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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카파도키아

1월 11일(금)

  어젯밤 숙소에 늦게 도착한 탓에 아침엔 2시간 늦게 일과가 시작되었다.

  아 숙소 아침은 메뉴가 다양하고 푸짐하다. 잘 먹고 10시 30분 출발하여 괴레메 야외박물관으로 갔다. 이 특이한 지형을 이용한 곳도 눈에 덮혀 있어 그 진기함을 100퍼센트 느끼진 못했다.

  이 괴레메 골짜기에는 30여 곳 이상의 석굴 교회가 있고 특히 지상에 있는 교회와 다를 바 없는 십자 형태의 구조를 하고 있거나 둥근 천장을 가진 곳도 많았다.

  '사과 교회,''암흑의 교회''샌들교회'등이 있다는데 우리는 '사과교회'를 중점으로 보았다. 다이닝룸과 부엌 등도 있다. 부엌의 천정에는 그을린 상태로 남아있어 현장감을 느끼게 한다. 보존 상태가 꽤 괜찮은 벽화도 많았다. 이 벽화들은 4세기 중반부터 후기에 걸쳐 그려졌다고 한다. 벽화 중에는 여자 가슴을 가진 성 오노후리우스가 벌거벗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괴레메를 나와 바위산 우치사르로 갔다. 들어가는 입장료를 받는 곳은 상점이었다. 가격은 비교적 저렴한 편이고 상점의상품도 다양하였다. 상점은 바위를 이용한 곳이었는데 상점을 통과하여 바위산 정상으로 올라 갈 수 있었다. 우치사르의 바위에는 수없이 많은 비들기용 굴이 있다는데 이 억시 눈이 덮여 확인할 수 없다. 깃발이 꽂혀있는 정상에선 괴레메 일대의 마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눈 때문에 가파른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언덕에서 내려와 상점에서 쇼핑을 하며 터키 전통 모자를 써 보기도 하였다. 오늘은 사람들이 쇼핑을 하느라 알리가 말하는 시간을 자꾸 무시한다. 우리도 화산석으로 만든 재떨이를 사기도 하고 옆서도 사고 이것 저것 만져보고 그랬다.

 우치사르에서 우리는 정부 직영의 카펫가게로 갔다. 그 곳에서 카펫 제작 방법과 카펫고르는 요령, 그리고 실크를 누에고치에서 빼내는 것등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차도 많이 얻어 마시고...

  카펫가게에선 발음이 좋은 신사가 나와 유창한 영어로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설명을 하였다. 여러명의 바이어들이 나와 손님을 한명씩 붙들고 상대를 한다. 우리 일행 중에서도 대만계 호주 가족이 1600불이나하는 실크 카펫을 사는 것을 시작으로 다른 두 팀이 1000불이 넘는 카펫들을 샀다.

 카펫가게에서 나와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터키식 피자을 화덕에 굽는데 만드는 주인이 너무나 선량하게 생겼고 그의 어린 아들도 너무 착하게 생겼는데 서로 분위기가 닮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밀가루 반죽을 길고 납작하게하여 그위에 고기와 야채를 잘게 썰은 것을 올려놓고 치즈를 넣어 화덕에 굽는 것이었다. 담백한 맛이 좋다. 점심을 먹은 후 터키식 목욕탕에 갔다. 남자들은 목욕하고 우리는 이스탄불 근처의 부르사에서 목욕을 하기로 하고 동네를 둘러보러 나갔다. 동네를 돌아보다 한 카펫가게에서 100퍼센트 울로 된 킬림을 사다. 카펫가게 아저씨는 영어를 못하는데 정직하고 착하게 보인다. 55불을 부르는 것을 31불에 깍았다. 그리고 그는 보증서도 심혈을 기울여서 써준다. 비록 가게는 추웠지만 물건은 잘 산 듯 하다.

동네를 돌아다니고 카펫가게에서 킬림을 사느라 수선을 떨고 나서 목욕탕엘 가 보았는데 목욕은 아직 안 끝나 있었다. 우리 일행이 목욕을 끝내고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사과 차도 얻어마시고 목욕탕 사람들과 실없는 수다도 떨면서 시간을 보냈다. 목욕을 하고 나온 사람들은 아주 만족한 얼굴들이다.

 어제 3인실 방에서 간이 침대를 벽에 붙여놓고 자느라 추웠던지라 오늘은 방을 하나 더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혼자 독방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어제보다 훨씬 따듯하고 훈훈하다. 오늘 건져온 물건들을 침대에 주욱 늘어 놓고 감상을 하다 보니 저녁시간이 훌 지나간다.

1월 12일(토)

  오늘은 30분정도 늦게 하루일과가 시작되었다. 아침식사도 늦어졌고....

데린쿠유 지하도시가 오늘 투어의 처음 시작이었다. 이 지하도시는 1963년에 발굴되었단다. 동굴 주택이라고도 말하지만 이 곳은 마치 개미들이 만든 것처럼 지하 곳곳에 파내려간 대규모의 지하도시이다. 이 곳은 기원전 400년경의 기록에도 나와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고 한다. 내부의 통로와 환기구 울림통이 지하의 각층으로 연결되어 있고 예배당, 학교,침례하는 목욕장소도 있었다. 그리고 침실,부엌,우물로 보아 대규모로 집단생활을 했었음을 알 수 있다.

  곳 곳에 적의 침입을 대비해서 둥근 바퀴모양의 돌덩이를 통로마다 설치해두고 비상시에 통로를 막도록 하였다고 한다.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고 올라가는 일이 약간 힘들었지만 내내 이 거대한 지하도시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데린쿠유에 4만명의 사람이 살았었다고 한다. 지금 이 곳은 여행객들이 미로에서 헤매지 않도록 전등과 화살표로 안내하고 있다. 나의 손전등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우리는 지하도시에서 나와 아바노스 도자기집에 갔다. 여기서도 차를 얻어 마시며 영어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직접 발로 도르래를 돌려가며 손으로 빚는 모습을 견학했고 우리 일행중 제랄드라는 미국인이 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이 곳은 터키에서 가장 긴 크즐로마크강이 흐르고 이 곳에서 채집하는 점토질의 흙으로 화병이나 식기를 구워냈다고 했다.

 히타이트 문양의 그릇과 오스만 투르크 문양의 그릇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곳에서 우리 일행들은 또 몇가지 그릇들을 샀다.

 도자기 공방에서 나와 젤베 야외 박물관과 토산품시장을 둘러보았다. 젤베 야외 박물관은 버섯모양의 바위들이 마치 동화속의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시간이 없어 탐험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투어의 맹점이다. 젤베에서 나와 버스가 달리니 절경들이 연이어 있어 마치 버스속에서 신기한 나라를 탐험하는 기분이다. 

 이르하라 계곡에 가는 길은 눈이 쌓여있어 버스가 한바퀴 도는 바람에 순간 아찔했었다. 눈 때문에 계곡 탐험은 못하고 위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 보기만 하였다. 이 곳 카파도키아는 파묵칼레와 마찬가지로 눈이 진정한 모습을 많이 가려버렸다. 

  우리 투어 일행은 일주일을 지내는 동안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친해진 듯 하다. 이제 서로 챙겨주는 모습이 마치 가족같다.  

  거의 3시 넘어 도착한 식당에선 2미터정도 되는 긴 빵을 구워내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대만계 호주 가족과는 오늘이 이별이다. 손크고 여장부같은 엄마와 예쁜 딸, 농담 잘하는 아들, 이 들과 특히 정이 많이 들어버렸다. 우린 어젯밤에 써 놓은 옆서를 그들에게 주었는데 넘 좋아한다. 포홍을 하고 막상 헤어지려니 많이 섭섭하다. 그들은 오늘 밬차로 이스탄불로 가서 내일 비행기로 이집트의 카이로에 간단다. 부모가 이혼을 해서 지금은 아빠와 사는 아이들이 엄마와 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여행이 그들에게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계속 느끼는 것이지만 언어, 특히 영어를 잘하면 이들과 아니 다른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일은 앙카라를 거쳐 하루 종일 이스탄불로 가는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1월 13일(일)

 꼭두새벽에 일어났다. 

 6시에 모닝콜이 울려 씻고 아침을 먹고 7시에 출발하였다.

 마지막 날 3식구가 빠져나간 우리 일행은 단촐했고 어느정도 썰렁하기조차하였다. 

 버스는 출발한지 한시간 정도 지났을 때 어느 길가의 다 헐어버리고 담벼락 몇개만 남은 장소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이 곳이 캐러반 사라이인데 개러반들의 숙소로서 상업도시의 유적이었다. 13세기에 건설되어 당시 군인과 상인이 쉬어가던 도시였다고 한다. 이 곳엔 당시 모스크, 환전소, 목욕탕도 있었다고 한다. 우린 잠시 내려 사진을 찍었다. 

 도로 양옆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있어 햇빛에 반사되어 세상이 희고 밝게 빛나고 있었다.

 12시쯤 앙카라에 도착하였다. 아타튀르크 사당묘에 들렀는데 들어가기전에 탐지기에 몸을 검사받고 들어갔다. 미동도 하지않고 유리상자안에 들어가닜는 호위병들의 모습들이 안쓰럽기도하고 재미있기도하다.

 넓은 사자길 입구에는 3명의 여인상과 3명의 남성상이 있었는데 이 의미는 억압시대에 살던 여인들을 해방시키고 의복의 현대화를 이룩했다는 의미란다. 어쨌든 옛날 문자대신 라틴문자를 쓰게도 했던 아타튀르크는 터키를 근대화로 이끈 인물이었다. 이 사당묘도 그를 기리기 위한 곳이고 묘를 모신 사당, 그의 애장품과 자동차가 진열되어있는 박물관, 그리고 기념품 판매소가 있었다. 온통 아타튀르크를 위한 곳이었는데 입장료는 무료였다. 

이 사당묘는 언덕위에 있어서 이 곳에서 앙카라시가 펼져져 보인다.

 나오다가 위병들의 교대식을 보았다. 소리가 어찌나 크고 근엄한지 깜짝 놀랐다. 

  이 앙카라에서 우리는 버거킹에서 점심을 먹었다. 

  카파도키아에서 앙카라까지의 고속도로엔 유난히 짐을 가득실은 트럭이 많았다. 우리 기사는 침착하고 요령있게 이 트럭들을 잘도 따돌린다. 이스탄불로 향하는 길도 눈으로 덮혀 온통 희게 빛나고 있었다.

 오는 길에 본 일몰이 너무도 아름다워 베트남에서의 일몰을 생각나게 하였다. 이번 여행길은 추위와 텅빈 유적지로 인해 거의 외계인처럼 떠도는 것 같은 느낌이다. 두번의 휴식시간을 가진 후에 우리는 이스탄불에 도착하였다. 일주일만에 다시 온 이스탄불이 마치 고향에 온 듯 반갑다. 보스포러스해협을 가로 질러 놓인 보스포러스 대교를 달리면서 본 이스탄불의 야경이 아름답다. 

  돌마바흐체궁, 탁심거리, 아야소피아 등.. 돌아온 이스탄불의 모든 것이 익숙하다.

  저녁 7시경 숙소에 도착. 우리가 별로 안 어울려서일까? 일주일이나 함께 한 투어일행들은 너무나 삭막하게 헤어졌다. 

 가이드 알리와 몇개의 일정에 대한 불만이 있었지만 투어에 대한 설문엔 마음이 약해 그냥 좋다고 답했다. 이 한국인의 단점이여!  다시 돌아온 인터 유스호스텔에선 식당 종업원들이 유난히 반갑게 맞이 해 준다. 우리는 이번엔 우리끼리만 있을 수 있는 3인용 도미토리레 묵게되었다.

 

 젤베 야외 박물관에서

 카파도키아 가는길에

 괴레메에서

 괴레메에서

 괴레메에서

 괴레메에서-사과교회

 괴레메에서-사과교회

 바위산 우치사르에서

 바위산 우치사르에서

 바위산 우치사르에서

 바위산 우치사르에서

 바위산 우치사르에서

 바위산 우치사르에서

 바위산 우치사르에서

 바위산 우치사르에서-상점

 카펫공방에서

  카펫공방에서

  카펫공방에서

  카펫공방에서

  카펫공방에서

  카펫공방에서

 피자집에서

 피자집에서

 데린쿠유지하도시에서

 데린쿠유지하도시에서

 데린쿠유지하도시에서

 데린쿠유지하도시에서

 데린쿠유지하도시에서

 도자기 공방에서

 도자기 공방에서

 도자기 공방에서

 도자기 공방에서

 도자기 공방에서

 도자기 공방에서

 젤베 야외 박물관에서

 젤베 야외 박물관에서

 젤베 야외 박물관에서

 미르하라 계곡에서

 미르하라 계곡에서

 식당에서

 식당에서 구원진 2미터 가량의 빵 

 아타튀르크 사당묘에서-앙카라-

 아타튀르크 사당묘에서-앙카라-

 아타튀르크 사당묘에서-앙카라-

 아타튀르크 사당묘에서-앙카라-

 아타튀르크 사당묘에서-앙카라-

 아타튀르크 사당묘에서-앙카라-

 아타튀르크 사당묘에서-앙카라-

 아타튀르크 사당묘에서-앙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