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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겨울 이탈리아, 몰타 여행

영원의 도시 로마 2

2025년 12월 13일(토) 맑음

오늘의 여정

요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6시 쯤 일어나
아침 먹고.

어제 남은 농어 조림을 또 하나의 요리로 재탄생
시켰다.


7시 반 쯤 길을 나섰다.
콜로세움 예약을 8시 30분에 한터라
조금 서둘렀다.

콜로세움은 집에서 걸어서 25분
직선으로 주욱 가면 되었다.
그리고 콜로세움.
역시는 역시다.
이른 아침 예약이라 기다림도 별로 없이 들어갔고
사람에 치이지 않고 돌아 다닐 수 있었다.

콜로세움이 처음인 A님은 감개무량했고

다시 방문한 우리도 또 좋기는 좋았다.



사진에 보이는 저 구멍들은 대부분
“철을 캐내고 간 자국”이라고 보면 된다.
콜로세움 외벽은 트라버틴 돌블록을 쌓고,
그 사이를 철(또는 철+납) 클램프로 연결해서 고정했는데,
이 클램프를 집어넣었던 부분이 바로 저 위치들이란다.
당시에는 거의 모르타르를 쓰지 않고
이런 금속 연결부로 구조를 잡았기 때문에,
건물 전체에 수백 톤 규모의 철이 들어갔다고 추정된다고
로마가 쇠퇴한 뒤 중세에 철이 귀해지자,
사람들은 콜로세움을 거대한 철·돌 “채석장”으로 삼고,
돌을 파내어 안에 박혀 있던
철 클램프를 빼서
무기나 공구, 교회 종·문짝 만드는 데
재활용했다.
그 과정에서 돌 표면을 파들어간 흔적이
지금 남아 있는 구멍들이고,
이렇게 금속이 빠져나가면서
지진 때 구조가 더 약해져 외벽 일부가 붕괴하기도 했단다.

콜로세움에서

원래는 콜로세움을 나와
카페에 들어가 쉼을 가지려 했으나
홀린 듯이 팔라티노 언덕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예약한 표가 콜로세움,팔라티노 언덕,
포로 로마노를 보는 통합권이었다.


팔라티노 언덕은
“로마가 시작된 언덕 + 황제들의 주거지”였던 곳으로,
포로로마노와 콜로세움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궁전 유적과 정원이 펼쳐진 장소다.
역사적 의미전설에 따르면
로물루스가 이 언덕에 움막을 짓고
로마를 세웠다고 전해지며,
실제로 기원전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이른 로마 정착 흔적이 발견된 곳이다.
공화정 시대에는 부유한 귀족들의 저택 지구였고, 아우구스투스 이후로는 황제들이 궁전을 지으면서
사실상 “황궁 언덕”이 되었고,
‘팔라티노(Palatino)’에서 영어 단어 ‘palace’가 나왔단다.
황제들의 궁전과 주요 유적언덕에는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아내 리비아의 집,
티베리우스의 집터,
도미티아누스가 지은 거대한 궁전
(도무스 플라비아·도무스 아우구스타나)이
층층이 겹쳐져 있다.
도무스 플라비아는 공식 행사 공간,
도무스 아우구스타나는 황제의 사적 거처,
그 옆 길쭉한 경기장 모양 공간은
도미티아누스의 개인 스타디오(경기장·정원)로 쓰였단다.
지금은 궁전의 기초와 벽, 아트리움·정원 구조,
스타디오의 타원형 트랙 등이 남아 있어,
언덕을 걸으며 황궁 단지의 규모감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언덕 곳곳의 전망대와
파르네세 정원에서는 포로 로마노,
콜로세움, 아벤티노 언덕,
테베레 강 방향이 한눈에 들어와,
“위에서 내려다보는 고대 로마 파노라마”를 보는
최고의 포인트다.

꽤나 광대한 지역이었다.

팔라티노 언덕에서

그리고 곧바로 포로 로마노로.
아침 7시 반부터 쉬지않고 걸어 다닌
우리는 이 때부터 슬슬 지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넘치는 학구열에 열심히 찾아 다녔다.

포로 로마노는 팔라티노 언덕과
카피톨리노 언덕 사이 골짜기에 형성된
고대 로마의 정치·종교·상업 중심지,
한마디로
“로마의 시청 앞 광장+국회 앞 광장” 같은 공간이다.
기원전 7세기 무렵 원래 늪지였던 곳을 메워
시장과 집회 장소로 쓰기 시작했고,
이후 원로원 회의장(쿠리아),
재판이 열리던 바실리카,
신전들,
개선문이 몰려 있는
도시의 핵심 공공 공간으로 발전했다.
승전 개선 행진, 선거, 재판,
공개 연설, 종교 의식, 장례식 등
로마 시민의 거의 모든 공식 행사가
이곳을 지나갔다고 해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광장”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지금은 사투르누스 신전,
카스토르와 폴룩스 신전,
카이사르 신전,
베스타 신전과 베스타 성녀의 집,
세베루스·티투스 개선문,
쿠리아 율리아, 바실리카 마센티우스 등
주요 건물의 기둥과 기초, 일부 실내를 둘러볼 수 있었다.
대부분 상부 구조는 사라졌지만,
서로 다른 시대(왕정·공화정·제정)를 대표하는
건축이 한 공간에 겹쳐 있어,
“로마가 어떻게 커졌는지”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
거대한 야외 역사 박물관 같은 곳이란다.





포로 로마노에서

포로 로마노. 출구에 있는 오벨리스크

다섯시간 이상을 쉬지않고 걸어 다닌
우리는 상당히 지쳤다.
가장 가까운 음식점을 찾아 휴식과 배고품을 해결했다.


오늘의 식당. 이집의 메인 메뉴가
까르보나라여서 주문했는데
내 입맛에는 안 맞았다.
음식을 남기는 일을 내가 해낸다.
다른 것들은 다 맛있었다. 뜨끈하기도 했고

이제 집으로!
걸어가면서 로마를 느끼기로 하였다.

걷다보니 마조레 성당이 나온다.

마조레 성당은 어제 도착하면서 방문하려고 했는데
피곤해서 그만 두었었다.
우연히 만나니 이런 인연이.

로마의 ‘마조렛 성당’은
보통 산타 마리아 마조레(Santa Maria Maggiore,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를 가리키는 말이란다.
이곳은 로마 4대 대성당(바실리카) 중 하나이자,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가장 중요한 성당 가운데 하나다.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이고, ‘
마조레(마조레/마조렛)’는 ‘가장 크다,
위대하다’는 뜻이라서
‘가장 큰 성모 마리아 성당’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로마의 일곱 언덕 중
에스퀼리노 언덕(Esquilino Hill)에 위치하며,
우리 숙소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해서
어제 일정에 넣었었다.

이 성당은4~5세기에 걸쳐 세워진
아주 오래된 성당으로, 서방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에게 공식적으로 봉헌된 최초의 대규모 성당이란다.
한여름의 눈’ 전설이 유명한데,
8월 5일 한여름 밤에
교황과 로마의 한 귀족 부부가 같은 꿈을 꾸고,
실제로 에스퀼리노 언덕에
눈이 내린 자리에
성당을 지었다는 이야기에서
‘눈의 성모 마리아’라는 별칭도 생겼단다.

2025년에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신의 뜻에 따라 바티칸 지하가 아니라
이곳 산타 마리아 마조레 측랑(보조 신랑)에 안장되면서,
이 성당에 묻힌 여덟 번째 교황이 되었단다.
수많은 참배객들이 줄을 이어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안치된 곳에는 은 십자가가 있었다.

마조레 성당에서


오늘 성당앞에는 행사와 퍼레이드가 있었다.

다시 걸어 집으로
중간에 아시아 마트에서 김치를 사서
어제 산 돼지 고기로 수육을 만들어 먹었다.


오늘 꽉찬 공부 많이 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