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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영화"레인보우"

영화 [레인보우]를 소개합니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열심히 시나리오 작업을 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간 잘 될 거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뛰어들었지만,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 너무나 많은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결국 영화는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그가 만든 영화를 보며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수 김태우가 '슈퍼스타K 시즌2' 예선에서 김지수의 노래를 처음 듣고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해보자면, "이런 감독이 영화 만들어야" 합니다. 그 감독의 이름은 신수원이고, 그 감동을 준 영화의 제목은 [레인보우]입니다.

이 컨텐츠에는 스토리가 낱낱이 소개되고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글ㅣ 김현수 (웹진 <청춘예보> 편집장)    구성ㅣ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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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만 5년째 수정 중

꿈을 선택한 그녀의 사직서

"어느 날 우연히 집게 된 카메라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며 부푼 꿈을 안고 다니던 학교까지 그만 둔 채 영화판에 뛰어 든 지완. 그녀의 나이는 올해 서른 아홉. 좀 징그럽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남편과 다정하진 않지만 한없이 여린 중학생 아들과 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가사일을 돌보며 시나리오 작업을 한다는 게 보통 노력으로 이뤄지는 건 아닙니다. 하루 종일 골방에 갇혀 글을 쓰다가 집에 돌아와보면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듣기는커녕, 혹시나 설거지라도 해놓으면 정말 다행이지요. 역시나 그럴 일이 없어서 문제지만요. 집에 돌아와서도 시나리오 걱정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밥을 차려야 하고요.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지만 딱히 성과는 없습니다. 영화판에 나오면 당장 영화를 만들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나 봅니다.

영화감독 지완

1시나리오 작업 중인 지완
2아들 시영이 벽에 붙여 놓은 그림

작업은 잘 되가냐는 남편의 물음에 '그럭저럭'이라고 밖에 대답할 말이 없는 지완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영화사에서는 이런 시나리오로는 투자 받기 어렵다며 이야기의 구조를 다시 바꿔보자는 등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엄한 소리만 하고 있네요. 결국 지완은 계속 수정만 요구하는 영화사를 버티지 못하고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박PD

감독님, 한번 더 수정해보시는 건 어때요?

지완

 

죄송합니다. 더는 못하겠어요. 시나리오만 3년 썼다고요. 15번 고쳤다고요.

15고 끝내면 배우들한테 돌린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캐스팅해주세요.

박PD

 

캐스팅이라는 게 제 능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서요.

감독님이나 저나 소처럼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간 되지 않겠어요?

지완

저 소처럼 살기 싫어요

박PD

그럼 홀딩하죠.

지완

홀딩이라뇨? 그게 무슨 뜻이에요?

박PD

시나리오를 묵혀 두자구요.

지완

시나리오가 무슨 된장이에요?


이쯤 되면 꿈이고 뭐고 지칠 때도 됐건만, 지완은 엄마 바보라고 쓰인 낙서가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벽에 붙어 있는 집안 꼬락서니(!)를 보면서도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나 봅니다. 막연하게 개미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던 지완. 악몽처럼 그녀의 머리 속을 온통 지배하고 있는 그 개미 이야기란 게 도대체 뭘까요? 그건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녀가 처음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다짐했을 무렵, 맨 먼저 하고 싶다던 그 이야기였을지도 모릅니다. 정신 없이 돈 되는 대로, 쓰라는 대로 따라 쓰기만 하다 보니 정작 자기 것을 찾지 못했던 지완. 이제 심기일전하여 예전 시나리오 자료들을 뒤적이기 시작합니다.

음악영화를 만들겠어요, '레인보우 스토리'

1꿈 속에서 투자자들에게 피칭하는 지완
2밴드부에 들겠다고 기타를 배우는 시영
3락페스티벌 현장에서 악보를 줍다
4음악영화를 만들겠어요

이번엔 뭔가 제대로 될 거라는 기대를 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완의 꿈에 돼지 족발이 떡하니 등장한 걸 보면 이건 분명 돼지꿈이에요. 먼저 시나리오를 읽어본 친구도 고생한 흔적이 보인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군요. 족발 먹고 싶어 그런 거냐는 말과 함께 말이죠. 시나리오를 읽어본 영화사에서도 반응이 좋았는지 함께 작업하자며 널찍한 사무실까지 마련해줬습니다. 이제 일렉 기타를 사달라던 아들의 바람도 들어줄 수 있게 됐고, 앞으론 신나고 근사한 일만 쭉쭉 벌어질 것 같군요. 함께 일하는 최피디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나리오 수정작업에 매진하는 중이고요. 좀 말 끝마다 상업상업 붙이면서 돈 얘기하는 건 별로지만요.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불길한 사건들이 좀 일어나야 지완이 쓰려는 영화 시나리오처럼 '구조'도 짜여지고 결정적인 '야마'도 만들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옆 방 쓴다면서 슬쩍 사무실로 들어온, 초음파 아기 사진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있는 이 남자, 불길한 안창남 감독의 방문이 왠지 모르게 영화의 '구조'를 만들어 줄 것 같긴 합니다.

지완

단출하네요, 방이.

창남

 

여기가 세 번째 영화사거든요. 일부러 짐을 안 갔다 놨어요.

언제 방 빼라 그럴지 몰라가지고.

지완

그래도 감독님은 한 작품 하셨잖아요.

창남

근데, 두 번째 하기가 쉽지가 않네.

지완

작업 거의 안 하시는 것 같던데?

창남

 

 

난 시나리오 안 고쳐요. 사람들이 고치지 말래, 더 나빠진다고.

차라리 그 시간에 몸을 만드는 게 나아요. 체력이 좋아야 되잖아.

현장에서 버티려면. 감독님은 잘 돼가요?

지완

초고를 고쳐야 돼요. 상업적으로.

창남

내가 볼 땐 신인 감독한테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색깔. 칼라.


실없는 사람일 줄만 알았는데 왠지 그의 말을 잘 따라야 할 것만 같은 말년 병장의 스멜이 폴폴 풍기네요. 그가 이미 한 작품 먼저 해본 고참 감독이라서 그런 걸까요? 어찌 됐든 마음을 가다듬은 지완은 취재차 락페스티벌 현장을 찾아 젊은 에너지를 만끽합니다. 그녀가 바라보는 모든 인물이 캐릭터로, 모든 세계가 장면처럼 보이고, 눈을 감으면 콘티가 그려지는 마법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좋아하는 걸, 하고 싶은 걸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란 녀석이 노력과 만나면 가끔 그렇게 마법을 부리기도 하는 법이지요. 하지만 자신 있다던 '레인보우 이야기'는 얄미운 피디의 입방정과 꼴사나운 대표의 거드름 사이에서 사정없이 얻어맞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고요.

1창문에 떠오르는 대사를 휘갈기는 지완
2결국 지완을 내치고 마는 최PD
3한창남 감독의 조언, '잘해야죠. 열심히 말고.'

상우

요즘 영화판 안 좋다는 데 너네 회사는 괜찮냐?

지완

우리 회사는 외풍에도 끄떡없어.

상우

다행이네. 근데 너도 끄떡없어?


또 다시 새롭게 시나리오를 구상해야 하는 지완. 온갖 시나리오 작법 책에서는 모든 인간이 뚜렷한 동기를 갖고 살아가며 모든 행동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말지만, 지완은 머리를 쥐어짜며 이유 없는 행동도, 동기 없는 삶도 있는 거 아니냐며 울부짖습니다. 밴드부에 들어간 아들은 형들한테 기타를 뺏기고, 새로 준비하던 시나리오는 다른 영화사에서 먼저 제작에 들어갔다며 또 엎어집니다. 최피디는 이전에 준비했던 '레인보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보자고 하지만 진심에서 하는 말은 아닌 것 같군요. 실제로 존재하는 레인보우라는 밴드를 취재하기 시작하면서 심기일전해보지만, 이제는 개미도 두려워하지 않게 됐지만, 역시나 그녀의 시나리오를 온전히 받아줄 영화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뭐가 문제인 걸까요?

최PD

 

수고한 건 알겠어요. 리얼리티가 생생한 영화.

그렇지만 그럴 거면 다큐멘터리로 가야죠, 음악 영환 정말 힘든 장르에요.

지완

결국 쉬운 결정을 하셨군요.

최PD

그 동안 수고했어요.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죠?

지완

아뇨 모르겠어요.

최PD

자기도 내 입장이었으면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지완

그거 알아요? 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고. 사람, 사람 얘기.


시나리오 안 쓰고 내내 운동만 하던 한창남 감독은 촬영 들어간다면서 때를 기다리랍니다. 잘 해야 하는데 너무 열심히'만' 했다는 따뜻한(?) 조언과 함께 말이죠. 아들 시영은 기타를 뺏어간 선배와 싸워 상처투성이 얼굴로 집에 들어옵니다. 그를 바라보는 남편 상우는 결국 애를 너처럼 만들고 싶으냐며 카메라 배터리를 집어 던져 부숴버리고 맙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오직 자기만을 향해 쏟아지는 이 비난의 화살을 지완은 맨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중입니다. 혼자, 쓸쓸히 말이죠.

아줌마, 어디가?

서른 아홉 나이에 주변에서 손가락질 받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가족들까지 힘들게 하면서 지켜내고 싶었던 소중한 꿈. 어찌 보면 미련하고 답답한 삶일 수 있겠지만, 그만큼의 각오도 없었다면 지완은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테지요. 이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이 그렇게 느끼셨겠지만, 그리고 앞으로 보실 분들도 그렇게 느끼시겠지만, 이제는 정말 포기해야 할 때가 온 건가 싶어서 떠난 바닷가 여행에서 지완이 겪는 어떤 사건(?)은 뭐라 말로 풀어 설명하기엔 너무나 가슴 뻑적지근해지는 영화적 순간일 겁니다. 저는 내내 잘 웃다가 그 장면에서 무너져 버렸습니다.

아들 시영은 다시 밴드부에 들어가 기타를 치기 시작하고, 아들의 공연을 보러 온 시완과 남편은 화해하는 듯 보입니다. 결국 그녀의 영화는 완성되지 못한 채 영화는 끝나지만, 결국 '그녀'의 영화는 이렇게 어엿하게 빛을 보게 됩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녹아 들어가 있는 영화거든요.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장면들과 더불어 진솔한 이야기가 어우러진 [레인보우]를 보고 있으면, 역시 이런 사람이 감독해야 된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실 겁니다. 참, 아들 시영이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 가사의 비밀도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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