알게 해준다. 사원은 규모가 꽤 컸다. 기둥하나 하나에도 조각이 빈틈없이 되어있다. 흥미있는 것은 가네샤 상앞에서 코끼리 기도를 하는 사람들. 오체투지식으 절을 하는 사람들. 티벳절처럼 버터를 둥글게 빚어 신상에 던지는 사람들. 초를 밝히는 사람들. 입구의 코끼리에게 동전을 던져주고 코끼리코에 머리를 경건하게 맞는 사람들. -코끼리는 받은 돈을 주인에게 준다.-

이런 모든 사람들이 이 스리 미낙쉬 사원이 죽은 사원이 아니라 살아있는 종교의 터전임을 알게 해 주었다.

 사원 옆에는 박물관이 있었다. 미낙쉬 사원에 대한 사진들도 재미있었지만 몇개의 석상과 청동상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 전시물보다도 더욱 관심을 끈 것은 박물관 자체의 기둥들이었다. 985개으 기둥들 모두 조각으로 장식되어 도열하고 있었다. 원래 이 미술관은 아이리깔 만다빠라 불리는 사원의 홀이었다고 한다.

 잠시 다리를 쉴겸 연못옆 계단에 앉아 있으려니 어제 라메스와람 목욕터에서 만난 한국 여성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야채도 사고 기차역 앞에서 과일쥬스도 마시고 동네를 한바퀴도니 낮의 모습과는 딴판으로 밤의 마두라이는 살아나고 있었다. 닭튀김. 생선튀김 가게들, 차이가게들. 각종 음식가게들이 팔팔하게 살아 손님들을 끌고 있었다.

 우리도 닭튀김. 생선튀김 등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만찬을 즐겼다. 우리 방의 쾌적함이 더욱 마음에 든다.

 창밖의- 아니 베란다에서 보이는- 사원의 모습도 마음에 들고.. 마음껏 샤어하고 오늘 입은 옷들을 빨아 툭툭 말리고 있다.

 내일은 폰티체리로 간다.

 

마두라이에서 폰티체리 가는 길

  시내 TTC버스스탠드에서 버스를 타고(엉겁결에 타서 몇번인지 모름. 물어볼 것. 2루피.

 NEW TTC 버스 스탠드로 가면 바로 근처에 있다. 비루뿌람행 버스를 탄다. (예약필요없음. 버스에서 차장에게 지불. 81루피. )

 비루뿌람에서 바로 그 버스스탠드에서 폰티체리행으로 갈아탐.

 마두라이비루뿌람(6시간)→폰티체리(1시간)

 마두라이 뉴 버스스탠드에서 폰티체리 직행은 저녁에 한번만 있었다.

 1월 22일(목)

 밤새 끈적 끈적한 더위에 시달렸다. 그리고 새벽녁부터는 모기가 간간이 물어 잠을 설쳤다.

 남쪽 끝에서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는데도 더욱 무덥다.

 숙소 베란다에서 보이는 고다르 아라가르 사원엔 새벽부터 사원을 도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원 너머로 해가 붉게 올라온다. 어제 씻어놓은 야채와 커피와 쿠키로 아침을 먹고 베란다로 나가 사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8시 30분 숙소를 나서서 시내 버스를 타고 근교의 뉴버스 스탠드로 갔다. 강을 건너 간다. 9시 10분 마두라이 출발. 단조롭고 평화로운 길을 거의 쉴새없이 달려 6시간 후인 15시 10분에 비루뿌람에 도착하였다. 이 곳에서 곧바로 폰티체리행으로 갈아탔다.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릭샤를 타고 인터내셔널 게스트 하우스로 갔으나 full이란다. 다시 릭샤로 수르비야 호텔로 갔다. 그러나 방값이 너무 비쌌다. 근처 몇군데 롯지를 뒤져보았으나 시설은 끔직한 수준이고 방값도 싸지가 않다. 울며 겨자먹기로 수르비야 호텔에서 더블룸 600루피에 묵을 수 밖에.... 방의 수준은 깐야꾸마리의 250루피짜리 수준이다. 괜스레 폰티체리에 대하여 화가 난다. 웬지 오고 싶지 않았는데....

하루종일 별달리 먹은 것이 없어 허기가 졌다.

 인디아 커피하우스에서 오믈렛과파로타와 커피로 요기를 하고 거리를 돌아보니 꽤 괜찮은 상점이 많이 있었다. 특히 오로빌에서 경영하는 상점들의 물건의 질이 높았다. 가죽 전문매장 HIDESIGN에서 몇가지 소품을 샀다. (키홀더와 지갑 등)

 이번 여행에서 거의 쇼핑할 데가 없었던 터라 몇개의 가게에서 쇼핑을 하는데 시간이 훌렁 지나 버렸다.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니 이 곳 폰티체리는 정부광장을 중심으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공원도 잘 조성되어 있었으며 상권도 꽤 발달하였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 곳 폰티체도도 꽤 무더운 날씨다. 샤워 후에도 끈적끈적할 정도로...

1월 23일(금)

오늘은 두 군데 도시를 둘러보아야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HOT bread라는 빵집에 가서 바게트빵과 크로와상과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인도에 온 후로 정말 빵다운 빵을 먹은 셈이다. 커피도 정말 맛있었다.

오르빈도 아쉬람을 찾으러 다니는데 방향을 잘 못 잡아 해변을 산책한 셈이 되어버렸다. 해변은 우리의 월미도처럼 잘 정리되어있었다. 물어 물어 찾아간 아쉬람은 엄청 조용하고 종교적 열정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도서관과 서점이 있어 책도 있고 아쉬람과 요가에 관한 책을 구입할 수 있었다.

사진을 하나 샀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꽃으로 장식된 사진인데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쉬람에서 나와 폰티체리 박물관으로 갔다. 폰티체리 박물관은 아주 소박했다. 전시물도 거의 없고 프랑스 지배시절의 프랑스 가구 몇개가 진열되었을 뿐이다.

 남인도에 와서는 제대로 된 박물관 하나를 못 본셈이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땀이 술술 흐르고 돌아다니는 것이 힘이 든다. 

 사설 환전소에서 100불을 바꾸면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나니 살것같다.

 짐을 싸들고 릭샤(250루피)를 타고 버스 스탠드에서 마말라뿌람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꽉차서 서서가는 사람도 있었다. 짐과 사람에 끼여 땀띠가 날 지경이었다.

 11시 25분 출발. 13시 10분 도착. 1시간 50여분이 소요된다.

 마말라뿌람 버스 스탠드에서 우리에게 뭐라 뭐라 하는 아저씨를 따라가 CK ISWARIYA LODGE에 더블룸 120루피에 물었다. 우리는 3층에 방이 없어 2층에 묵었는데 3층이 훨 깨끗하고 밝았으나 full이란다. 아저씨가 좋아보이고 깨끗하게 청소가 잘 되어있어 그냥 묵기로 하였다.

 숙소 근처 식당(가제보)에서 볶음밥과 블랙커피로 요기를 하고 가이드 북에서 3킬로미터라 한 화이브로터스를 릭샤를 타고 갔으나 허무하게도 1킬로미터 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았다. 파이브로터스는 철망이 쳐져잇어 굳이 비싼 입장료를(5불,해변사원포함)내지 않아도 볼 수 있었다. 석굴사원과 석조사원의 중간 단계라더니 그런 거 같았다.

파이브로터스에서 이제 슬슬 걷기 시작하였다. 중간에 돌조각 공장들이 늘어서서 각종 힌두상들을 조각하고 있었는데 그 솜씨가 감탄을 자아낸다. 하나 기념으로 사고 싶지만 너무 무겁다. 우리는 짐이 무서운 배낭족 아닌가? 조금 걷다 보니 등대가 나오고 등대옆에 석조 사원이 있어 꼭대기에 올라가니 마말라뿌람 전체의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져 보였다.

 아주 멋진 전경이었다. 강도 흐르고 저 한편에선 푸른 바다가 보이고 저쪽으론 바위산이 연이어 있다. 이 곳엔 원숭이 무리가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등대에서 내려와 해변 사원으로 갔다. 해변 사원 역시 철조망만 쳐져있어 밖에서 볼 수 있었다. 해풍에 마모된 모습이 역력하다. 마모된 조각들이 둥글고 선명함이 없어 보였다. 이 곳 역시 파이브 로터스와 함께 묶어 5불이다. 현지인들은 10루피이고... 굳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필요는 없는 듯 싶었다. 해변 사원 앞의 바다는 파도가 장관이었다. 현지인들은 바닷가에서 말타기를 즐기고 있다.

 해변사원에서 다음에 간 곳은 버스스탠드 뒤 크리쉬나의 만다빰과 아르주나의 고행이었다. 둘 다 선명한 조각이 일품이었다. 특히 아리주나의 고행은 실물 크기의 코끼리상이 리얼했다. 아리주나의 고행 뒷편 바위산에는 크고 작은 석굴 사원이 있었고 우리나라 설악산에 있는 울산 바위처럼 바위하나가 크리쉬나의 버터볼이라는 이름으로 놓여 있었다.

 바위산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내려오니 6시가 넘어있었다.

낮에 갔던 식당 가제보에서 커다란 생선을 200루피에 흥정하여 요리를 해달라고 해서 먹고 맥주도 함께 마시면서 주인여자와 수다도 떨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리주나의 고행앞에서 하는 춤 공연을 보러 갔으나 선영이가 시큰둥하여 그냥 오고 말았다. 

 춤 공연은 금, 토, 또 공휴일에 7시 30분~8시 30분까지 한단다. 입장료 100루피..

 생선과 맥주 먹은 것이 소화가 되지 않아 괴롭다. 빨래도 하기 싫고...

 내일은 번잡한 첸나이로 떠난다.

 

 마두라이

 마두라이

 마두라이

 마두라이-숙소 발코니에서 바라본 사원

 폰티체리

 폰티체리

 폰티체리

 폰티체리-나지막한 유럽풍 건물과 길게 뻗은 가로수, 벵갈 만의 푸른 바다 등이 인상적인 전혀 인도답지 않은 풍경을 지니고 있다. 마치 남프랑스나 지중해의 한적한 마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250여 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리라. 현재까지도 폰티체리의 공용어로 프랑스어가 사용되는 것에서 당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폰티체리

 폰티체리

 폰티체리

 폰티체리

 폰티체리의 여인들.

 폰티체리

 폰티체리

 폰티체리

 폰티체리

 마말라뿌람.-지금은 작은 어촌에 불과하지만 14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남인도의 강국인 팔라바 왕조의 해양기지로 사용됐던 곳. 대형 군함과 국제 무역선이 줄을 잇던 군사 도시답게 마말라뿌람 지명에도 '위대한 전사의 도시'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마말라뿌람에는 팔라바 왕조의 전성기였던 5~9세기경에 제작된 석굴과 사원, 갖가지 조각 등이 많이 남겨져 있다.

 팔라바 왕조가 융성했던 시기가 인도 고대와 중세으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시기인 만큼 마말라뿌람의 유적들은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등대-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아르주나의 고행, 마말라뿌람을 대표하는 볼거리. 높이 15미터, 폭 27미터에 달하는 바위에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주인공인 아르주나가 고행하는 모습을 담았다. 

바위에는 아르주나의 고행상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하단에 있는 실물 크기의 코까리 상이 눈길을 끌었다.  바위에 빽빽이 새겨진 조각상들은 20여명의 석공이 10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마말라뿌람.-아르주나의 고행.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

 마말라뿌람.-크리쉬나의 버터볼.

 가제보 식당에서 생선요리를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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