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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로...

모스크바는 아름다웠다.

 모스크바역사

  배가고픈 우리는 가판대에서 오븐으로 구워낸, 치즈와 강낭콩으로 양념을 한 커다란 감자를 먹었다. 맛이 담백하고 좋다.

 코스모스 호텔뒤 공원에서

 

 공원의 초상화를 그리는 거리의 화가

 길거리 노래방.-이곳 사람들이 엄청 좋아한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전투기 CCCP

 10박 11일 동안 함께한 시베리아 횡단열차 가족들... 이제 헤어짐의 순간이다.

 볼쇼이 극장.

 지하철안의 악사들.... 이들 때문에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지하를 걸을 수 있었다.

 붉은 광장 앞에서.. 가운데에 동전을 던지며 행운을 점친다.

 역사박물관안

 공사중인 역사 박물관 앞에서

 공사중인 역사 박물관 앞에서

 카잔성당

 붉은 광장에서.

 붉은 광장에서.

  바실성당. 이 성당은 붉은 벽돌로 건물을 쌓아올리고 각기 다른 모양의 양파형 지붕을 얹었는데 그 모양이 너무나 아름다워 마치 동화속의 집같았다. 끄레믈리와 더불어 러시아를 상징하는 집이란다.

양파 모양의 지붕은 높이와 크기가 제각각이고 모양도 다 다르며 9개의 지붕 모두가 대칭이나 선을 따르지 않았지만 묘한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였다.

이 사원은 이반대제가 ‘까잔의 승리’를 기념하여 1555년부터 5년에 걸쳐 지은 것으로 건축가 뽀스또닉과 바르마가 설계했단다.

이반대제는 완성된 사원이 너무 아름다워 다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지 못하도록 두사람의 눈을 뽑아버렸단다.

 바실성당2

 꺼지지않는 불꽃

 근위병들....


8월 3일(토)

쓴돈 : 감자요리-35루블, 지하철표-70루블(20회), 쥬스-30루블, 감자튀김-8루블, 커피-5루블,요구르트-8루블,


8시쯤 일어나 주섬 주섬 주변을 정리하고 도시락면과 감자와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10시쯤 되니까 양옆 꾸페에선 짐을 꾸리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서두르고 있다.

옆꾸페 로마네도 아주 깨끗하고 산뜻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사람들은 다들 아주 깔끔해졌다.  우리들만 꾀죄죄한 모습 그대로 인 것 같다.

11시 50분쯤. 기차는 예정보다 1시간 정도 늦게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역에 도착하였다. 역에 도착하니 벌써 가이드 김홍숙씨가 마중나와 있었다.

김홍숙씨는 러시아 생활 5년째로 음악을 전공하며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대기시켜 놓은 버스로 걸어 나가는데 한적한 시베리아 벌판만을 보며 오던 우리들은 모스크바 기차역의 엄청난 규모에 기가 딱 질렸다. 그리고 밖에 늘어선 규모가 큰 유럽식 건물에도 감탄을 하였다. 비로소 문명세계로 왔다는 느낌마저 든다.

버스는 20분쯤 달려 외곽지대에 있는 엄청난 규모의 코스모스 호텔로 우리를 데려갔다.

객실이 천개가 넘는다는 호텔. 건물부터 어마어마했다.

이곳에서도 방문제로 옥신각신하였다. 역시 방은 2인실 6개만 예약되었다. 창옥샘의 방문제로 다시 신경을 써서 나서야했다. 허교수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다들 화를 냈다. 용희씨는 일체 입을 다문 채 슬픈 얼굴만 하고 있다.

다들 성원해 준 덕분에 창옥샘이 독방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창옥샘은 많이 아프다. 안샘과 허교수가 방을 같이 쓰게되었다. 방 배정이 끝나고 다들 올라간 틈에 우리는 김홍숙씨에게 몇가지 도움을 청했다. 내일 우리가 묵을 게스트하우스에 전화해 주는 것. 그리고 주변 전철역 이름을 아는 것, 또 주변에 볼만한 것이 있나를 알아보는 것 등등....

게스트하우스에 전화하는 것은 실패하였다.

카운터에 맡긴 여권을 돌려받고 우리는 일행을 먼저 보낸다음 어떻게 보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거리로 나섰다. 지하철은 지하도 건너 바로 옆이었다.

지하철 근처 간이 매점에는 즉석 음식을을 주~욱 팔고 있었다. 배가 고픈 우리는 오븐에서 구워낸, 치즈와 강낭콩으로 양념을 한 커다란 감자를 먹었다. 맛이 담백하고 좋다.

전철은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듣던대로 지하철은 깊고(지하 100미터가 넘는다.) 에스컬레이터가 빠르게 운행되고 있었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안의 사람들은 둘이 타면 마주보고 서고, 혼자 타면 건너편 에스컬레이터 사람들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지하철을 타는 것은 금새 익숙해졌다. 처음엔 어리둥절하고 긴장하여 현지 러시아인에게 물어보았으나 나중에 현지인이 잘 못 가르쳐주어 황당해진 경험을 한 후에는 우리가 러시아 알파벳을 읽으면서 다녔다.

traval gest house는 찾기가 쉬운거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지상씨가 일러준 대로 가서 약간 헤메면서 찾았다.


▷ 찾아 가는 길 : 지하철 5호선을 나오면 대각선 건너편에 맥도널이 보이고, M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건물이 6호선 출구이다.  그 사거리를 지나 트램길도 건너 주욱 걸어가면(400미터쯤) 삼거리가 있는데 24가 써있는 레스토랑과 말보루 가세 사이길(오른쪽길)로 꺽어진다.

조금 걷다보면 오른쪽에 숲이 보이고 또 걷다보면(500미터쯤) 대로가 가로지르는데 그곳에서 왼편으로 꺽어서 걷다보면 도로옆에 24시간 콘테이너 편의점이 자그마하게 있고 또 걷다보면 아프테카(약국)라는 큰 상점이 있다. -초록색 글자.-

그 곳에서 맞은 편을 바라보면 아파트 건물같은 빌딩이 있는데, 그 건물 10층이 트래블러스 게스트 하우스다.


이 곳에서 하루치 방을 예약했는데 하루밖에 안된단다. 단체 예약객 때문에... 그냥 하루치만 예약하고 기차역으로 갔다.

모스크바에서는 전철망이 잘 되어 있어 어디든 전철로 갈 수 있었다.

레닌그라드 기차역은 야고슬라브역 대각선 건너편에 있었다.

2층 매표소에서 쉽게 페테르부르크행 기차표를 끊을 수 있었다. 기분좋게 기차역 주변을 둘러보면서 감자 고로케도 하나 사먹었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코스모스 호텔 근처로 와서 로켓포를 쏘아올리는 기념탑 주변을 돌다가 엄청난 규모의 조각과 분수가 연이어 늘어서 있는 박람회장을 돌았다. 지금은 동네 주민들의 유원지가 되었고 컴퓨터 회사의 사무실로 대부분 사용되고 있단다. 박람회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아보는 데만도 2시간 가량이 들었다.

노천 노래방, 소련제 비행기, 도끼와 낫이 있는 소련의 상징 등이 기억에 남는다.

돌아다니다보니 어느새 9시. 사람들과 저녁에 마실 쥬스를 사느라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허샘의 색 쟈크가 열려지면서 머리핀이 들어있는 지갑을 도난당했다. 액땜이라 생각하고 주위해야겠다.

밤에는 늦게까지 석별의 아쉬움을 나누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스크바강 유람을 하고 저녁을 먹고 서커스를 보았단다.  다 좋았다고...

서커스는 1시간 늦게 관람하는 바람에 50불짜리를 10불에 사서 보았단다.

공연장 밖에서 얼씬거리면 시간이 지날수록 다운되는 표를 구할 수 있단다.

우리 일행과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몹시 피곤하다.


8월 4일(일)

쓴돈 : 기차표-956루블, 아이스크림-9루블, 점심-28루블, 복숭아-43루블, 숙박비-17.1불,

      입장료-200루블,


간밤의 피로가 전혀 풀리지 않은 상태로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야만 했다.

머리를 감고 대충 짐을 꾸린다음 식당으로 갔다.

넓은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찼다. 아침은 뷔페식인데 요리의 종류도 다양하고 신선하고 맛도 좋다. 욕심껏 잔뜩 먹어두었다.

8시 30분쯤 일행과 마지막으로 호텔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니 이제 우리 둘만 달랑 남았다.

우리는 다시 방에 돌아와 잠시 쉰다음. 짐을 챙겨 우리의 트래블러스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체크인을 하고 부엌으로 가서 차도 한잔 마시며 쉬다가 11시쯤 다시 숙소로 나섰다. 숙소는 하루밖에 안된다더니 연장할 수 있단다. 다행이다.

지하철 옥토니랴드 역(1호선)에서 내려 방향을 몰라 헤메이다보니 볼쇼이 극장앞이다.

볼쇼이 극장은 여름 시즌이라 문을 닫았고 분수가 치솟는 극장앞에서 사람들은 기념사진을 찍는다. 일부사람들은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고...

볼쇼이 극장에서 건너다보니 붉은 담장과 황금빛 양파돔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를 들고 헤메이다. 우리는 결국 지하도를 건너 붉은 담장 쪽으로 오고 말았다. 오는 길의 지하도에서는 사람들이 늘어서서 현악기를 연주하는데 잘 모르지만 수준급의 연주같고 소리가 너무 좋아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발길을 돌려 붉은 광장으로 건너왔다. 광장 바로 앞 입구에선 바닥에 동판으로 동물을 새겨 놓았는데 사람들은 그 안에 서서 동전을 던지며 사진을 찍는다. 아마도 행운을 점치는 것이리라.

입구의 경찰들이 심심치 않게 사람들을 붙잡고 검문을 하고 있었다. 걸릴 것도 없는 우리는 지레 겁먹고 피한다. 걸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뻬쩨르부르크에서의 도시등록을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된다.

붉은 광장 입구로 들어오니 광장은 생각했던 것 보다 작다.

입구에 국립역사박물관이 있고 옆에 카잔성당, 그리고 광장 끝에-모스크바 강쪽-바실성당이 있었다. 그 중간에 커다란 굼백화점이 차지하고 있다.

박물관 앞에는 옛 복장을 입고 관광객과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와 사진을 찍고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박물관 매표소에서 교사증을 내밀었으나 퇴짜맞았다. 학생증만 반액 할인되어 허진주의 학생증이 진가를 발휘하였다.

박물관 안에서 아침에 헤어진 우리 일행을 만났다. 아침부터 크레믈린 및 붉은 광장 일대를 도느라 상당히 지친 표정이었다. 나도 눈꺼플이 감기고 피곤이 온몸에 스며들어 제정신이 아니었다.

박물관은 그 건물부터 작품이었다. 현관 내부는 동양적인 붉은 색채, 그러나 파스텔톤의 벽화로 천장과 벽이 우아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이 곳엔 러시아의 선사시대 유물부터 혁명전의 유물까지 전시되어 있는데 1층부터 3층까지의 각 전시실의 방들이 내부 인테리어가 다 달랐다.

1층엔 선사시대 유물-이 곳에서 우리의 청동검과 비슷한 비파형 청동검을 보았다.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들,황제, 예카테리나 여제의 초상화와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고 몇몇 성화도 인상적이었다.

2층은 건축가들과 그들의 설계도면 및 작품이 인상적이고, 3층은 특별 전시실로 러시아 정교의 종교에 관련된 물건들이 전시 중이었다. 이 곳에서도 우리는 2시간 이상을 보내야했다.

박물관에서 나오니 4시가 넘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었다.

우린 아침을 먹은 이후 박물관에서 복숭아 1개를 먹었을 뿐이었다.

굼백화점 지하로 가서 커피와 샐러드와 빵을 사서 늦은 점심을 겸한 저녁을 먹었다.

굼 백화점은 붉은 광장을 사이에 두고 크레물린과 마주보고 있었다.

크기도 크기려니와 예술적 가치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하다. 내부는 3층으로 가운데 천장이 뻥 뚫려있다.

매장엔 세계의 유명 브랜드가 진열되어 있어 이 곳 자체만 보면 러시아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다.

19세기에 세워진 이 건물은 1000개 이상의 점포를 가지고 있다. 한 때 굼은 소비에트 쇼핑의 아픔의 상징이었다. 텅빈 선반과 긴행렬, 조악한 상품들... 

그러나 오늘날 놀랄만한 변화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발생하였다. 굼은 밝고 부산한 매력적인 가게들로 가득찬 것이다. 남쪽 끝 지하에 간단한 스낵코너와 5루블을 내고 사용하는 깨끗한 화장실이 있었다.

굼에서 나와 바실 성당으로 갔다. 바실이 있는 붉은 광장은 관광객들로 바글거리고 있었다.

붉은 벽돌로 건물을 쌓아올리고 각기 다른 모양의 양파형 지붕을 얹었는데 그 모양이 너무나 아름다워 마치 동화속의 집같았다.

끄레믈리와 더불어 러시아를 상징하는 집이란다.

양파 모양의 지붕은 높이와 크기가 제각각이고 모양도 다 다르며 9개의 지붕 모두가 대칭이나 선을 따르지 않았지만 묘한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였다.

이 사원은 이반대제가 ‘까잔의 승리’를 기념하여 1555년부터 5년에 걸쳐 지은 것으로 건축가 뽀스또닉과 바르마가 설계했단다.

이반대제는 완성된 사원이 너무 아름다워 다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지 못하도록 두사람의 눈을 뽑아버렸단다.

내부는 1층과 2층으로 되어있는데 아름다운 붉은 빛의 이콘들이 가득했다. 희미한 꽃무늬 프레스코 벽화가 기억에 남는다.

사원앞에는 스웨덴의 침공으로부터 모스크바를 구한 국민적 영웅 미닌과 뽀좌르스끼의 기념상이 서 있었다. 성당곁에 로브노예 메스또라 불리는 원형의 석조로 만들어진 연단이 있는데 이는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 연단에서 황제의 포고령이 발표되고 대주교의 설교와 축복이 행해졌단다.

또한 연단 부근에 통나무로 만든 사형 집행대가 세워져 있는데 이 곳에서 짜르에 항거하며 반란을 일으킨 스첸까 라진과 뿌가초프가 처형을 당했단다.

연단에는 관광객들이 연신 동전을 던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사원옆의 그늘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바실 사원을 바라보며 한참을 쉬었다. 쉬고 있는데 피부병이 있는 커다란 검은개가 내 옆에 앉아 너무도 평화롭게 눕는다.

저녁 8시 카잔성당에 미사가 있다는 가이드북의 안내대로 카잔 성당으로 갔다. 그러나 미사는 없고 문은 잠겨 있었다. 이 카잔 성당도 7시까지만 하는 관람용인가 보다.

레닌박물관 앞에서 거리를 조망해보다 숙소로 돌아오니 9시 30분이 넘어버렸다.

대충 씻고 피곤한 몸을 눕힌다.

우리방의 서양 남녀는 아침부터 자더니 하루종일 자는가보다. 여자는 감기가 심하게 걸렸다.

이 숙소는 모든게 편리하지만 침대가 너무 삐걱거린다.

(한 콤파트 먼트에 4인실방, 2인실방, 그리고 욕실과 화장실이 있다. 휴게실도 있고 부엌도 있다.)

잠을 청해본다.


8월 5일(월)

쓴돈: 입장료-200루블, 빵-10루블, 팜플렛-50루블, 가방보관료-60루블, 아이스크림-6루블,

박시시-4루블, 이콘-30루블, 점심-125루블(빵, 생선고로케, 감자, 커피, 샐러드, 맥주)

과일,오이-57루블  크레믈린 통합입장료-200루블(할인없음)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일어났다. 그러나 어제보다는 훨 낫다. 부엌으로 내려가 라면을 끓여먹고... 아 햇반도 있었다.

10시가 많이 넘어서야 숙소를 나섰다. 우리방의 서양아이들은 아직도 잔다. 지하철을 타고 1호선 옥토니리야드 역에서 내려 다시 크레믈린으로 갔다. 크레믈린 앞의 알렉산드로프스키 정원으로 걸어다니다보니 입구에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무명용사를 위로하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었다. 마침 교대식이 있었는데, 3명씩 교대로 꼼짝않고 지키는 병사들, 그들의 진지한 자세가 나에겐 코믹하다.

입구 이곳 저곳에서 검문을 하는 군인들. 죄도 없는데 검문을 당할 까 불안하다.

크레믈린으로 들어가려면 큰 가방은 맡겨야 하는데 맡기는 장소를 우왕 좌왕하였다.

이리 저리 헤메이다 쿠타피아타워 다리밑에 있는 짐 보관소를 찾았는데 짐 하나를 맡기는데 60루블이다. 우리는 꾀를 써 짐을 하나로 줄였으나 들켜 두 개값을 낼 수 밖에 없었다.

두 개 합쳐도 무게는 얼마되지 않는데..... 브로비츠카야 타워로 들어가서 200루블짜리-6개를 볼 수 있는-표를 사서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1번 입구 옆에 있는 ARMORY는 진기한 보석류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따로 비싼 입장료를 받는다. 그 곳은 우리가 터키의 톱카피궁에서 보았기 때문에 생략하고 성당들이 있는 광장으로 갔다. 처음에 간 곳은 대천사 성당인데 마침 성가가 울려퍼지고 있어 분위기를 뛰우고 있었다.

성당안에는 수많은 석관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두 번 째 간 곳은 수태예고 성당인데 바닥의 작은 대리석이 예뻤고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 모스크바 이콘스쿨의 작품들이 부속건물에 전시되어 있었다.  세 번째 성당은 황제와 황후의 대관식이 있는 Cathedral of Assumption이다. 그래서 그런지 큰 홀이 있었고 오랜시간 수집해 온 걸작 이콘들이 가득했다.

네 번째 성당은 Deposion인데 가장 러시아적인 느낌이 강했다. 외관도 하나의 양파돔인데다가 안에도 십자가 및 목조 성화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어 그리이스 정교와 확실하게 비교되었다.

네군데의 성당을 보고 광장에 앉아 맞은편 건물을 바라보니 벨타워가 보인다. 이 크레믈린에서 가장 높다는 81미터에 달하는 벨타워. 잠시 쉬면서 그것에 얽힌 이야기를 읽어보았다.

16세기초에 지어진 이 탑은 16세기 중간에 다시 지어졌다는데 둘 다 이탈리아 건축가에 의해서 지어졌단다.

그 후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다시 복구되고 나중에는 부속건물까지 지어져 오늘날의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다.

벨타워 옆에는 황제의 대포-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는-가 있었다. 황제의 대포를 지나 각종 종교의식용 집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궁전건물을 둘러보았다.

크레믈린 기행의 마지막은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그렇지만 조각난 종을 보는 것이었다.

만져보고 사진을 찍은 후 크레믈린을 나오니 5시다.

오늘도 어느새 점심을 거르게 된 것이다.

굼백화점으로 가는 길의 발걸음이 무겁다. 굼 지하로 가서 배고픈 김에 이것 저것 잔뜩 고르고 정신없이 먹기 시작하였다. 맥주도 한잔하고.. . 굼지하 스낵코너는 고르기만하면 되니까 러시아말이 필요없다.

배도 채우고 화장실도 가서 볼일도 보고나니 다시 기운이 솟는다.

밖으로 나와 붉은 광장과 크레믈린을 보니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답다. 오기 전에 생각했던 크레믈린은 폐쇄된 잿빛공간이었는데 와서 본 크레믈린은 화사하고도 아름다운 궁전이었다. 그리고 각국의 관광객이 득시글거리는 속세였다.

크레믈린을 뒤로하고 우리는 모스크바강을 건너갔다. 다리에서 본 크레믈린의 붉은 성벽과 바실성당의 동화같은 아름다움은 넋을 잃게 하였다.

다리를 건너 옛 성당들이 스크랩처럼 펼쳐져 있다는 거리(오르딘카)로 갔다. 거리의 꽃가게, 박스음식점, 노천카페, 등이 정겹다. 맥도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고 곳곳에 있는 성당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경건한 마음으로 성당엘 드나든다.

활발하게 미사를 드리고 있는 성당. 너무 낡아서 폐쇄된 성당. 등과 나지막한 예쁜 건물들 사이를 걷는 기분이 괜찮다.

거리를 다시 돌아와 크레믈린앞의 알렉산드로비치 정원으로 가서 다리를 쉬며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말을 타고 순찰을 도는 남,녀 경찰이 보였다. 이들은 휴지도 줍고 지나는 사람들 검문도 하는데 그 사이 말들이 쉬도하고 응가도 하여 웃음이 나오게 한다.

그들은 상당히 진지했지만...

아르바트 거리를 갈려다 피곤하여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도 9시가 넘었다.

씻고 일기도 미룬 채 잠을 청하다.


8월 6일(화)

쓴돈 : 입장료-160루블,30루블, 커피-10루블, 저녁-190루블, 숙박비-545루블,


8시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부엌에 내려가 라면을 끓이고 햄버거를 데우고 자몽과 오이와 토마토로 배불리 아침을 먹었다. 카운터에서 뻬쩨르부르크 숙박을 예약하고 숙소를 나서니 10시다.

레닌묘로 갔다. 가는 길에 마린극장도 보고 칼 막스 동상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우연히 칼 막스 동상 뒤편길로 가니 굼백화점 뒤편이었다. 앙증맞은 카잔성당도 바로 앞에 있었고..

붉은 광장은 레닌묘 관람 때문에 바리케이트가 쳐져있어 돌아가야만 하였다. 레닌묘를 관람하려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 우리도 그 행렬에 끼었다. 그러나 카메라 소지 때문에 제지당하였다. 할 수 없이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있고 허샘만 들여보냈다. 난 베트남에서 호치민 묘를 보았기 때문에......

레닌 묘를 관람하기 위해 오늘 굼을 2번이나 왕복해야만 하였다. 왕복하자니 왜 그리 긴지....  레닌묘 뒤의 크레믈린 성벽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묻혀있는데 그 표시가 있단다.

그러나 난 보지 못하였다.

레닌묘를 뒤로하고 우리가 간 곳은 지하철 1호선 스포트나야역인데 그 곳엔 노보데비치 수도원이 있었다. 역에서 내리자 마자 숲이 우거지고 분위기가 침착한게 동네가 마음에 든다.

역 박스점에서 슈마르바라는 케밥과 뜨거운 커피로 점심을 대신하고 수도원으로 걸어가니 낡은 담장과 둥글고 네모난 왕관같은 망루가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가보니 매주 화요일에 문을 닫고 박물관은 매달 첫 번째 월요일에 문을 닫는단다.

아쉬움에 어떻게 해보고 싶지만 도리가 없다. 분위기 짱인 젊은 수도사와 낡은 수도복과 가방을 든 나이든 수도사가 마치 유럽의 중세를 연상케하였다.

할 수 없이 벽을 따라 죽 걷다가 묘지에 들어갔다. 공원묘지엔 유명한 사람들도 묻혀있다는데 알 도리가 없다. 다양한 묘석들이 재미있다.

우거진 나무와 낡은 벤치, 수많은 무덤들을 보며 우리네 도깨비 나오는 공동묘지가 아니라 분위기 있는 산책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네는 전체적으로 마음에 든다.

다시 지하철을 탄 우리는 크로포친스카야에서 내려 푸쉬킨의 Fine Arts Museum으로 갔다. 박물관 앞은 사람들이 많았다. 입장료는 학생만 할인이 되었고(60루블), 일반인은 160루블이었다.

이집트에 관한 전시를 빼곤 회화가 주종이었다.

1층에는 15~16세기 이탈리아,독일,스페인 그림이 있었고 2층엔 모네,르노와르,고갱,고호,마네,피카소,마티스,세잔느 등 유명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붓의 터치와 물감의 농도가 전해지면서 화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진품 그림들을 보면서 미술관이 거의 문닫을 때까지 있었던 나는 모든 것을 잊고 행복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진품을 선호하는 그 기분을 알겠다.

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볼만했다. 전시물들의 디스플레이도 수준급이었고...

들어가기전에 가방을 지하에 맡기고 들어가야만 했다.

거의 마감시간인 7시가 되어서야 박물관을 나온 우리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아르바트거리로 갔다. 지하철로 푸쉬킨박물관에서 한 정류장인 아르바트 거리는 사람들이 세련되어 보이고 바빠보였다.

차량통행이 금지된 구 아르바트 거리는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주욱 늘어서 있고 카페들이 늘어서 있었다.

군데 군데 거리의 악사들의 공연과 연극판들. 분명 이 곳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본 러시아가 아니었다. 거의 유럽화된 새로운 얼굴의 러시아였다. 물가도 필요 이상으로 비싼...

카페에 들어가 맥주와 샤슬릭으로 분위기를 냈다.

모스크바에 오니 밤 낮의 기온차가 커졌다. 거리엔 벌써 털스웨터와 가죽자켙이 나돌아 다니고 있었다.  러시아의 겨울은 9월부터라더니....

오늘은 귀가시간이 더 늦었다. 거의 10시 다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는데 다행히 완전히 컴컴해지지는 않았다.

우리 방의 서양아이들은 벌써 돌아와 침대에서 쉬고 있었다. 그들과 우리의 활동 시간이 달라 며칠 째 방을 같이 쓰는 데도 말한마디 붙여 볼 수 없었다.

대충 일기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