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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나라 스페인.

코르도바,세비야.

7월 27일(수) 코르도바.

피곤해서인지 숙면을 취한 듯.

7시 넘어 일어나 주인장의 인터넷 전화로 온라인 투어에 전화해서 산티아고 호텔 날짜 변경을 했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 나때문에 30분 일찍 아침을 해주었다. 주인장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함.

그리고 걸어서 기차역으로...기차안엔 부유해보이는 노인들이 많이 탔다. 많이 조용한 분위기. 기차는 평원을 달린다. 올리브 나무들이 연이어 보인다.

이번 여행. 사소한 물건을 어디 두었는지 몰라 허둥지둥. 시간을 이리 저리 버리고 있다. 그리고 괜스레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고... 으이고 치매?

기차는 정확한 도착시간을 지킨다. 11시 10분. 이제 이 코르도바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6기간 뿐이다. 이 여섯 시간 동안 뭔가를 다 알려고 하지 말고 한가지만을 목적으로 하고 나머지는 그냥 슬렁 슬렁 분위기를 느껴보자.

이것이 내가 이 코르도바에서 정한 여행의 방향이었다.

그 한가지는 메스키타.

무슬림들이 711년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온 후 가장 먼저 만든 도시가 코르도바인데 이들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와 과달키비르 강 주변에 자리를 잡고 도시를 건설했다. 사막의 척박한 땅과 모래 바람을 피해 처음 이곳에 온 이슬람인들은 로마인들이 세웠던 로마 다리를 정비하고 알카사르를 짓고 알라의 꿈을 펼치고자 메스키타를 공들여 건설했단다.

  코르도바는 바로 이런 역사물이 좁은 골목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과거와 현재가 어울러져 있는 도시라는데  이 도시를 지식으로 알려고 하지말고 그냥 발길 닿는대로 가면서 즐겨보자.

난 일단 기차역에 락커가 없어서 길건너 버스터미널의 락커에다 큰짐을 넣어 놓은 다음 인포메이션센터에서 지도 한장을 얻어들고 역앞 버스 정류장에서 3번버스를 타고 십자가가 보이는 강변의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아니 내가 내렸다기보다 버스안의 아주머니들이 다들 그 곳에서 내리라고 난리여서 내린다. 거리엔 여행자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고...

유럽이 '암흑의 중세'라고 불리던 시대, 코르도바에는 이슬람교의 전래와 함께 고대 그리스. 로마의 많은 문헌들이 아라비아 어로 전해지고 모스크 안에는 스페인 최초의 학원이 설립되었단다. 다마스쿠스에서 쫓겨온 우마이야 왕족의 아브드 라흐만 1세가 세운 후기 우마이야 왕조라고 불리는 시대였다.  929년에 즉위한 아브드 라흐만 3세 시대에 후기 우마이야 왕조는 전성기를 맞이햇다. 그 당시 인구가 100만명 이상이라고 하니, 그 시절 얼마나 번영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단다.

난 일단 메스키타의 북서쪽에 있으며, 마치 미로처럼 길이 얽혀 있는 지역 유대인 거리로 갔다. 집집마다 하얀 벽의 발코니에 화분을 내놓아 골목길을 장식하고 있는데 의외로 사람들은 별반없다. 혼자 사진을 찍으면서 이리 저리 돌아 다니다보니 나도 모르게 포트르 광장까지 왔다. 코르도바 시의  문장인 망아지(포트르)조각상의 분수가 있는 예쁜 광장. 세르반테스도 머물렀다고 하며 그의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여관 포트르가 광장 서쪽에 있고, 동쪽으로는 작은 정원을 끼고 두 개의 미술관이 있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그 곳에서 혼자 사진을 찍고 또 거리를 배회하다 한 바를 발견, 상그리아 한잔을 마시려다 이름 모를 독한 술 한잔을 마시고는 몽롱한 기분이 되어 쨍쨍한 거리를 나서 메스키타로 향하다.

메스키타로 가까이 가면서 관광객들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바와 레스토랑에도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한 바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점심을 해결하고 으쌰!하면서 본격적인 메스키타 관광에 나선다. 치명적인 햇살.

그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로마다리를 건너 칼라오라의 탑까지 걸어갔다 오고... 그리고는 메스키타의 짙은 실내속으로...

후기 우마이야 왕조를 세운 아브드 라흐만 1세가 바그다드 못지않은 새로운 수도에 걸맞는 모스크를 만들려고 785년에 건설을 시작하였다. 코르도바의 발전에 보조를 맞추도록 3회에 걸쳐 확장되었으며, 마침내 2만 5,000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모스크가 완성되었단다.

모스크의 내부는 어두웠다. 밖의 강렬한 햇살에 시달렸던 나에겐 마치 피신처와 같은 느낌이다.

원래 모스크의 내부는 밝아야 하는데, 코르도바를 재정복한 가톨릭 교도가 개조해 입구는 5개의 문만 남겨놓고 모두 막아버렸단다.

848년에 아브드 라흐만 2세가 확장한 부분은 레콩키스타 이후 카를로스 5세가 카테드랄로 개조한 곳이 많아서 원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메스키타를 나와서 또다시 거리를 이리저리 걷다 알카사르 앞으로 갔다. 그러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겉만 보고 돌아선다. 그리고 다시 걷다보니 신시가인 텐디야스 광장과 콜론광장.  이 광장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음 한국여성 둘을 만나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돌아오다. 이제 기차 시간까지는 한시간이 남았다. 기차역 레스토랑에서 시원한 맥주 한컵을 사들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면서 오늘 땡볕을 돌아다닌 보답을 하고 있다.

 

 

 

 

 

 

 

 

 

 

 

 

 

 

 

 

 

 

 

 

 

 

 

 

 

 

 

 

 

 

 

 

 

 

 

 

 

 

 

 

 

 

 

 

 

 

 

 

 

 

 

 

 

 

 

 

 

 

 

 

 

7월 28일(목) 세비아

어제 저녁 8시넘어서 세비아 사메이 호스텔에 도착을 했었다.

사메이 호스텔은 4인실에 깨끗했고 방안에 샤워실이 달려있었다.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친절하고 시설 마음에 들고

굿이다. 샤워를 하고 나니 밖에나갈 마음이 없어진다. 부엌으로 가서 누릉지를 끓여먹고 인터넷을 하고 푹쉬었다.

참 어제 체크인을 할 때 우리나라 대학생 딸과 함께 여행하고 있는 엄마를 만났었다. 난 그들 모녀가 신기했는데 그들은 나이든 내가 혼자 여행하는 것이 신기한가보다. 

오늘 앞으로의 일정을 변경하고 기차표를 예약해야 하므로 조금의 머리를 정돈해야했다.

아침 6시 30분부터 같은 방의 처자들은 서두르고 있었다. 아 울나라 여자들의 부지런함이여.

나도 7시에 일어나 인터넷을 하러갔으나 잘 안되어 그냥 인터넷 전화를 이용해서 온라인 투어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호텔 날짜 실수는 나의 착오 부르고스 호텔 날짜를 착각한 것이었다. 어찌되었든 다행이다.

오늘의 첫번째 할일. 기차역에가서 기차표 예매하기.

기차역은 걸어서 가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아침이라 선선했고 가다가 신선한 모닝커피를 한잔 마시고 기분을 업시킨다음.

산책하는 기분으로 걷는다.

옛 서 고트 왕국의 수도였던 세비야가 지브롤터 해볍을 건너온 무어 인에게 정복된 것이 712년의 일이란다. 이후 도시는 500년 넘게 이슬람 문화 번영의 무대가 되었다.  과달키비르 강에 면한 항구로 지리적인 조건이 좋아서 경제적으로도 크게 발전하였고..코르도바 칼리프 제국이 붕괴한 1070년에는 그때까지 반도의 수도였던 코르도바를 병합할 정도로 힘이 강성했다. 히랄다 탑과 황금의 탑 등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이슬람 건축물은 이 시기에 건조된 것이란다.

13세기 중반 레콩키스타의 세력이 압도적으로 확대되면서 마침내는 기독교도에 의해 새로운 약지늬 시대를 맞이하였다. 콜럼버스가 도달한 곳이  인도가 아니라 신세계라는 사실을 증명한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세비야 항에서 출범한 것을 시작으로 신세계와의 교역독점권을 확보하고, 유럽 최강국의 지위를 확립하기 시작한 카스티야 왕국의 번영을 뒷받침하는 도시가 되었다.

7월 31일. 마드리드에서 빌바오가는 기차표를 예매하고 스페인 광장 찾아갔다. 가는 길에 과일도 사고 물도 사고...

스페인 광장은 생각만큼 훌륭했다. 분위기도 죽여주고... 이 스페인 광장은 1929년에 열린 이베로 아메리카 박람회의 대회장으로 조성된 것으로,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의 작품이란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의 아치 아래에는 스페인 각지의 특징과 역사를 타일에 그린 벤치가 있는데 그 중 내가 갔다 왔거나 갈 곳을 골라 기념사진을 찍어본다.

스페인 광장에서 나와 이제 이 세비야를 상징하는 건축물 카데드랄과 히랄다 탑을 찾아갔다. 가는 길에 산세바스탄 정원을 지나서 구 담배공장에 들러 화장실도 이용하고 구시가지 입구 스타벅스에 들러 아이스 커피도 한잔 마시고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으로 메일도 확인하고....

구시가지로 들어가니 대성당이 보이고 맞은편에 알카사르 궁전이 있다.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기에 나도 그 줄에 합류하였다. 이 곳은 학생은 무료인데 교사증은 소용이 없다. 8유로.

알함브라궁전을 모방했다는 궁전은 알함브라를 본 뒤라서 그런지 감흥이 덜했지만 정원은 대단했다.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다보니 이 곳도 시간이 꽤 걸린다. 이 성은 이슬람 시대의 것을 레콩키스타 이후에 기독교도 왕들이 개축하였단다. 그 중에서도 1350년에 즉위한 페드로 1세는 스페인 각지에서 이슬람 장인들을 불러들여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방불케하는 궁전을 만들어냈다고...

옷첼세공을 구사한'소녀의 파티오','히말라야 삼나무의 원형 천장으로 된 '대사의 방'은 무데하르 양식의 걸작이다.

이슬람 문화에 심취한 페드로 1세는 이슬람 복장을 착용하고 궁전 내에서는 아랍어를 사용할 것을 명했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오디오 서비스까지 받으면서 꽤 진지한 태도로 관람을 한다. 정원이 생각보다 아름답고 넓었다.

날씨는 더운데 그나마 그늘이 많아 다행이다. 특히 잉글리쉬 정원은 짙은 녹음으로 서늘한 느낌마저 감돌았다.

2층 테라스에서 본 정원의 풍광도 일품이었고. 알카사르에서 나오니 이미 두시가 넘어버렸다.  햇살은 아직도 뜨겁다.

바로 앞의 대성당으로 들어가다. 대성당은 바티칸 못지않은 규모라고 하더니 과연 고딕 특유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빛을 발한다.

늑골모양의 천정과 두꺼운 기둥들이 역시 이슬람 영향을 보여주는 듯.

'후세사람들이  우리의 신앙심이 넘쳐흐른다고 생각할 만큼의 거대한 성당을 세우자'. 1401년에 열린 성당 참사회의 결정에 따라 모스크 자리에 건설을 시작해, 약 1세기가 지난 1519년에 완성한 성당이다.

세로 116m, 폭 76m의 이 성당은 스페인에서 최대, 그리고 유럽의 성당으로는 로마의 산 피에트로 사원,런던의 세인트 폴 사원 다음 가는 큰 규모를 자랑한다. 폭이 넓은 특이한 형태는 모스크의 잔재라고.

성당안은 볼거리가 많았다.  구석 구석 음미하듯 보다 히랄다 탑을 올라가 보니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층수를 34를 가르키는 이 종루가 꽤 높은 듯.

히랄다 탑에서 내려와 오렌지 정원을 구경하는데 한국 단체객이 와서 가이드의 설명을 은근슬쩍 껴서 들어보는데 별다른 설명은 없다. 난 이 대성당 구석 구석에 대한 설명을 기대했는데 흔한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일 뿐. 좀 실망.

성당에 부속된 다른 전시실을 보고 나와 산타쿠르즈 거리를 쏘다니는데 시에스타여서일까? 거리가 한산하다.

두군데 바를 들러 맥주와 타파스 순례를 하다.

내일은 마드리드로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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