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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순수를 맛보다

미얀마3

 

바간의 소

 바간의 탁발승들...

 

1월12일(토)

☼ 교통비:택시비,사이클릭샤비-2500짯

   점심 및 저녁: 한국식당-4550짯(서비스료 포함)

   기타:끌랑 끈-500짯,  간식비-2,000짯

   숙박비-12(6)불


???? 바간→만달레이행 기차→만달레이 가든 게스트하우스→한국식당→만     달레이 중심가 배회→숙소


  5시 30분 기상 6시 15분 메이 카 라 출발.

  메이 카 라에선 우리가 너무 일찍 출발하여 아침식사를 할 수 없자 푸짐한 도시락을 싸주었다. 빵과 바나나 등등...  우리는 아침을 못 먹고 떠나는 것을 아까워했는데... 이런 세심한 배려가 여행자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나라를 여행해 보았지만 이런 작은 친절을 베푼 나라는 없었던 거 같다. 그리스를 여행할 때 우린 새벽 기차를 타면서 먹을 수 없는 아침에 대해 얼마나 아쉬워했던가?

  6시 30분 기차역 도착, 기차역 건물 외관은 엄청나게 크고 멋있었으나 내부는 텅비어있다. 기차는 협궤열차였고,, 역근처 찻집에서 뜨끈한 짜이 한잔 사마시니 역시 이 맛이다. 여행길에 마시는 뜨겁고 달달하고 쌉싸름한 중독성있는 맛!

  7시 기차 출발. 기차는 레일이 좁아서 그런지 많이 흔들린다.

  아름다운 미얀마 농촌 풍경을 즐기며 갈 수 있는 기차여행, 만족이다. 자리도 일등석이라 넓고, 발받침이 있어 편안하다.-미얀마는 외국인에게는 일등석만 판단다.-

 넓은 홍당무 밭과 연이어 나타나는 해바라기 밭, 그리고 야자수가 어울려 아름다운 풍광들..  잔잔한 평화로움을 즐기며, 덜컹거리며 만달레이를 향해 가고 있다.

 만들레이로 들어오면서 기차역 주변이 지저분해졌고, 기차역 주변엔 가난한 사람들의 집들이 옹색하게 늘어서 있었다. 기차가 정차하자 어린 아이들이 기차로 들어와 남은 음식들을 수거해 가는데 그냥 막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허락을 구하고 가져간다. 인도에 비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격이 느껴진다.

 오후 3시 만들레이역 도착. 우리는 무조건 택시를 타고 모두가 추천하는 로얄게스트하우스로 갔으나 빈방이 없단다. 그래서 근처의 가든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트윈에 12불 텔레비전,에어컨, 욕실이 포함되어 있고 뜨거운 물이 나온다.

  대충 짐을 넣고 그동안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황샘을 위하여 조금 비싸더라도 한국식당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싸이클릭샤를 타고 한국식당으로 가자고 하니 알아듣는다.

  한국식당에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반찬이 10개가 넘는다. 허겁지겁 맛있게 먹으며 친근한 음식들에 또 한번 감동!

  식사 후 인레 호수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러 갔으나 하루전에만 표를 판다고 하여 그낭 숙소로 돌아와 쉬기로 하였다.

  황샘을 숙소에 남겨 놓고 난 만달레이 시내 탐방에 나섰다. 걷다 보니 시내 중심가가 거기가 거기다. 휘적 휘적 걸으며 위치를 가늠해 보고 만달레이 맥주를 한병 사와 마시면서 이 어지러운 도시 입성을 기념해 본다.

???? 만달레이는 역시 도시라서인지 번잡하고 매연 많고 전형적인 동남아시아의 도시 모습 그대로다. 아직은 별 매력을 못 느끼겠다. 오히려 기차안에서 본 미얀마의 농촌 모습이 훨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기차가 지나갈 때 마다 손을 흔들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아련한 향수를 느꼈었다.

???? 우리 숙소인 가든 게스트 하우스 옆은 이슬람 구역이었다. 그래서인지 슈퍼마다 맥주를 팔지 않아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맥주를 살 수 있었다.

   이집트에서 맥주 한병 사러 1시간 이상 돌아다닌 기억이 새록 새록 난다.

 

 만들레이 기차안의 따나까 상인들

 

 

 만들레이에서 사이클릭샤와                          

 

 

1월 13일(일)

☼ 교통비-5000짯(싸이클 릭샤 종일 렌트),밍군 보트비-3,000짯

   입장료: 밍군-3불, 머스타치 브라더스 쇼-8,000짯

   간식비: 1700짯   점심은 얻어먹고   저녁-750짯(커피 포함)

   숙박비: 12(6)불

???? 밍군→만달레이힐→머쉬타치 브라더스 쇼 관람.


  아침 7시 기상. 이 숙소의 아침식사는 바나나 2개,두툼한 토스트,버터,쨈,커피와 차 등 푸짐하다.

  

8시 10분 숙소앞 사이클릭샤꾼 딴수이를 만나 밍군가는 선착장을 가는데 20분 정도 걸렸다. 8시 30분 선착장에서 입장권 3불, 보트 승선료 3000짯을 지불하였고 보트는 9시에 밍군으로 향했다.-이 9시 정기 관람객을 위한 보트를 놓치면 개별로 보트를 섭외해야 하는데 돈이 많이 든다.-

놀랍게도 우린 이 곳에서 서울에서도 10여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김은자샘-그녀와는 처음 배낭여행인 실크로드를 함께 갔었다.-그리고 작년 파키스탄에서 만났었던 김용덕샘을 다시 만났다. 세상이 이렇게 좁았다니...

 보트는 1시간만에 밍군에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도착하자마자 소달구지들이 호객행위를 한다. 가판에는 미얀마의 얼굴들을 그린 그림들을 팔고 있고 흰 탑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만달레이에서 11km정도 떨어져 있는 밍군은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인 꽁바웅 왕조의 바돈 왕(1781~1819)이 자신의 강력한 왕권강화와 내부 결속을 목적으로 세계에서 제일 큰 탑을 만드는 불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혹독한 노동에 지친 라카인족 일꾼 천여명이 몰래 라카인 아쌈 지역으로 도망친다. 당시 라카인 아쌈 지역은 바돈 왕이 인도로부터 빼앗은 영토로 인도와 국경 문제로 미묘한 분쟁이 일던 지역이다. 바돈 왕은 도망친 라카인들을 잡아 오라는 명령을 내렸고 미얀마 군대는 도망자들을 추격해서 인도 땅인 라카인 아쌈 지역을 침범하게 된다. 이에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이 국경 침범을 이유로 미얀마에 전쟁을 선포한다. 그 결과 꽁바웅 왕조는 비운의 마지막 왕조가 되고 밍군 대탑 역시 건설이 중단된 채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우리는 강가의 흰 탑으로 저절로 발을 옯겼다가 눈앞에 우뚝, 거대하게 놓여있는 밍군 대탑으로 발길을 옮겼다.

  바돈 왕이 높이 152m로 만들려고 계획했던 밍군 대탑은 현재 100m가 안되는높이로(70m) 상층부 공사가 멈췄고 1838년과 1956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탑의 입구 부분과 양쪽 기단 부분이 심하게 금이 가고 일부는 허물어져 버렸다.

 대탑안에는 촛불을 밝힌 불상이 하나 놓여 있으며 탑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탑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올라가기 전에 신발을 벗어 놓고 맨발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미얀마의 사원들은 모두 맨발로 다녀야 하는데 처음엔 망설여졌던 맨발이 이제는 맨발이 가져다주는 자유스러움을 한껏 느끼게 해 주고 있다.  정상에 오르니 멀리 만달레이와 신쀼이 사원,아예야워디 강이 한눈에 들어오며, 강쪽 아래로 내려다보면 멀리 양족으로 거대한 수호신인 사자상이 앉아 있는 보습이 보였다.  그러나 이 곳에서는 생각만큼 자유스럽지가 않았다. 동네 청년들이 여기 저기에서 튀어나와 가파른 곳에서 손을 잡아 준다거나 길을 안내해준다거나 하며 따라 다니며 박시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들어주는 귀찮음에 얼마 머물지 못하고 내려오고 말았다. 내려와서 신쀼이 사원으로 가는 도중에 우리는 생선튀김도 먹고 차도 마시며 여유을 즐겼다.

신쀼이 사원, 론리의 표지사진으로 하얀 계단식 탑에 붉은 옷의 승려가 건너 뛰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사원이다.

  나도 그 사진과 같은 설정을 하며 사진을 찍어보았다.

이 탑 꼭대기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그의 어린 손녀 딸들과 괜스레 깔깔거리며 되도 않는 말을 하고 사진도 찍고 찍어주고..-.그들은 즉석 사진을 퍽이나 소중하게 간직하며 좋아한다. -이리 기웃,저리 기웃 하다 내려와 이제는 그 유명한 밍군 종을 보러 갔다. 우리가 가는 길마다 장사하는 아이들이 쫒아와 팔아달라고 조른다.

  밍군 대탑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밍군 종을 볼 수 있었다. 1808년 바돈 왕이 밍군 파고다에 헌정한 종으로 19세기 러시아에서 제일 큰 종을 만들기 전까지는 밍군 종이 세계 최대 크기의 종이었다. 밍군 종은 무게가 90.52톤이며 높이 3.3m 종 아랫부분 직경이 4.8m에 이른다.

  1838년 대지진으로 종의 지지대 부분이 부러져 방치되다가 190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보수되었다.  이 곳에서 결국 난 계속 쫒아다니는 소녀에게 옥 팔찌를 사고야 말았다. 그 애는 남들이 다 좋아하는 즉석사진도 싫다고 하며 오로지 팔찌를 팔아달라고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것이다. 누가 이 아이들을 내몰고 있는가? 

 어느 새 12시 30분 선착장으로 향하니 일행들이 다 와 있다.

 13시 보트에 탑승. 올 때 보았던 백사장의 원두막촌들과 강의 풍광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1층으로 내려가 잠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아침의 선착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45분 소요.

  김용덕 샘 일행들과 작별을 고하고-그들은 오늘 바간으로 향한다.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는 것이다.-  김은자 샘과 우리의 릭샤꾼 딴수이를 만나서 점심을 먹으로 책에서 강력 추천해 준 라쇼지 레스토랑으로 갔다. 이것 저것 욕심껏 시키다 보니 식탁이 푸짐하다. 점심값은 김은자샘이 내고,,,

  점심 먹고 15시~16시 10분까지 숙소에서 휴식.

  16시 10분 다시 딴슈이와 그의 동료 소소를 만나 만달레리 힐로 향하다. 딴슈이와 소소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영어를 어디서 배웠냐니까 수도원 학교에서 배우고 지금처럼 릭샤를 몰면서 연습했단다. 역시 영어는 실전에서 써먹으면서 배우는 것이 최고다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만달레이 힐로 가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수다스러울 정도로 끊임없이 말을 한다. 자기 가족이야기, 수입이야기 그리고 등등... 자기가 이 릭샤를 끌면서 부모님과 동생들 합쳐 10식구를 부양해야한단다. 그리고 난 딴슈이가 한 30대 후반쯤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 고작 26살이고 아직 결혼을 안했단다. 그러면서 내일도 자기와 함께 다니지 않겠냐고 교섭해 온다. 난 내일은 멀리 가기 때문에 릭샤로는 안되겠다고 하고 그대신 오늘 머스타치 브러더스 쇼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였다.

 만달레이 힐은 길고 긴 왕궁벽을 돌아 한참을 갔다.

 많은 계단을 올라가니 5시 10분. 저 아래 만들레이 시내는 숲이 우러겨 있지만 매연에 뿌옇게 가려져 보인다. 해는 붉고 둥글게 지고 있고.... 나름 멋지지만 바간에서의 옛 사원군들 사이로 지는 해의 맛은 아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내려오면서 꼬마들하고 장난을 치며 놀았는 데 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방울 소리같고 그 아이들의 표정이 유난히 해맑고 천진하였다.

  어둑해진 길을 다시 릭샤를 타고 달린다. 도로엔 어느새 가득 찼던 차량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6시 숙소 도착.  유니트 호텔 근처의 제과점에서 방을 사들고 와서 조금 쉬니 김은자 샘의 전화가 왔다.

 김은자샘은 두명의 울나라 여성을 데리고 왔다. 우리 자랑스런 대한의 여성 5명은 사이클릭샤 4대를 빌려 퍼레이드 하듯이 쇼를 보러 갔다. 

  브라더스 공연장에 가니 루마오가 반색을 하며 반긴다.

  근처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 보니 8시 10분,  공연이 시작된단다.

  공연장에는 서양여자 1명과 우리5, 이렇게 6명의 관객이 있었다. 작은 가게를 개조한 아주 소박한 공연장이다. 공연은 영어가 탁월한 둘째 루마오의 인사와 해설로 진행되었다.

 처음 공연 내용은 군부독재하에서의 미얀마의 현실, 즉 공무원의 부패,일반인의 가난함. 중국인들의 경제 장악과 돈벌이에 대한 탐욕 등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고 후반 부에는 전통 민속춤 동작들을 보여주고 인형극의 동작들을 친절하게 해설과 더불어 보여주었다. 그리고 긴천을 이용한 미얀마 남성들의 모자만들기, 론지 입는 법 등을 알려주기도 하였고..공연은 1시간 30분 진행되었다.

  이 콧수염 형제들은 그들의 넘치는 끼와 재능을 군부 권력에 아부하는 데 쓰지 않고 군부 독재에 반대하며 7번이나 감옥을 왔다 갔다하고(특히 큰형이) 지금도 감시를 받고 있는데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다.

  미얀마에 올 때부터 이들의 공연은 꼭 보며 이들을 마음으로나마 격려해 주고 싶었다. 공연비가 다소 비싼 편이나 격려금으로 생각되어질 정도로 이들은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공연을 보여주었다. 지금은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의 기부금으로 생활하고 있단다.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이 착하고 정직한 사람들에게 미얀마의 군부 종식이라는 선물이 빨리 오기를 기원하였다.

  흔들 흔들 릭샤에 몸을 맡기고 돌아오는 길에 미얀마 민중들이 처한 답답한 현실을 생각해보았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자리에 드니 벌써 11시가 넘어버렸다.

  김은자샘도 낼 바간으로 간다.

 

 머스터치 브라터스 쇼에서 찰깍

 

밍군 신쀼이 사원에서

 


1월 14일(월)

☼ 교통비: 인레행 버스티켓-13,000짯(버스 정류장까지 픽업비 포함)

           택시 종일 렌트-17,000(8500)짯

           잉와 마차-2,000짯,   잉와 배삯-1,000짯

   점심-2000짯(미얀마 정식)

  기념품-5,000짯  간식및-4700(3000)짯

  숙박비-12(6)불

????마하깐다용→우뻬인다리→잉와→강가의 사원(Lawkatharaphu paya)→숙소→대충 씻고 픽업서비스로 버스터미널로....

우뻬인다리

 

 오늘은 가든 게스트 하우스 메니저의 소개로 택시 투어를 하는날이다. 사실 만들레이의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에 오늘의 일정은 느긋한 편이다.

  가장 핵심은 마하 깐다용의 점심 공양과 우뻬인 다리고, 그 외의 것은 옵션일 것이다.

  항상 힘들어하는 황샘을 위해 늦게 일어나기로 하고 8시 기상. 어제 먹은 아침을 먹고 나서 다시 떠나기 위한 짐을 꾸렸다.

  일단 큰 짐을 카운터에 맡기고 로얄 호텔에 가서 환전을 했다. 어제 이 숙소에서 한 것 보다 이익이다.

  오늘 우리를 맡은 기사는 과묵해 보이지만 친절한 것 같지는 않는다. 그는 영어에 서툴고 기다리면서 항상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는 먼저 마하깐다용으로 향했다. 마하간다용 바로 전에 꽤 규모가 큰 한 사원에 들렀는데 사원 밖에는 거대한 와불상이 있었고 사원안에는 수많은 칼라풀한 불상들이 있었는데 연신 사람들이 총채로 털어내건만 불상마다 거미줄이 쳐져 있었고 신발을 벗고 다니기가 무지 찝찝할 정도로 바닥이 더럽다.  사원밖의 거대한 좌불상 좌대가 또아리를 튼 뱀모양을 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이 사원을 나와서 조금 가니 마하간다용이다. 마침 스님들의 점심 공양 시간 이었다. 우리가 시간을 맞춰 왔지만...

  수천명의 스님들이 공양을 하지만 소리 하나  안들리고 조용하다. 스님들은 계급에 따라 음식이 다른 듯,..큰 스님 밥상은 반찬이 풍성하다.

  다음에 간 곳이 그 유명한 티크나무다리-우뻬인 다리-이다.

  2km가까이 놓여진 다리. 주변 경관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황샘은 초입에서 쉬고 혼자 다리 끝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오는 데 40분 정도 소요된다. 이 다리는 관광객들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의 왕래용으로도 중요한 다리이다.

  이 다리는 156년(1849~1851)전 마하 간다용 수도원과 호수 건너편 지역으로 스님들이 탁발 공양을 갈 수 있도록 우 뻬인이라는 사람이 보시를 했다고 한다. 총 1086개의 티크 나무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이 다리는 우기철에는 다리 난간 가까이까지 물이 차지만 건기에는 물이 빠져서 외곽의 다리는 다리목이 앙상하게 들어난다. 내가 본 우 뻬인 다리도 다리목이 앙상하게 들어나 보였다. 다리 밑에서 사진을 찍으니 한결 멋지다.  이 곳 호수에서 잡힌다는 게 튀김과 새우 튀김으로 맥주 한병을 마시고 대낮부터 다리가 풀리면서 헤헤거려졌다.

  우 뻬인 다리에서 우리는 한 옛도시 잉와(아바)로 갔다.

  잉와로 건너가기 직전의 선착장 식당에서 미얀마식 점심을 먹고- 이 집 정식은 얼큰한 것이 우리 입맛에 맞았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니 마차들이 늘어서 있다.  마차를 타고 돌아보는 잉와는 정말 아름다웠다. 터널을 이루는 가로수 숲길도 좋고, 흰새들이 아름다운 들판도 좋고, 간혹 나타나는 성벽,사원들도 좋았다.

  잉와는 1364년에서 1841년까지 미얀마의 수도였다. 이 곳엔 사원들과 그 당시의 정부건물들과 높이 솟은 망대가 있었다. 입장료는 10불이지만 우리는 입장료를 아끼기위해 표검사를 안하는 사원-무너진 듯한 모습이지만 매력적인-하나와 전망대 하나를 올라가 보았다. 이 전망탑에서는 건너편 시가잉의 흰탑들이 빼곡한 언덕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두시간 동안 한가롭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옛도시를 다니다보니 만들레이의 혼잡함속에서 부대꼈던 마음이 씻겨나간느 듯하다. 비록 입장권을 안사 다른 번듯한 사원들을 안 보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이미 바간에서 사원들을 볼만큼 보지 않았던가?

  이 전망대에서 끈질기게 마차를 따라오는 소녀에게 종도 사고 옥목걸이도 샀다. 잉와에서 배를 타고 나와 다시 택시를 타고 우리는 선착장 옆의 큰 사원에 올라 다시 한번 잉와와 시가잉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다.

  다시 돌아온 만들레이는 여전히 혼잡함 그 자체였다.

  가든 호텔에가서 짐을 찾고 대충 먼지를 터는 수준으로 세수를 했다. 로비에 앉아 픽업 버스를 기다리다 인조이 미얀마 저자 류영수씨를 만나 한담을 나누다.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미얀마 여행중이었다.

  약속시간 보다 1시간이나 늦게 온 픽업버스(버스가 아니라 트럭이었다.)는 온 동네를 돌고 돌아 20여명의 승객을 빼곡이 태우고 버스 정류장 바로 그 버스앞까지 태워다 주었다. 버스는 7시 30분 정확하게 출발하고..

  버스는 휴식을 위해 두 번 멈추면서 산길을 돌아 돌아간다. 창문이 자꾸 열리면서 한기를 느끼게 하는 버스다. 그렇지만 물 한병씩을 주었고 좌석도 넓어 비교적 편안한 버스였다.


1월 15일(화)

☼ 교통비: 낭쉐→인레 티크우드 게스트하우스 택시-4,000짯

   간식 ; 만두,토마토 등-1050짯, 12년산 럼주-3500짯

   숙박비: 12(6)불

???? 티크우드게스트 하우스에서 휴식→강변 쪽 시장→ 마을 산책


버스는 새벽 4시 10분 생각보다 빨리 쉐낭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찻집에 앉아 7시 픽업 트럭이 오길 기다리려 했으나 날씨가 상당히 쌀쌀했다. 그냥 1인당 4,000짯을 주고 봉고에 올라타 티크우드 게스트하우스로 봉고안에서 조수는 계속 다른 숙소를 추천하며 그곳에 가기를 강요한다. 티크우드 게스트하우스 험담을 하면서.. 그러나 우리는 단호히 티크우드를 고집하였다.

  새벽인데도 티크우드에선 딸(댕기)이 나와 문을 열어주더니 정신업이 수다를 떨며 방을 보여준다. 2층방이 좋아보였으나  트윈에 20불,15불씩을 불러 1층의 12불짜리 방으로 결정하였다.

  방은 좁고 답답했지만 욕실이 청결하고 더운물이 잘 나온다. 뜨거운 물 샤워로 야간버스의 피곤을 풀 수 있었다. 한잠 자고나서 아침을 먹으러 갔다. 샨스타일 누들-풀죽에 국수를 넣은 모양새인데 별로다.-과 김치 그리고 오렌지,바나나,커피,차 꿀 등이 푸짐하게 나왔다.  아침식사 후 웬일인지 좀더 크고 밝은 방으로 바꾸어 주겠단다.  당근 바꾸고... 다시 잠에 들고 13시 30분쯤 일어나 주섬 주섬 챙겨 동네 산책을 나갔다.

  해변쪽으로 꽤 큰 시장이 있어 그 곳에서 만두도 먹고 국수도 먹고 토마토와 대추야자 열매를 사면서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양곤행 비행기표를 알아 보았으나 숙소에서 제시한 가격보다 싸지 않다. 내일 할 보트 투어도 알아보기만 하고 말았다. 내일 아침에 선착장에 가서 딜을 해야겠다.

 황샘의 배탈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2층의 폼나는 거실에서 빈둥거리며 책도보고 일기도 쓰면서 휴식을 취하다.

  오후 5시 다시 동네 산책을 나갔는데 차도 없고 고요해서 산책하기 딱 좋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인 선착장 근처에서 제법 큰 슈퍼를 발견하여 들어가 보니 운 좋게도 그 곳에 12년산 럼주가 있어 냉큼 사고 만다. 돌아오는 길에 명랑하고 해맑게 포즈를 취해주는 어린 비구승들을 만나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 저녁은 인천 공항에서부터 가져온 신라면을 끓여먹기로 하였다.

  숙소 리셉션에서 양곤행 비행기표를 예약하는데 자꾸 내일 보트투어를 하라고 강권하기에 대답을 안하니 한국여성 한명이 함께 하기를 기다리니까 나누어서 하란다.  그 사람의 방이 어디냐고 하니 방 번호를 알려주어 찾아가 보았다. 만나보니 바간에서 만났던 여스님이었다 그 스님도 자기도 보트를 이 곳에서 계약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했다고 자꾸 강권한다고 하며 불쾌해 한다. 가격도 비싸고.. 우린 스님과 함께 내일 아침 선착장에서 스님이 낮에 말로 계약한 보트맨에게 보트 투어를 하기로 하였다.

내일 일정을 확정 짓고 나서 부엌에 가 라면을 끓여 먹겠다고 하니 자기들이 끓여 가져다 주겠단다. 이들 스텝들하고는 아까 낮에 즉석사진을 찍어주면서 친해졌다. 모두가 성실하고 선량한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끓인 라면을 그릇에 잘 담아 밑반찬과 함께 방으로 옮겨주는 친절까지..

  아까 산 럼주를 개봉하여 라면 국물과 함께 마시니 별미가 따로 없다. 이 우연히 발견한 12년산 럼주는 향기도 좋고 넘어가는 느낌이 매끈하다. 미얀마산 럼주에 대한 칭찬이 인터넷에서 널려 있더니... 값싸고 왠만한 양주 못지 않다고... 역시다.

 럼의 향기와 도수에 취해 인레 호수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 미얀마에서 유럽 관광객들이 제일 좋아하는 인레 호수는 샨스테이트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 이기도 하다.  이 곳은 해발 875m인 산정호수이고 길이가 22km, 폭이11km인 거대한 호수이다. 우기에는 길이와 폭이 더 늘어난다고 한다. 샨 스테이드는 고원 산악 지대라 여름철에도 비교적 선선하다.

 

        

인레호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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