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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순수를 맛보다

미얀마 1

 

 

불심의 나라 미얀마


답사 시기 : 2008년 1월 5일~2008년 1월 23일(19일간)

답사 경로 : 양곤→바간→만달레이→인레호수→양곤→타이완

답사 비용 : 항공권-739,800원

          미얀마 비자비-45,000원(시간이 없어 대행사에 맡김,직접하면 20,000원)

         현지에서 쓴돈(선물비,국내선 비행기값 포함) :총 590불

                                  총액 : 1,354,800원

답사 내용 :

  몇 년전부터 꾸준히 여행하기를 갈망했던 미얀마를 향해 드디어 떠난다.

불교의 나라, 순수함과 선량함의 나라!

또 군부독재가 백성을 괴롭히는 나라!

인터넷에서 바간의 오래된 불교유적의 사진과 인레호수의 아름다운 정경을 훔쳐보고도 몇 년동안 망설였던 것은 내가 그곳에 가서 쓰는 돈이 결국은 군부를 살찌울거라는 염려에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갔다온 분들의 넘치는 칭찬과 그래도 자꾸 가서 외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미얀마 백성들을 일깨우는 것이라는 생각에 한 표 실으면서 난 마침내 떠나는 것이다.

계획상으로는 2007년 12월 31일에 출발하여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급성 요도염 입원으로 출발일자를 연기 2008년 1월 5일 난 출발했다.



1월 5일(토)

8시 40분 하안동 우체국앞 공항버스 탑승, 13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이륙, 16시 타이완 도착,(우린 내일 새벽에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위해 시내로 나가 호텔에 묵는 대신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공항은 한산하고 호젓했다. 편의점과 스타벅스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공항 구석의 의자들을 붙이고 눈을 붙이다)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에서 비질하는 여인들-일정한 시간에 이렇게 일렬로 서서 비질을 하는데 이것도 볼거리다.

 

1월 6일(일)

☼환전-100불(1불;1230k)

  택시비-5불, 숙박비-11불, 입장료-쉐다곤;5불,점심,저녁,간식-4000k

  양곤→바간 비행기 티켓-90불+1000k

?????양곤(보족시장,쉐다곤 파고다, 쉐지곤 근처의 야시장 탐방)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간이 세수를 하고 짐을꾸리고 05시 40분에 체크인, 07시 40분 비행기 탑승 후 이륙. 영 꽝인 기내식을 먹고 비몽사몽간 잠자다보니 양곤이다.

10시 40분 양곤도착. 거의 하루이상을 걸려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 왔다. 싸구려 비행기를 이용하는 승객이 감안해야하는 일정이었다. 도착한 미얀마 공항은 신청사로깨끗하고 현대적이며 입국심사는 간단하고 편리하였다. 도착하자마자 만나는 사람들의 미소가 환상적이다.

  역시나 양곤의 기후는 더웠다. 활주로 안에도 삐끼들이 들어와 우리를 정신없게 하고 거기에다 더운날씨까지 사람을 홀려 우리는 거의 무방비상태로 택시에 오르고 말았다. 택시를 타고 한국사람이 운영한다는 레인바우 호텔로...  더운 날씨에 허덕이다. 잠시 쉬고나서 오늘 해야할 일을 하러 호텔을 나선다. 호텔에다 내일 떠나는 바간행 비행기 티켓 예약을 부탁하고 우린 택시를 타고 환전을 하기위해 양곤의 최대 시장인 보족시장으로 갔다. 보족시장은 겉으로 보기엔 그저 그런 시장이었으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목공예품,금은시장,신발가게 등 물산이 풍부한 시장이었다.

  시장의 메인 건물은 외관이 멋스러운, 꽤 오래된 건물이었다. 시장안 삐끼를 따라가 어느 보석가게에서 환전을 하고나니 출출하다.

  이리 저리 둘러보며 먹거리를 찾다가 노천에서 모힝가라는 메기탕에 넣은 국수를 먹다. 약간 느끼한 쌀국수이나 고춧가루를 넣어 먹으니 먹을만하다. 무료로 주는 발효차가 입안을 개운하게 헹구어 준다.

 배를 채우고 나서 시장의 이곳 저곳을 어슬렁거리다. 양곤의 하이라이트인 쉐다곤 파야로 향하다. 쉐다곤 파고다는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미얀마는 흔히 황금의 땅이라고 불린다. 어디를 가나 높게 솟아 있는 황금색 파고다 때문이다. 쉐다곤 파고다는 양곤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위치에 있다. ‘쉐’(she)는 미얀마어로 ‘황금’(gold)이란 의미이고, ‘다곤’(dagon)은 ‘언덕’이란 뜻이다. 즉 ‘황금의 언덕’이다.

  쉐다곤은 60m높이 정도의 언덕을 미리 만든 후에 그 위에 지어진 파고다로 높이가 99.36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이다. 미얀마는 우기에는 4,000mm가까운 많은 비가 내리기 때문에 침수를 피하기 위해서 높은 언덕을 만든 후 사원과 파고다를 건설하고 부처님의 불발(머리카락) 사리탑을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쉐다곤 파고다의 면적은 약 만 평 정도이며 황금의 파고다를 중심으로 빙 돌아가면서 작은 탑과 사원 불상들이 모셔져 있었다.

  미얀마사람들이 평생에 한번 와봐야 할  사원이라는데...

  이 쉐다곤 파고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부처님 생존 당시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2500년 전(B.C800년) 부처님 생존 당시 인도의 부다가야에서 부처님이 미얀마에서 온 상인 두 명에게서 벌꿀을 공양받은 후 자신의 머리카락 8개를 뽑아 주었다고 한다. 두 상인은 미얀마로 돌아와 오깔라파 당시 왕에게 부처님의 머리카락 8개를 바쳤다. 오깔라파 왕은 신신전에 고이 부처님의 머리카락을 보셨으며(지금의 쉐다곤 파고다 초기 탑),오깔라파 왕조 3대 왕인 바냐우가 1372년에 지금의 쉐다곤 파고다 건립을 시작했다. 파고다는 부처님이 인도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드신 후에 조성되기 시작했는데, 쉐다곤 파고다만이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부처님 생존 시에 세워진 탑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때 언덕을 만들기 위해서 흙을 퍼낸 자리가 지금의 깐도지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쉐다곤 파고다 바로 옆에 있는 커다란 깐도지 인공 호수는 그래서 더욱 전설의 신빙성에 무게를 실어 준다.

  커다란 황금빛 쉐다곤 탑 둘레에 부속건물들이 있고, 사람들은 부처님앞에서 누워서 뒹굴거리며 쉬고 있다.

음식물을 먹기도하고.... 사원이 위엄이 있고 중생들을 경직되게 만드는 장소가 아닌 듯. 이 분위기가 넘 마음에 든다. 이 후 우리도 이런 미얀마 절들의 장점을 십분 이용해 뒹글거리며 쉬게되었다. 사원은 이제 귄위로 우리와 같은 중생을 누르는 것이 아니고 그 품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하게끔 하는 곳이었다. 그 안의 부처님은 순진하고 친근하고... 이런 부처님의 모습이 정녕 우리가 바라는 부처님의 참 모습이 아닐까?

  탑둘레의 플래닛에서 물을 부어 소원을 빌고 남들이 많이 모여 기도하는 곳에서 기도도 해보고... 맨발의 자유로움도 느껴보고.. 이곳 저곳 흩어져있는 순례객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참 흥미롭고 편안한 장소였다. 17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입구로 내려오려는데 일렬로 선 사람들이 빗자루를 이용해 바닥청소를 하는 모습도 볼거리다. 쉐다곤을 나와 골목길 한 현지인 식당에서 미얀마 정식으로 저녁을 먹고 걸어내려오니 야시장이 한창 성업중이다. 옥수수,코코넛전병 등을 사서 먹고 물어 물어 숙소로 돌아오다. 숙소에서 미얀마 맥주로 미얀마에서의 첫밤을 기념하다.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 

 

1월 7일(월)

☼택시비(레인보우호텔→공항,나웅우바간공항→숙소(메이 카라))-5,000k

  마차비-2,500k

  숙박비-12(6)불 

  기타(기부금,간식,선물)-3,000k     바간입장료-10불

?????  양곤→바간 나웅우 공항→나웅우 마을의 메이 카 라 숙소→쉐지곤 파고다→짠시 타우민 동굴 사원→구바욱지 사원→틸로민로사원→우팔린테인사원→아난다사원→Thay Min사원 꼭대기에서의 일몰→미얀마 전통식당에서의 미얀마 뷔페→숙소

  


새벽 4시에 일어나느라 12시경부터 자다 깨다를 반복하니 피곤이 영 풀리질 않는다. 4시 15분. 짐을 꾸려 로비로 내려오니 아침이 준비되어있다. 토스트,치즈,달걀후라이,파파야쥬스 등 나름 성의있고 푸짐하다.  택시를 타고 양곤공항으로 갔다. 06시 비행기이륙.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는 낮게 떠서 주변을 감상할 수 있다.

  7시 25분 바간 나웅우 공항 도착.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메이 카 라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에어컨,냉장고, 뜨거운 샤워가 가능한 욕실. 그리고 반들 반들한 티크나무 바닥.

  직원들은 친절하고 앞마당이 딸린 1층방은 깨끗하고 조용하다.

  진하고 고소한 커피를 대접받고 뜨거운 샤워를 하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고 피곤이 풀리는 듯하다. 13시까지 휴식.

  13시 어슬렁거리며 숙소를 나와 도너츠와 짜이로 점심을 대신하고 쉐지곤 파고다로 가다.  

  쉐지곤 앞에서 따나까-미얀마 여인들과 아이들이 바르는 자외선 차단제, 나무를 갈아 바른다.-를 얼굴에 발라보기도 하고 선크림처럼 된 따나까 한통을 사기도 했다.

  오늘 아침 공항에서 구입한 10불짜리 입장권으로 이제부터 바간에 머물러 있는 동안  바간의 모든 사원을 그냥 들어가도 된다. 엄청 마음에 든 제도로 쉐지곤도 마찬가지로 이 표 하나로 들어갈 수 있다.

  ‘승려의 땅’이라는 이름의 이 아름다운 제다는 아노라타 왕때 건립하기 시작하여 짠시타 왕의 통치기에 완성한 사암으로 만든 탑이다.

  쉐지곤은 스리랑카의 캔디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의 치사리를 모시기 위하여 건설한 네 곳 중에 한곳이다. 쉐지곤은 이러한 종교적인 의미 말고도 스투파 양식으로도중요하단다. 이 종 모양의 스투파는 실제로 미얀마 전역에 걸쳐 세우는 스투파의 표본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쉐지곤은 아노라타 왕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37명의 낫(정령)이 안치된 곳으로도 유명한데 지금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대기에는 아노라타 왕이 보석으로 장식한 흰 코끼리에 이마뼈를 싣고 경건하게 절을 한 다음, “코끼리가 앉아서 쉬는 곳에 신성한 유적을 안치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코끼리가 무릎을 끓고 쉬는 곳에 아노라타 왕은 쉐지곤을 짓기 시작했는데, 그가 죽기 전까지 3개의 테라스밖에 완성하지 못했단다. 그 뒤 왕의 승려였던 신 아라한은 짠시타 왕에게 쉐지곤을 완성하도록 재촉하고, 짠시타 왕은 그의 모든 백성을 동원하여 동쪽에 있던 투위윈산에서 돌을 채취하여 사원을 건립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어제 쉐다곤을 봐서일까? 쉐지곤은 약간 흥미가 반감되었다. 그래도 군데 군데 치성을 드리는 아낙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쉐다곤에서는 그냥 맘편히 다녔는데 이곳 쉐지곤에서는 볼펜과 사탕을 원하는 아이들 때문에 맘 편히 서성거리고 뒹글 수가 없다.

  쉐지곤을 나와 한 스님의 안내로 바로 옆 짠시타우민이라는 동굴사원으로 가니 동굴이라기 보다는 벽돌로 만든 건물이다. 바간시대에는 이 곳을 승려의 거주지로 사용했다고 한다.

 내부가 아주 깜깜하여 후레쉬를 사용하지 않고는 둘러 볼 수가 없었다. 후레쉬를 빌려 들어간 내부는 어둡고 긴 통로의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벽화와 가운데 몽고군 복장을 한 사람들이 보였다. 그것이 바로 1287년 이후 바간을 침입한 몽고인들의 흔적이란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당시 이곳을 미엔이라 기록하고, 미엔과 싸우는 모습과 도시의 모습, 패망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그 기록에 의하면 공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국경을 침범한 것이 몽고족의 침입을 재촉했다고 한다. 미엔의 코끼리 군단은 기동력과 성능 좋은 활을 가진 몽고군에게 대패했다. 그 뒤 나라타하파티 왕이 수도에서 성급히 도주한 것이 바간의 몰락을 불러왔다. 다른 거대한 사원들에 비해 이 사원은 방문객이 거의 없어 입구가 잠겨있는 경우가 많다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바로 입구에서 기념품 판매를 하는 청년이 있어 그 청년이 문을 따주고 후레쉬를 비추어 주어 들어갈 수 있었다. 말없이 후레쉬를 비추어주는 청년의 모습이 선량하다. 나오면서 약간의 기부금을 주니 무척이나 쑥스러워한다.

  별반 말없이 우리를 안내해 준 스님을 따라 다음에 간 곳은 구바욱지 사원이다. 구바욱지 가는길에 쉐지곤의 긴 회랑이 보이고 바간의 전통적인 도자기를 구워 파는 상점이 주욱 늘어서 있다. 구바욱지 사원앞의 현란한 남국의 꽃들이 맑은 하늘과 어울려 아름답다.

이 사원은 사각형으로 된 주 건물 위에 한 개의 단이 더 올라가 있고 그 뒤 건물에 사각형의 피라미드 탑이 서 있다. 이 사원의 낮은 외벽은 동쪽과 서쪽으로 출입문이 나 있다. 사원 앞마당에는 한 사내와 어린 아들이 꽃을 가꾸고 있었고 우리가 가니 환하게 웃어준다.

구바욱지에서 다시 쉐지곤 회랑쪽 사거리로 나와 마차를 5,000k에 흥정하여 틸로민로,우팔리테인 아난다 사원을 보러가기로 하였다. 마차는 흔들 흔들, 느릿 느릿 가고 마차위에서 주변의 풍광과 한없이 널려있는 사원군들을 감상하며 가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시간도 없고 마차꾼이 기다리기도 하여 각 사원을 후딱 후딱 보고 마차꾼이 근사하다고 하는 일몰 장소로 갔다. 각 사원의 주변의 분위기만 느끼고 내일 천천히 다시 보기로 하였다.

Thay Min이라는 작은 사원의 꼭대기에 올라가니 아슬아슬하게 해가 떨어지려 하였다. 넓은 평원에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사원들, 그 한쪽에서 붉게 물들며 떨어지는 해가 마음을 안정시키고 착 가라 않는 감동을 선사하였다.

  마차꾼이 금새 어두워진다고 서두른다. 감상에 젖어 있을 새도 없이 서둘러 마차에 타서 다시 흔들 흔들 돌아오는데 서울에서의 일이 까마득하게 아련하다. 스쳐지나가는 옆 마차의 서양인에게 헤프게 웃어주고 손 흔들어주고...

  마을입구에서 마차꾼이 소개해 준 미얀마 전통 식당에서 무려 23가지나되는 반찬이 있는 미얀마식 부폐를 배터지게 먹었다. 맥주도 한병하고..2,500짯에 이런 호사를 부리다니.. 식사 후 후식도 견과류와 생과일 등 다양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올려다 본 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밝아 보인다. 한국을 떠난 지 이틀밖에 안되었는데 무지 긴 세월이 지난 듯하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엄청 긴 것 같구..

  우리가 "묵은 메이 카 라"는 뜨거운 물 샤워가 일품이었다. 샤워 후 오랜만에 단잠에 빠져들었다.

 바간에서 만난소년,이소년은 따나까- 미얀마 여인들과 아이들이 바르는 천연 자외선 차단제, 나무를 갈아 만든다.-를 바른 얼굴로 수줍게 웃고 있다.

 

1월 8일(화)

☼자전거 대여료- 1000k

  식비(점심,저녁)-1800k

  기타(간식 및 기부금)-2,200k

  숙박비-12(6)불

????? 타라바게이트→슈구치템플→탓빈뉴템플→응아제나다운템플→낫라웅짜웅템플→마하보디템플→고도팔린→부파야템플→역사박물관 거치고→아난다사원→우팔리테인템플→Oak-kyaung-gri→숙소앞 식당


  오늘은 자전거투어를 선택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자꾸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건 별루다. 마부라도 말이다.  느낌이 있는 곳에서 마음껏 쉬며 이 넓디 넓은 옛 유적지를 어슬렁거림의 미학으로 담아올 예정이다. 황샘은 자전거가 힘에 부칠까봐 조금 주저했지만 곧 동의했다.

일단 7시쯤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식사는 과일과 오믚렛,커피,토스트 등으로 나름 성의 있었다. 미얀마의 좋은 점은 유럽여행에서처럼 숙소에서 항시 아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아침이 제공되지 않았을 때. 무엇을 먹을까 어디에서 먹을까로 항시 고민했는데......

  일부 배낭족들은 숙소보다는 그 숙소의 아침이 얼마나 잘 나오는 가를 보고 묵을 곳을 선택하기도 한다.

 메이 카 라의 주인인 Miss cho의 상세한 안내로 오늘의 일정을 대충 그려보고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출발했다.

  처음 출발은 다소 비틀거렸으나 자전거 길은 생각보다 좋다.  마차도 나름 운치있어 좋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유적지를 다니는 것은 자유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마차보다 빠르기도 하고....

  어느새 유적지 입구의 우팔리 테인과 아난다 사원을 지나쳐 타라바 문에 도착하였다.  --우팔리 테인과 아난다는 돌아오는 길에 상세히 보기로 하였다.--

  타라바 문앞에서 탁발승을 만나 사진을 찍자고 하니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포즈를 취해준다.

 삔비야(846∼878)왕은 그가 왕이 되고 3년뒤인 849년 현재의 올드 바간 지역에 성벽을 세워 도시를 건립했다고 한다. 이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성벽은 높이 4m정도였고, 동서남북 각 방향으로 3개씩 모두 12개의 문을 가지고 있었다. 타라바는 이 성벽의 이름이다. 현재 북쪽의 일부와 서쪽의 성벽은 아예와디강의 범람으로 휩쓸린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문은 7개로 북쪽에 하나, 동쪽과 남쪽에 3개씩 남아 있지만, 훼손이 심해 그 흔적을 찾기란 쉽지않다. 그나마 동쪽의 정문이 보존 상태가 좋아 타라바 문이라 하면 이 문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문도 이 동쪽의 정문이고....

  옛문서에는 이 문이 자주 거론되고 있단다. 이 성문에 나쁜 정령이 올라가 있으면 왕이 아프거나 죽음을 당하고, 덕이 놓은 승려가 도시에 거주하고 공경을 받으면 나쁜 정령이 떠난다고 한다. 이 문 바깥쪽 좌우측에는 제단이 보였는데 이곳에는 마하기리 낫(위대한 산의 정령-왕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남매상)이 모셔져 있었고 지금도 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 모두 소박한 소망을 빌고 있겠지...

  낫의 모습을 보려고 가까이 가니 사람들이 순수하고 맑은 미소를 보여준다. 미얀마에서 가장 반한 것 중의 하나, 사람들의 미소이다.

문을 지나니 금방 슈구지 템플이다. 역시나 입구엔 기념품 판매상들이 가득하고, 슈구지 바로 옆에 탓빈뉴 템플이고,..우린 슈구지를 지나쳐 탓빈뉴 템플로 갔다.

  62m높이의 탓빈뉴 사원은 바간에서 가장 높은 사원이다. 멀리서도 흰색의 웅장한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당당하며 중세 유럽의 성채를 연상케 하였다.

  옛문서에 알라웅시투와(1112∼1167)이 건립했다고 기록된 이 사원의 이름은 “모든 것을 아는 부처”라는 뜻으로, 미얀마 어로는 탓빈뉴탄얀이고, 팔리어로는 사바누타나나이다.  이사원은 중기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로 꼽히고 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이곳에는 스투코 장식이나 벽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바간의 초기 양식은 파토가 동굴식이고 수평적인 면에 치중한다면 중기 양식으로 구분되는 이 사원은 수직적인 면이 강조된 2층 구조이다.

  이 사원의 본존불은 아래층 벽감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층에 있단다.

우리는 혹시나 위층으로 올라 갈 수 있을까하여 동쪽 현관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현관 안에는 부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치형 문이 나 있고 그 양쪽에 두 명의 수호 낫 형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여행이 안전하기를 원하는 기도를 절을 하며 드렸다. 중앙의 아치형 문에 계단이 있어 위층으로 올라 갈 수 있다는 데 지금은 막아놓아 아쉽게도 위층으로 올라 갈 수 없었다.

  탓빈뉴 정문 오른쪽(북동쪽)에는 작은 가요초(gayocho) 또는 기록(셈)탑이 있었다. 탓빈뉴에 사용된 벽돌 수를 세기 위하여, 탓빈뉴 제디의 건설에 만개의 벽돌을 쓸 때마다 벽돌 한 장씩을 쌓아 이 탑을 세웠다고 하였다. 탑은 3~4m규모였는데 탓빈뉴의 거대함을 느껴볼 수 있는 탑이었다. 너무 더워 탓빈뉴의 그늘을 위안삼아 이 가요초를 바라보며 썬크림을 바르며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슈구지로 들어오면서 길은 비포장 모랫길이라 자전가 타기가 힘들어졌다.

  슈구지에서부터 만난 꼬마가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면서 우리를 다음 장소인 낫라웅짜웅으로 안내해 주었다.

  낫라웅짜웅은 오늘날 바간에 남아 있는 유일한 힌두교 사원으로 비쉬누 사당이다. 어쩐지 인도에서 익숙해진 사원의 모습이었다.

  힌두교는 바간 왕국 이전의 퓨 시대에는 일반적인 것이었고, 그 영향은 바간 왕국의 설립 초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사당의 이름인 낫라웅짜웅이라는 뜻은 ‘정령들을 가둔 사당’이라는 것이다. 이 이름은 불교와 대치되는 낫(정령)을 이 곳에 가두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위해 붙인 것 같다. 미얀마인들은 아노라타 왕이 힌두교의 신들을 포함하여 토착인들이 믿던 낫을 이 사원에 몰아넣고, 순수한 상좌부 불교국을 건설하려 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사당은 아노라타 이전 또는 그 당시에 미얀마인들이 건설한 것이 된다.

 다른 사원들에 비하여 규모도 작고 눈에 띄는 건물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 낫라웅짜웅은 이 동네 꼬마가 아니면 찾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다른 사원들보다 유난히 손상이 심하다. 이는 바간 시대에 많은 불교사원을 만들 때 유일한 힌두 사원이었기 때문일테다.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도 스투코 장식은 모두 없어지고 벽돌만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낫라웅짜웅 바로 앞에는 항아리 모양의 응아줴나다웅이 있었다.

  이 이름은 ‘응아줴의 귀걸이’하는 뜻인데, 아마 이 탑의 특이한 형태 때문에 붙여졌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탑은 바간의 전설적인 장사인 응아줴의 귀걸이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응아줴나다웅을 밖에서 둘러보고 우리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마하보디사원으로 갔다. 

  나다웅미아왕(1210∼1234)이 건립한 이 사원은 인도의 보드가야에 있는 마하보디 사원을 모방하고, 이름도 똑같이 붙였단다. 이 곳 마하보디사원 앞에도 인도의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사원 앞처럼 보리수 나무가 서있었다.

  벌써 오래된 인도의 보드가야 여행의 단편들이 영화처럼 되살아 났다. 그곳의 오체투지하는 신자들의 모습이 이 곳엔 없지만......

  이 사원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탑의 본체는 7층이다. 탑의 본체는 가파른 피라미드 모양이고, 각 면에는 한 층에 44개씩의 벽감이 나 있다. 바간에 있는   마하보디 사원의 탑이 보드가야 것과 다른 점은, 사원의 하단을 구성하고 있는 사각형의 주 건물은 바간 것이 

더 높고, 탑 본체는 보드가야 것이 높고 가파르다는 것이다. 또한 첨탑의 모양 역시 달라, 보드가야 것이 작은 종이 올라가 있는 형태라면 바간의 첨탑은 가파륵 경사져 솟아 있다. 첨탑 끝까지 높이가 43m이다.  이 제디 전체에는 465개의 벽감이 있고, 그 안에는 저마다 다른 모습의 부처를 모셨다고 한다.  

  마하보디 사원에서 유심히 보아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중앙사원인 탑과 수도원 건물의 높이이다. 평지에 세운 탑과는 달리 수도원 건물은 평지보다 낫게 조성하였다. 이렇게 낫게 짓다보니 건물에 배수시설이 필요하여 탑과 수도원 사이와 뒤쪽에 배수시설이 있다.

  사원 쪽에서 흘러드는 물이 수로를 통해 집수장으로 모여 지하 배관을 통해 밖으로 빠져 나간다. 벽돌과 사암으로 만든 이 배수로 시설은 양쪽으로 벽돌을 들여 쌓아서 공간을 확보하였는데 밖에서 보면 완벽한 V자형으로 조성했다.

이렇게 만든 배수로는 지하 배관이 잇는 곳에서는 사각으로 만들어 조형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아름답게 보인단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모습까지 보지는 못하였다.

  더위와 자전거 타기에 힘이 딸린 황샘을 위해 우리는 좀 더 쾌적한 장소로 옮겨가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대충 외부의 모습만 둘러보고나서 샛길을 따라 그리고 그 꼬마를 따라 고도팔린으로 갔다. 고도팔린에서는 여기까지 안내해준 꼬마에게 미안하지만 볼펜을 하나주고 껌을 나눠 씹고 작별을 고할 수 밖에 없었다.

  무조건 시원한 실내로 들어가서 쉴만한 곳을 물색하다 보니 부처앞에 오래된 티가 있는 공간을 찾았다. 황샘의 숄겸 담요를 깔고 앉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우리는 그 곳에서 눕기도하고 책도 읽고 간식도 먹고 일기도 쓰면서 두시간 가량을 쉬었다. 시원하고 조용하고..... 아무도 우리가 그 곳에서 쉬는 것에 간섭을 안한다. 미얀마 절의 이런 점들이 넘 좋다. 부처님 앞에서 벌렁 벌렁 눕기도하고 먹기도 하고.....우후후

 우리의 행복한 휴식처인 이 고도팔린은 바간의 후기 양식 사원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사원이다.

  나라파티시주 왕(1173∼1210)에 의해 술라마니 사원 다음에 건설되었다. 이 사원은 나라파티시투 왕 때에는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가 그의 아들 나다웅미아(틸로민로왕:1210∼1234)가 완성했다.  1975년 지진으로 크게 훼손되었으나, 지진 뒤에 수행한 가장 큰 보수 공사라 할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보수했다.

  이 사원의 이름인 고도팔린이란 ‘경의를 표하는 단’이라는 뜻이다.

  이 곳에서 충분히 쉰 다음 우리는 내부를 둘러보고 외부도 한바퀴 돈 다음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아예야와디강이 내려다 보이는 부파야로 갔다.

 미얀마의 대표적인 강인 아예야와디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안다만 해에 이르러서는 거대한 삼각주를 형성한다. 아예와디강은 거의 수직으로 내려오다가 중간 부문에서 두 번 방향을 바꾸는데, 바간은 아래쪽의 휘어 도는 부분에 자리하고 있다. 부파야는 바로 이 강물이 휘어도는 지점의 바로 앞에 있는 것이다.

  강 쪽을 향해 높은 절벽이라서, 사원에서는 아예야와디강이 넓게 펼쳐저있고 저 쪽 아래로는 아예야와디강을 이용하여 양곤과 만달레이를 오가는 선박의 선착장이 보인다. 우리도 배를 타고 만달레이로 갈 예정이기에 선착장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 부파야 사원은 전망이 좋아선지 현지인들도 상당히 많이 찾는다.

 이 부파야 옆 노천식당에서 모힝가와 볶음국수를 먹었는데 유원지라 그런지 바가지다. 

  점심을 먹고 역사박물관을 거쳐 다시 돌아오는 길에 아난다 사원에 들어가 꼼꼼히 보았다.

  밝은 햇빛을 받아 하얗고 황금색으로 빛나는 아난다 사원은 미얀마의 대표적인 사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초기 건축물에 속하면서도 투박하지 않고 아름다운 외형과 높지도 넓지도 않은 완벽한 비율을 적용한 구조 등으로 바간 건축 양식의 새로운 지평을 연 사원이다. 바간이 버려지고 나서도 끊임없이 신앙의 대상이 되어 관리된 이 사원은 오늘날까지 가장 사랑받는 사원 가운데 하나이다.

  유리궁의 연대기에 의한면, 어늘 날 8명의 성자가 짠시타 왕(1084∼1113년)의 궁전을 방문했다고 한다. 왕은 그들의 바리에 음식을 보시하며 어디서 왔는지 물었고, 그들은 간다마다나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간다마다나는 불교의 우주관에 나오는 곳으로, 우주가 멸망할 때나 마른다는 아나바타프타 호수의 한가운데 있는 섬이다.

  이곳에는 성불은 했지만 설법을 하지 않는 벽지불들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를 기다리는 열락의 땅이라고 한다. 불심이 강했던 왕은 그들에게 우기에 이용할 수 있는 수도원을 만들어 주고 왕궁으로 초대했으며, 그들이 머무는 3개월 동안 날마다 음식을 제공했다. 어느 날 짠시타가 간다마다나에 있는 난다뮬라 동굴을 보고 싶다고 말하자, 8며의 성자들은 놀랍게도 그들의 능력으로 나다물라 동굴을 짠시타왕 앞에 가져왔고, 짠시타는 그 동굴을 모델로 난다라는 이름의 사원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이 난다라는 사원이 바로 오늘날의 아난다 사원이다. 18세기 이전에는 난다라 불렀지만, 19세기부터는 아난다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황샘은 기진맥진하여 누워 쉬고 난 내부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네 방향으로 돌출된 현관으로 이어지는 주랑은 서로 다른 기부자들에 의해 새로 덧붙여졌다. 주랑의 벽 위쪽에는 고타마 부처의 생애를 묘사했는데 특이한 점은 복장이 미얀마식이라는 것이었다.

 돌출된 현관의 안쪽에는 4개의 거대한 기둥이 상부를 지탱하고 있다.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 양쪽에는 수호 형상을 세웠다. 이 형상들은 머리에 높은 모자를 쓰고, 목걸이, 팔찌 등으로 장식했다.

  주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티크로 만든 거대한 나무문이 있다. 이 문은 콘바웅 왕조 때 새로 만든 것으로, 식물 장식을 한 외각 부분의 조각이 아름답고, 견고하게 짜여 진 빗살 격자는 고풍스러워 보인다.

  중앙 기둥 벽의 4면은 중앙을 아치형으로 파고, 그 안에 약 9.5m높이의 입불상을 세웠다. 이 네 입불상은 현세에서 해탈한 부처들이란다.

  북쪽의 카쿠산다와 남쪽의 카사파 상은 사원을 건살할 당시 조성한 것으로 둘다 설법인을 취하고 있다. 이 불상들은 티크나무로 만들고,금칠했으며, 바간양식으로 만들었다. 동쪽의 코나가마나불과 서쪽의 고타마불은 화재로 전소된 뒤 콘바웅 왕조 때 다시 만들어 만달레이식이다.

  동쪽의 코나가마나불은 오른손 엄지와 중지 사이에 쥐고 있는 구슬 모양이 알약과 닯았다고 하여 병자를 치료하는 다르마를 펼치고 있다고 하는데, 전통적인 불상에는 없는 무드라(수인)이다.

  서쪽에 있는 고타나불(석가모니)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시무외인의 무드라를 취하고 있다. 이 불상 앞에는 두 개의 형상이 바깥쪽을 향해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데, 왼쪽이 바간 왕국을 상좌부 불교 국가로 만든 신 아라한이고, 오른쪽이 이 사원을 건설한 짠시타 왕이다. 이들의 앞쪽에는 원통형 받침대 위에 두 발바닥이 찍혀 있는데, 부처님의 족적을 표현한 것으로 바간 시대에 만든 몇 개 되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발바닥에는 108개의 작은 정사각형을 그리고 그 안에는 상징적인 그림들을 새겼다.

 남쪽의 카사파불은 그 앞쪽의 시주함에서 바라보면 슬픈 표정을 짓고 있지만 불상을 바라보며 뒤로 가다 보면 즐겁게 웃는 표정으로 바뀐다.

 하나 하나 보물 찾기 하 듯 꼼꼼히 보니 재미있기도 하지만 체력도 소진된다.

 원기를 회복한 황샘하고 다시 한바퀴 돌며 미처 놓친 조각상들을 살펴보고 나와 건물 외관을 살펴 보니 그 크기와 섬세한 조각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자전거를 돌려 이제는 숙소로 향했다. 오는 길에 우팔리 테인으로 다시 갔으나 역시 잠겼다. 어제 간 일몰 장소 옆의 건물로 가 제대로 된 일몰을 보다.

  이 곳은 사각형의 이름없는 사원 옥상인데 유적지 상인들의 안내로 가 보니 서양관광객들이 꽤 많이 모여서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둥글고 붉은 해가 넓은 평야에 수없이 널려져 있는 옛 사원들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카메라로 이 아름다운 광경을 담고 싶었으나 카메라는 나의 이 눈과 가슴을 쫒아가지 못한다. 이래서 사람들은 더 더 좋은 카메라를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일까? 

 이 감동을 가슴에 담아가지 않고 영원히 카메라에 담아 지닐려고 하는 것도 일종의 욕심일까?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마차꾼들이 서두르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도 서둘러 떠난다.  우리도 페달을 밟고 모처럼 근사한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았으나 바간엔 아직 그런 식당들이 많지 않다. 그냥 숙소 앞 현지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


????? 바간에서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수령이 오래된 나무가 많다는 것이다. 그 나무들이 길 양편에 가로수를 만들고 그 사이로 마차가 다니는 모습은 환상적으로 멋지다. 그리고 사원마다 거느리고 있는 멋지고 당당한 나무들 정말 매력 지대로다.

????? 미얀마의 매력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 미얀마 사람들이다. 장사꾼들조차 때묻지 않아 거절하면 더 이상 따라 붙지않고 잘가라고 인사한다. 거리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예쁘게 미소지어준다.   

????? 바간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마차여행이다. 느리지만 마차위에서 흔들거리며 거리와 사원을 구경하는 맛은 또 하나의 신선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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