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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여행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2(티무르 제국의 세상속으로...)

2024년 10월 15일(화)

오늘의 일정
아무르티무르동상-구르아무르광장-레기스탄광장
-샤히진다-비비하눔-울루그백 천문대)


어제 사마르칸드에 도착하면서부터 비가 내리더니
밤새 비가 쏟아졌단다.(나는 그것도 모르고 곯아 떨어졌었다)
아침에도 비가내리고 종일 비가 내린다. 비오는 실크로드의 도시 사마르칸드. 나름 운치있지 아니한가?

우리는 사마르칸드에 이틀만 묵을 예정이므로 사마르칸드의 모습을 어제 일부보고 오늘 거의 다를 봐야할 것 같다. 좀 부지런히 움직이기로...

사마르칸드의 숙소는 아침이 없다.
어제 검색한 집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는데 현지인들로 가득한 너른 식당 전체적으로
친절하고 맛있고 영양가 있고
좋았다.

https://maps.app.goo.gl/57nLruPfseQcFHWYA

Blinnaya · Samarkand

www.google.com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있고 영양도 풍부하고.. 만족했던 식당이었다. 현지인들도 아침 먹으러 많이 오는 듯
가까이 머문다면 추천!

다 비운 접시들

아침을 먹고 제일 가까운
아무르티무르동상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가는 길에 본 낙옆쓰는 사람들 가을이다.

우즈베키스탄 들어 오면서 계속 봐와선지 이제는 친근한 지인 같다.

이 동상을 뒤로 하고 걸어서
구르 아무르 광장(입장료 1인 40,000숨)으로 갔는데
비가 많이 쏟아지는 데도 관광객들이 너무나 많았다.
표사는 데도 한참 걸리고 들어가는 데도 한참이다.
그래도 광장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슬람 세밀화의 정수를 직면 하는 순간이었고..

구르 아미르(Gur-e-Amir) 영묘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에 위치한 유명한 묘소로, 티무르 왕조의 창시자 아미르 티무르(타메를란, Timur)와 그의 가족들이 묻혀 있는 장소다. 구르 아미르는 티무르의 묘지일 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이 묻힌 왕실 무덤으로, 이슬람 건축 예술의 중요한 유산이다.

구르 아미르 영묘는 당시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건축 양식을 결합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건물은 커다란 청록색 돔과 웅장한 포털, 그리고 정교한 타일 장식으로 꾸며져 있으며, 돔은 이슬람 건축의 상징으로서 하늘을 향한 경외심을 나타낸다. 영묘 내부는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특히 아라베스크 문양과 복잡한 모자이크 타일 작업이 돋보인다.
.구르 아미르는 단순한 무덤을 넘어서, 티무르 제국의 권위와 힘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티무르는 자신의 제국을 광범위하게 확장시키며 막강한 군주로서의 명성을 쌓았는데, 그의 영묘는 그러한 제국의 영광을 나타내는 기념비적 장소라고 한다.  또한, 그의 후손들 역시 이곳에 묻혀 있어 왕조의 지속성을 상징한단다.

구르 아미르 영묘는 이후 중앙아시아와 이슬람 세계의 여러 건축물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예를 들어, 인도의 **타지마할(Taj Mahal)**은 구르 아미르의 영향을 받아 건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단다. 두 건축물 모두 중앙아시아-이슬람 건축의 상징적인 청록색 돔과 대칭적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구르 아미르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정말 아름다움을 진하게 느낀 곳이었다.

구르 아무르에서 슬슬 걸어
레기스탄광장으로 가는 걸음이 가볍다.

중간에 아침을 파는 집에서 코코아 한잔을 마시며 쉬는데
직원이 한국말을 하면서 한국에서 일했다고 말한다.
반가워 하면서...
우즈벡에서는 함부로 한국말로 나쁜말 하면 안된다고 하더니 그런듯 아무튼 반가웠다.

그리고 도착한 레기스탄광장.(입장료 1인 65,000숨)
오늘의 하일라이트다.
여기도 관람객이 엄청 많다.


가운데가
틸라카리마드라사 (Tilya-Kori,건축기간 1616~1660)
보는 싯점에서 왼쪽이
울르그벡 마드라사(Ulugbek,건축기간:1417-1420)
오른쪽이
쉬르도르 마드라사(Sher-Dor,건축기간:1619-1936)

마드라사는 일종의 이슬람 신
학교들이다.
이 멋진 곳에서 공부를 했을 학생들을 생각하니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자와 태양의 문양이 독특한 쉬르도르 마드라사.
쉬르도르는 사자가 그려져있는 곳이라는 의미인데 입구 상단에 사자가 그려져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사자안에는 태양이 그려져 있고 태양안에는 사람의 얼굴이 있다.



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탈리카리 마드라사는 쉬르도르 마드라사를 짓고 난 후 '사자와 태양 문양'때문에
우상숭배를 금지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교리에 충실한 이슬람교도들로부터 항의가 들어와서 이들을 달래는 조건으로 정면에 철저히 이슬람 교리와 전통양식을 따르면서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탈리카리 마드라사를 지었다고 하였다.
탈리카리란 금으로 된 의미란다.

학문의 전당이었던 마드라사의 각 방들은
이제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되어 있었다.

이제 남은 마드라사, 가장 먼저 세워진 울르그백 마드라사를 본다.



울루그백 마드라사는
티무르의 손자였던 울루그벡에 의해 세워졌다.
울루그벡(Ulugbek, 1394-1449)은 중앙아시아의 학자이자 천문학자, 그리고 티무르 왕조의 제3대 통치자였다. 본명은 미르자 무함마드 타라가이 울루그벡(Mirza Muhammad Taraghay Ulugh Beg)으로, 티무르 대제(타메를란)의 손자이다. 그는 학문과 과학을 후원하고 자신의 이름을 남긴 여러 업적을 이룬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 나라로 치면 세종과 같은 인물이랄까?

울루그벡은 15세기 초, 티무르 제국의 일부를 통치했다. 그는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을 통치하면서, 특히 사마르칸드를 제국의 중심 도시로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록 정치적 통치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그는 과학과 학문을 발전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울루그벡은 위대한 천문학자로 평가받으며, 사마르칸드에 거대한 울루그벡 천문대(Ulugbek Observatory)를 세웠다. 이 천문대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천문대 중 하나였으며, 그곳에서 울루그벡과 그의 동료 학자들이 천체 관측을 했다. 그는 태양과 별의 위치, 그리고 천체의 움직임을 기록한 별목록(자이즈-이 울루그벡)을 작성하였으며,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정밀한 천문학 데이터였단다.
울루그벡은 과학과 수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그가 세운 울루그벡 마드라사는 당시 최고의 학문 기관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울루그벡은 통치자로서 정치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다.
특히 그의 아들 압둘라티프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권력을 잃게 되었고, 결국 1449년에 그의 아들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울루그백에 대한 인생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오늘 몸에 무리가 갈까봐 걷기 보다는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우즈벡은 택시비가 너무 싼데다가 셋이 다니니까 더욱 가성비가 높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샤히진다(Shah-i-Zinda)는  
유서 깊은 네크로폴리스(무덤 단지)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슬람 성지 중 하나다.
이 장소는 아름다운 타일 장식과 이슬람 건축의 정수로 유명하며, "살아있는 왕"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샤히 진다는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여러 세기에 걸쳐 확장되며 다양한 양식의 무덤들이 모여 있다.
이 단지는 주로 타일로 덮인 파란색, 청록색, 터키색의 화려한 무덤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정교한 장식은 티무르 제국 시대의
이슬람 건축 예술을 잘 보여준다.
특히 파란색 타일 모자이크와
아라베스크 무늬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그 아름다움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있다.


샤히 진다는 단순한 무덤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곳은 순례자들에게 영적인 성소로 여겨졌으며, 많은 이슬람 신자들이 이곳을 찾아 기도하고 존경을 표한다.
우리가 이 곳을 방문했을 때에도 사람들이 노래하고 기도하고 있었다.
샤히 진다는 사마르칸드의 다른 역사적 건축물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
이제 샤히진다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비비하눔으로!

비비하눔 옆 식당에서 샤슬릭 등으로 푸짐한 점심도 먹고.


너무 커서 사진 찍기 힘든 비비하눔 모스크(Bibi-Khanym Mosque)는 14세기 후반, 티무르 제국의 창시자인 티무르(타메를란)에 의해 건축되었다. 비비하눔 모스크는 그 규모와 웅장함으로 당대 가장 큰 모스크 중 하나로 평가받았으며, 티무르의 강력한 제국을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건축 후 몇 세기가 지나면서 지진과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모스크는 상당히 손상되었다. 20세기 들어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아직은 손상된 모습이 많이 보였다.

티무르 황제가 사용했다는 쿠란 받침대.


비비하눔 영묘


비비하눔 바로 앞에는 견과류를 파는 시장이 있었다.
여기에서 많은 몇몇 고려인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조만간 일하러 한국에 간다고 인사하는 우즈베키스탄사람도 있었고. 그저 반갑고 뭉클할  따름이다.
이 시장에서 호두룬 샀는데 신선하고 싸고 맛있다.

이제 마지막 여정 울루그벡 천문대로 향한다.
여기도 택시로!

울루그백 황제

**
울루그벡 천문대(Ulugbek Observatory)는 15세기 초, 사마르칸드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중세 천문대 중 하나다. 이 천문대는 티무르 왕조의 황제였던 울루그벡(Ulugbek)에 의해 1420년경에 설립되었다.
울루그벡 천문대는 당대 가장 정밀한 천문 관측 기구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특히 큰 반원형의 천문 관측 도구인 섹스턴(Sextant)이 유명합니다. 이 거대한 섹스턴은 약 40미터에 이르는 반원형 구조로, 천체의 위치를 매우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


울루그벡과 그의 동료들은 이 천문대에서 많은 중요한 천문학적 연구를 수행했다. 그들의 주요 업적 중 하나는 자리별 목록(Zij-i Sultani)이라는 별의 위치를 기록한 책이다. 이 목록에는 약 1,000개 이상의 별의 위치가 매우 정밀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현대 천문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비는 오늘 종일 내리고 있다.

저녁 7시에 매일같이 레기스탄광장에서
멋진 야경과 공연을 보여준다고 하나
비가 추적 추적내리니 갈 기분이 안생긴다.

감기로 쇠약해진 몸을 추슬릴겸
호텔로 향했다.
따듯하고 포근한 호텔이 정겹다.
아쉽지만
사마르칸드는 여기까지.
내일은 고속열차 타고 부하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