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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코람하이웨이를 넘어 파키스탄으로.

사막의 도시로 변해버린 쿠처(2)

7월 26일 (목)

  더운 것 같기도 하고 안 더운 것 같기도 하구. 그래도 선풍기를 주욱 틀고자면 위험할 듯하여 끄고 자니 땀이 줄줄흐른다. 새벽에 다시 틀고....

 한밤중에 공안들이 와서 방을 검열하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데 내방에는 한국여자1명이라하니 들어오지 않고 그냥지나가는 것 같다.

자다 깨다를 번복하다 마침내 시계를 보니 8시다. 아침으로 어제산 찐빵과 쏘세지 복숭아를 먹는데 먹순이인 내가 도통 잘 넘어가지 않는다. 찐빵을 반만 먹고 남기는 불상사가...

8시 20분쯤 어제 계약한 기사가 방으로 와서 천산신비계곡이 멋지다고 꼬신다. 근데 멀기 때문에 더 내야한다고.. 300위안에 천산신비계곡을 더 넣기로 합의를 보다.  대신 중국남자 한명이 계곡까지만 동행하면 안되겠냐고...

어쨋든 가격을 깍은 건 아니지만 혼자가는 것보다는 나은 듯 하여 흔쾌이 허락해주었다.

9시 짐을 챙겨 큰 가방을 맡기고 로비로 나가니 기사와 일행이 이미 와 있었다. 비쩍마른 중년의 중국남자,그리고 기사1,기사2,나. 이렇게 4명의 일행이 서로에 대해 그냥 무심하게 대하면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척박한 사막지형을 3시간여정도를 달리니 붉은 사막 와디럼과 페트라와 투루판의 화염산이 연상되는 지형이 연이어 나타난다.

  12시. 천산신비계곡 도착. 페트라가 연상되는 멋진 곳이었다. 천산의 빙하가 녹아 맑은 물이 흐르고 그 흐르는 물과 지진으로 인하여 멋진 절벽들이 형성된 것이었다. 2시간여의 산책이 꿈처럼 지나간다. 계곡은 청량하고 시원하기도 하였다. 페트라에서 가졌던 감동이 다시 밀려오는 듯 하다. 천산신비계곡앞에서 일단 상하이에서 온 중국남자와 헤어지고.. 그는 이 계곡만을 보러 왔단다. 

천산신비계곡에서 다시 황막한 사막을 두시간 정도 달려 키질 천불동으로 갔다.  

석굴 앞에는 무자트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이 북안에 깎아지른 절벽이 연이어 있는데 2km절벽에 걸쳐 뚫려있는 수백 개의 굴들이 바로 키질 석굴이다. 현재 2백 36개의 굴이 확인되었지만 더 많이 발굴될 것으로 보인단다.

  이 석굴은 인적이 드문 벽지에 있는 탓인지 회교도들의 파괴는 덜 심하지만 소련,독이릐 그륜베델.르콕.일본인 오오타니등이 이 곳 벽화들을 대량으로 약탈해 갔단다.

  오늘 개방된 굴은 7개-거의 다 파손되었으나 그래도 8굴의 벽화는 색채가 아름답게 남아있었다.  10굴,12굴,17굴,32굴,27굴,34굴을 보다.  10굴에 남아있는 조선족화가,한낙연의 흔적. 이 황량한 사막의 한가운데서 느껴지는 동포의 흔적이 외로운 여행자를 뭉클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1960년대에 세상을 떴다고...

3세기에 만들어진 키질 최고의 17굴에서 10세기의 석굴에 이르기까지 벽화와 불교미술들로 가득한 키질석굴은 대승 소승의 불교미술에 인도,이란,중국적 요소를 조화시켜 가장 서역적으로 만든 특징있는 미술로 세계에 알려져 있다.

이 거의 파괴괸 석굴안에는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입구의 보관대에 모든 소지품을 맡기고 들어가게 한다.

입구엔 쿠차의 명승 구마라습의 청동상이 있는데. 우리나라(고구려)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해 준 전진왕 부견은 서역 정토군을 떠나 보낼 때 특별히 대장군 여광에게 쿠차국을 복속시키면 구마라습을 모시고 곧바로 장안으로 오라고 명령했다고 하니 중국에까지 그의 명성이 자자했던 모양이다. 구마라습은 쿠차왕실 출신으로 어릴때부터 간다라에 가서 불교를 깊이 연구하고 돌아온 당대의 명승이었다고 한다. 그는 특히 어학에 능통하여 역경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하는데 이같은 그의 재능은 중국에서 빛을 낼 수 있었다. 구마라습은 여광과 함께 중국에 왔으나 전진이 이미 멸망해버린 뒤였고, 그래서 대장군 여광이 하서회랑에서 후량을 세우자 잠시 여광 밑에 머물렀다가 후진왕 요흥의 초청으로 후진에서 역경사업에 종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열반할 때까지 경론 70여부 300여권을 번역하여 일약 남북조 불교를 중국땅에 반석처럼 다져놓은 장본인이자 제1의 불교황금기를 개척한 불세출의 명승이었다.

주변의 황막함 속에서 이 키질 석굴이 있는 지역만이 물이 흐르고 푸르름이 있어 마음의 청량함을 더해 주는 것 같았다.

키질 석굴을 떠나 다시 한시간여를 달려 찾아간 곳은 쓰바스고성터.  현장이 경탄했었던 유명한 소호리 불적이 이 곳이다. 시리아의 마리 유적지가 생각나는 곳이다. 그 옆에 도도히 흐르고 있었던 유프라테스강이 쿠처하가 되어 있으나 말라붙어버렸고...혼자서 둘러보기에는 너무도 적적하고 고요하고 햇살이 넘치는 곳이다. 그러나 난 항상 이 느낌이 좋다.

유적지의 담은 사각형인데 그 일부가 허물어졌지만 상당히 큰 규모로 마치 성벽이나 감옥벽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 곳 사람들은 이 유적을 쓰바스 고성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불교사원안에 성이 있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파키스탄의 간다라 지방에 가 본 사람이라면 성과 불교사원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단다.

특히 외지고 황량한 지역의 불교사원일 경우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는 성이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강가에는 불탑,예불당, 굴 등이 한데 어울려 즐비하게 서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흙벽돌로 축조되었기 때문에 형태를 제대로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문 편이었다. 

 이곳에서는 1978년도에 미이라 1구가 발견되었는데 납작한 두개골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미루어 쿠챠 사람들의 원모습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크게 주목받기도 한단다.

  쓰바스고성에서 10여분정도 달리니 한나라 때의 토탑인 쿠즈라가호 봉화대가 나온다. 진흙과 볏짚으로 개어 만든 6미터의 거대한 봉화대. 정사각형이고 밤에는 불꽃으로 낮에는 연기로 알린다고... 이 곳을 지나 초르타크 산록을 바라보면 황량한 산록에 석굴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는데 너무 황폐해서 옛날의 장관은 찾아 볼 수도 없다한다. 거기까지 가보지는 못하고.. 쿠처로 돌아온다.

7시 30분이 넘어서야 쿠처에 도착. 일렬로 늘어선 백양나무 가로수가 멋진 모습으로 쿠처 도착을 환영하는 듯 하였다. 들어오는 길목엔 과수원들이 꽤 있어서 혹 들르려나보다라고 했더니 그냥 지나친다.

숙소옆 식당에서 밥과 마파두부,맥주로 저녁을 느긋하게 먹고 인터넷-아주 느려 복장터진다.1시간 동안 간신히 멜하나를 보냈을 뿐이었다.-을하고, 교통빈관에 돌아가 샤워하고 로비에서 책읽고 일기를 쓰며 나를 기차역까지 픽업해주겠다는 오늘의 기사를 기다렸다. 새벽 1시 기차역으로 출발.

기차역에선 아까 신비대계곡에서 만난 대만 아가씨와 충칭에서 온 네명의 배낭여행 여대생들이 같은 여행객으로서 무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들은 밝고 생동감있고 유쾌하였다. 자리가 없다는 스트레스 땜시 서둘러 기차에 올랐으나 비집고 앉을만한 자리도 없다. 식당칸 옆의 역무실에서 174위안을 더 주고 연와표로 바꾸게 되었다. 내가 짐을 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연와실(부드러운 침대)로 가니 아까의 충칭 여학생들이 '르안으어?'하며 부러움 섞인 탄성을 지른다.

침대에 들어가자 마자 잠을 청하다. 역시 잉워보다는 넓고 푹신하고 안락하다.

 천산신비계곡가는길...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천산신비대계곡

 키질석굴앞을 흐르는 무자트강물

 키질석굴앞의 구마라습 승려 청동상

 키질석굴에서

 키질석굴에서

 키질석굴에서

 쓰바스 고성가는길에

 쓰바스 고성

 쓰바스 고성

 쓰바스 고성

 쓰바스 고성

 쓰바스 고성

 쓰바스 고성

 쓰바스 고성

 쓰바스 고성

 쓰바스 고성

 쿠즈라가호 봉화대

 쿠즈라가호 봉화대

 

♡오늘의 입장료 : 천산신비계곡-40위안, 키질천불동-35위안,쓰바스 고성-25위안,쿠즈라가호 봉화대-15위안

♡택시대절료-300위안.

♡카스가는 기차 연와표 174위안

 오늘은 가는 곳마다 비싼 입장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쓴 돈이 중국에서 쓴 최대의 액수이다.

---건강한 나이든 여자의 배낭여행, 꽤 쏠쏠한 맛이있다. 이제 늙어 누구도 집적거리지 않고 편안하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으니 좋은 것 같다. 어느정도 조급함도 없어지고... 여행 떠나면서 혼미하던 머리속이 맑아지는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