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도

라메스와람-남인도의 바라나시-

1월 19일(월)

 오늘은 하루종일 버스타고 오는데 시간을 다썼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짐을 꾸리고 준비를 하였다. 문득 생각이 나서 창문을 열어보니 바다쪽에서 붉은 기운이 퍼져가고 있었다. 건너 건물 옥상에는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잔뜩 나와 있었다.

  6시 30분 커피를 타들고 창가에 서 있으려니 붉고 둥근해가 바다위로 불쑥 올라와 있었다. 인도의 남쪽 땅끝 마을에서 우리네의 붉고 둥근해가 올라오는 모습을 본 것이다. 어디에서 보든 일출은 사람으로 하여금 묘한 감동과 짜릿함을 느끼게하고 있다.

 더구나 이 곳은 아라비아해와 벵골만, 인도양 등이 만나는 곳 아닌가?

 해는 금새 넓게 퍼져버렸다. 옥상위의 사람들도 어느새 다 내려가 버렸다.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터미널로 향하니 엄청나게 많은 인파들이 바다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힌두인들은 이 곳 깐냐꾸마리 바다에서 해가 떠오를 때 목욕하는 것을 신성시하여 해 뜰 때 바다로 몰려가는가보다. 가족단위의 많은 힌두교도들이 이 곳에 있었다.

  벅시글거리는 식당에서 간단한 인도식 아침식사를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7시 30분에 출발하기로 한 버스는 8시가 다 되어서야왔다.

  좌석과 좌석사이의 간격이 몹시 좁아 배낭을 놓을 공간이 영 없다. 그렇가고 짐을 실을 수 있는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대로 배낭을 아래에 내려 놓을 수 있었지만 선영이는 무릎위에 올려놓고 10시간 가량을 보내야하는 고행을 하고 말았다. 버스는 세차례 잠깐 휴식을 취했을 뿐내리 달렸으나 좁고 울퉁 불퉁한 도로와 벼를 말리는 아낙들, 염소때들, 소들,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들을 패하느라 , 그리고 군데 군데 사람들을 내리고 태우느라 전혀 속도가 붙지 않는다.

 길은 평화롭고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좌석만 넓고 쾌적했었다면 그런대로 좋은 버스여행인 듯 싶었다.

 라메스와람 가까이오자 길양편의 바다가 펼쳐져보였다. 맑고도 투명한 바다가 말이다.

 길옆에 Glass bottom boat라는 간판이 보이는 것을 보면 배 바닥을 통해서도 바다속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고 맑다는 증거이리라.

 양편에 바다를 끼고 달리는 낡은 버스. 순간 10시간여의 고달픈 버스 여행의 피로가 날라가 버렸다.

 버스 스탠드에서 릭샤를 타고 호텔 아일랜드 스타로 갔다. 그리곤 더블룸을 200루피에 묵는다. 욕실도 넓고 대체로 깨끗하다. 엘레베이터도 있고 배낭을 방안에 던져 넣고 거리로 나왔다.

 남인도식 탈리와 커피로 저녁을 먹었는데 탈리는 대체로 담백하여 거부감은 없었지만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나에겐 그다지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냥 먹을 것이 이 것 밖에 없으니까 먹는다.

 세제와 식빵 등을 사고 술도 샀다. 오늘은 그동안 밀린 엄청 많은 빨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1월 20일(화)

 라메스와람-남인도의 바라나시라고 ㅇ라려진 곳이었다. 그리고 인도에 오기전 대충 잡은 일정에는 포함되지 않은 곳이엇다. 그러나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이 가보라고 극찬한 곳이기에 왔었다.

 Temple Ramanathaswamy를 중심으로 한 마을은 아주 작았다.

 20여분 정도면 한바퀴 휙돌아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는....

마을은 작지만 워낙 중요한 힌두성지-신화에 의하면 라메스와람은 힌두신 라마의 일행이 스리랑카로 건너가는 지점이란다.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가 스리랑카. 악의 화신 라바나를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음에 대한 감사의 의식을 쉬바에게 거행한 곳이라고 믿어진다. 쉬바를 믿는 사람들이나 비쉬누를 믿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성지, 즉 순례지가 된 곳이다.-라서 그런지 순례자들로 북적이고 그에 따른 숙소도 많아서 묵기에 어렵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음식은 인도식외에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탈리와 이들리 맛살라 도사, 파코다 등 인도 음식에 질린 우리는 음식에 대한 낙을 버려야만 하였다. 어제밤의 식당에 가서 맛살라도사, 커피 등으로 아침을 먹고 템플로 갔다. 사원앞은 여전히 사람이 많다. 사원 앞에서 오랫만에 한국사람을 만났다. 경상도에서 왔다는 청년인데..그는 엄청 피곤하고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깐냐꾸마리에서 밤차를 타고 왔는데 고생이 심했다고하였다. 우리와 함께 아담스 브릿지로 가자고 하여 사원앞 바다-bathing point-에서 목욕하는 힌두인들을 본 다음 오토릭샤를 교섭하여 아담스 브릿지로 갔다. 가는 길은 양쪽으로 바다였고 무척 아름다웠다.  자전거를 이용해도 좋은 듯 싶었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푸르고 맑은 바다가 보이고 그 한켠에는 초가지붕과 초가벽을 가진 글미같은 어촌이 나타났다. 그저 정지된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Adam's Bridge Bus No3(요금 5루피)를 타고 갈 수 있고 18킬로미터 거리로 약 40분 정도 소요되는데 버스로 가는 것이 더 낳은 듯 싶었다.

 우리는 210루피로 릭샤 한대를 빌렸는데 신경이 쓰이고 머무는데 자유롭지 못하였다.

 한가롭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어촌 마을에는 식당이 하나있었다.

 차이와 탈리와 파코라 등을 파는데 생선구이도 해준다. 그 작은 식당에서 차이와 달걀 후라이를 먹고 바닷가를 즐기다가 트럭을 타고 순례자들과 다담의 다리까지 갔다. 트럭은 모래길을 달리는데 물을 튀겨가면서 울퉁 불퉁 달린다. 트럭 틈으로 보이는 밖은 희디 흰 햇살이 넘쳐 순백과 순청으로 보인다.

 스리랑카가 불과 18km밖에 안되는 거리쯤에 트럭은 우리를 내려 놓았다. 사람들은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바다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가지고 온 바나나와 코코넛과 꽃을 담은 바나나잎 그릇을 바다에 띄워 보내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우리도 첨벙 첨벙 물속으로 들어갔는데 물속에 들어간 발이 투명하게 보일정도로 물은 맑았다.

 모든 정경이 마치 아름다운 그림같아 나 자신도 그림속에 들어가있는 느낌이었다. 30분 정도의 시간을 준 트럭기사는 다시 타라고 종용한다. 다시 어촌 마을까지 온 우리는 그 자그마한 식당에서 갓 잡은 생선으로 튀김을 만들어 달라고 하여 먹었다. 맵고 담백한 맛이었다. 생선을 잡아다 손질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의 가족들을 다 소개받았는데 딸다섯에 아들이 하나였다. 모든 가족들이 함께 일하는 식당이었다. 경상도 청년의 서두름 덕에 아쉬움을 잔뜩안고 그 그림같은 마을을 떠나왔다.

 이 마을에서 폴랄로이드로 사진을 두어장 찍어주었는데 주인집 아들이 자기 식구들도 찍어달라고 어찌나 조르는지....

 필름의 여분이 없어 찍어 줄 수가 없었다. 오는 길에 사원 하나를 둘러보고 우리 숙소로 돌아와서 한시간 정도 쉰다음 식사도 하고-우리의 단골식당에서.-이 동네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사원으로 갔다.

 사원은 크고내부는 물세레를 받는 사람들 때문에 몹시 질척거렸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은 힌두인들만이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었다. 사원에서 나와 앞의 Bathing point로 가서 사람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모래사장에 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모래사장엔 사두들과 순례자들 그리고 소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저녁나절 꽤 한기가 도는데도 사람들은 연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모래사장위의 사람들은 어슬렁거리는 소들에게가서 소머리를 만지고는 자신의 이마에 손가락을 갔다댄다. 소를 신성시하는 동작이리라. 소를 신성시하는 그들. 그러나 소를 거두지 않아 소는 비쩍 말랐고 쓰레기 통을 뒤지고 있었다.

 해변에서 혼자 여행하는 우리나라 여성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차이한잔을 마시고 헤어졌다.

 저녁엔 숙소에서 컬리플라워를 데치고 홍당무와 토마토로 저녁을 대신하였다.

 우연히 찾아온 라메스와람. 아름다운 곳이다.

 내일은 마두라이로 떠난다.

♣♣♣ 라마야나

 오래전 라메스와람(인도)왕국에서는 인근에 있던 왕국 스리란칸(스리랑카)의 마귀왕 라마나를 제거하기 위해 전능한 신 비슈누가 라마라는 이름의 왕자로 환생한 일이 있다.

 그 후 시타라고 불리우는 어여쁜 처녀와 결혼한 라마 왕자는 서열에서 밀려나 숲으로 귀양을 갔다가 그 곳에서 이웃 나라 왕국 스리란칸의 라바나 왕 여동생 팍크샤사 카마발리를 만났다. 얼마 후 라마에게 홀딱 반하여 시타로부터 라마를 빼앗기 위해 라마를 유혹하던 카마발리는 시타를 납치하려다 라마의 동생 라크슈마나에게 발각되어 목숨을 잃었다. 그 후 자신의 여동생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라마나는 엄청난 분노를 금치 못한 뒤 부하를 시켜 라마를 다른 장소로 유인하고 라마의 부인 시타를 직접 납치하였다.

 얼마후 부인을 찾아다니다 원숭이 왕국에서 하누만을 만나게 된 라마는 그가 비슈누임을 확신한 나누만의 시험을 통해 자신이 비슈누의 환생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누만의 도움을 받게된다. 그 후 시타가 라바나의 왕국 스리란칸에 잡혀있다는 것을 알게된 하누만은 라바나에게 붙잡히게 되나 꼬리에 불이 붙은 뒤 왕국을 불바다로 만들고 탈출하여 라마에게 되돌아 오게 된다.

 그 후 거대한 군을 이끌고 스리란칸을 침공하려한 라마는 전능한 힘으로 라메슈와람과 스리란칸 사이에 30킬로미터가 넘는 다리를 놓아 대군을 스리란칸으로 입성시키는데 성공을 하게 된다  곧이어 다른 신들의 도움을 받은 뒤 공중에서 벌어진 혈투를 통해 라바나를 제거한 라마는 시타를 구출하나 그녀의 순결함과 정숙함을 의심하게 된다.

 그 후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불구덩이로 뛰어든 시타는 그녀의 정숙함을 잘 알고 있던 화신 애그니가 그녀를 보호해주자 순결함을 증명받고 라마와 함께 라메스와람 왕국의 왕과 왕비가 된 뒤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위의 신화에 따르면 라마와 라바나의 전쟁은 트레타 유가(지금으로부터 175만년전)시대에 일어났다. 오늘날 인도와 스리랑카 사이에 있는 다리를 정밀 분석한 학자들은 놀랍게도 30킬로미터 다리가 라마야나에 저술괸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아 큰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한다고 한다.

 1994년 나사에 의해 촬영된 아담의 다리는 과연 고대 인도의 신화에 등장하는 라마가 건설한 다리일까?

 

 깐냐꾸마리에서 라메스와람가는 버스안에서

 탈리..

 Temple Ramanathaswamy

 라메스 와람에서

 Temple Ramanathaswamy 앞. 목욕포인트

 라메스 와람에서

 라메스 와람에서

 라메스 와람에서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Dhanushkodi(Rameswaram Island) 아담스 브릿지

 라메스 와람에서

 

 

'인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첸나이,부바네스와르,푸리  (0) 2010.04.04
마두라이,폰티첼리,마말라뿌람.  (0) 2010.03.31
깐냐꾸마리-인도의 땅끝마을-  (0) 2010.03.27
코친,바르깔라  (0) 2010.03.21
뱅갈로르, 마이소르  (0) 2010.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