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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겨울 이탈리아, 몰타 여행

영원의 도시 로마 5(빈콜리 성당,캄피돌리오 광장 등)

2025년 12월 16일(화) 종일 비

오늘의 여정


어제밤 유언니가 고열에 시달려
A님이 냉찜질을
한시간 넘게 해주었단다.
난 그것도 모르고 쿨쿨 자고 있었고.
요즘엔
겨울이나 환절기 여행에서
항상 감기를 달고 다닌다.
그래서
한국에서 감기약을 많이 준비해서 가져왔다
생각했는데
세명이나 감기치레를 하니
약이 다 떨어져버렸다.

구글을 뒤져보니
아침 8시에 여는 약국이 근처에 있었다.
아침을 먹고나서
H님과 약을 사러 갔다
타이레놀 류의 알약과
기침에듣는 물약 두가지를 샀는데
20유로다.
넘나 비싼 유럽 약값.

오늘도 투병 중인 유언니를
집에 남겨 놓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걸어서 로마를 느낄 예정이다.
먼저
미켈란젤로의 모세상이 있는
빈콜리 성당을 향해 걸었다.
비가 추적 추적 오는 로마의 거리
나름 운치있었다.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Basilica di San Pietro in Vincoli)는
‘성 베드로의 사슬 성당’이라는 뜻으로,
예루살렘에서 사도 베드로를 묶었던
쇠사슬 성유물을 모시기 위해
5세기경 세워진 로마의 초기 기독교 basilica이다.
5세기 동로마 황후 리키니아 에우도시아가
베드로가 감옥에서 썼다고 전해지는 쇠사슬을
로마로 가져오면서 이를 봉안할 성당으로 건립되었고,
이 때문에 ‘에우도시아나 대성당’
이라는 별칭도 있다.
제단 아래 유리관 속에 베드로를 묶었던 사슬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어,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다.


겉모습은 비교적 소박한 르네상스 양식의
포르티코와 단층 파사드로,
다섯 개의 아치와 팔각 기둥이 특징이다.
내부에는 성 베드로의 생애를 그린 프레스코가 눈에 띈다.


오른쪽 transept에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무덤이 있고,
그 중심 조각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걸작 「모세」상이다.
원래는 거대한 독립형 묘역 계획의 일부였지만
축소되면서 현재와 같은 벽 부착식 형태가 되었고,
오늘날 성당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장 큰 이유도
이 모세상 때문이다.

모세상

교황 율리우스 2세

빈콜리 성당에서 나와
우리는 캄피돌리오 광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면서 포로로마노로 눈길을 돌리고
전망대에서 포로로마노와 팔라티노 언덕을
다시 한번 더 바라보았다.

이제 캄피돌리오 광장을 지나.
로마인들의 실거주지 인슐라를 찾아갔다.
카피톨리노 언덕의 경사면, 아라 코엘리 성당으로 이어지는 계단 바로 아래에 위치한 웅장한 아라 코엘리 인술라는
고대 로마 시대 건물 블록이었다.
서기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술라는
로마 주택 건축의 중요한 사례를 보여준다.
아트리움과 페리스틸을 갖춘
상류층 개인 주택인 도무스와 달리,
인술라는 여러 가구가 거주하는 공동 주택이었단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도시 인구 증가,
그에 따른 주택 수요,
그리고 건축 가능한 토지 부족으로
고층 아파트 건설이 촉진되면서
인술라는 가장 일반적인 주거 형태가 되었다.
최소 5층 구조로
일부는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는 이 건물은
1930년대 이 지역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바로크 양식의 산타 리타 다 카시아 교회를 해체하고 마르첼루스 극장과 캄피텔리 광장 사이에 재건축하기로 결정되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과
14세기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아르코솔리움도 발견되었다.
이 건물들은 17세기에 카를로 폰타나의 설계로
산타 리타 교회로 개조된
산 비아조 데 메르카토 교회에 속했다.
거리에서 내려다보면 원래의 거리 모습과
장인들의 작업실과
상업 시설들이 있던 커다란 현관 아치들을 볼 수 있다. 1층에는 "타베르나(tabernae)"가 있었고,
주인들은 위층 중이층에 살았다.
오늘날 거리 1층에 있는 층은 옛날의 2층,
즉 "피아노 노빌레(piano nobile)"였는데,
넓고 밝은 방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주로 상류층 가족에게 임대되었다.
반면 위층은 작고 비좁은 아파트로 구성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족에게 임대되었다. 인슐라(insula)에는 약 400명이 거주할 수 있었단다.

그러나 우리가 갔을 때는 보수 중이라 다 막아져 있었다
도대체 로마의 문화와 생활은 어디까지 발전해 있었던 걸까?

막아진 천막의 그림들.
인슐라 바로옆 124계단 끝에는
산타 마리아 인 아라 코엘리 성당이 있었다.

산타 마리아 인 아라콜리(Santa Maria in Aracoeli)는
로마 카피톨리노 언덕 꼭대기에 있는 중세 교회로, 정치·종교의 중심이었던 장소에 세워진 매우 중요한 성당이다.
이름의 ‘아라 콜리(Ara Coeli)’는 라틴어로 ‘하늘의 제단(altar of heaven)’이라는 뜻이며,
옛 로마의 전승과 연결된 상징적인 이름이다

성당 정면으로 올라가는 124개의 흰 대리석 계단은
14세기 흑사병(블랙 데스)에서 로마가 구원받기를 기원하는 ‘서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 계단은 시민들이 참회와 기도를 위해
무릎으로 올라가던 장소로도 알려져,
지금도 카피톨리노 언덕의 가장 인상적인 접근로 중 하나란다.
우리는 무릎은 아니지만 열심히 걸어 올라가 보았다.



이 성당의 가장 널리 알려진 신심 대상은
‘산토 밤비노 디 아라콜리
(Santo Bambino dell’Aracoeli)’라는
나무로 만든 아기 예수 상이다.
전승에 따르면 올리브 나무로 조각된 이 상은
병자를 고치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어졌고,
오랫동안 로마 시민들이 병이 들면
이 상을 찾아와 기도하거나
집으로 모셔 가기를 청하는 풍습이 이어졌다고
특히 성탄 시기에는 이 아기 예수 상과 함께 구유 장식이 마련되어 많은 신자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된단다.

우리도 유언니의 감기가 빨리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빗속을 걸어다니느라 피곤해진 우리는
계단을 걸어 내려와
옆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카페를 찾아 커피와 피자를 시켜 먹으며
잠시 휴식을 가졌다.

비가 안온다면 밖의 테이블에서
포로 로마노의 전경을 보며
즐기겠지만 오늘은 비가 줄기차게 오고 있다.
이 전망 좋은 에마누엘레 카페는
화장실을 본 건물에 가서 이용하란다.
화장실 이용료가 1유로였다
카드로 계산되고.
새삼 어디든 깨끗한 화장실이 무료인
우리나라가 그리웠다.
기념관을 나와 우린
다시 마르첼로 원형극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건물은 로마의 고대 극장 마르켈루스 극장
(Teatro di Marcello)다.
고대 로마 시기 원형극장이었고,
지금은 상부를 주거 건물로 개조한
독특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기원전 1세기경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조카 마르켈루스를 기려 완성한 공공 공연장이다.
콜로세움보다 약간 더 이른 시기에 지어졌고,
구조도 비슷한 타원형 아케이드(아치가 연속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래 두 층은 고대 로마 석조 아케이드가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위에 중세·르네상스 시대에 지은 주택이 얹혀 있는 형식이다.
중세 이후 극장 기능은 사라지고,
귀족 가문이 요새 겸 궁전으로 개조하면서
위층에 집을 세웠다.
오늘날에는 외관을 감상하는 유적지이자,
주변 고대 유적(포르토 루디오, 포로 로마노, 기원전 신전들)으로 이어지는 산책 코스의 한 부분이란다.

이제 마르첼로 원형극장을 지나
진실의 입을 향해 걸어간다.


도중에 만난 헤라클레스 신전
그리고 건너편 진실의 입.

이 곳은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어주시는 분이
우리말로 한번더. 다음 그러면서 열심히 찍어 주셨다.

진실의 입을 보고나서 성당 안으로!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딕 성당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Basilica di Santa Maria in Cosmedin)은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à)’로 유명한
로마의 중세 성당으로,
6세기경 처음 세워지고
8·12세기에 크게 확장·개조된 소(小)바실리카다.
포로 보아리오(옛 소·소금 시장)였던
보카 델라 베리타 광장에 자리하며,
초기에는
로마의 곡물 배급소 건물 위에 세운 작은 성당이었다.
8세기 교황 하드리아노 1세 때 확장되며
그리스계 공동체의 디아코니아(구제·분배 성당)가 되었고, 콘스탄티노플의 ‘코스미디온(Kosmidion)’
수도원 이름을 따 현재의 ‘코스메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다시 손질되면서
지금 보이는 벽돌 종탑과
일곱 개 아치가 있는 포르티코,
삼랑(중앙+측랑) 구조의 엄숙한 내부가 갖추어졌다.
바닥과 제대 울타리, 성가대 구역은
코스마티(Cosmati) 가문의
대리석 모자이크 장식으로 유명하며,
제대 위에는 13세기 고딕·코스마티 양식의
발다키노(종개)와
초기 중세 프레스코 단편들이 남아 있다.
‘성당 포르티코 안 왼쪽 벽에는
고대 하수구 뚜껑이었던
대형 대리석 원반 ‘진실의 입’이 설치되어 있어,
거짓말을 하면 손을 물어뜯는다는 전설 때문에
관광객이 줄을 선다고. 우리도 그 관광객 중 하나다.
내부 왼쪽 측랑 제대에는
연인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성 발렌타인의 해골 성유물이
유리 성유물 상자에 안치되어 있어,
중세 건축·코스마티 장식과 더불어 이 성당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가 된단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유물을 놓쳤다.

이제 성당을 나와 오늘의 마지막 장소
대전차 경기장으로 향했다.

전차경기가 열렸을 광경을 상상하며 걷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콜로세움을 지나 걸어서 걸어서 돌아왔다.
집근처 마트에서 장도 보고
오늘은 2만보 가량을 걸었다.

저녁은 카레라이스로
건강하고 맛있는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