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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그 푸르름을 다니다.

반둥,자카르타

 

 반둥 지하학 박물관 공룡

 반둥 지하학 박물관 자바원인 두개골

 반둥 아시아,아프리카 회의 건물-우리는 이 건물안에 특별히 허락을 받아 들어갔었다.-

 반둥 시내를 다니는 베짝터미널

 반둥 땅꾸반 프라후 화산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이다.

 반둥 땅꾸반 프라후 화산지역 유황가루 장사치

 반둥 특산나무

 반둥 찌아뜨르 온천-진한 유황온천으로 그 효과는 놀라웠다. 반둥 피부미인이라는 말이 실감남.-

 반둥 찌아뜨르 온천2

 반둥 찌아뜨르 온천3

 파인애플 깍는 청년-이곳에서 파는 파인애플은 싸고도 그 달콤한 맛이란...

 길가다 우연히 본 말린 누릉지... 향수에 젖으면서도 반갑다.

 반둥테하우스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젊은이들... 이 반둥의 대학 수준은 상당하단다. 젊은이들 모두 아주 밝고 경쾌한 인상이었다.

 반둥에서 자카르타 가는 기차안에서 본 계단식논이 푸르르다.

 자카르타 가는 기차에 매달린 승객들..우리의 만원버스를 방불케한다.

 우리의 꼬치구이와 같은 사테아얌.. 현지 교포들은 길거리 음식에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지만 우리는 그냥 맛있게 먹었다.

 자카르타 비하리 박물관 앞.

 박물관 비하리2

1월 22일(수)

쓴돈: 점심-52950루피, 택시-15000루피, 베짝-6000+5000루피, 간식,물,두리안-10500루피,

      입장료-2000루피, 숙소 128000루피, 앙꼬다-2000루피(두번)


아침을 먹고 대충 짐을 챙긴 후 다른 숙소를 알아보라 나왔다.

King Garden에 128000루피짜리 방을 선택하기로 하였다.

에어컨,트윈룸, TV, 뜨거운 물이 나오는 큰 욕실 등 조금 돈을 더 주고 선택한 방이 넘 좋다. 중국계 호텔인데 방까지 짐도 들어다 주고,서비스가 좋다. 호텔이 크니 당구장이나 회의실도 있고 1층 식당에선 땐스도 춘다.

이제야 스산한 느낌에서 벗어난 듯한 생각이 들었다.

대충 짐을 풀고나서 호텔카운터에 물어 지질학 박물관에 갔다.

수학 여행 온 학생들이 많은 지질학 박물관은 그 유명한 ‘자바원인’이 모조품이지만 전시되어 있고, 다양한 화석를, 그리고 동움들의 모습들이 뼈로 맞추어져 있었고 공룡의 박제도 있었다. 수학 여행 온 학생들은 긴치마와 머리에 수건을 썼음에도 매우 발랄하다.

그러나 이곳에서 난 최대의 실수를 하고 말았다. 공룡사진 중 하나를 지우려다가 그 동안 찍은 귀중한 발리, 롬복, 솔로, 사진을 다 지워 버린 것이었다. 순간 기운이 다 빠져버리면서 땀이 막 났다.

장례식 사진, 제사사진 등 다 사람들로 이루어진 귀중한 사진들인데....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모든 일이 맥이 빠져 아무리 마음을 달래려고 해도 안된다.

지학 박물관에서 나와 앙꼬다를 타고 알룬 알룬으로 간다는 것이 한참 지나 내겨 걷다가 베짝을 타고 freedom building으로 갔다.

                                                                             

처음 베짝을 탈 때 요금을 흥정하면서 그가 손가락 두 개를 펴자 우리는 2000루피로 알았는데 나중에 내릴 때 보니 그가 말한 금액은 20000루피였다. 너무 황당한 마음에 강력히 항의하며 6천루피만을 던져주고 돌아서 버렸다. 그는 몇 번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가만있는다.

freedom building은 문이 닫혀있었다. 안내소에 가서 물어보니 그때서야 따라오라고 하더니 문을 열어준다. 내부는 복도가 있고 큰 홀이 있었는데 단상에 반둥회의 때 참가했던 29개국의 국기가 놓여 있으며 몇 개의 대표적인 국가 원수들의 모형이 앉은 자세로 있었다.

가운데 수카르노는 연설대에 서있었다.   불을 켜지 않는 실내가 너무 어두워 사진이 안찍혀지자 전등을 켜 달라고 했다. 마지 못해 켜준다.

사진을 찍고 복도에 나와 게시되어 있는 당시의 사진을 보고 나오면서 안내인에게 “우리는 한국의 교사다 이 회읭 대하여 아이들에게 잘 가르치겠다.” 라고 말하니 고맙다고한다.

이 회의에 대한 반둥사람들의 자부심은 큰 듯 싶다.

현재 이 건물은 인도네시아 국가회의장으로 종종 이용된다고 하였다.

마타하리 몰 food센터에서 이것 저것을 시켜 포식을 하고 말았다. 어제부터 별달리 먹은 것이 없는터라 음식 욕심이 앞서 너무 많이 시켰다. (스프 buntut,-우리의 갈비탕이다.-새우요리, 버섯볶음,밥,닭튀김,닭야채볶음,파인애플쥬스 등)

결국은 못 다먹고 닭튀김은 싸가지고 나왔다.

점심을 먹고 쇼핑을 하였는데 이 지역이 수많은 몰들과 상점들이 밀집된 상가지역이었다. 구두도 보고, 가방도 보고.....

결국 황샘이 가죽핸드백 하나 사고, 바틱크리스에서 바틱과 집에서 신는 실내화를 샀다. 오후 4시경부터 비가오기 시작하였다.

몇 개의 몰을 더 구경하다 앙꼬다를 타고 역으로 오고 말았다.

역에서 기차 시간을 알아보고 베짝을 타고 king garden으로......

숙소앞에서 한번 더 시도해 볼 생각으로 두리안을 샀으나 여전히 역해서 먹질 못하겠다. 지난번 것보다 더 맛이 없다.

밀린 일기를 쓰고 TV를 보는데 어느새 11시가 훨 넘어버렸다.

오늘은 7시에 귀가했으니 일찍 들어온 셈인데 말이다.


1월 23일(목)

쓴돈 : 기차표(반둥→자카르타:70000루피),팝미-5000루피, 버스(반둥역→름방)-3000루피

(름방→땅꾸반 쁘라후)-14000루피    찌아뜨르 입장료-7500루피,

옥수수 1개반-3000루피,파인애플1개-2000루피     커피-2000루피

버스(찌아뜨르→  )-5000루피,  (      →다후)1500루피,(다후→다고)2000루피

(다고→반둥 알룬알룬)1800루피   베짝(알룬근처)-4000루피, (역→호텔)5000루피

알룬에서 역까지 앙꼬다-1000루피,   저녁-11500루피, 숙박비-128000루피.

땅꾸반 입장료-15000루피,산딸기-5000루피

                                             

새벽 4시인가 이슬람 사원에서의 기도소리에 어슴프레 잠이 깼다. 그러더니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수화기를 들으니 아무소리도 없어 끊어버렸다. 모닝콜을 잘 못 눌렀나보다.

다시 잠에 빠져있다. 7시쯤 깨어 일어나 대충 씻고 아침 쿠폰을 잃어버려 데스크에 가서 말해 룸서비스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형편없었다. (토스트에 차가 전부다.) 아침의 질을 보고 나서 우리는 내일 새벽에 아무 미련없이 뜨기로 결정을 하였다.

8시쯤 숙소로 나와 걸어서 북쪽 역 광장으로 갔다. 역의 북쪽은 훨씬 좋은 호텔들이 많이 보이고 훨 깨끗하고 윤택해 보인다.

일단 역에가서 자카르타가는 표를 예매하고 (excutive 70000루피) 철길을 건너 남쪽 남쪽역으로 가서 tangguban perahu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깨끗하게 차린 한 청년이-그는 자카르타가 집인데 반둥에 직장이 있단다.- 일부러 큰길까지 따라와 름방행 앙꼬다를 잡아주며 름방에서 차를 갈아타라고 일러준다.-오늘의 고마운 인니사람 첫 번째이다.-

름방까지 가니 기사는 다른 허름한 앙꼬다를 가리키며 땅꾸반 프라후가는 차라며 타라고 한다. 엉겁결에 올라타 차는 폐차직전이다. 차안에 비좁게 올라탄 여학생들이 꽤나 예쁘다.

지난번의 솔로와 이곳 반둥은 미인이 많은 듯 하다. 노란빛이 나는 고운 피부를 지닌 동양적인 아름다움인데 이 곳 반둥 미인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사랑받는 미인들이란다.

사람들이 한 사람씩 다 내리고 난 차에는 우리 둘 밖에 없었다. 차는 공원입구(입장료가 꽤 비싸다. 15000루피)를 지나 분화구앞까지 가더니 우리에게 50000루피를 내라고 한다.

돈이 없다며 28000루피만 던져주고 말았다. 이들도 몇 번 뭐라고 하더니 그냥간다.

분화구는 정말 넓고 달걀냄새가 진하게 났다. 입구에서부터 유황가루를 파는데 처음엔 터무니 없이 3만 5천루피를 부르더니 나중엔 3병에 만루피를 부른다. 우리는 1병에 만루피를 주고 사는 바가지를 썼다. 산딸기도 사먹었는데 무지 달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찌아뜨르가는 길을 물으니 무조건 한시간에 3만 5천루피를 주는 가이드를 고용하란다. 포기하고 분화구 일대를 돌기로 하였다. 돌다가 옆의 간이 식당에서 컵라면을 한 개씩 먹고 있는데 이탈리아 노신사와 그의 가이드가 와서 말을 건다.

이탈리아인은 외교관이 직업이고 한국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판문점을 가보았고 김치, 불고기 등 우리 음식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인니 가이드는 6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고 그는 야망이 있어 보였다.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찌아뜨르 온천을 물어보니 가이드가 이탈리아인의 양해를 구하더니 태워주겠단다.

차를 타러 나오는 길엔 가게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기웃기웃거리는 재미가 있었으나 사진 않았다. 이곳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사람들이 한국말 몇마디를 구사할 줄 안다.

이탈리아 사람이 렌트한 차는 8인승 밴이었다. 에어컨이 나오는 깨끗한 차. 자리가 넉넉하니 미안한 마음이 덜했다.

차는 죽 뻗은 산길을 내려가다 다시 커브를 틀더니 찌아뜨르에 도착하였다.

Sari Ater온천공원에 들어가서 그들과 한바퀴 돌았다.

이탈리아인은 식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보고르식물원에도 다녀왔단다. 꽃 하나 하나의 족보나 계보,특징, 냄새 등에 대하여 너무도 열심히 설명한다. 상당히 흥미있었다. 내가 흥미있다고하니 더욱 말을 빨리하고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는 비대한 몸 때문인지 땀을 많이 흘렸다. 온천욕을 하지 않고 가는 그들과 주소를 주고 받으며 헤어져서 우리는 뜨거운 온천물을 온몸에 맞았다.물은 신맛이 강하고 물을 맞는 순간 온몸의 살결이 보들보들해지는 느낌이었다. 뜨거운 물을 한참 맞고 있으려니 온몸이 노곤하다.

인니사람들은 온천을 조금만하고 만다. 우리는 욕심에 그들의 3배를 하였다. 너무 기분이 좋다. 황샘은 발이 빨개지도록 담그었고.... 옷을 갈아입은 우리는 옥수수를 사서 넘 맛있게 먹었다.  온천을 걸어나오면서 중학생인 듯 싶은 여학생들과 사진을 찍으니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좋아한다.

인도네시아 학생들은 얼굴을 가리는 무슬림 차림새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밝고 명랑하다.

온천 공원 밖으로 나오니 넓은 공터가 보이고 가장자리에는 상점이 그리고 가운데에는 관광버스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파인애플이 잔뜩 쌓여있는 가게에서 반가운 마음에 파인애플을 사서 잘라달라고 하니 가게 청년이 정성을 다해 깍아준다.

기가막힌 맛이다. 다시가서 하나를 더사 봉지에 담아 달라고 하며 길을 물으니 밑으로 더 내려가란다. 차밭이 주욱 펼쳐져 있는 길을 따라 가서 반둥행 앙꼬다를 탔다. 차밭을 끼고 한참을 달린 앙꼬다는 름방에서 우리를 다른 앙꼬다에게 인계해준다.

다시 다후(상당히 번화하고 고급스런 상점이 있는 곳이다.)로 다후에서 다고로....

다고에서 내려 5분쯤 걸어가니 다고 티하우스가 나오는데 가는길엔 인도네시아답지 않은 고급주택들이 흥미를 끌었다.

다고 티하우스는 조용한 고급 주택가가 주변에 있었고 바로 앞에 대학이 있었다.

반둥시내를 내려다보이는 전망을 가지고 있어 일대의 푸르름이 가득한 전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야외극장에선 학생들의 진지한 춤 연습이 있어 한참동안 앉아 그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들의 발랄함과 건강함이 흐뭇했다.

가장자리 Tea Table엔 연인들이 한껏 분위기잡고 있는 다고 하우스를 떠난 것은 6시 30분이었다. 시내 알룬알룬까지 앙꼬다로가서  ATM을 찾아 한참을 헤매이다가 결국은 역 북쪽 광장에 와서 돈을 뽑았다. 일식즉석집에서 불고기 덮밥도 먹고.....

숙소에선 카드로 지불하여했으나 현금을 달란다. 카드 연결이 안된다고 하면서...

데스크 옆 식당에선 댄스파티가 한창인데 인니의 쭉빵인 젊은 아가씨들과 늙수그레한 중국인들의 댄스가 흥겹게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도 시간이 늦어 전화를 하지 못했다. 내일은 자카르타로 가서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다.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보고 겪고 느낀 인도네시아였다. 착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1월 24일(금)

쓴돈: 입장료-4000루피, 택시-10000루피, 짐보관료-16000루피(2개)

     아침-도너츠외 14000루피, 점심 및 베모-14000루피,

     택시-34000루피, 간식-17000루피, 테잎-10000루피, 옆서-8000루피

     잔돈-82000루피 선화에게 줌.


새벽 6시 30분 기차를 타러가기위해 5시에 일어났다.

긴장을 한 탓일까? 일찍 일찍 잘도 일어나진다.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하고 나오니 낡은 택시 한 대가 있다. 이 반둥의 택시들은 정말 악명이 높다. 미터를 하지않고 무조건 10000루피한다. 무거운 짐 관계로 울며 겨자먹기로 그냥탔다.

5시 45분 역에 도착. 시간 여유가 있어 던킨 도너츠와 코코아로 요기를 하였다.

6시 25분경 기차에 탑승. 기차는 시설이 엄청 좋다. 우리의 새마을호 보다 훌륭한 듯하다. 한 이슬람 가족의 기차안 이별이 애틋하다. 우리는 언제 저럼 이별을 겪었던가?

6시 35분 기차는 거의 정확하게 출발한다. 최신의 TV모니터에선 뮤직비디오와 애니매이션을 방영하고 있었고 간단한 간식(빵,사탕,물)도 제공된다. 반둥역을 출발하자마자 아름다운 계단식 놀을 비롯하여 녹음이 푸르른 풍광이 펼쳐져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자카르타까지는 3시간 정도 소요.

9시 30분 쯤 자카르타에 도착하여 역에 배낭을 맡기고(인포메이션 센타에서 짐을 맡아줌(1시간 당 1000루피.) 택시를 타고 꼬따지구로 갔다. (구 바따비아)

꼬따 근처는 교통량이 많아 꽤 길이 막혔다.

기사가 내려준 곳은 자카르타 역사 박물관앞이엇다. 네덜란드시대의 건물인데 앞에 커다란 대포가 두 개 있는 넓은 광장이 있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관람객은 우리 둘 뿐이다. 먼저 지하로 내려가 식민지 시대의 감옥을 보았다. 우기에는 물이 들어차기도 한다는데....

6-7명이 누우면 꽉 찰 것 같은 공간에 30명정도를 수용했단다. 우리의 서대문 형무소가 연상되었다. 제국주의란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2층과 3층은 식민 시대의 나무로 조각된 무거운 가구들, 그 당시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에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fine art 뮤지엄으로 갔다. 이 건물도 19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건물이란다. 흰기둥이 전형적인 유럽식 건축물이다 안에는 현대 인니화가들의 작품과 중국식 도자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예의 2층으로 올라가는 좁고 가파른 나선형 계단도 있었고.......

다음에 우리는 동인도 회사의 창고도 가보고 앙꼬다라는 미니버스도 타보고 길거리에서 사떼도 먹었다. 백화점 쇼핑과 선화와의 재회,그리고 고급식당에서의 저녁식사..

이렇게 인니에서의 마지막 하루는 지나갔다.

별 생각없이 떠난 인니 여행.지구상에 하찮은 나라는 없고 하찮은 사람들은 없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

다 나름대로의 문화와 나름대로의 고결함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한달 남짓한 여행이었지만 인니의 10분의 1도 못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인도네시아에서의 마지막 만찬(아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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