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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겨울 이탈리아, 몰타 여행

언덕위의 성지 아시시

2025년 12월 11일(목) 여전히 운무가 많은날

오늘의 여정

오늘 하루 아시시를 온전하게 즐길 수 있는 날이다.
그리고 남이 해준 아침
호텔 조식을 이탈리아 와서 처음 먹는 날이기도 하고
야채가 없는 것이 흠이지만
조식은 정갈하게 차려져 있어 나름 좋았다.
우리는 먹을 수 있을만큼 잘 챙겨 먹었다.

특히 따끈하게 삶아진 달걀이 인기였고
이 호텔은 물을 룸키를 보여주어야만 열쇠로 냉장고를 열고
한병씩 준다.
유럽에 오면. 항상 물인심이 야박함을 느끼는데..
왤까?
호텔에도 물을 제공하는 곳이 드물다.
지난번 피렌체의 에어비앤비 주인장이
물 네병을 주고 생색을 많이 냈었는데
우리는 시큰둥했었다.
이제 그 이유를 알겠다.


호텔의 안온한 공기 탓인지
목상태가 한결 나아졌다.
이 아시시의 신선한 공기도 한 몫 한거 같고.

아침을 먹고
이제 본격적인 아시시 탐방
공기는 차가운데 폐에 들어오는 느낌이 신선했다.

어제보다 더욱 짙어진 운무


아시시 세번째인 유언니의 안내로
멀리 떨어진 안젤리 성당을 먼저 가기로 했다.
걷는 걸음이 넘 좋다.
그러나 걷다가
오늘 너무 무리 될까봐
택시를 탔다. 네명이라 가성비 갑

오늘도 안개는 더 짙어졌다.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신비로운 느낌은 있지만
이제 주변의 모습이 보여졌으면 싶었다.
올리브 나무로 가득한 움브리아 평원도 생생하게
보고 싶고 건물들과 골목들도 선명한
그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나 이 곳 아시시의 겨울은 운무가 일상인 듯.

안젤리 성당

안젤라(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에서는
“거대한 성당 건물”보다,
안에 들어 있는 아주 작은 경당 포르치운콜라와
성 프란치스코가 임종한 방(Transito),
그리고 가시 없는 장미 정원을 중심으로 돌아 다녔다.

아시시는 모든 성당이 무료 입장이라
그것도 좋았다. 여기도 물론
대신 성스러운 장소라서 사진 촬영이 안된다.

중앙은 장식은 상대적으로 절제되어 있고,
양옆 측면 경당에 16세기 이후 움브리아 화가들의 제대화·프레스코가 모여 있어
“늦은 르네상스 움브리아 회화 갤러리” 같은 느낌이란다.


포르치운콜라 경당
어디서 오신지 모르는 수녀님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길래 덩달아 찍었는데
나중에 젊잖게 제지를 당했다.

미안했지만 사진은 건졌다.

포르치운콜라 경당 (가장 중요)
돔 바로 아래에 놓인 작은 돌 교회가 포르치운콜라로,
성 프란치스코가 이곳을 고쳐 살며
실제로 프란치스코회가 태어난 자리이다.
외벽 상단의 프레스코는 예수와 성모에게서
‘아시시 대사면(용서의 은총)’을 받는
프란치스코를 그린 것으로,
“이 작은 교회 문으로 들어오는 이에게
죄의 전대사 은총을 허락해 달라”는
요청이 받아들어진 장면을 상징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아주 소박한 단일 공간과
후진의 14–15세기 고딕 프레스코,
그리고 프란치스코가 직접 손을 댔다고 전해지는
거친 돌들이 보여서
“프란치스코 영성의 원점”을 체감하기 좋단다.
나도 들어가 무릎끓고 기도를 해본다.
신자는 아니지만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

카펠라 델 트란시토 (성 프란치스코 임종 방)
제대 쪽(성가대석 앞) 오른편에 붙은 작은 공간이
카펠라 델 트란시토로,
원래는 병자들을 위한 자그마한 병실이었고
1226년 10월 3일 프란치스코가 여기서 세상을 떠난 곳이란다.
내부 벽에는 16세기 움브리아 화가
스파냐와 티베리오 디 아시시의 프레스코가 있고,
제대 옆에는 프란치스코의 허리띠(끈) 유물이 안치되어 있어 “마지막 순간”의 분위기를 느껴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여기도 사진 금지.

장미 정원 가는 길

가시없는 장미들


뒤·측면으로 연결된 길을 따라가면
“가시 없는 장미 정원”이 있는데,
프란치스코가 유혹을 이기려고 가시덤불 속을 굴렀더니 장미에서 가시가 사라졌다는
전설과 연결된 장소이다.
바로 옆 ‘로사이오 경당’은
16세기 움브리아 화가 티베리오 디 아시시의 프레스코로 장식되어 있고, 초기 프란치스코회 형제들의 모습을 담은 장면들을 차분히 볼 수 있었다.

참 차분하고 좋은 성당이었다.
회랑에 각국의 문화전시에서
한국거 발견하고는 좋아하기도 하고

안젤리 성당 뭔가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근처 카페에서 차한잔하고 다시 택시를 타고
구시가 중심으로 이동

우리가 가고자하는 성당들이
12시부터 2시까지 문을 닫아
밥부터 먹기로 하였다.

오늘 우리가 찜한 식당. 오래된 유적지가 함께 있는 식당이다.

우리 호텔 스텝이 아주 맛있다고 소개해준 집.
맛있었다. 더군다나 H님의 한턱이라 더욱.
식당 분위기도 너무 좋았고.

밥을 먹고 걸어간 곳은
산 다미아노

산 다미아노 가는 길


가는 길도 너무나 아름답고
성당의 분위기도 너무나 좋았던 다미아노
개인적으로 그냥 좋았던 곳이었다.

산 다미아노 성당은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의
“소명과 삶”이 시작된
아주 작은 로마네스크 교회이자 수도원이다.
아시시 성벽 밖,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조금 내려간 언덕 비탈에 있는
작은 교회·수도원 단지로,
7–9세기 사이에 처음 세워지고
11–12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형태로 재건되었단다.
내부는 단일 네이브에 반원형 앱스가 있는
매우 단순한 구조이며,
성당 앞에는 작은 중정(클로이스터)과 회랑,
그 주변으로 합창석·기숙사·식당·정원 등이 붙어 있다.
1205년경 젊은 프란치스코가 회심을 모색하며
이곳에서 기도하던 중,
제대 위 십자가(산 다미아노 십자가)로부터
“내 집을 다시 세워라”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프란치스코는 처음에는
실제 무너진 성당을 보수하는 일로 이해해
직접 돌을 나르며 성당을 수리했고,
나중에 이 말씀이 “교회 전체를 새롭게 하라”는
더 넓은 소명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1212년 클라라가 프란치스코의 설교를 듣고
집을 떠나 수도 생활을 시작한 뒤,
곧 이 산 다미아노가 클라라와 자매들의 수도원이 되었단다.
이곳에서 클라라는 “절대적 가난”의 규칙을 지키며
40년 넘게 살았고,
자신의 규칙에 대한 교황의 인준 교서를 손에 쥔 채
1253년 이곳 기숙사에서 선종했다고 전해진다.
프란치스코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알려진
산 다미아노 십자가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이콘 형식 십자가로,
원본은 지금 아시시 산타 키아라 성당에 모셔져 있고
산 다미아노 성당에는 정교한 복제품이 걸려 있었다.
이 십자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밝게 묘사해
“고통”보다 “부활과 영광”을 강조하며,
프란치스칸들 전체의 상징이자 소명의 표지로 공경받고 있단다.
전체 공간이 “가난·단순함·자연과의 조화”를 드러내도록 의도된 곳이라,
화려한 예술품보다
건물 크기·재료·빛과 풍경의 느낌을 천천히 느끼면서
둘러보게되었다.

뭔가 차분헤지면서 깊은 울림을 갖게 되는 곳이었다.



다미아노 앞 안젤리 성당을 바라보고 앉은 성 프란치스코

깊은 여운을 남긴 다미아노를 떠나 우린
진품 다미아노의 십자가가 있는 키아라 성당으로 갔다.
여전히 운무가 가득하다.

다미아노의 십자가 진품
다시 길을 걷는다.
몇번을 거친 미네르바도 지나고
익숙한 골목도 지나
길을 가다 우연히 들른

마조레 성당


성인 카를로 아쿠티스(San Carlo Acutis)의 유해가
모셔져 있었다.
아시시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Chiesa di Santa Maria Maggiore) 안에 있는
Spogliazione(스폴리아치오네) 성소,
즉 “포기/박탈의 성소”**에 모셔져 있었다.
가장 어린 성인이 된 그는 운동화와 청바지의
모습 그대로 누워있었다.
무슨 느낌일까?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참배를 하고
우리는 길을 서둘렀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근처의 우리 호텔로 들어와
잠시 쉼을 가졌다.

그리고 다시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가서
프레스코화를 정밀하게 감상하려 했으나
오케스트라가 연습 중이라
못들어가게 되었다.

다시 성당을 나와 거리를 걸어
이 아시시의 특산물 트러플 오일을 사라 가는데
너무나 조용한 거리였다.
인적도 거의 없고

레몬첼로와 트러플 오일-트러플 향이 풍부한 오일-
돌아오면서
대성당의 야경을 또 한컷

아시시의 마지막 밤도 이리 지나가고 있었다.
저녁은 점심 때 피자 남은 거 포장해온 거와 다시 사온
샌드위치. 그리고 레몬첼로 한모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