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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로...

이르쿠츠크를 향해 가는길...

 하바로프스키 자연사 박물관에서 찍은 사냥꾼의 모습

 자연사 박물관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달리던 중 역(울란우데역)에 서자 사람들은 먹을 것을 사려고 내리고 매점에선 사람들이 물건을 사려고 모여서 있다.

 기차안에서 본 2차세계대전 전사자의 기념탑

 기차안에서 본 빽빽한 침엽수림.

 기차안의 물끓이는 곳. 뜨거운 물을 이곳에서 보온병에 받아 쓸 수 있었다.

 기차안에서 본 다차(채소밭)를 가진 가정집들-러시아는 각 가정마다 이 다차에서 농사를 지어 먹거리를 해결하고 있었다.

 기차안 꾸페의 모습

 기차안에서 처음 대면한 바이칼 호수. 기차가 한참을 달려도 호수였다.

 

7월 27일(토)

쓴돈: 시트값-27루블, 오이 및-20루블, 입장료-17루블, 사진촬영료-31.5루블

오늘은 횡단열차를 드디어 시작하는 날이다.

열차를 타기전의 일정이 널럴하다. 8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나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여전히 한식으로 된 아침 식사가 별로다.

식사 후 숙소에서 뒹글거리다가 근처의 향토 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은 흥이로웠다.

시베리아의 동물들-순록의 종류도 꽤 많고 크기가 엄청 큰 것들도 있다.-, 시베리아 사람들의 민예품들이 관심을 끈다. 커다란 물고기 피부를 꿰매 만든 옷자기, 화석 등이 흥미로웠다. 뜻밖에도 ‘국제교사증’으로 입장료를 할인받았다. (84루블→17루블)

기분좋은 김에 사진 촬영료를 내고 사진도 찍었다.

14시 30분이 되어서 호텔을 출발하여 기차역으로 향했다.

우리 일행 12명 중, 허샘과 나 2명만 전혀 다른 기차칸으로 배정되었다.

걱정을 해 주는 일행들. 그러나 우린.....

‘문에릭’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북마크 하나를 주었다.

여행사 직원들은 우리의 무거운 짐을 다 날라다 준다. 아직 남을 부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몸둘바를 모르겠다.

9호차(317 3A) 26번 침대. 4인실 꾸페.   이것이 50시간 넘게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우리의 꾸페안에는 27살의 러시아 여인 스베따와 그의 10살된 착한 아들 보봐가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 러시아어 회화책을 뒤져가며 서로의 신상에 대한 통성명을 하였다.

조금 있으니까 또 다른 26살의 보바가 놀러와 함께 사진도 찍었다.

기차는 듬성 듬성한 나무숲과 야생화가 피워있는 초원을 계속해서 지나고 있다. 이따금씩 나무로 된 오두막들이 등장하는 걸 빼곤 비숫한 풍광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7월 28일(일)

쓴돈: 맥주-25루블, 오이-15루블, 우유-9루블, 만두-11루블


오랫동안 잠이 들지 못하다가 간신히 잠이 들 수 있었다.

이 곳은 10시가 넘어서야 어둑해진다. 백야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제 오후 7시가 넘어서야 작은 장이 선 역에 도착해 오이와 토마토를 샀었다. 그 때 이산가족 만난 것처럼 다른 칸에 탄 우리 일행을 만났었다.

그다지 먹은 것도 없었는데 하루종일 배고픈 줄 모르겠다. 왤까? 그러다가 12시쯤 갑자기 더워지고 땀이 나기 시작해 허겁지겁 오이와 빵을 먹으니 더위가 멎었었다.


아침이 밝아오기 시작하면서도 한참이나 침대에 누워있다 10시가 훨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창에는 여전히 타이가라는 숲이 연이어 나타난다.

내 눈앞에 펼쳐진 타이가는 짙은 숲이 아니라 가느다란 나무품이다. 이 곳에 각종 동식물이 살고 있다는데..... 2미터가 넘는 사슴을 포함하여....  철로변에는 꽤 무성한 고사리류의 식물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지나오면서 보니 동토의 시베리아라는 말이 느껴진다. 농작물이 거의 없는 숲들...

날씨는 맑았다. 햇살이 객실 내부 깊숙이 침투해 들어온다.

하루종일 장이 선 역을 보지 못하다가 오후 5시가 넘어서 도착한 역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샀다. (mogocha역)

줄기가 흰 자작나무는 살랑거리는 잎사귀를 가졌으나 TSR을 타고 오면서 본 자작나무는 그다지 단정하거나 건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자작나무와 쭉 뻗은 전나무류가 연이어 나타나고 간혹 호수와 내를 낀 작은 마을. 그리고

각각의 가옥에서는 작은 감자밭을 일구고 있었다.

오늘도 완전히 어둑해진 것은 11시가 훨씬 넘어서였다.


여행사에서 준 기차 시각표 보는 법을 드디어 알아냈다.





♥모스크바가 집이라는 러시아 소년 보바

*착하고 엄마말 잘 듣는 명랑한 아이이다.

*언제나 웃통을 벗고 생활하며 미니카와 작은 인형으로 잘 논다.

*엄마와 사이가 좋다. 10살이다.

*무지하게 잘 먹는 데도 말랐다.

*엄마의 나이 27살. 보바의 나이 10살. 함께 기차객실을 쓰는 3일동안 짜증내는 것을 못 보았다.


7월 29일(월)

쓴돈: 쏘세지-41루블, 아이스크림-5루블, 요구르트-18루블, 맥주-18루블


오늘은 11시가 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강한 햇살이 객실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이 시간이 사람들이 일어나는 시간인가보다. 화장실이 만원이다.

어제 산 우유와 선식으로 아침을 먹는다.

기차는 Mogzon역에서 12시쯤 15분 정차하였다. 이곳에서 쏘세지와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잠시 땅에 내려 걸어본다.

차창 밖의 풍광은 호수를 낀 마을을 지나다가 맑은 시내가 번갈아 나타나고 들꽃이 가득한 초원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모그존을 지나면서 부터는 자작나무도 조금씩 싱싱해져갔다.

시베리아 철로변에 보이는 마을은 모두가 목조건물들이다.  전세계의 25퍼센트에 해당하는 목조 보유지역답다.

모그존을 지난 2시간 후 꽤 큰 마을을 보유한 Hilok에서 기차는 잠시 섰다.

TRS를 타면서 느낀 점은 시베리아는 농업지역이라기보다는 엄청난 천연자원을 보유한 곳 답게 대부분 공업도시라는 것이다.  농토는 어쩌다보이는 작은 감자밭이외에는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기차는 오후 6시 30분쯤 울란우데에 들어섰는데 5층 건물도 보이고 역사가 번화하다. 이 곳이 중국과 몽골열차의 환승역이란다.

상점도 꽤 크고 물건도 많다. 맥주와 쏘세지와 요구르트를 사다.

오후 9시 15분쯤 기차가 Musovaia를 지나면서 바이칼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바다와 같은 바이칼 호수. 순간 객실이 술렁이면서 모두 창가에 붙어섰다.

바이칼 주변을 따라오는 자작나무는 훨씬 굵고 건강해 보였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어서야 우루크츠크에 도착하였다.

30분전에 차장이 와서 내려야한다고 알려주고 시트를 거두어간다.

우르크츠크에 들어서니 고층빌딩도 많이 보이고 불빛도 번화해보였다.

잠시 역앞에서 우리를 마중나온 가이드를 만나지 못해 우왕좌왕하니 경찰이 다가와 여권을 보잔다. 다행히 곧 가이드를 만나 경찰에게 여권을 보여주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왔다. 숙소는 기차역에서 한참을 와야했다. 건물의 6층이었고 이름은 sun hotel이었다.

방문제로 한참을 옥신각신하다 또 우리는 3인이 간이침대 하나를 더 놓고 자야만했다. 간이 침대는 또 푹 꺼지는 상태고...

밤이 늦은지라 어쨌든 그냥 자기로 하였다.

밀린 빨래를 하고, 오랜만에 샤워를 하고 머리도 감고....

인간다운 모습으로 잠이든다.


7월 30일(화)

쓴돈: 버스비-20불, CD-20불, 입장료,점심값,배삯-700루블, 호두-20루블, 오이-4루블,

잣-14루블, 빵-24루블, 화장실-3루블, 복숭아-50루블,요구르트-18루블,땅콩-7루블,토마토-20루블, 과자-25루블, 사과-12루블,환타-20루블,도시락면-24루블(2개). 맥주,과자-32루블,

촛불-20루블


전날 빨래 및 샤워를 하느라 늦게까지 잠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8시쯤 일어났다. 침대가 더블로 함께 쓰다보니 약간은 신경이 쓰인다.

여행내내 숙소문제가 삐거덕거린다. 남,녀가 홀수로 왔기 때문이다.

8시 30분. 식사를 하러 본관 2층으로 갔다. 식사는 서양식이었고 대체로 푸짐한 편이었다. 나중에 커피까지 대접받는...

아침을 먹으면서 안 사실은 황당하게도 이루크츠크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오늘 단 하루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틀로 알고 있었던 우리들로서는 황당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로 의논하다가 버스를 대절하여 돌아다니기로 하였다.

(버스비-1인 20불)

우리 호텔은 시베리아 엑스포센터에 이웃한 이르쿠츠크 신거주지역 외곽의 ‘sun'호텔이다. 어제 밤 한글학교 교사인 아내를 따라 이 곳에 와서 8년째 살고 있다는 유학생 정정길씨가 우리를 맞아 주었고 오늘 그가 우리의 가이드로 나선 것이다.

버스는 잘 닦여진 도로와 길 양옆에 싱싱하게 늘어서 있는 소나무와 자작나무를 선보이면서 유쾌하게 달리기 시작하였다.

차안에서 정정길씨는 꽤 해박하면서도 명료하게 설명을 잘해준다.

그 가 해준 이야기 중 재미있었던 것 하나.

이루쿠츠크 바로 전 정거장인 슬루지안카는 북한의 김정일이 한달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다니면서 바이칼 호수를 구경하기위해 내린 곳이란다. 그 김정일이 다니는 동안 거의 연착하지 않던 횡단열차가 하루씩 못다니고 연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후 러시아 사람들이 김정일을 소비자 고발센터에 고소했다는 이야기.

버스를 타고 우리가 처음 들른 곳은 부랴치야 목조건물 박물관이었다.

앙가라 강이 보이는 목조건물 마을은 풍기는 향기부터 달랐다.

날씨는 적당히 어둡고 적당히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거의 나무로 된 건물들은 대체로 우리 농촌과 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이들의 샤먼 풍습이나 생활 전통들이 비슷한 점이 많단다. 예를들어 아이를 낳으면 아이의 이름을 천하게 지어 액땜을 한다던가. 탯줄을 앞마당에 묻은 우리 풍습과 비슷하게 이들은 문지방에 묻는단다.

3월 눈이 녹을 무렵 축제를 매년한다는 이 마을은 앙가라강을 낀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부랴치아 마을 방문을 마친 우리는 바이칼의 생태 박물관을 보러갔다. 그러나 박물관은 사람들이 가득차 있어서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는 우리는 먼저 바이칼 유람선을 타러갔다.

맥주와 오물이라는 바이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훈제 생선을 사들고 유람선에 올랐다.

배안에서 벌어진 즉석 오물파티는 정정길씨가 고른 신선한 오물에 맥주, 그리고 감자 고로케로 즐겁고도 유쾌한 시간이었다.

‘오물’을 먹고 난 후 선상갑판에서 사진도 찍고 물안개가 가득핀 바이칼을 감상하면서 바이칼의 물을 그대로 두레박에 떠서 마시기도 하였다.

그 넓은 바이칼의 물은 너무나 깨끗하고 너무나 맑았다.

1시간여 유람선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끝낸 우리는 바로 위의 호수변에가서 바이칼의 물에 발을 담구었다. 정정길씨는 바이칼 물에 목욕을 하면 10년이 젊어지고 손발을 담그면 5년이 젊어진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가 유람선을 타고 바이칼 물에 발을 담근 곳은 앙가라 강이 바이칼호수로부터 흘러나오는 호수 남서부에 위치한 ‘리스트뱐카’였다.

바이칼 호수의 주변지대 대부분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여건으로 험난한 산지가 호수에 인접해 있어서 개발이 용이하지 않지만 이 곳은 앙가라강의 시발점으로 공간적인 여유가 있어 바이칼 호수변의 최대의 휴양지를 이루는 곳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곳곳에 예쁜 숙박시설들이 있었고 지금도 건설 중이었다. 파스텔톤의 화사한 집들, 바이칼의 깨끗한 자연환경과 예쁘게 어우러져 보인다. 흰색과 블루의 그리이스의 산토리니와 핑크톤의 바이칼의 집들이 함께 연상된다.

이제 아까 실패했던 바이칼 생태 박물관을 다시 갔다.

지하의 작은 공간인 생태박물관은 바이칼에 살고 있는 각종 새들과 물고기 그리고 물개들이 전시되어있고 바이칼에 관한 다른 흥미로운 자료도 있어 작은 공간이지만 뜻깊은 장소였다.

바이칼 호수 바닥에 쌓인 7km의 퇴적층을 분석한 학자들은 바이칼호가 적어도 2500만년이상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00여종으로 보고되고 있는 바이칼호 주변 서식 동식물들 가운데 70~80퍼센트가 오직 이곳에서만 살고 있다고 한다.

‘네르파’‘갈라미얀카’...... 등등.

호수 박물관 즉 생태박물관을 나온 우리는 이 곳에서 가장 바이칼을 잘 볼 수 있다는 바이칼 호텔로 향했다. 높은 위치에 있는 바이칼 호텔에서 우리는 멋진, 좌악 펼쳐진 바이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비가 간간이 뿌리던 날씨는 어느새 맑게 개어 있었고, 호텔앞에서 반갑게도 우리의 ‘붉은 악마’티셔츠를 입고 있는 러시아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의외로 그녀는 우리말을 꽤 잘했다. 현재는 여행사 영어가이드로 있단다.

멋진 전망과 호텔앞 작은 꽃밭의 원색이 선명한 꽃들....

이들에게 아쉬움을 잔뜩 남긴 채 우리 일행은 이르쿠츠크 시내로 향했다.

시내에서 우리가 간 곳은 ‘데카브리스트 난’에 관현한 귀족의 집이었다. 첫 번째 간 집은 문이 닫혀있었고 두 번째 간 집은 규모가 꽤 큰 목조 건축물이었는데 발콘스키라는 귀족의 아내가 지은 집이었다.

쇠사슬을 발목에 차고 유형 온 남편을 따라 온 그의 아내들. 이집에는 발콘스키의 아내말고 모든 특권을 버리고 남편을 따라온 12명의 귀족의 부인들의 사진이 있었다. 사실 잘 나가는 계급을 버리고, 최고의 엘리트였던 이들이 부패한 짜르체제를 부인하며 입헌군주제를 외치고 노동해방을 내걸면서 혁명을 꿈꾸었다는 사실 자체가 뭔가 가슴속에서 뜨거움이 치밀어 오게 하였는데 그의 부인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삶도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러시아는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뜻밖에도 이 집에는 톨스토이의 사진과 그가 사용했던 집기들이 있었다.

알고보니 톨스토이는 발콘스키의 조카였단다. 후에 톨스토이는 데카브리스트의 난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려했지만 문헌 부족으로- 이들이 유형생활을 했기 때문에 문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쓰지 못하고 ‘전쟁과 평화’라는 장편 소설을 쓰게 되었단다. 그 주인공의 이름은 발콘스키였고...

이 집에는 전세계에 두 대만 있는 피아노가 있는데 현재 연주되고 있는 것은 이 곳에 있는 피아노 뿐이란다.

그리고 푸쉬킨도 있었다. 푸쉬킨이 데카브리스트 난의 귀족부인을 차지하기 위해 결투하기 위해 사용했던 총도 있었다. -푸쉬킨은 이 결투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발콘스키의 이 집은 후에 고아원으로 사용되었다가 지금은 이루쿠츠크에 두채만 남아있다는 데카브리스트의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발콘스키집 마당으로 나오니 마당에선 승마를 이용한 뇌성마비 아이의 치료가 진행 중이었다.  버스가 다음에 데려다 준 곳은 옛 폴란드가 러시아의 식민지였던 시절에 지어진 멋진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폴란드 교회가 있었다. 그 바로 옆에는 조국전쟁이라고 이들이 부르는 2차세계대전 중 희생된 병사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한 ‘꺼지지 않는 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꺼지지 않는 불’을 지나 앙가라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로 갔다. 바이칼과 같은 핏줄이라서일까? 멀리서 바라다 보는 앙가라 강에서도 신선한 생동감을 느낀다.

--- 폴란드 교회에 가기전에 우리는 중앙시장에 가서 횡단열차에서 먹을 먹거리를 쇼핑했다. 모라토리엄 당시 러시아의 모습은 생필품이 없어 텅빈 가게의 진열대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사진들이 신문에 등장했었다. 실지로 그 당시 러시아를 여행했던 사람들도 물자가 없어 고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중앙시장에서 본 러시아는 각종 농산물이 풍부한,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는 빵과 과일 등 먹거리를 잔뜩 샀다.

기차에서 보다 물가가 훨 싸다.-----

폴란드 교회에서 즈나멘스키 수도원으로 갔다. 나무로 된 정문이 있는 이 수도원은 데카브리스트 반란으로 처형되 귀족들의 묘지가 있었다. 마침 수도원에서는 남,녀 수도사들의 청아한 성가로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바로프스키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언가 성스러운 분위기였다.

일행들은 초를 사서 올리고 있었다.

버스 투어의 마지막은 앙가라 강변 소공원에 있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상징 오벨리스크였다. 시멘트로 끝을 마무리한 이 오벨리스크는 조만간 복원될 예정이란다. 강변은 밝은 청춘 남,녀들로 평화롭고도 들뜬 분위기였다.

오벨리스크를 본 우리 일행은 두팀으로 나뉘어졌다. 대장님과 숙진씨,용희씨는 시내 구경을, 나머지는 러시아의 방귀 좀 뀐다는 사람들이 이용한다는-정정길 씨의 표현이다. - 가든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분위기와 저녁을 즐겼다.

물주는 아들과 함께 온 박선생님이었고.....

식당 주변은 자작나무의 숲이었다. 가수가 생음악으로 노래를 부른다.

이르쿠츠크에서의 아쉬운 하루가 가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도 아쉬움은 한켠에 남아있고 그래서 그런지 선뜻 휴식을 취할 생각이 안든다. 호텔 작은 바에서 가지고 간 커피로 티타임을 가졌다.

씻고 대충 정리를 하니 어느새 12시다. 잠시 눈을 붙였다 뜨면 바이칼이 있는 이 곳을 떠나야겠지?


7월 31일(수)

쓴돈-맥주 40루블


4시에 알람을 맞추어 놓았으나 그 알람소리를 듣지 못하고 4시반 모닝콜로 겨우 깨어날 수 있었다.

허겁지겁 머리를 감고 짐을 꾸리니 간신히 5시다. 짐을 지고 방을 나서는데 정정길씨가 올라왔다. 모두들 아무도 안 나와있다. 방마다 부르러가고...

5시 5분 택시를 타고 우리가 먼저 역에 도착하니 5시 20분.

역에는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번잡하다. 오는 길의 시내가 텅빈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장이 출발시간을 잘 못 아는 바람에 늦어져 아슬 아슬하게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기차는 시트와 수건등이 먼저 기차보다 좋고 시트에서 풀먹인 냄새가 나는 것이 상쾌하였다.

우리팀은 6호차, 8호차로 다시 나뉘어졌다.

6호차엔 나와 허샘, 창옥샘, 안샘이 탔고 나머지는 8호차에 탔다. 기차 꾸페엔 부랴트족인 듯 싶은 여자가 이미 타고 있었고 우리 여자 3명이 한 꾸페에 안선생이 옆꾸페에 들어갔다.

이루쿠츠크에서부터 풍광은 훨씬 볼만하고 사는 모습도 풍요로와 보인다. 집과 마을의 규모도 훨 좋아보이고...

열차는 zima에서 15분, Nijneudius에서 23분을 정차한 후 다시 힘차게 달리고 있다.

기차를 탄 후 어제 일기를 정리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후가 되자 8호차에서 인수,현주가 놀러오더니 저녁엔 아예 두 여대생까지 합세해 놀러왔다. 우리는 꾸페를 장악하며 즐겁게 수다를 떨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와 함께 꾸페를 쓰고 있는 러시아 여인은 아들 사진을 가지고 오더니 20살된 아들 자랑에 침이 마른다. 이 여인은 전통 슬라브족으로서 현재 튜멘에 살고 있는데 우체국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단다. 울란우데에 있는 친정어머니를 만나고 오늘 길이라고.....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우리는 러시아어 여행회화책을 서로 뒤적여가며 한참을 연구해야했다.-----


이웃에 놀러갔던 러시아 여인이 돌아오자 우리꾸페에 놀러왔던 사람들은 허겁지겁 돌아갔다.  현재 우리의 대장은 대구의 한 대학교수이신 허상훈 교수다.

그런데 처음엔 못 느꼈는데 이루쿠츠크에 도착하면서부터 신경질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독선적인 면을 자주 보인다. 반면스승이랄까? 그런 안 좋은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반성해본다.

오늘 아침에도 자칫 이 대장 때문에 기차를 놓칠뻔하였다.

그런데도 일행에게 사과 한마디 안하고 오히려 자기 합리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들 화가 많이 났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해지는 모습이 볼 만했다.

잔디같이 보드러운 넓은 밀밭도 보이고 드문 드문 자작나무 숲으로 장식된 초원도 보이면서 붉은 해가 그 벌판을 붉게 물들이는 멋지고도 아릿한 장관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해지는 의식은 2시간 가까이 지속되더니 11시 30분경에야 어둑 어둑해져서 그만두고 있었다. 

크린싱 티슈로 얼굴과 팔과 발을 닦고 이불을 깔고 잠잘 준비를 완료하였다.

자다보니 추워져서 침낭을 꺼내 덮었더니 한결 안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