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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로...

상트페테르부르크2

  성당에서 나와 ‘페트로 파블로프스키 요새’ 감옥으로 갔다. 18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정치범들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했는데 차츰 전제 정치의 압박과 이에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변모한 감옥이다. 감옥은 생각보다 넓고 우리의 감옥보다 시설이 더 좋은 듯 했다.

이 감옥에 갇혔던 유명한 사람들---표트르의 아들 알렉세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사진이 감방문 옆에 붙어 있고 그에 대한 설명이 러시아어로 씌어있었다.

 요새 밑 강변에서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

 감옥에서 나와 홍수 때의 물의 높이가 적혀있는 문으로 갔다.

 스몰리 수도원

 수도원 꼭대기에서

 레닌동상

 러시아의 시장

 푸쉬킨을 찾아가는  기차에 탑승, 자리에 앉자마자 동양인인 듯한 여자가 와서 이름을 적어달란다. 몇마디 해보니 반갑게도 부랴트족이었다. 이루크츠크 목조가옥 박물관에서 알게 된 우리와 너무도 비슷한 풍속을 많이 가진 부랴트족. 반가운 마음에 그녀와 허샘이 함께 앉아 있는 사진을 찍었다. 생긴 모습도 우리와 많이 비슷했다.

 예까쩨린 궁전에서

 예까쩨린 궁전에서

 예까쩨린 궁전의 정원에서 쉬고 있는 러시아인들도 지하철이 러시아인들과 마찬가지로 독서를 하고 있다.

 예까쩨린 궁전의 정원에서

 예까쩨린 궁전의 정원에서

 예까쩨린 궁전에서

 예까쩨린 궁전에서

 예까쩨린 궁전에서

8월 12일(월)

피곤에 지쳐 오전엔 쉬다.


쓴돈 : 빵,물-22루블, 성당 스몰리 입장료-75루블, 차,아이스크림-15루블,

      쌀,아몬드,귤,토마토,오이,빵,치즈,와인-215루블, 숙박비-448루블, 자작나무함-110루블


스몰리 수도원을 갔다 왔다.

숙소위 네바강의 다리를 건너 걸어가다보니 예쁜 가로공원이 나오고 또 주욱 걷다보니 실내 화원이 나온다. 그런 다음이 푸른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스몰리 수도원이다.

1748~1764년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여제의 신앙심을 상징하기 위해 바르콜로메오 라스트렐 리가 세운 이 사원은 러시아식 바로크와 서구 유럽의 바로크 스타일이 혼합되어 있다. 라스트렐리가 이 도시에 세운 바로크 건축의 진주 스몰니이 사원은 러시아정교회 사원 건축의 기본적인 형채인 그리스 십자가와 다섯 개의 둥근 지붕이 있는 형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중심 성당이 보수중이라 기부스를 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유자파이로 점심을 먹었다. 입장료-어른 150루블, 학생 75루블--우리는 학생 할인을 받았다.-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일단 꼭대기로 올라가란다. 종루가 있는 꼭대기를 미로처럼 돌아 올라가니 페테르부르크의 전경이 다 내려다보인다.  흠이라면 보수 중이라 나무 판대기에 가려 전경을 시원하게 볼 수 없었다는 것 이었다.

네바강의 흐름 그리고 저편에 있는 우리숙소, 넵스키대로 근처, 이삭 성당, 피의 성전, 겨울 궁전, 자야치섬의 페트로 파블로프스키 첨탑 등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둘레에 쳐져있는 나무판대기를 아쉬워하며 다시 내려와 성당 본당에 있는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그림들과 이콘과 황실용품들이 전시되어있었다.

엘리자베타 여제 다음에 즉위한 예카테리나 여제는 라스트렐리의 화려한 바로크 건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이 사원 건축을 위한 황실의 자금 지원을 1764년 중단시켰다. 사원의 공사는 거의 환성 단계에 있었고 내부 공사만을 남겨두었는데 사원의 출입구는 잠기게 되었다. 그러나 1832~1835년 니콜라이 1세의 도움으로 신고전주의 건축가인 스타솝에 의해 사원 공사가 마무리된다. 스타솝은 사원의 내부를 하얀색으로 장식해 외부의 푸른색과 대비되는 무대를 연출했고 내부는 공명 효과가 뛰어나 콘서트 홀로도 자주 이용되고 있단다. 홀 한가운데서 천장을 쳐다보며 한동안 앉아 있다보니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보인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사원이라는 이 사원은 원래 귀족의 딸들을 교육하기 위해 부속건물을 지었단다. 한 때 레닌이 지휘했다는 혁명의 본부로도 사용된 적이 있단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뒤뜰을 나오니 정원이 아름답다.

페테르부르크는 표트르대제가 도시계획을 할 때부터 곳곳에 유럽식 정원을 조성하였단다. 그래서 그런지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어 마음을 부드럽고 풍요롭게 하고 있다.

사원에서 나와 옛 학교-지금은 대학 연구소로 쓰고 있다.-를 찾아갔다.

건물앞에는 오른손을 들어 11시 방향을 가리키는 레닌동상이 서있었다.  그 주변을 인부들이 한창 보수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학교를 나와 주변 정원에서 한참을 허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노닥거리다가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비교적 물건이 풍성하다는 마켓을 찾아갔으나 그다지 흡족한 시장은 아니었다.  아직 러시아는 물자가 부족한 것일까?

저녁거리(쌀, 오이, 등)을 사서 들고 마린스키 극장의 오페라를 예매하러 넵스키 대로의 티켓박스를 찾아 걸어갔다.

모스크바 역을 건너 햇빛을 받으며 찾아가 티켓박스에서는 SOLD OUT이란다. 우리와 마린스키와는 인연이 없는 것인가?

수요일 마린스키 극장으로 직접 찾아가기로 하였다.

오늘은 비교적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8시쯤) 오는길에 와인을 한병 사서 들고 숙소 카운터에 돈을 탁탁 털어 방값을 지불하고 들어왔다.

쌀을 씻어 밥을 하고 오랜만에 담백한 밥과 고추장과 오이와 치즈로 그리고 와인으로 푸지게 저녁을 먹었다. 

내일은 푸슈킨 고로드와 예까쩨리나 궁전을 갈 예정이다.


8월 13일(화)

쓴돈: 차비-36루블, 저녁-99루블, 물,쥬스, 요구르트, 과자,오이 및-42루블

입장료-30루블, 숙박비-472루블


일찍 일어나기로 해 놓고 눈을 떠보니 8시였다.

밤새 시끄러운 차소리와 모기 때문에 약간 잠을 설쳤다.

우리 방의 서양아이들은 침낭속에서 자면서 창문을 열어 놓는다.

날씨가 덥기 때문인지, 아니면 와인을 마셨기 때문인지 나도 땀이 뻘뻘난다.

자다가 말고 벌떡 일어나 모기약을 뿌렸다. 그러다 보니 늦잠을 잔 것이다.

일어나자 마자 머리를 감고 9시쯤 허진주를 깨워 아침을 먹으러 갔다. 아침은 여전히 똑같다. 우리는 먹성좋게 주는 대로 싹싹 먹어치웠다. 아침을 먹는 도중 노르웨이 여성과 잠시 러시아와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10시쯤 숙소를 나와 지하철 1호선 푸쉬킨 스카야역에서 내려 기차를 탔다. 기차표 파는 곳을 몰라 우왕 좌왕하다 1시간 정도를 소모해 버렸다. 뿌쉬킨 고로드 가는 기차역 매표소는 기차역 뒤편 새로 지은 듯한 깨끗한 매표소였다. 왕복 18루블로 저렴했는데 우리는 오늘에서야 매표소 앞에 써있는 시간표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 것은 각 매표소들의 휴식시간을 써 놓은 것이었다. 그 나라의 글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눈칫밥으로 무엇이든 해결해야 하는데 그 암호 같은 것을 알아차린 것에 대한 희열이 꽤 크다.

어쩐지 어떤 매표소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고 어떤 매표소 앞에는 아무도 서있지 않았었다. 우리는 줄이 짧다는 이유로 멋모르고 서있다가 표를 안판다고 해서 낭패를 보았었다.

표를 산 뒤 부지런히 기차를 타러갔다. 그 때가 11시 40분경이었는데 기차는 12시에 출발한단다.

역내에서 탄산가스가 가득 든 물을 할 수 없이 샀다.

역내에는 10대 후반인 듯한 남,녀 아이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닭 벼슬모양의 머리를 하는 등 티는 모양새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흥겨움에 사진을 찍으려고 하다가 포기했다.

드디어 기차에 탑승, 자리에 앉자마자 동양인인 듯한 여자가 와서 이름을 적어달란다. 몇마디 해보니 반갑게도 부랴트족이었다. 이루크츠크 목조가옥 박물관에서 알게 된 우리와 너무도 비슷한 풍속을 많이 가진 부랴트족. 반가운 마음에 그녀와 허샘이 함께 앉아 있는 사진을 찍었다. 생긴 모습도 우리와 많이 비슷했다.

기차는 천천히 달렸다. 자주 역에서 쉬었고 쉴 때마다 사람들이 꾸역 꾸역 타서 만원이었다.

30분만에 비테브스키역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브랴트 여성의 도움으로 817번 승합버스에 타서 예까쩨린 궁정으로 갈 수 있었다. 궁전은 화요일이 쉬는 날이었다.

어제 일정을 변경하면서 그 사실을 깜박한 것이다.

할 수 없이 정원만이라도 보기로 하였다. 알렉산더 궁전 앞의 숲에서 거닐다가 벤취에 앉아 점심을 먹고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며 한잠 잤다.  공원엔 할머니들이 벤취하나씩을 차지하고 독서를 하고 있었다.

다시 걸어 알렉산더 공원쪽으로 갔다가 예카데린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공원은 아름다웠다. 서구식의 정원 구성과 -곳곳에 그리스식 조각과 잘 손질한 나무들이 보인다.-넓은 호수, 야생화가 있는 넓은 잔디밭. 곳곳의 터키목욕탕. 피라미드, 무너진 탑. 그리고 해군 첨탑 등. 궁궐 내부는 보지 못했지만 정원만으로도 최고의 호화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문득 일부 황족들이 누렸을 이 호사로움 때문에 고통받을 민중들이 생각났다.

우리가 왔던 기찻길도 19세기 말에 이 곳에 사는 왕실 가족들을 페테르부르크에서 실어나르기 위해 만들었단다.

정원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시며 서구 영화속에나 나올 듯한 풍경을 감상해 본다.

다시 걸어서 뿌쉬킨 동상을 지나 그의 다차로 갔다.

가는 길은 연속해서 아름다운 정원이었고 이 뿌쉬킨 고로드의 전역이 모두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우리가 뿌쉬킨 동상에 갔을 때 동상앞에는 몇 개의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사진을 찍고 간 박물관, 즉 그의 다차엔 입장 시간이 16시 30분까지여서 우리는 두시간이나 늦어버렸다.

오늘은 내부 입장은 안 되는 날인가 보다.

그냥 빙 둘러보는 데 주변엔 아파트들이 있었다. 피아노 소리와 전화벨소리가 들린다. 정갈한 사람사는 동네다.

푸쉬킨 뮤지엄은 깨끗하게 단장했고 아담했다.

뮤지엄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317번 승합버스를 탔다.

버스는 동네를 돌아 고맙게도 우리가 못 가본 곳을 보여주었다.

뿌쉬킨 고로드 전체는 참 아름다운 정원 마을이었다.

다시 돌아온 비테브스키역도 아까는 허겁지겁 버스를 타느라 몰랐는데 주변이 녹음이 우거지고 역사 자체도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시인이 학습한 마을다웠다.

역에서 샤우르마를 먹었다. 배가 부르지만 저녁을 먹어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먹었는데 야채가 많고 소스가 담백해서 괜찮았다. 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승강장은 지하도를 건너 있었다.

기차를 타는 승강장에 사람이 많아 걱정했는데 막상 기차를 타니 자리는 넉넉했다.

차창밖으로 다챠가 딸린 작은 집들이 보인다. 졸다가 깨니 어느새 뿌쉬킨 스카야역이다.

지하철을 타고 4정류장 가니 레니나역이었다.

역 도매 할인점에 갔다. -지나가다가 큰 상점으로 눈여겨 본 것이다.-여지껏 본 러시아의 어떤 시장보다 물건이 풍성하고 값이 엄청 쌌다.  대충 물건 값을 비교해보고 필요한 물,쥬스, 요구르트,오이 등을 샀다. 오늘도 숙소로 오니 10시가 가까워 온다.

숙소엔 일본 여성이 한명 새로 들어왔다.

서양아이들은 12시 30분이 넘은 시간에도 들어올 기미가 안 보인다.

일주일의 휴가를 받아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와 뻬째르를 보러 왔다는 일본 여성에게서 여행에 대한 열망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