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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여행.

준비글(이란항공에서 퍼온글)

 

 

 

 

 

 

테헤란 TEHRAN


 

1925년 페르시아 팔레비왕조의 수도로 지정되면서 당시 30만이던 인구가 점차 증가하여 현재의 1400만명으로 성장하기까지 이란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 테헤란의 이름은 ‘길의 끝’을 의미하는데, 테헤란이 이 이름에 참 걸맞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이는 13세기 초 셀주크 왕조의 수도였던 레이에서 뻗어 나온 길의 마지막 정착지였기 때문이다.

1400백만의 인구가 사는 이 도시는 첫 번째로 변화가 일어나는 곳이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 곳은 이란의 최첨단을 달리고, 상대적으로 대담한 젊은이들의 패션 성향에서부터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방문자로써 이 모습을 놓칠 수 없다.

이란 여러 도시들로 통하는 관문도시로서 교통중심지이기도 하며 타브리즈·마샤드·케르만 등 여러 도시와 카스피해·페르시아만 연안으로 철도가 통하며, 각 지방도시 사이에는 장거리 버스도 운행된다. 또 테헤란 남쪽교외로 30Km 떨어진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IKA)은 2004년 개항이후 페르시아/걸프 지역의 국제선을 담당하다가 2008년 3월부터 모든 국제선은 이곳으로 운항하게 되었다.  테헤란 서쪽 근교에 있는 기존의 메흐라바드 공항에는 이란 전역으로 국내선을 운항하고 있다. 

테헤란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알보즈 산맥은 일년 내내 만년설을 정상에 머금고 있어 산악지형이 많고 고도가 높은 이란 도시들의 특징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일년 내내 햇볕이 내리쬐고 덮기만 할 것 같은 중동의 이미지와는 달리 서울과 같은 위도상에 위치하여 사계절이 뚜렷하고 한겨울에는 폭설이 내리기 까지한다.

테헤란에서는 이란 내의 다른 지역보다 수준 높은 호텔과 레스토랑을 괜찮은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흥미로운 박물관들이 많고, 다른 나라 수도에 머무는 것과 비교해서 치안수준이 높은 편이며, 테헤란 사람들은 굉장히 친절하다.

 1970년대 세계 20위권 안에 들던 선진국이던 이란. 1977년 테헤란시와  서울시 간에 맺은 자매결연으로 강남 한 가운데 테헤란로에 상응하는 테헤란 북부 국제전시장 인근의 서울로를 살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역사 History


인류학자들은 신석기 시대부터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마을이 석류를 생산했다는 기원후 11세기의 몇몇 기록을 제외하면, 13세기까지 테헤란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1220년에 몽고인들이 페르시아를 정복할 때 레이를 함락시켰고, 그 과정에서 수천 명을 처형했다. 도망친 사람들 대부분이 테헤란에 모였고, 이 마을은 작고, 꽤 부유한 교류 중심지로 성장했다.

15세기 중반에 많은 나무, 깨끗한 강과 좋은 사냥터 등 테헤란의 자연 환경이 초기 사파비드왕인 타흐마스 1세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후원아래, 정원이 꾸며졌고, 벽돌로 지은 집과 숙소가 지어지고, 114개의 타워를 갖춘 벽이 세워져 마을과 상인들을 보호했다. 이후의 사파비드 왕들의 보호아래 계속 성장함에 따라, 유럽에서 온 방문자들은 아름다움 포도밭과 정원에 대해서 많이 글을 썼다.

침략을 노리는 카자르에게서 위협을 느낀 카림 한 잔드는 1758년에 그의 적을 노리는 체하며, 쉬라즈에 있는 그의 수도에서 군대를 이곳으로 옮겼다. 동시에 그는 테헤란을 재강화 하였으며, 궁정을 짓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는 결국에는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려 했던 것으로 보이나, 그의 군대가 카자르의 두목인 모하메드 한산 칸을 죽이고 그의 아들아가 모하메드 칸을 인질로 잡자, 카림 한은 덜 지어진 성을 버리고 쉬라즈로 돌아갔다.

1795년에 승리를 거둔 아가모하메드 칸은 만 오천 명이 사는 먼지가 풀풀 나는 도시를 그의 수도로 선포하고, 카자르 페르시아의 중심으로서 이 도시는 꾸준히 발전하여 20세기에 들어왔다.

1900년경부터 테헤란은 작은 도시에서 오늘날의 이십 오만 명이 사는 대도시로 성장했다. 이 성장으로 인해 흔히 깨달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영향이 뒤따랐다. 수도는 두 번의 개혁, 두 번이 쿠데타와 여러 분쟁을 조장하고 주최했다. 1953년 CIA의 첫 번째 쿠데타의 배경으로서 이 도시는 2차 세계 대전이후의 세계 정치에 근본적인 영향력을 가졌다. 그리고 1979년 이후로 테헤란에서 나온 발표들이 과격 이슬람교의 추진력이 되어옴에 따라, 그 영향력 또한 쇠약해지지 않았다.

오늘날 이 현대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것도 참 재미있다. 마지막 샤가 CIA의 커밋 주르벨트를 손님으로 맞아 그들의 수상인 모하메드 모사데그의 타도를 꾀했던 화이트 팰리스를 볼 수 있다. 1979년 혁명을 위해 수십 만 명의 사람이 모였던 아자디 기념탑을 올려다보자. 혹은 베헤쉬트 자라 공동묘지를 찾아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의 얼굴이 유리 상자에 담겨져 끝없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도 있다.


관광 Sights & Activities


남테헤란이 도시의 중심부가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오늘날 줌후리에 에슬라미 거리의 남쪽 지역은 도시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가난한 지역이며, 이란 국립 박물관과 국립 보석 박물관을 포함한 테헤란 최고의 박물관과 골레스탄 궁전과 테헤란 바자르가 밀집되어 있다. 여기서 조금 북쪽으로 가면 대충 테헤란의 중심부라고 불리는 곳이며, 카펫 박물관과 현대 미술관도 여기에 있다.

테헤란 북쪽 대부분은 35년전 까지만 해도 준 시골지역이었다. 도시가 열광적으로 팽창됨에 따라, 아파트 건물이 알보즈 산맥의 구릉지대까지 뻗어나갔고, 그 과정에서 마지막 샤의 화려한 사드 아바드와 니야바란 궁전이 사라졌다.

테헤란 바자르 Tehran Bazaar


테헤란 바자르는 테헤란에서 가장 큰 시장인 동시에 중동 최대의 재래시장중의 하나이다. 이 곳은 미로 같은 골목길과 그 골목길을 가득 채운 이란인들로 항상 시끌벅적하다. 그러나 점점 많은 상인들이 좀더 편한 장소로 가게를 옮겨가면서 바자르는 그 규모와 중요성이 쇠퇴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란에 왔다면 테헤란 바자르는 꼭 가볼 필요가 있는 곳이다. 바자르를 방문하는 것은 이란 사람들을 구경하고 쇼핑 경험을 위한 것이지, 근사한 건축물을 보러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이란의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모든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이다. 굳이 사지 않고 구경만 해도 정신이 쏙 빠지는 곳이다.

천막이 씌워진 가게가 10km도 넘게 늘어선 테헤란 바자르로 들어가는 입구는 여러 군데가 있다. 바자르 안에는 12개 이상의 모스크와 여러 개의 게스트하우스, 여러 은행(환전을 위한 것이 아님), 교회 하나, 그리고 심지어는 소방서까지 갖춘, 도시 안의 도시이다. 각각의 골목에서 특화된 상품을 팔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구리, 종이, 금, 향료, 카펫 등이 유명하다. 만약 카펫을 사러 간다면 카펫을 파는 상인들은 아마도 현란한 말솜씨의 판매수완을 보여줄 것이다.

바자르를 가장 잘 구경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상점들과 미로 같은 골목길을 가볍게 산책하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길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말자. 어쩔 수 없이 길을 잃게 될 것이고, 차라리 그런 채로 돌아다니는 것이 재미있다. 이제 막 시작하여 아직 부산하지 않은 아침 시간에 들리는 것도 볼만 하다. 점심시간과 5시에서 7시 사이에는 엄청나게 빨리 움직이는 운반차량에 깔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그들은 금요일마다 모스크에 가기 때문에, 목요일 늦은 오후부터 토요일 아침까지는 가게들이 문을 열지 않아서 아주 조용하다.

테헤란 바자르는 이란에서 가장 볼 것 없는 테헤란에서 유일하게 흥미로운 곳이다. 바자르 미로에서 이란 사람들에 치여 길을 잃어보자!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 Imam Khomeini Mosque


아쉽게도 테헤란에는 볼 만한 모스크가 별로 없다. 그 중에서 테헤란 바자르 안에 있는 이맘 호메이니 모스크가 가장 볼 만하다.

이곳은 테헤란에서 가장 크고, 확실히 운영되고 있어 가장 사람이 많은 모스크이다.

이 건물은 18세기 초에 지어져 지금까지 잘 보존되었다. 하지만 외관상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못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건물은 에스파한에도 많이 있으니 실망은 않도록 하자. 대신 무슬림들이 어떻게 기도를 하고 활동하는지를 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테헤란 바자르 한가운데 있는 이 모스크는 바자르에서 모스크로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바자르를 가로질러 이동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다. 건물 주변에서는 잡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것저것을 팔고 있는데 이 또한 재미있는 구경거리 이다. 온 손가락 천지에 반지를 끼우고, 목에는 여러 개의 목걸이, 옷에는 잡다한 뱃지들로 치장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 종일 앉아서 나무로 된 담배 파이프에 조각을 하는 사람,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이란 물건은 죄다 가지고 나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기도시간과 청소시간에만 관리인에게 쫓겨났다가 다시금 하나 둘 씩 모여든다.

바자르를 돌아다니다 지쳤다면 이곳에 가서 잠시 쉬어가도록 하자.


골레스탄 궁전 Golestan Palace


 

한때 테헤란의 심장부였던 이곳에는 카자르 시대 지배자들의 영광과 부유함을 기념한 기념비가 있다. 이맘 호메이니 광장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골레스탄 궁전 지구의 건물들이 아름다운 정원을 뽐내며 펼쳐져있다. 귀찮기는 하지만 각각의 건물로 들어가는 표는 정문에서 따로 사야한다.

원래는 이 일대에 사바키드 요새가 있었다. 하지만 카림 칸 잔드가 지배했던 시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궁전이 되었다. 유럽식 궁전에 도취된 카자르 지배자 나세르 알딘 샤가 지금의 골레스탄 궁전을 세운 사람이다. 원래 이곳은 당시 업무를 보던 사무실과 부속 건물, 사유 주거지 등 안쪽과 바깥쪽 부분 등으로 훨씬 컸었지만 팔라비스 시대를 지나면서 많이 쇠퇴했다.

아이바네 타크테 말말을 시작으로 하여 시계방향으로 각각의 건물을 구경을 해보도록 하자.

입구 바로 정면에 있는 건물은, 거울로 둘러지고 전방이 오픈된 접견실인 아이바네 타크테 말말이다. 여기에는 사람 인형으로 떠받쳐진 장엄한 왕좌가 있다. 또한 이곳은 65개의 설화 석고로 이루어져있다. 이곳은 1801년에 200명이 넘는 왕비와 170명의 자식을 거느린 군주였던 파흐트 알리 샤를 위하여 만들어졌다. 이 접견실은 1925년 나폴레옹 스타일의 레자 샤의 대관식을 포함하여, 각종 의식을 치러야 할때 사용되었다. 좁은 복도를 따라가면 페르도시의 샤나마에 묘사된 허구적인 왕들의 벽화로 둘러진 작은 방이 하나 나온다. 사람의 뇌를 먹고 사는 뱀을 어깨에 두른 왕인 자하크를 찾아보자. 파흐트 알리 샤의 그림도 놓치지 말자. 그의 턱수염은 너무도 짙어서 가짜 티가 너무 나서 재미있다.

아이바네 타크테 말말을 나와서 왼쪽으로 가면, 카자르 시대의 미술을 전시하고 있는 네가르 칸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은 당시 유럽의 박물관에 매료되어 있었던 나세르 알 딘 샤의 고안으로 건축된 곳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국립보석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보석들과 왕관으로 치장한 샤들의 초상화들, 19세기 이란의 일상생활을 그린 카말 올 모크와 메디의 작품들이다. 그 당시에도 여성들은 챠도르를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점은 남자들이 세 겹의 옷을 입고 다녔다는 점이다.

정원을 시계 방향으로 계속 돌아 걷다보면 유럽 지배자들이 샤들에게 증여한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데 쓰였던 하제 칸이 나온다. 방의 한가운데 최초의 당구대가 있는 아름다운 방이지만 시간이 촉박하다면 그냥 넘어가도 무관하다.

다음 박물관은, 오늘 날 가장 키가 큰 궁전이며 유럽과 페르시아 건축의 전통을 혼합한 태양의 건물이라는 뜻의 샴스알 에마랏트이다. 한 나세르 알 딘 샤는 한눈에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궁전을 갖고 싶어 하여 거장 건축가인 모이어 알 마말다에게 건물을 짓도록 하였다. 이 건물은 1865년에 짓기를 시작하여 1867년에 완공되었다. 거울과 타일로 치장된 방들 안에는 사진과, 유럽 지배자들, 특히 프랑스 지배자들이 증여한 가구와 꽃병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저곳 가까이에 첨탑처럼 솟아오른 건축물들은 사실 파흐트 알리 샤 시기에 처음 세워졌던 바람탑이다. 아쉽게도 이곳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건물 뒤에 있는 문을 통해서 토대석 정도까지는 가볼 수 있다.

다음은 분수와 역사사진 갤러리를 갖춘 지하방인데, 신기하게 생긴 투투 스커트를 입은 나세르 알 딘의 아내들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조로아스터교의 조장터였던 침묵의 탑 중 하나의 내부를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에는 썩어가고 있는 시체들과 아직 독수리에게 공격당하지 않아 서있는 상태의 시체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자그마한 타라레 알마스, 다이아몬드 홀이다. 이곳은 빨간 벽과 타일로 둘러져 있고, 19세기의 장식미술을 전시하고 있다. 특별히 18세기, 19세기의 프랑스 세라믹에 관심이 없다면 돈을 아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는 민족 박물관이 나온다. 이곳에는 카자르 결혼식과 상상으로 지어진 전통찻집을 그린 흥미로운 회화가 전시되어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이슬람교 수도 탁발승을 그린 것이다. 그의 옷은 온통 코란의 글귀로 덮여 있고, 체인으로 만들어진 핸드백인 카쉬쿨과 도끼를 들고 있다. 그리고 위층에는 비싸지만 예쁜 찻집과 책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다.

아쉽게도 현재(2007년)는 공사 중이어서 방문이 어렵다.


국립 보석 박물관 National Jewels Museum


멜리은행의 북쪽 끝에 있는 거대한 철문을 따라서 무장호위병들을 지나면 동굴 같은 지하 납골당 같은 곳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국립 보석 박물관이다. 이곳은 중앙은행에 속해있지만 실제로는 멜리은행의 중앙 점 아래에 운영되고 있다. 이 박물관은 테헤란에서 가장 많은 여행자들을 끄는 장소로 유명하다. 이미 골레스탄 궁전의 미술 갤러리를 방문했다면 사파비드 지배자들이 자신들을 장식했던 엄청난 보석들을 보았을 것이다. 이곳에 오면 그 실물을 구경할 수 있다.

이곳은 전시물의 특성에 걸맞게 경비가 매우 삼엄하다. 카메라와 가방은 당연히 리셉션에 맡겨야 하며 겉옷에 숨겨서 들어가지 않는 한, 이 책도 바깥에 두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건물 외관의 모습도 사진 찍을 수 없도록 한다.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곳곳에 경비원들이 서있을 것이다. 이들이 아무리 따가운 눈총을 주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평생을 봐도 다 못 볼 만큼의 보석들을 감상해보자.

믿건 말건 간에, 이 보석들을 두고 적어도 한번 이상의 전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대부분의 전시품은 사파비드 시대에 샤들이 유럽, 인도, 오코만 제국의 땅을 휩쓸었을 때 얻은 전리품이고 그 당시의 수도였던 에스파한을 장식하는 데 쓰였다.

그러나 1722년 마흐무드 아프간이 이란을 침략했을 때 그는 이 보물들을 약탈하여 인도로 보냈다. 1736년에 왕위를 계승하면서, 나데르 샤 아프샤는 사신을 보내 약탈당한 보물을 돌려줄 것을 요청했다. 설득이 통하지 않자 그는 군대를 보내 상황의 심각성을 알렸다. 인도의 모하메드 햐는 군대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다리야에 누르와 쿠에의 다이아몬드, 공작 왕관, 그리고 다른 보물들을 되돌려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1747년에 나데르 샤가 암살되고 난 후 , 아흐메드 베그가 보물을 약탈해서 보물들을 여기저기에 팔았다. 쿠에 누르 다이아몬드는 제국주의 영국의 손길에 휘말렸으며 그때부터 런던 타워에 갇혀있다.

가게에서 가이드북을 얻을 수 있고, 영어, 프랑스, 독일어, 아랍어, 터키어로 된 전문 가이드도 있다.

바다의 빛이라는 이름을 가진 182캐럿짜리 핑크색 다이아몬드 다리야에 누르를 놓치지 않도록 하자. 바로 이 다이아몬드가 세공 되지 않은 다이아몬드 중 세계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납골당 문 밖의 공작 왕관도 볼 만하다. 1797년, 파흐트 알리 샤를 위해 만들어진 키가 큰 키애니 왕관과 파라의 마지막 왕과 그의 아내가 쓰던 왕관들도 있다. 또한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보석으로 된 지구가 있다. 바다는 1869년에 51366개의 보석을 이용해 만들어진 34kg 짜리 에메랄드로, 땅은 루비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란, 영국, 프랑스는 다이아몬드로 되어있다.

이란 국립 박물관


 

 


이란 국립 박물관은 루브르 박물관처럼 화려하고 웅장한 멋은 없지만 이란의 풍요로운 역사가 가득하기 때문에 테헤란에 왔다면 꼭 봐야하는 장소이다. 이 박물관의 입구는 Si tir 거리에 있고, 뒤쪽으로는 이맘 호메이니 거리 모퉁이에 있는 작은 공원이 있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 페르세폴리스와 같은 주요 유적지들을 먼저 보고 왔다면 그 의미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란 국립 박물관을 마지막 행선지로 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목하게 들어간 이 박물관의 거대한 입구는 프랑스의 건축가인 안드레 고다드가 사산 궁전을 모델로 삼아서 디자인한 것이다. 유물로는 페르세폴리스, 콰즈빈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즈마일 아바드, 수스, 레이, 투란그 레페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얻은 세라믹과 도자기, 석상과 조각 등을 전시해놓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유물들의 전시방법은 그다지 훌륭하지 못한 편이다. 또한 영어 이름만 있고 충분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영어가 가능한 무료 가이드가 제공되기는 하지만 기다리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수스에서 온 유물들로는 날개 달린 사자 기둥, 돌물 모양을 한 주전가와 그릇들, 날개를 달고 있는 신화적 인물들로 장식된 화려한 벽돌들이 있다. 또한 수스에서 발견된 함무라비 법전을 담은 비석의 사본도 전시되어 있다. 원본을 보고 싶다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

페르세폴리스에서 얻은 유물들로는 거대한 사람의 머리를 한 기둥, 크세르크세스의 힘과 신적 관계를 주장한 타라레 바르에서 나온 쐐기 비문, 아파다나 궁전의 중앙 홀에서 나온 번쩍번쩍한 타일들로 이루어진 소벽 등이 있다. 다리우스 1세 때 3개 국어로 된 조각들과 황소 머리를 한 기둥, 계단, 바로 얼마 전에 조각한 것처럼 보이는 앉아있는 개 모양의 석상, 설상골(뼈)에 새겨진 네 개의 개국 현판도 전시되어 있다.

가장 놀라운 전시물 중 하나는 잔잔에서 발굴한 소금 사람이다. 이 사람은 3-4세기에 죽은 광부로 추측되어진다. 그의 머리에는 하얀 머리칼과 수염이 그대로 있고, 가죽 부츠를 신은 발과 도구들 또한 그가 묻혔던 곳에 보존되어 있다.

거대한 콧수염이 머리에 달려있는 왕자의 동상이 재미있다. 이 머리 부분은 겉보기에도 몸과 따로 제작되어진 것처럼 보인다. 아마 조금만 더 몸이 작았더라면 더욱 잘 어울렸을 것이다. 기원전 8세기에 만들어진 로레스탄 동상도 있다.


샤흐르 공원 Park-e Shahr


복잡한 도시의 혼잡 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다면 테헤란 남쪽에 있는 샤흐르 공원으로 가보자. 만약 겨울이라면 아이스 스케이팅을 즐겨보고, 여름이라면 작은 호수에서 보트를 타거나 편안한 소프레 카네 손나띠  산가락에서 홍차와 콸란(물담배)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이곳은 목숨을 걸고 길을 건너야 하는 테헤란의 복잡한 교통 걱정은 하지 않고, 편하게 앉아 쉬면서 테헤란 사람들을 구경하기에 좋다.


이슬람 시기 박물관 Museum of the Islamic Period


이 박물관은 서예, 카펫, 세라믹, 나무 조각, 석상 조각, 미니어쳐, 벽돌 공예, 섬유공예 등 이슬람의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레이에서 나온 실크, 치장 벽토 세공, 몽고 시키의 인물화, 사산 동전, 뛰어난 14세기의 나무문과 창문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쿰 지역에서 나온 은은하게 광택 나는 미그랍(메카로 향하는 방향을 표시한 조감)인 아름다운 ‘천국의 문’과, 에스파한에서 가져온 19세기 상감세공 문 또한 눈여겨보아야 한다.

모든 설명은 영어로 되어 있고, 리셉션에서 영어가 가능한 가이드도 문의할 수 있다. 박물관 안에서는 코팅해놓은 설명문도 이용이 가능하니 1층에 있는 카운터에 문의해보자.

1층에 있는 서점이 아주 훌륭하다. 영어로 된 책들도 많이 판매하고 있고, 엽서, 비디오, 지도, 사전도 팔고 있다. 이 두 개의 박물관을 보려면 두, 세 시간은 투자해야 할 것이다. 양쪽 모두에 음식을 파는 곳은 없다.


말렉 국립 박물관과 도서관 Malek National Museum & Library


이란 국립 박물관에서 나와 이맘 호메이니 광장 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으로 거대한 타일을 바른 국립공원의 아치가 보이고, 뒤쪽으로는 보행자를 위한 길이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100m정도 가다 보면 왼쪽에 말렉 국립 박물관과 도서관이 나온다.

여기에는 작지만 다양한 19세기 가구와 장식물, 미니어쳐, 카말 올 모크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있는 거대한 그림은 나세르 알딘 샤가 그의 아들과 미르자 모하메드 칸 장군과 함께 군대를 살펴보는 모습을 담고 있다. 나세르 알딘 샤와 그의 아들과 미르자 모하메드 칸 장군은 거대하고 그려져 있고, 그의 군대는 작게 그려져 있다. 이는 그들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동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원전 6세기의 유물이 훌륭하게 전시되어 있다. 지하에는 우표와 멋진 카펫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중 몇몇 카펫은 박물관 후원자 하지 호세인 아가 말렉을 위해 주문한 것이다. 


13 아반 박물관 Aban Museum


이맘 호메이니 광장의 북서쪽, 별 특징이 없어 보이는 움푹 들어간 문을 따라 들어가 보면 한때 샤의 마구간으로 쓰이던 작은 건물이 있다. 현재 ‘13 아반 박물관’은 유명한 이란의 현대 조각가인 세예드 알리 아크바르예 산아띠의 실물 크기동상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중 가장 놀라운 것은 팔라비스에서 데려온 정치적 포로들을 새긴 상들이다. 그 외에는 시인 페르도씨와 사아디, 그리고 샤 아바스1세와 나데르 샤를 새긴 상들이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빅터 휴고의 상들도 있는데, 왜 이곳에 있는지는 미스테리이다.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한번 보는 것도 좋기는 하겠다.

유리와 세라믹 박물관 Glass & Ceramics Museum


이란 국립 박물관에서 북쪽에 위치한 ‘유리와 세라믹 박물관’은 카자르 시대의 아름다운 건축물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처음 이곳은 유명한 페르시아 집안의 사유 주거공간의 목적으로 지어졌고, 나중에는 이집트 대사관이 자리했었으며, 1976년부터는 박물관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 건물은 페르시안 전통에서 벗어나 동양과 서양의 스타일을 잘 갖추고 있다. 나무 계단과 벽은 우아한 멋을 자랑하고, 고전적인 느낌의 스투코 몰딩 천장은 매우 밝은 느낌을 준다. 또한 섬세한 조각과 장식들도 볼 만하다. 박물관 자체로만 본다면 이곳은 아마 이란에서 가장 뛰어나게 디자인된 건물일 것이다.

이 박물관에는 네이샤부르, 카샨, 레이, 고르간 등의 지역에서 온 기원전 2세기의 수백 개의 전시물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각각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으며, 모두 영어로 된 설명이 붙어 있어 각각의 전시물에 세심한 정성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유리를 불어서 만드는 페르시아의 전통기법에 대한 설명도 영어로 나와 있으며, 1층에 있는 서점에서는 박물관에 대한 영어가이드북을 팔고 있다.


마드라세 바 마스지드 세파살라 Madraseh va Masjed-e Sepahsalar


줌후리예 이슬라미 거리에 있는 마드라세 바 마스지드 세파살라는 페르시아 시대의 가장 뛰어나고 가장 큰 건축물 중 하나이다. 이 건축물은 1878년부터 건설이 시작되어 1890년 완공되었으며 여러 개의 첨탑과, 기와에 시를 새겨놓은 고대 문헌으로 특히나 유명하다. 또한 이곳은 여전히 이슬람 대학 건물로 쓰이고 있다. 마즐리스(의회) 건물이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이 지역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이란 포토그래퍼 센터 Iranian Photographers’ Center


이란 포토그래퍼 센터에서는 지역과 국제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돌아가며 전시하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가게에서는 그 과정을 담은 슬라이드를 판매한다.


숙소 Sleeping


마샤드 호텔 Mashhad Hotel

☎ 311-3062 / 메트로 Mellat역에서 도보 10분, 아미르 캬빌 스트릿

더블룸 8만 리알 (부엌, 공동욕실)


호텔 카자르 씨 Hotel Khazar Sea

☎ 311-3860 / 아미르 캬빌 스트릿

더블룸 8만 리알


식당 Eating


이란 전통 식당 Iranian Traditional Restaurant

☎ 890-0522 / 지도에 표시

식사 3만 리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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