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0일(일)맑음
꽉찬 3일의 시간을 히바에서 보내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밤마다 테라스에 올라가 달을 쳐다보는 낭만이 깃든 히바.
오늘 아침에는 테라스에서 일출을 보는 낭만을 즐겼다.



태라스 일출을 즐긴 우리는
히바의 마지막 아침을 거닐어 보기로 하였다.























아침 산책은 동문까지. 동문은 문 자체의 규모가 네문 중
가장 큰 거 같았다.
히바의 이찬칼라 동문 중 하나인 팔반 다르보자(Palvan Darvoza) 근처에는 역사적으로 노예 시장이 존재했었다.
이 문은 종종 '노예의 문'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19세기 후반까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중요한 노예 거래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주로 페르시아인과 러시아인이 거래되었으며, 탈출한 노예나 반란자들이 처벌받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단다.
팔반 다르보자는 키바의 중요한 출입구 중 하나로,
이 문과 인근 지역은 시장과 교역소가 있던 곳으로, 당시 번성했던 상업 활동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지금도 많은 상점들이 있었다.
이 동문을 끝으로 우리는 아침 산책을 마무리 하였다.
오늘도 우아한 분위기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오늘도
우리는 성안을 어슬렁거리다 타슈켄트 행 밤 비행기를 탈 것이다.








어제 미처 다 못 본 토시 호블리 궁전 가는 길에..



토시 호블리 궁전. 여전히 사람들이 많다.
그저께 산 통합권으로 입장 가능. 이틀간(48시간 유효함이 맞는 것 같다.)


작은 공연이 있었고 사람들은
음악에 맞추어 흥겹게 춤을 추었다.







토시 호블리 궁전은 입구가 두군데가 있었다
이 곳에서 나와 다른 입구로 가는 도중 작은 공예품 시장에 들러 색감이 알록 달록한 머플러 하나를 샀다.



그리고 다시 들어간 또 다른 입구의 토시 호블리 궁전.







이 리셉션 홀앞에는 유르트 한 채가 있었다.
타일 장식의 세밀함이 여기서도 느껴진다.
토시 호블리를 나와 우리가 간 곳은
이 이찬칼라에서 가장 높은 미나렷
호자 미나렛을 갔다.
그 옆의 모스크는 작지만 미나렛은 높아
이 미나렛 꼭대기에 올라가는 데 100,000숨(우리돈11,000원)을 내야한다.
가파른 좁은 계단을 네발로 기어 올라가는 극기 훈련이다.









비싼 돈을 주고 힘들게 올라갔는데 가성비는 글쎄.
성벽을 걷거나 숙소 테라스에서 전경을 보는 것 만으로
충분 할 것 같았다.
오늘의 일정은 여기에서 마무리
성밖을 나가 점심을 먹으려하다가
귀찮아서 성안 중 다소 귀퉁이에 있는
술탄 레스토랑을 들어갔다.
깨끗하고 한산하고 친절했으나
음식량과 맛은 성밖이 훨 낫다.
가격도 두배로 비싸고...
조금 발걸음을 옮겨 성밖에서 식사하는 것이 옳은 듯.


이 집에서 그나마 맛있었던 것은 이 호박 스프였다.
신생 레스토랑인데 종더 맛과 양에 노력을 기울여야할 듯



아침에 숙소에 늦은 체크아웃을 요청해
15불을 더내고 방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들어와 뒹굴거리며 쉬니 좋다.
오후 다섯시
우리는 히바를 한바퀴 더 둘러보기로 하고 남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남문 성벽 걷기. 두번의 성벽 걷기가 지키는 사람이 없어 무료로 올라갔었는데 지금은 입장료 (1인당 20,000숨)를 내고 올라간다.
히바. 너무 좋은데 입장료가 과하다.
성벽에서 돌아와 곧장 짐을 들고 나와
우루겐치 공항으로 가는 데
얀덱스 택시가 잘 잡혔다.
이찬칼라에서 우루겐치 공항까지 가는데
50여분 소요 택시비 79,000숨.
혹자는 100,000숨에서 150.000숨이라고 했건만
얀덱스 택시가 많이 쌌다.
히바는 얀덱스가 안된다 하지만
이제는 변한 듯.

택시안에서 찍은 거라 희미하지만
잘란 웃단 멩구 베르디의 동상
잘랄 웃딘 멩구베르디(Jalal al-Din Menguberdi, 1199~1231)는 호라즘 제국의 마지막 술탄으로, 그의 통치는 몽골 제국과의 갈등과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그는 몽골의 침략에 맞서 용맹하게 싸웠으며, 특히 카불 근처에서 몽골군을 격파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몽골군의 강력한 압박과 내부 정세의 혼란으로 인해 결국 호라즘 제국은 붕괴했단다.
칭기즈 칸은 인더스 강에서 잘랄 웃딘의 용맹을 보고 감탄하며 그를 더 이상 추격하지 말라고 명령한 일화가 유명하다. 이후 그는 인도로 도피해 힘을 모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이란과 아나톨리아 등지에서 세력을 재건하려 했으나 주변 제국과의 갈등과 몽골군의 추격으로 인해 결국 1231년 디야르바크르 근처에서 쿠르드족에 의해 암살당했단다.
그는 아직도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떠받들에 지고 있단다.
우리 기사도 그를 존경한다고 했고.


택시를 타고 공항가는 길은 내내 트리처럼 화려하게 장식된 도로를 달렸다.
마치 우리를 환송하는 것 같았다.
비행기는 20여분 연착해서 이륙하였다.
타슈켄트 도착해서도 짐찾는데 한참이나 걸렸고.
12시가 넘어 아파트에 도착한 우리는
늦은 체크인 비용으로 10불을 지불하여야했다.
마지막 숙소인 우리의 아파트는 엄청 넓고
현대적인 아파트였다.
무사히 들어왔으니 삼일 쾌적하게 지내다 가면 될 듯.
'중앙아시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하지라티 이맘 모스크 등) (6) | 2024.10.22 |
---|---|
우즈베키스탄 돌아온 타슈켄트 (9) | 2024.10.22 |
우즈베키스탄 토성의 도시 히바2 (4) | 2024.10.20 |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 히바로! (3) | 2024.10.18 |
우즈베키스탄,종교.학문.문화.예술의 도시 부하라 2 (1) | 2024.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