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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겨울 이탈리아, 몰타 여행

영원의 도시 로마 7(카라칼라 욕장 등)

2025년 12월 19일(금) 비오고 흐림

오늘의 여정

오늘은 다시 로마 시내 산책.
아침에
어제 산 새우를 이용해 A님이 요리를 만들어 주었다.

싱싱하고 실한 새우. 나폴리의 향기를 느낀다.

아침을 먹고나서 갑자기 유언니가 식은 땀을 흘려
외출 준비를 하다말고 쉬기로 하였다.

세명이 길위로 나섰고
오늘은 라테라타 성당을지나
카라칼라 욕장으로!

가는 길은
영원의 도시 로마 답게
오래된 구조물 들의 연속이었다.

카라칼라 욕장 근처까지 가서 입구를 찾느라
조금 헤맸다.
구글 지도가 제대로 가르쳐 주질 않는다.
다른 서양인 커플도 같이 헤멨고.
오늘 구글지도의 안내미스의 시작이었다.

카라콜라 욕장의 티켓 판매소
카드도 머신도 잘 작동하지 않는다.
1인 8유로, 결국 현금으로 결재.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카라칼라 욕장은
너무나 좋았다
폐허가주는 아름다움이 있는
그리고 공간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카라칼라 욕장은
고대 로마 시대에 지어진 거대한 공중 목욕탕 유적으로, 로마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시설이다.
오늘날에는 웅장한 유적만 남아 있지만,
당시 로마의 목욕 문화와 사회 생활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장소다.
서기 212년경부터 카라칼라 황제의 명으로
건설이 시작되어
216년경 완공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번에 약 1,6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었던 대단히 큰 목욕 단지로,
고대 로마에서 두 번째로 큰 공중 욕장으로 평가된단다.
냉탕(frigidarium), 미온탕(tepidarium), 열탕(caldarium), 야외 수영장(natatio) 등 다양한 온도의 목욕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단순한 목욕 공간이 아니라
체육관, 도서관, 정원 등이 함께 있는
복합 문화·여가 공간으로,
로마 시민들의 사교와 휴식, 운동, 독서가 이루어진 장이었다.
6세기 이후 전쟁과 지진, 훼손으로
목욕 기능은 사라지고
오늘날에는 붉은 벽돌 구조와 아치가
남은 유적으로 남아 있었다.
여름철에는 유적 안에서
오페라나 발레 같은 야외 공연이 열린단다.

요즘 시기에도 흉내낼 수 없는
거대한 복합 레저 공간이었다.
로마인들의 문화수준은
어디까지인지 너무 놀라웠다.
그들의 건물 장식 수준도.


카라 카라칼라 욕장을 나오면서
기분은 좋아졌다.
이제 아피아 가도를 향해 걸어간다.
그러나 아피아 가도.
돌길에 시끄럽고 차량통행도 빈번하고
보도도 신통치않고
걷기에 피곤한 길이다.


아피아 가도(Via Appia)는 로마 시외로 나갈 때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을 통과해 이어지는데
요 성벽은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Aurelian Walls, 이탈리아어 Mura Aureliane)’이다.
이 성벽 위에 있는 남쪽 성문이 바로 산 세바스티아노 문
(Porta San Sebastiano,
옛 이름 Porta Appia)으로,
이 문에서 옛 아피아 가도가 시작된다.

우리는 요문을 통과했고

아피아 가도 마일 표식.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한국 교과서에 나와있는 그 아피아 가도를 찾는데
또 구글 지도의 오류 때문에 한참을 헤메이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원했던 지역은 한참 멀단다.
걸어 갈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포기하고
그냥 아피아 가도를 경험했다는데 의미를 두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구글지도의 오류 때문에
고생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미 시간은 한시 반이 넘어 버렸고
우리는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
한작한 식당을 찾아가 밥을 먹었다.

맥주와 앤드위치 두개 그리고 이 닭요리를 합쳐 18유로. 현지 동네의 물가는 관광지 물가보다 훨 쌌다.

점심을 먹고 다시 기운을 차린 우리는
근처 쿼바디스 성당에 들어갔다.

미켈란젤로 의 모작

쿼바디스 성당을 나와
카타콤베를 향해 걸아가는데 길이 너무나 좋았다.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

그리고 카타콤베
로마 카타콤베는 고대 로마 시대에 도시 밖 지하에 조성된 거대한 지하 공동묘지로, 초기 그리스도교인의 매장지이자 신앙 공동체의 공간이었다.
카타콤베(catacombe)는 원래 로마 아피아 가도 주변의
특정 지하묘지를 부르던 고유명사였는데,
이후 모든 지하 공동묘지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가 되었다.
어원은 ‘낮은 곳, 움푹 팬 곳’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언덕 사이 낮은 지대에 있던
세바스티아누스 묘지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로마는 성 안에 매장을 금지해서,
죽은 자는 성 밖 도로(특히 아피아 가도)를 따라 묻었고,
땅 부족과 과밀 문제로 지하 공간을 파내어 묘지 네트워크를 만들게 되었다.
카타콤베는 여러 층의 지하 갱도와 복도,
벽을 파내 만든 시신 안치 공간(벽감), 가족무덤 방, 작은 예배실 등으로 구성되며, 전체 길이를 모두 합치면 수백 km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카타콤베는 그리스도교 이전에도 사용되었지만,
2–4세기 박해 시대에
특히 초기 그리스도교인의 매장지로 유명해졌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의 부활을 중시해
화장보다 매장을 선호했고,
순교자의 무덤 근처에 묻히기를 원해
카타콤베가 빠르게 확장되었다.
로마법상 묘지는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져,
원칙적으로 군대조차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일부 카타콤베는 박해를 피해 숨어 예배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는 전승이 있다.
실제로 지하 예배당과 제단,
초기 그리스도교 상징(물고기, 목자, 비둘기 등)이
그려진 벽화, 순교자와 성인의 무덤 주변에 새긴 짧은 기도문들이 남아 있다.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그리스도교가 공인되면서,
카타콤베는 순례지이자
성인·순교자 공경의 장소로 기능했지만,
5세기 이후 침입과 약탈, 도시 구조 변화로
점차 묘지 기능을 잃었다.
9세기경 대부분 방치되었다가,
중세 이후 일부가 다시 알려지고,
근대·근현대 고고학 조사로 산 칼리스토,
산 세바스티아노, 도미틸라 등
여러 카타콤베가 체계적으로 발굴·정비되었다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 2–4세기 교황과 순교자들의 무덤이 있어 ‘교황들의 묘지’로 불리며, 현재 가장 널리 공개·관람되는 유적 중 하나인데
우리는 요기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철저하게 가이드를 따라 다니는 곳이었다.

산 세바스티아노·도미틸라 카타콤베 등
로마 주변에 알려진 카타콤베만 40여 곳이 있으며, 그중 일부만 일반에 개방되어 있단다.


카타콤베를 끝으로 우리의. 오늘 로마산책은
종료 되었다.
먼진 사이프러스 나무길을 걸어
산 세바스티아노 성당 근처까지 걸어온
우리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많이 걸은 하루였다.
집에서 오늘의 저녁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어 만찬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