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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더듬는 여행 실크로드

고도 시안

 

7월 25일 목

20년만인가?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실크로드를 향해간다.

순,숙,정 이들 세명이 나의 이번 여행의 동반자이다.

새벽 4시40분에 일어나서 5시20분 은숙언니를 집앞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 광명역으로...

광명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버스 6004번이 온다.

집안일때문에 한잠도 못잤다는 숙씨. 그러나 우린 졸지도않고 내내 수다를 떨었다. 40분도 채안되어 공항도착. 아까 버스안에서도 사람들이 꽉차더니 공항도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다.

울나라 사람들이 모두 외국에 나가는 듯. 오늘은 면세점 구경할것도 없이 줄서다가 다지나간듯하다. 집에선 굉장히 일찍 떠났는데....

10시28분 비행기는 하늘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고 어딘가를 간다는 것이 얼마만이냐?

시안까지 직항. 좋다.

기대했던 아시아나의 기내식은 별로다. 고추장을 하나 얻었다는것 뿐. 와인 두잔을 얻어 마시고 잠시나마 깊은 잠에 빠졌다.

비행기는 정확하게 12시 10분에 도착하였다.

짐찾고 나오자마자 택시승강장으로 고고씽. 택시(170)가격을 협상하고 한탕하우스로 참으로 쉽게 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어이없는일이 벌어졌다. 오늘수리로인해 방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 하루만 다른 비지니스호텔로 옮겼다. 호텔은 컸으나 습하고 냄새나고 쾌적하지않다. 그렇지만 아주 나쁜것은 아니고. ..

엘리베이터는 있다.

오늘은 기차역에가서 예약해둔 기차표를 바꾸고 성곽위를 걸어보는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하련다. 기차역으로 가기전에 숙소앞 만두가게에서 홈메이드 만두를 맛있게 먹다.

집앞에서 303번 버스를 타고간 기차역은 역시나 북새통이었다. 표를 사려는 사람.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역광장이 가득찼다. 20년전과 변함없는 모습이다.

기차표를 무사히 교환하고 나서 버스(유7번)를 타고 우리가 간곳은 남문에서 올라가는 성곽. 성곽은 역시나 넓었다. 예전에 마차가 갈곳을 이제는 자전거가 다니고 있다. 입장료도 엄청올랐고(54) 날씨도 엄청 습하고 더워 성곽밑 시원한 카폐에서 더위를 식히며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또한 엄청 비싸다.

성곽위도 예전의 운치는 별로없고 마치 유원지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좋긴 좋다.

군사들의 교대식을 보고 나서 종루를 향해 걸어 복숭아 등 과일을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오다.

 

7월 26일 금

숙소를 한탕하우스로 옮기다

훨 좋음 깨끗하고..

기차역에 가서 305번 버스를 타고 병마용갱으로 가려고 했으나 숙소앞 큰도로에 세워져 있던 택시 기사가 우리를 유혹한다. 우여곡절 끝에 택시를 대절해서 오늘 하루 투어를 하기로하다

400위안으로 하루 투어.

그의 강력한 추천으로 제일 먼저 간곳은 신석기 시대 유적지인 반파 유적지였다. 실은 예전에 이 곳에 와 봤었기 때문에 패스하려고 한 곳이다. 우리 역사과한테나 의미있지 다른 과 사람들의 그저 그럴것이기에... 그러나 기사는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 하며 가기를 강권한다. 예전의 전원풍경의 반파유적지 주변은 많이 변해 있었다. 새로 올라가는 고층 아파트 들로 둘러싸인 삭막한 곳으로 변해 있었다. 유적지 내부도 많이 축소 된 듯하고...신석기 시대의 움집터만이 그대로 있을 뿐이다. 내 기억으로는 움집터 뿐만 아니라 야외 산책로도 꽤 운치있었던 거로 기억되는데... 입장료는 엄청 비싼 65위안이다.

고도 장안, 현재 서안이라 부르는 이 도시가 중국천하를 다스리던 수도로 군림하게 되기가지는 무척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안의 동쪽 반파라는 마을은 서안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지였는데, 위수 강가 황토의 단구에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건설한 계단식 마을은 1953년에 발견되어 1954년에서부터 1957년에 걸쳐 발굴되었단다.

당시 사람들은 원추형 지붕의 집에 살고 있었고 채문도기를 사용하면서 주로 농업으로 생활했다고 알려져 있다. 반파유적지에는 주거유적외에 묘지와 도자기유적,가축우리 유적,장식품과 생활용구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오늘 두번 째로 간 곳은 화청지... 기사는 무척이나 빠리 빠리하고 깔끔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얼마안있어 그는 꽤 성공한 사람이 되어있을거다.

위수평원을 가로질러 임동에 들어서면 곧바로 화청궁지가 나타난다. 택시에서 내려 화청지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수려한 여산이 정면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온천지대이고 당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약속했던 장소이니 만큼 엄청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러나 더운 날씨 탓인가? 우리에게 확 당기는 매력은 그다지 없다.

화청궁은 여산의 북록에 펼쳐진 화청지 못가를 따라 궁건물들이 배열되어 있었다.

이 화청궁은 주.진,한,수,당 등 역대에 걸쳐 황도의 이궁으로 크게 각광받던 경승지였단다.

특히 당나라 때는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누던 장소로 인구에 널리 회자되던 유명한 곳이었다.

입구 가까이 온천 목욕을 할 수 있는 건물이 있고 뒤에는 여러 궁들의 건물들이 배치되어있었다.

우리도 자연스레 이 곳을 다니면서 양귀비와 현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양귀비는 현종의 아들 수왕의 비빈 양옥환이었는데, 현종이 극진히 사랑하던 무혜비가 죽은 후 양옥환을 사랑하게 되자 도관의 여과을 삼은 후 화청궁에 초청하여 온천에 목욕하도록 했단다. 황제로부터 목욕하는 은총을 받는다는 것은 곧 비빈이 된다는 뜻이라고... 아들의 비빈을 곧바로 후궁으로 삼을 수는 차마 없으므로 일단 출가시킨 후 새사람이 되었다고 인정하고 황제의 후궁으로 삼는 궁여지책을 썼던 것이다. 이 때가 743년, 귀비으 나이 26세로 아름다움이 무르익던 시절이었으니 현종이 현혹되어 국사를 소홀이 할 만큼 농염한 미인이지 않았을까?

이 양귀비는 719년 사천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원래 구비의 선조는 서역인이라는 설이 강하다. 그의 오라버니 양국충은 서역 호선무의 대가였고, 양귀비 역시 서역 특유의 풍만하고 육감적인 당미인 스타일이었으며, 또한 그들의 선조는 서역에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현재 섭씨 43도라는 이 지역의 온천. 온천의 진원지라는 곳에서 작은 분수처럼 온천물이 나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곳에 들어가 얼굴도 닦고 손도 씻는다. 우리도 손과 팔을 닦는데 약간 시큰거렸던 손목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온천물에 팔을 닦고 다시 양귀비의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온천 욕지 뒤편 산록에 유리문이 달린 건물이 나타났다. 장개석 총통이 감금당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1936년 12월 12일 공산군을 토벌하고자 서안에 주둔하고 있던 장학량이 전승을 독려하기위해 남경에서 서안으로 와 이 건물에 묵고 있던 장개석을 감금하고 국공 내전의 종식을 요구했던 유명한 장소인것이다.

더위 때문인지 화청지에 얽힌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화청지 자체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줄줄 흐르는 땀을 식히고자 양귀비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샀다. 내가 중국어로 가격을 물었을 때는 5위안이던 것이 숙언니가 영어로 가격을 물으니 10위안이란다.  관광지에서 가격 흥정은 필수다.

화청지를 나와 우리가 간 곳은 진시황병마용 박물관이었다. 이 때가 12시가 넘어 기사한테 점심을 먹고 가자고 하니 기사가 병마용 바로 앞 식당촌으로 데려간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기사가 자기는 급한일이 있어 시안에 돌아가야 하니 아까 계약했던 400위안 말고 200위안만 달랜다. 그리고는 돌아갈 버스 타는 데를 알려주며 버스를 타고 돌아가란다.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안되어 옥신각신 했는데 나중에 알아듣고 오케이 했다.

결국 서로 윈윈이었다. 우리는 이제 기사가 기다린다는 부담없이 맘껏 즐기면 되고 기사는 원하는 대로 가면되고...

병마용 박물관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란다. 1974년 3월 29일 우물을 파던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면서 전세계적으로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킨 시안 최대의 볼거리고. 이 역사 유적지는 18년전에 한번 본 것으로 다시 볼 의사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같이 간 친구들이 안봤으니... 그래서 다시 들어갔는데 역시 입장료는 장난 아니다. 병마용 입장료 150위안, 입구에서 타고가는 관광차 5위안...

이런 저런 이유로 다시 보는 병마용. 여전히 대단하긴 하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말년에 인간으로서는 넘을 수 없는 선인 불로장생을 꿈꾸었다고한다. 범부가 아닌 제왕의 일장춘몽은 수많은 백성들을 동원하여 대규모의 무덤을 조성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이 병마용은 진시황릉과 함께 건설한 지하 궁전의 일부로 지하궁전을 호위하는 병사들을 테라코타로 만든 것.

우린 전시관에서 살짝 방황하다가 1974년에 발굴된 최초의 갱도 1호갱으로 들어갔다. 3개의 갱 중 가장 보존상태가 좋고, 규모도 커 동사 230m,남북 62m의 크기를 자랑하는 1호갱은 입구에서 부터 사람들로 가득차 가까이 가서 볼 수가 없다. 겨우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사진을 찍는데 그 크기가 엄청나다. 이 곳에 전시된 병마용만해도 6000여점이고 이건 중국의 1개 군지 규모의 병력이라고.. 이 군진은 실제 전쟁시 사용하는 배열로 군사들을 배치해 소대 군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단다.

우린 1호갱을 주욱 둘러보고 그다음에 3호갱으로 먼저 갔다. 3호갱은1976년에 발견되었는데 현재 발굴괸 3개의 갱 중 가장 작은 규모이다. 그런데 이 갱에서 발견된 병용들은 모두 병마용들보다 직급이 높았던 듯. 전차는 모두 채색이 되어있었고 병용들이 모두 큰 관을 썼다. 1호갱의 크기에 압도되어선가? 오히려 3호갱의 작은 규모가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 같다. 이 3호갱에서는 완전히 발굴되기 전 덮혀있는 갱의 모습을 볼 수 있어 갱 발굴 과정을 추측해 볼수 있는 것 같다.이제 우리는 다시 뜨거운 태양으로 나가서 2호갱으로 발길을 돌렸다.

2호갱과 마찬가지로 1976년에 발굴된 2호갱은 1호갱과 가깝게 붙어있었는데 들어가 보니 이 갱도 크기가 만만치 않다.

근데 1호갱이 주로 보병중심의 군진이라면 이 2호갱은 보병,기병,전차대,궁노수 들이 각각의 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특히 동북쪽에 있는 작은 진은 332명의 궁노수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중 160개는 앉아 있고, 172개는 서 있는 자세, 즉 궁노수들이 두패로 나뉘어 연달아 화살로 적을 공격했다는 증거인 셈이라고..

이 갱 남쪽의 작은 갱은 전차부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네마리의 말이 전차 한대를 끌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군진의 중앙에 위치한 2개의 작은 진은 전차,보병,기병이 혼합된 실질적인 전투부대의 모습인 듯.

이 병마용에서 우린 여유롭고 한가하게 마음놓고 관람을 하였다. 우리를 기다리는 택시기사가 없기에...

병마용을 빠져나오는 길은 길게 이어져 있는 상가길이었다. 우린 이 상가에서 병마용 모조품을 하나씩사고 복숭아와 옥수수도 사먹고 실물크기의 병마용을 진열해 놓은 상가에서 기념촬영도 재미있게 하면서 유유하게 걸었다.

그리곤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307번 버스를 타고 시안으로 돌아왔다.

시안에선 밤문화를 위해서 동신제 야시장으로 향했다. 야시장은 각종 꼬치와 만두 그리고 훠궈요리등을 먹는 가족들로 가득차있었다. 우린 일단 중국 전통 과자들을 둘러보고 집에 갈 때 사갈 품목을 머리 속에 새겨두었다. 그리고 시식을 위해 기차안에서 먹을 과자 한통을 사고 이 야시장안 커다란 슈퍼에서 장거리 기차용 쇼핑도 하고.... 그러고 나서 숙소로 돌아가려하니 밖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는 핑계가 생겼고 우린 유쾌하게 야시장안 먹거리 장터로 들어갔다. 양꼬치와 닭날개구이, 그리고 맥주....맛있고 분위기 좋다. 잘 먹고 나서도 비는 내리고 있다.

우린 물어물어 걸어서 걸어서 그렇게 숙소로 돌아왔다.

  

7월 27일 토

 

숙소가 쾌적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장신없이 자다가 옆방의 인기척에 놀라 깨어보니 6시 45분이다.

씻고 대충 준비하고 나오니 7시 20분 집앞에서 택시른 타고 시안 기차역으로 갔다. (택시비 7위안) 4명이서 다니니 환상이다.

기차역을 등지고 왼편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그곳 끝에 화산행 버스가 있었다.

왕복 60위안. 버스는 두시간 가랑 달렸다. 에어컨 버스로 시원해서 그런지 잠이 정신없이 찾애온다. 차창밖의 풍광을 즐길 여유도 없이 화산에 도착. 도착하자마자 바로앞 식당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경찰이 뭐라뭐라 주의사항을알려준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지도 못하고.

근처 식당에서 요리세개와 밥 그리고 만터우를 시켜 아침겸 잠심을 먹어둔다. 56위안.

그리고 등산로에서 산행을 시작하니 11시경이다.

원래 우리는 케이블카로 등산을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처음 시작을 잘못해서 중국인들이 주로 걸어서 등산한다는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거의 네시간을 고도 1200가량을 높여 올라가니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온 몸의 노폐물을 다 빼 버린듯. 정알 이길을 올나가는 사람들은 중국인들 뿐이다. 오후 세시반 북봉에 도착. 케이블카로 올라온 사람들로 교통 체증이 일어날 정도다. 높은 구두를 신은 여자.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 등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등산복 차림은 아니다. 우리나라 동네산에서도 등산복으로 갖쳐입은 사람들로 산이 가득찬것과 대조적이다

화산 정말 멋지다 깍아지른 절벽과 스케일이 큰 바위덩어리들이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오후 네시반 케이블카를 타기위해 줄을 한시간이나 섰었다 그러나 케이블카를 타는 순간 펼쳐지는 장관의 파노라마에 그저 황홀한 감탄만 나올뿐이다. 케이블카 10분정도 소오. 케이블 카(80)에서 내려 곧바로 하산하는 전기버스를 타고 동네로 내려왔다. (버스비 20위안) 버스가 내려준 곳은 화산의 장엄한 모습이 보여지는 신풍경구였다. 이곳에서 우리는 택시를 이용하여. 구마을안의 버스터미널로가 우리의 버스를 타고 시안으로 향했다 아침버스보다는 나쁘지만 에어컨이 나오니 나쁘지않다.

버스는 돌아오는 길에도 한참이나 화산의 멋진 군락을보여준다. 기분좋은 피곤이 몰려온다. 시안 8시 40분도착. 택시를 이용하여 숙소로 고고씽 오늘도 엄청 빡센 하루였다.

저녁은 과일과 누릉지라면으로 해결. 힘들지만 멋진 하루다.

 

 오늘 쓴돈

버스비 60,20,  택시비 36, 입장료 180, 케이블카 80, 아점 56, 물 15,바나나 12,과일 32,달걀 등 20

 

7월 28일 일

오늘은 시내를 어슬렁거리는 날이다. 아침도 느지막히 일어나고 10시경까지 숙소 카페에서 노닥거리다가 -숙소 지배인 샤사에게 커피도 공짜로 얻어마시고 한껏 여유를 부리다-청진대사를 향해 길을나섰다.

종루로가서 종루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건너가서 골목으로 들어가니 회족시장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시장안에 청진대사가 있었다.

청진대사에서 느적거리다가 거리로 나가니 회족먹거리 골 목이 이어진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엄청 북적거린다.

이것 저것 군것질거리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회족 식당가에서 택시를 타고 산서성 박물관으로...

박물관 매표소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거의 40분정도 기다려서야 들어갔다. 다행이 ID카드만 있으면 무료다. 중국의 엄청난 입장료에 무료라니 왠 횡재? 그러나 사람들에 밀려 뭘 볼 수가 없다. 그래서 2층 당,한시대의 전시실을 집중적으로 보기로 했다. 2층만 보았는데도 어느새 폐관시간이다.

박물관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동신가 야시장으로...야시장은 이제야 영업을 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야시장 한켠의 건물안에 있는 커다란 야시장으로 가서 마트도 구경하고 꼬치에 맥주도 마시고 물어 물어 숙소로 돌아오니 10시가 넘어버렸다.

 

★오늘 쓴 돈 

아침 샌드위치 28 ,청진대사 입장료 25,회족 식당가 먹거리 ,요구르트 5×2=10,튀김만두 10,호두 10 

매실 쥬스 3, 물 2,복숭아 16,점심 88,꼬치 등 65 과자 17,수퍼 72.5 10 (303.5),택시 16, 14 (444.5)

 

7월 29일 월

 

오늘 시안을 떠나는 날이다.  

기차표도 마련되어있고 기차시간이 10시 53분이라 아침에 그다지 일찍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돈황에서 투루판까지의 기차표 때문에 마음이 심란했었다. 기차표가 없어서 침대버스를 타고 갔다는 사람이 많은데 과연 구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 아이 패드로 웹서핑을 하다. 어제밤 한시가 넘어서 잠을 청했었다. 

어찌되었든 체크아웃을하고 야진 200위안을 돌려받고 숙소앞 도로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역에선 다행스럽게도 투루판행기차. 난조우에서 시안행기차 잉워표를 구할 수있었다. 30여분 밖에 소요되지 않았으니 다행인 편. 어찌되었든 큰걱정은 덜은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큰 고생은 안 할거고...  

이번 일행은 아주 부지런하고 모든지 열심히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약간의 마음 꺼끄러움이 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 각자가 뭘하든 마음 쓰지 말자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 힘이 되니까 하므로... 

서로를 너무 배려하는 것도 불편함을 자초하는 것이다. 

기차는 한시간 이십여분가량을 연착하였다. 시안역에서도 사람들이 한도 끝도없이 기차를 타러 들어갔다. 중국의 엄청난 인파를 온 몸으로 느낀 시간들이다. 우리의 기차는 모두가 중하나에 상세개이다.

하가 하나도 없으니 불편하다. 

기차의 모습은 여전하지만 여행하는 중국사람들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훨씬 세련되어졌다고나 할까? 궁끼가 많이 사라졌다. 

컵라면과 커피 빵등으로 점심을 먹고 침대로 올라가 한숨 자고 내려오니 세시 40분이다. 풍광은 누런 탁류가 흐르는 강줄기가 도도히흐르고 작은 덤불로 살짝덮힌 산들이 연이어 보이는 그런 모습으로 변하였다. 20년전 그 모습이다. 

오후 4시 30분 맥적산 석굴이 있는 천수역의 역에서 10여분간 정차하였다 

중국의 기차가 세련되어져서 예전의 재미있는 분위기가 많이 없어졌다. 

식당칸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으나 6시에 오란다. 

기차는 시간이 지날 수록 고도가 높은지역을 지나고 있었다

6시 못 미처 식당칸에 가니 서양여인이 한명있을 뿐 우리가 처음이다.  

아들과 함께 온 젊은 아빠가 도시락을 사와 먹으며 연신 아들의 사진을 찍어준다.

우리도 도시락 두개를 사서 먹는데 밥도 맛있고 반찬도 입맛에 맞는다.

또 요리도 두개 시켜먹고 맥주도 한캔 사서 분위기를 살려보고. .

20년전보다 식당차도 훨 깨끗해졌고 복무원들의 태도도 훨 부드럽고 친절하다.

7시 30분 1915미터의 고도를 지나고 있다.

오랫만에 느긋하게 책도 보고 이야기도하고 경치도 보면서 여유를 즐긴다. 기차안에서는 할일이 그것 뿐이니까...

9시2분 난조우 도착. 기차는 15분정도 정차하였다. 정차한 순간 내려서 옥수수,닭다리,두부볶음이 들어간 빵을사다. 

맛있는 옥수수, 맛있는 닭다리. 옛날 보다는 못하지만 나름 쏠쏠한 재미랄까? 

 

★오늘 쓴돈

 

택시비 8위안,저녁 105위안,기차표 1350위안,간식 30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