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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여행

우즈베키스탄 돌아온 타슈켄트

2024년 10월 21일(월) 맑음

다시 돌아온 타슈켄트.
이번의 숙소는 좀더 현대적이고 번화한 아파트 촌이다.
방두개와 너른 거실과 주방과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
세탁기도 있어 빨래하기도 좋고.
이 아파트엔 바닥 난방이 들어와 더욱 좋다.

어제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오늘 아침거리가 없었다.
아침 산책겸 먹거리를 사러 나갔는데
집 근처에 마트가있어 가봤더니 한국라면과 한국 음식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라면과 김치도 득하고.
오랫만에 라면에 김치를 먹으니 느글거렸던 속이 풀리는 듯 하다.



중앙아시아 음식 다 비슷비슷하고
음식의 종류도 단조로운 듯

많은 나라를 여행해도
음식 앓이를 안했던 내가
음식앓이를 한다.
물론 잘먹고 다니긴 하지만.

주인장이 열쇠 고친다 어쩐다하는
핑계로 오전 내내
집에 있게되었다. 덕분에 쉬고

12시 쯤 오늘의 일정
나보이 문학관을 갔다.
우리집에서 걸어서 가능했다.

나보이 문학관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위치한 문화적 명소로, 우즈베키스탄 문학의 상징적 인물인 알리셰르 나보이를 기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알리셰르 나보이(1441-1501)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존경받는 문학가 중 한 명으로, 투르크어 계열의 차가타이 언어를 사용해 문학 작품을 창작한 인물이다. 그는 우즈벡 민족 정체성을 강화한 인물로서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박물관은 1940년에 작은 문학관으로 개관한 뒤, 1967년에 나보이를 중심으로 한 문학관으로 재개관했다. 박물관에는 나보이를 포함한 여러 중앙아시아 문학가들의 흉상, 초상화, 문학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약 35,000점에 달하는 다양한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또한, 박물관은 우즈베키스탄의 문학사와 문화적 유산을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으로 평가된다고.

나보이 문학관 내에는 조명희 작가를 기리는 별도의 기념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가 여기를 찾은 이유도 조명희 기념실 때문이기도 했고.

나보이 상

나보이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사랑하는 작가.

그리고 우리가 찾은 조명희 기념실
조명희(1894-1938)는
한국의 작가이자 독립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다.
조명희는 일제강점기 동안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문학 활동을 펼쳤으며,
그의 작품들은
주로 피지배 민중의 고통과 해방 의지를 담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소설 *"낙동강"*과 *"고향"*이 있다.

조명희는 시인과 소설가로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신문사 기자와 교사로도 일하며
다양한 방면에서 민족운동을 지원했다.
1920년대에 일본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러시아에서는 고려인 사회와 연계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조명희는 1930년대 말 스탈린 정권의 숙청 과정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았고, 억울하게 희생되었단다. 오늘날 조명희는 한국과 고려인 사회에서 그의 문학적 업적과 독립운동 공로를 기리며 기억되고 있다.

조명희 기념관은 또 다른 찡함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조국을 떠나 타지에서 생을 이어간 사람들의 흔적들.
이 기념관은 타슈켄트에 거주하고 있는
그의 딸의 노력으로 만들어 졌단다.
조명희 기념동상은 충북 진천에 있단다.
귀국하면 찾아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밤 그의 소설 '낙동강'을 유튜브로 찾아 들어보았다.


그리고 다음에 택시를 타고 간 곳은 초르스시장

말고기를 넣은 국수

삭류 쥬스 한잔 마셔주고

꿀. 그러나 생각보다 비쌌다.
꿀은 키르기스스탄에서 사는 것이 정답

초르스시장
초르스는  '교차로'또는 '네개의 물길이 만나는 곳'이라는 뜻이란다.
우리의 남대문 동대문 시장처람 거대하고 온갖 물건들이 다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국말 능력자를 만났다.
그는 한국을 가본적이 없단다.
이 곳 세종학당에서 배운 한국말이란다.
우와!다.
지금은 터키 이스탄불에서 한국식당에서 쉐프로 일한단다.

역시 쇼핑은 힘들고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체력 소진으로 오늘의 일정은 여기까지...
혼잡한 초르스앞에서 택시를 잡기위해 고군분투하다
결국 하나 잡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집이 좋으니 또 나갈 생각이 안난다.
오늘 저녁은 A님의 솜씨발휘로 마련.
오랫만에 개운한 한식으로 포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