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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고아-동방의 귀부인-

 1월 3일(토)

간밤에 꿈결같은 잠을 잤다.

일어나 차이 한잔을 마시며 책을 보노라니 같은 캍의 인도인들이 말을 건다.

 내책도 빼앗아 보고 물건값을 물어 보기도 하는 그들은 부동산 중개업자란다. 40대 중년 남자의 느끼함이 묻어나는 모습들이었다. 느끼한 키들거림도 잦고.... 그러나 그들의 사진도 찍어주고 대충 같이 놀았다.

 옆칸의 인도인 가족들도 폴랄로이드 사진을 찍어서 주니 아주 좋아한다.

12시 15분쯤 THIVIM역에 기차가 도착하였다. 많으 서양 배낭족들이 이 역에서 내려서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들에게 알아보니 깔랑굿 해변까지는 이 곳에서 가는 것이 더 좋을 듯 싶었다.

 허겁지겁 내려서 봉고 비스무리한 택시를 타고 깔랑굿 코코바나나 옆 '드림 보트'로 갔다.

그러나 방이 없다고 하여 우리는 이리저리 알아보러 다녔으나 다 빈방이 없단다.  한군데 삭막한 숙소를 찜해놓고 드림보트로  돌아오니 리셉션 홀에다가 매트리스를 깔아 줄테니 이 집에 있으란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밥을 먹으러 갔다.

 볶음밥과 감자칲과 맥주로 배를 채우고...

이 곳 고아에 오니 비로소 고요함과 안정감과 깨끗함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점심식사 후 잠시 쉬다가 k는 숙소에서 쉰다고 하고 우리 둘은 깔랑굿 해변을 시작으로 바가비치까지 해변을 통과해 걷기 시작하였다.

  해변은 길었고 들뜬 분위기였다. 노브라로 썬탠하는 서양여인들. 다들 거의 벌거벗은 차림이었다.

파도는 꽤 크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해변 끝까지가서 토요시장을 물어보니 택시를 타고 가야한단다. 왕복 50루피에 흥정하여 가는데 7시에 돌아가잔다.

 토요시장은 금방이었다. 우리가 가니 입구에 경찰이 있고 이제 막 개장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수공예품이 많았는데 몇가지 사고 싶은 물건들이 있었지만 들고다닐 일이 무서워 그만두었다.

 이 시장에서 코코넛 술 kiri를 마시고 티벳탄 만두 모모를 먹었다. 한참 시장안에 설치된 무대가 막이 올라 재미있어질 무렵 7시가 넘어 돌아와야만 하는 서운함이 있었다. 그래도 무게가 안나가는 은 귀걸이 두개는 건졌다.

 택시기사는 약속한 7시가 넘었다면서 더 기다리게 하려면 50루피를 또 내란다. 우린 그냥 돌아오기로 했다.

 바가 비치에 도착해 내리는 우리에게 기사는 50루피를 더 요구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오려니까 우리의 가방을 잡는다. 뿌리치고 그냥 와 버렸다.

 어두워진 해변은 이미 사람들이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으나 서양여성 두명이 걸어가고 있길래 그들과 바짝 붙어 걸었다.  술취한 인도 할아버지가 집적대면서 따라와 많이 신경이 쓰인다.그러나 4명이 의지해 해변을 걸어 깔랑굿에 도착하였다.  숙소에선 k가 주인 아주머니와 차를 마시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옆집 코코 바나나와의 앙숙문제, 1년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 그리고 그녀의 신앙 등..

 k의 활약으로 맛있는 차이를 한잔 가득 얻어마셨다.

 샤워도 하고 빨래도 잔뜩하고. 내일은 제대로 된 방으로 옮겨 본격적인 고아생활을 해야겠다.

1월 4일(일)

뭄바이의 번잡함이 하루만에 먼 일처럼 느껴졌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노비나와 꾸따와 같은 해변휴양지의 느낌이 이 곳 고아에서도 있었다. 길거리의 레스토랑, 해변의 들뜬 인파들...

 그러나 이런 휴양지의 분위기가 몸에 딱 들어 맞듯이 익숙한 건 아니다.

 요즘처럼 어디서나 잘 자는 적은 없었던 듯 싶다. 놓여진 간이 침대에서도 세상 모르게 잔 것 같다.

 오늘은 하루가 널럴하다. 어차피 방을 10시 이후에야 옮겨야 하니까 그 때까지는 아무 할 일이 없다.

 잠시 밖에 나가서 아침을 먹고 들어와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10시 20분쯤 짐을 옮기고 대충 정리를 하다보니 어느새 12시가 넘어버렸다. 방은 크고 쾌적했다. 딸린 욕실에서는 순간 온수기가 달려 있어. 따스한 물도 잘 나왔다.

 오후엔 올드고아로 가기로 하였다. 올드고아로 가기 위해선 빤짐으로 먼저 가야한다. 

 긴팔 남방까지 입고 햇볕에 대한 중무장을 한 다음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빤짐행 버스는 금방 왔다. 천천히 해변 마을을 이리 저리 돈 버스는 한시간 후에 빤짐에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빤짐 터미널은 고아주의 주도 버스터미널 답게 크고 번잡하였다.  근처 식당에서 볶음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오렌지를 사서 올드 고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빤짐 버스 터미널을 벗어나자 마자 만도비강의 수려한 풍광이 이어졌다. 가는 길이 소풍가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가는 것도 즐겁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휑한 넓은 광장이 있었는데 그 곳엔 봄 지저스 대성당이 있었다.

 1946년 교황청으로부터 인도 최초로 대성당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은 이 성당은 사후 400년이 넘었는데도 썩지않아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성 프랜시스 싸비에르의 시신이 안치되어 유명한 곳이었다. 고아주의 수호성인이기도 한 성 프랜시스 싸비에르는 예수회 소소의 선교사, 특히 고아 주를 비롯해 일본,중국 등의 아시아 지역 선교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사람이었다. 듣던대로 성당안의 그의 석관 겉면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커다랗고 장식이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그리이스나 터키에서 본 석관보다도 크고 아름다운 듯 싶다.

정면과 좌우를 볼 수 있게끔 문을 만들어 놓았다.

  이 싸비에르의 시신은 1995년까지 10년에 한번씩 일반에게 공개되었었는데 지금은 시신의 보존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공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언제쯤 다시 보게 될런지 모르겠단다.

 봄 지저스 대성당 맞은 편은 성 캐더린 성당이었다. 1562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652년에 완공한 흰색의 성당이었다.

 고아주의 성당들은 대부분 홍토로 만든 벽돌로 지어져 방습을 위해 겉면에 횐 회칠을 하였다고 한다.

 성당안에는 미사가 진행 중이어서 관광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신자인 척 하고 내부에 들어갔으나 자세히 감상하기 어려웠다. 미사는 낮고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포르투갈인들이 개종하지 않은 회교도들을 처형하면서 울렸다는 황금의 종은 보지 못한 채 성당안을 나와야만 하였다.

 캐더린 성당 옆은 박물관과 성프란시스 성당이 있었다. 박물관에는 힌두 조각들과 기독교 조각품이 진열되어 있었고 2층에는 포르투갈 지배자들이 그들의 맨션벽에 그려넣은 나무로 된 초상화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1층 복도 한가운데는 포르투갈의 국민시인 카봉스의 동상이 버티고 서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파괴된 힌두 사원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 박물관에선 지금은 볼 수 없는 올드고아의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어서 의미 있었다.

 박물관에서 나오니 바로 옆이 성 프란시스 성당이다. 엄청난 규모의 성당에는 꽃무늬 프레스코와 성 프란시스의 생애를 그린 프레스코화가 있었다. 분위기와 규모에 압도당하다.

 프란시스 성당을 나와 성 카제탄 성당을 찾아가려니 벌써 5시가 넘어버렸다. 이미 성당들은 문을 닫고 있었고.

 올드 고아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접고 돌아오기로 하였다. 아까 도착했을 때 성당에 바치려고 산 초는 반이상 남아 있었다. 심심해서 사먹은 코코넛은 미지근하고 양이 적었고...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는 초만원이었다. 구겨서 올라탔다. 인도인들의 독특한 몸냄새가 강하게 난다. 버스에 서있는 위치가 반대편이라서 만도비 강의 수려한 모습을 보지 못한 채 가는 것이 아쉬움이었다.

 빠나지까지의 10여분은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빠나지 버스터미널에서 오렌지와 수박과 바나나를 잔뜩샀다.

 깔랑굿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아까보다 훨씬 번화하고 세련된 거리들을 지나쳤다. 버스는 우리를 낯선 깔랑굿 입구에서 내려주고 가버렸다. 우리가 어제 본 깔랑굿보다 거리는 훨씬 더 흥청거렸다. 성수기의 휴양지였다.

 돌아온 우리의 숙소는 조용하고 깨끗하고 안온한 느낌을 준다.

 샤워 후 주인인 아유나가 요리해 준 킹피쉬를 먹었다. 우리의 삼치 맛이다. 익숙한 맛의 음식, 그리고 예쁜 정원이 술을 부른다. 마지막 남은 소주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따고..

1월 5일(월)

 오늘은 한가롭게 자전거를 빌려타고 그냥 마을을 돌아다녀 보기로 하였으나 자전거가 우리 체구에 맞지 않게 너무 커서 탈 수가 없었다. 로컬버스를 타고 깐돌림 비치로 가서 해변 레스토랑에 앉아 점심을 먹고 하염없이 바다와 바닷가에서 썬탠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앉아 있었다. 깔랑곳보다 훨 조용하고 분위기도 좋다.

 간혹 치는 파도만 움직일 뿐 강렬한 햇살아래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하다. 햇살이 무서어 감히 그늘밖을 나갈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4시 30분쯤 용기를 내어 해변을 걸어 깔랑굿으로 왔다. 길게 늘어져 있는 해변을 걷는 맛이 좋다. 깔랑굿으로 올 수록 해변의 오염도가 심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깔랑굿에는 수많은 인도인들이 놀러와 업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해변의 많은 인도인들이 우리한테 사진을 찍자고 요청한다. 우리도 기꺼운 마음으로 모델이 되어준다.

 7일 떠날 함피행 슬리퍼 버스를 예약하였다. 침대는 위층밖에 없었다.

 저녁은 티베탄 식당에서 해결하였는데 조용하고 깔끔하고 분위기있는 식당이었다.  우리의 수제비와 같은 띤뚝을 시켜먹었는데 매운 맛이 개운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었다. 오늘도 역시 배불리 먹는 실수를 저질렀다. 

 식사 후 밤 바다를 거닐다가 숙소로 돌아와 샤워도 하고 연탄물같은 검은 물이 나오는 빨래를 하였다. 

 별로 할 일이 없었던 열대의 하루도 어느새 지나가고 있었다.

1월 6일(화)

오늘은 아침 식사 장소를 바꾸었다.

카잔드라 레스토랑에서 아침세트를 먹었는데 토스트에 계란후라이, 콩, 토마토구이, 감자칲 등이었다.

식당은 분위기가 좀 고급스러웠고 웨이터가 거만하면서도 은근히 할 말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캐쉬넛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으니 직접 가져와 맛보게도 해주고 캐쉬넛으로 만든 토속주 페니도 한잔 가져와 마셔보란다. 우리에게 코리아 인구가 몇명이냐고 묻더니 거만하게 인도는 인구가 10억이라고 하더니 중국 다음이 자기네란다.

 은근히 너희 잘산다고 잘난 척하지 말라. 그래도 우리가 큰 나라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재미있는 사람이다.

 아침부터 너무 과하게 먹은 데다 빈속에 독주를 마셔서 그런지 속이 울렁거려 빤짐까지 가는 동안 차멀미가 나서 유난히 가는 길이 오래 걸리는 듯 싶었다. 빤짐 시내는 걸어다녀도 충분했다. 다리를 건너간 구시가지는 포르투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느낌이 강했다. 시가지는 사오토메와 폰테이너스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시립공원앞의 하얀 동정녀 마리아 성당을 지나 이리 저리 기웃거리다가 생과일 쥬스와 맛살라 도사를 먹어 기운을 챙겨 걸어 걸어 뮤니시컬 마켓으로 갔다.

 가는 길에 유명한 캐쉬넛도 샀다. 시장은 크고 엄청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천연 염색약 헤나를 샀다. 

역시나 생선시장엔 킹피쉬와 대하가 많았다. 중간 정도의 접시에 담긴 새우가 100루피란다. 새우는 굵고 실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다. 깔랑굿까지 가져가는 동안 상할테니까. 

 시장에서 나와 옆의 BANK OF INDIA에 가니 철제 셔터가 반이상 닫혀있어 영업을 안하는지 알았는데 문을 미니 문이 열린다. 안에는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은행강도가 많아서란다. 10루피짜리 30장을 새돈으로 바꾸었다. 

 아침에 먹은 토스트가 아직도 내려가지 않아 음식에 대한 욕구를 없애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시원한 물을 벌컥 벌컥 마시니 조금 체증이 내려가는 듯 싶다. 

 3시 30분쯤 버스에 승차. 깐돌림과 깔랑굿 중간에서 내려 해변으로 갔다. 해변은 눈부시게 밝았고 거의 파도소리만 들릴 뿐 정적이 감돌았다. 군데 군데 사람들이 선탠을 하고 있었으나 움직임만 느리게 보일 뿐 소리는 없는 듯 하다.

 차를 마시고 책을 읽으면서 해변의 한가로움을 즐겼다. 햇살이 거의 사라졌을 때 맨발로 해변을 걸어 숙소로 돌아오는 시간은 평화로움과 기쁨이 가득했다. 일몰은 생각보다 그렇게 찬란하지는 않았지만 바닷가를 걷는 평화로움이 좋았다. 

 역시나 깔랑굿 해변은 인파로 들썩이고 있었다. 입구도 도때기 시장이고.

 그러나 우리의 숙소는 조용하고 쾌적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오늘밤이 이 숙소의 마지막이다. 내일은 함피로 떠난다.

1월 7일(수)

 아유나와 루쉬오가 정성껏 가꾼 이 정원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예의 길거리 단골 식당에서 오트밀로 아침식사를 하고 짐을 꾸렸다. 짐을 맡기고 다시 길을 나섰다. k는 오늘 숙소에서 쉰단다. 깔랑굿에서 맙사를 통해 바가토르로 가는 길은 빤짐가는 길보다 훨 전원적이고 훨 복잡하지 않았다. 학교도 보이고 들판도 보이고.. 바가토르는 조용하고 갯 바위가 어울어진 모습이 한국의 바다를 생각나게 하였다. 근처 호텔식당에서 생선과 닭구이로 점심을 먹었는데 먹잘 것도 없이 가격만 비쌌다. 

 이번 인도 여행은 지난번 북인도 여행과는 달리 돈이 쑥쑥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물가가 많이 올랐다.

 리틀 바가토르 해변까지 걸어갔다. 차로라성이 올려다보인다. 햇볕때문에 성까지 올라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해변은 고즈녁하였다. 썬탠하는 사람들도 몇 안되고 해변엔 소가 몇마리 어슬렁거린다. 해변카페에서 마신 차이가 거의 맹물 수준이었다. 해변에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나오는데 해변 바로 앞에는 인도인들을 가득 실은 관광버스가 많이 와 있었다. 이 곳이 인도인들이 즐겨 찾는 곳 중의 하나인가보다.

 약속시간인 4시를 칼같이 지켜 드림보트로 돌아오니 k가 이미 와 있었다. 아유나는 우리가 부탁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짜파티를 굽고 달을 만들고... 깔끔하고 정갈한 약식 탈리를 먹었다. 맛있다. 

 이 주인장 부부와 사진을 함께 찍고 마당에 심은 각종 식물을 둘러 보면서 아쉬운 작별을 한다.

 저녁 6시 30분에 맞추어 여행사 앞에 갔으나 버스는 7시 20분이 넘어서야 왔다. 차장은 무능한 듯 좌석배치도 못하고.

 빤짐에 도착해서야 여행사 직원이 올라와 좌석을 배치하고 우리 영수증을 가져가 버렸다.

 버스는 앞에는 좌석이고 뒤에는 침대칸이다. 위에는 다 침대고.. 그러나 위의 침대엔 번호표가 제대로 달려있지 않아 중간에 가득 올라탄 서양아이들이 우리 자리를 자기네 거라고 우겨대어 말다툼이 벌어졋엇다. 그러나 차장은 아무 역할도 안한다. 결국 선영이가 내려와 버렸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진 셈이 되었다. 다음번엔 좌석 재치를 확실히 해두어야겠다. 

 그러나 아래층에서 자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흔들림이 덜했으니까. 버스에 함께 탄 서양아이들은 한결같이 추접해보인다. 경우가 없고 제멋대로인 아이들이다. 

 밤새 달린 버스는 호스펫에서 아침을 먹느라 한참 서있더니 10시가 다 되어서야 함피에 도착하였다. 함피의 숙소는 별로였다. 시설도 열악하고 또 요즘은 성수기라 비싸기만 하다. 산디야에 더블룸을 300루피에 묵는다.

 웰컴 레스토랑에서 감자국밥을 먹고 씻고 쉬다가 호스펫에 나가 방갈로르 가는 기차표를 예약하였다.  

 

 고아가는 기차에서-옆칸 가족

  고아가는 기차에서

 고아가는 기차에서-옆칸 가족

 고아 깔랑굿 해변

 고아 토요시장에서

 고아 토요시장에서

 고아 토요시장에서

 고아 토요시장에서

 고아 토요시장에서

 고아 해변의 일몰

 우리 숙소 안주인 아유나와 킹피쉬

 올드 고아의 봄 지저스 대성당

 올드 고아의 봄 지저스 대성당

 올드 고아의 봄 지저스 대성당

 성 캐더린 성당

 올드고아의 박물관

 올드 고아의 박물관앞에서

 성 프란시스 성당에서

 성 프란시스 성당에서

 성 프란시스 성당에서

 성 프란시스 성당에서

 빤짐의 시장에서

 인도의 영혼 반얀트리

 고아의 깐돌림 해변

 고아의 깐돌림 해변

 고아의 깐돌림 해변에서 먹은 식사

 우리의 숙소 드림 보트

 빤짐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빤짐에서

 빤짐에서

 빤짐에서

 빤짐에서

 빤짐에서-빤짐의 심장인 뮤니시펄 가든에 있는 동정년 마리아 성당.

 빤짐에서

 빤짐의 뮤니시펄 마켓

 빤짐의 뮤니시펄 마켓

 빤짐에서

 빤짐에서

 고아의 바가토르 해변에서

 고아의 해변에서

 고아의 해변에서

 고아의 해변에서

 고아의 해변에서

 고아의 해변에서

 우리의 숙소 드림 보트에서

 우리의 숙소 드림 보트에서

 고아 바가토르 해변에서

 고아 바가토르 해변에서

 고아 바가토르 해변에서

 고아 바가토르 해변에서

 고아 바가토르 해변에서

 고아 바가토르 해변에서

 고아 바가토르 해변에서

 우리의 숙소 드림보트 주인장 아유나

 우리의 숙소 드림보트

 우리의 숙소 드림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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