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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그 푸르름을 다니다.

자카르타....그리고

LONG 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 ARTICLE  

 반얀트리

 자카르타 모나스 탑에서

 야자나무

 족자카르타로가는 기차안에서 제공되는 도시락

 바틱공방

 족자카르타의 거리

 과일의 왕 두리안

 족자의 베짝

 베짝을 타고...

 족자의 거리

 전통공연 와양끌릭 공연장에서

 보르보르도

 보르보르도

 보르보르도

 보르보르도

 보르보르도

 

 보르보르도

 사두1

 사두2

인도네시아


비용 : *항공권- 51만 9천원

       *출국세- 만원

       *여행자 보험- 3만 5천 9백 30원

       *공항버스비-5100×2=만 200원

       *총 생활비 450불+4십만루피=59만원     총 비용=116만 4천 9백원.(선물비 포함)


여행 시기 : 2002년 12월 30일 ~2003년 1월 25일

여행 일정 : 자카르타→족자카르타→브르모산→발리 노비나→발리 우붓→발리 꾸따→롬복→길리뜨라왕안→자바섬 솔로→반둥→자카르타


2002년 12월 30일(월)

여행이 일상으로 다가온 듯 하다.

별다른 긴장없이 일어나 밥먹고 은행가서 2001년 발행 100불짜리 지폐 찾아오고 스켈링하고 그러면서 오전을 보냈다.

짐을 꾸려 하안 사거리로 걸어나오니 13시 30분. 시간의 여유가 있어 간단히 요기를 하고 은행에 들러 송금을 하고 나니 10분전 2시다.

공항버스에 올라가니 아무도 없다.

14시 출발. 도중에 개봉입구에서 황샘이 올라탄다.

15시 15분 공항도착. 홍샘과 김샘은 먼저 와 있었다.

출국 수속을 하고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고 출국카드 사고.....

면세점에서 몇가지 물건을 사고나니 벌써 비행기에 오를 시간이다.

두시간여가 정신없이 흘러간다.

서울과 자카르타를 한달씩 번갈아 오가는 아주머니가 부탁을 하길래 그의 많은 짐을 우리 짐과 함께 부쳐주었다. 약간의 찝찝한 느낌과 함께 말이다.

17시 10분 드디어 이륙이다.

비행기는 400석 정도로 작았다.

행운 한가지...... 김샘의 친구가 자카르타에서 무료로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찾아냈단다.

--그 친구는 우리가 가려는 잘란 작사거리가 무지 위험하다면서 그 곳은 절대 안된단다.--

정말 잘 되었다. 여행은 처음에 낯설었을 때가 문제지. 일단 그 곳에 적응을 하면 아무 문제 없기 때문에 처음이 순조로워서 다행이다.

식사한번, 샌드위치 한번으로 비행은 끝났다.

22시 30분. (현지 시각. 우리나라보다 2시간 늦는다.) 자카르타 수카르노하타 공항에 도착하였다. 입국심사는 의외로 쉽게 통과하였다.

"Are you teacher?"  "Yes!" 이것이 끝이다.

우리를 찾는 민경샘의 친구 정선화씨가 입국심사대에 미리 나와있어서 반갑게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다. 짐을 찾기도 전에 마중나온 사람이 들어올 수 있다니....

짐을 찾아 나오니 혼자 온 여자분이 우리 일행과 함께 움직이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대기 시켜 놓은 봉고--우리 사전에 공항에 봉고가 마중 나오기는 처음이다. 우하하하--를 타고 숙소를 향해 갔다.  1시간 여를 달렸을까? 멋있는 신시가지가 보인다.

이제 막 문을 닫는 식당도 있었구.

집은 실내계단이 있는 3층이다. 아주 깔끔하다. 모두들 모여 (우리넷, 아까의 여자분, 남학생 둘-여자분을 마중 나온 현지 유학생들-, 선화씨. 그리고 집주인-20대 후반의 여자-) 한참동안 향후 일정에 대해 토의하였다.

그냥 내일은 따만 미니를 가고 모레 아침(1/1)에 족자카르타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함께 출발하는 사람은 6명...


12월 31일(화)

이슬람사원 기부금 : 20000루피

숙소까지의 교통비: 52000루피 (통행세 포함)

모나스탑 입장료: 5000루피(전망대), 박물관 입장료 : 750루피

택시비: 3200루피 물 : 3000루피, 숙박비 135000루피.


밤새 잠을 설쳤다. 새벽 5시에 더위와 잠자리의 낯섬에 더 이상 못참고 일어나 버렸다.

서서히 밝아오는 바깥을 보며 창문을 활짝여니 약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밖은 깨끗한 전원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동네다. 마치 우리나라 일산과 같은.....

동네를 산책하다 돌아와도 7시 밖에 안되었다.

머핀과 커피와 바나나쉐이크로 아침을 먹고 한참을 빈둥거리다 택시를 타고 주안다 역으로 나오니 11시가 다 되었다.

주안다역은 시설이 단정하고 예매하는 시스템이 편리하게 되어 있었다. 일단 종이에 가고자 하는 날짜와 기차이름을 써 넣고 창구에 들이밀면된다.

우리기차는 Taksaka1 1월1일 아침 7시 5분에 떠나는 기차다 기차를 예매하고 택시를 타고 서울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서울 게스트하우스는 그냥 깨끗한 집이지만 시설은 영 실망이었다. 방도 작고 침대도 더블이라기엔 너무 작고 욕실은 두방이 함께 쓰도록 되어있었다.욕실 방문은 잘 안 닫히고 세면대엔 커다란 바퀴벌레가 죽어있었다. 그러나 두끼 얻어먹은 식사는 맛이 있었다. 점심 때 수제비, 저녁 때 청국장 등 음식이 정갈하고 맛이 있다.

점심을 먹고 모나스 광장으로 갔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땡볕이다.

택시기사가 박물관을 잘 몰라 모나스탑 정문앞에서 내려 광장을 가로질러 철망을 통과해 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은 14시 30분까지 밖에 안한단다. 우리가 박물관에 입장했을 때가 13시 30분, 반바퀴를 돌았는데도 40분이 지나버렸다. 박물관엔 힌두석상들 그리고 소수민족 집 모형, 아시아 각국의 도자기 등 상당히 많은 물품이 수집되어 있었지만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지는 않았다. 시간이 다 되어 쫒기듯이 나왔다. 아무래도 집에 가는 길에 다시 들러야 될 것 같다.

다음에 간 곳은 모나스탑 전망대.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전망대 꼭대기에 올라가니 바람이 꽤 시원하고 자카르타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자카르타는 건물이 다 다르게 지어져 있어 도시가 한결 아기자기하게 느껴졌다. 나라에서 같은 모양의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법으로 정했단다. 매연을 뿜는 차량들 속에서 그나마 도시가 이 정도의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수목원같은 나무들 때문인 듯하다. 도시 전체에 울창한 나무들이 있었다.

이 모나스탑 꼭대기엔 50Kg으로 된 순금횃불이 있다.  가난한 이 나라 백성들과 순금횃불! 무언가를 생각하게한다. 화장실은 탑의 지하에 있었고 뜻밖에도 화장실 요금을 일을 치루고 난 후에 받는다. 1000루피.

지하엔 자카르타에 관한 역사 모형이 주욱 늘어서 있었으나 그냥 나와버렸다.

모나스탑에서 이슬람 대성당으로 걸어갔다. 이슬람 대성당은 꽤 컸으나 우리가 갔을 때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반바지를 입고 간 죄로 회색 스님같은 사롱을 빌렸다. 사원에 있던 한 청년이 따라오며 안내해 준다.

이 사원은 라마단 기간 중엔 10만명이 모여 기도를 한단다. 그리고 돔의 높이와 둘레. 돔 아래의 기둥과 기둥사이의 길이 등이 1945년 8월 17일.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기념일을 의미한단다.

이슬람에 대해 한참이나 설명을 듣고 나와 기부금 2만루피를 냈다. 사원안은 꽤 깨끗하였다. 알아보니 85명이 하루에 두 번  걸레질을 한단다.

어제부터 한인교회 사람들에게 자카르타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못이 박히게 들었는데 아까 기차역에서부터 사람들이 무지 친절하고 순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조심해야지...

이슬람 사원 가까이에 180년된 카톨릭 대성당이 있었다. 성당은 상당히 분위기 있고 신도들도 많았다. 테러 때문일까? 성당앞엔 경찰들이 삼엄하게 보초를 서면서 사람들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말 예배 분위기 탓인지 살벌하게는 하지 않고 있었다.

성당에서 초를 하나 켜고 미사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피곤하고 시간이 없어 그냥 나오고 말았다.

성당앞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오는 데  택시가 조금 돈다. 우리는 신경을 썼지만 무사히 도착하여  택시비13000루피를 잔돈이 없어 12000루피만 주게 되었다. 알고보니 차가 막혀 돌아온 것이라는 데 우리가 너무 예민했었나 보다.

숙소에서 저녁을 먹고 씻고 잠시 눈을 붙였다. 피곤이 몰려온다. 어제 날밤을 샌 흔적이 너무도 크게 나고 있었다. 그리고 요통도 심해 컨디션이 영 안좋다.

10시 30분 쯤 일어나 ‘송구영신’기도를 하러 한인교회를 갔다. 교회는 무지크고 좋았다. 우리나라 교민들이 자카르타에서 특권층을 이루며 살고 있음을 단번에 느끼게 하는 교회였다.

민경샘 친구 선화씨의 방도 구경하구...

예배는 두시간정도 열정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난 잘.....

새벽 두시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비가와서 그런지 한산했다.

아까 교회로 가는 길에 보았던 그 엄청난 인파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이곳에선 연말에 긴 프라스틱 나팔을 가지고 불어대는 풍습이 있는 것 같다. 낯에 나팔 장수가 엄청 많았었다. 미처 사진을 찍지 못하였다.



2003년 1월 1일(수)

미고랭 10000루피,나시고랭 7000루피, 아얌사떼 10000루피, 샐러드 5000루피

커피 4000루피, 과일 61000루피(망고, 메론,망기,리찌 등)

숙박비-14000루피


3시간쯤 잤을까? 4시부터 잠을 깨기 시작하여 6시에 완전히 일어나 짐을 챙겼다.

택시를 타고 감비르역으로...... 감비르역은 낡고 지저분하였다. 3층으로 올라가 4번 플랫홈에서 우리가 탈 TAKSAKA1을 기다리는데 기차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7시 5분에 출발할 기차가 7시 50분에 도착하더니 8시에 출발한다.

기대와 달리 기차의 시설은 별로.. 그러나 에어컨은 빵빵하다 못해 춥기까지 했다. 들판이 이어지고 야자나무 등 푸른 숲에 둘러싸인 집들이 이어졌다. 푸른색의 연속...

맨발로 축구하는 아이들, 모내는 사람들, 피뽑는 사람들,,, 중간에 흙탕물이 가득 채워진 논들이 보인다.

기차는 타자마자 미적지근한 차를 주고 샌드크림 과자가 나오고,,, 한참 있다가 12시쯤 기대했던 점심을 주는데, 으악, 너무 아니다. 아주 작은 밥. 그리고 아주 작은 미트볼. 냄새나는 국수 조금. 그리고 신선하지 않은 새우스낵 등.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

풍광은 연이어 푸른색 천지고... 내릴 때 쯤 되니 또 다시 차가 나온다. 미적지근한...

본격적인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기차는 1시간 늦은 오후 4시경 족자카르타에 도착하였다. 역앞은 몹시 혼잡하였고 소스로위자얀 거리로 가는 큰길은 혼잡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인도의 어느 곳을 걷는 느낌이었다.  가는 길에 만난 청년이 뜻밖에도 우리가 찾는 모니카 호텔을 이야기하여 쉽게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스탠다드룸(에어컨 없고 선풍기만 있고 욕실이 안에 있는) 트윈1, 더블1을 5000루피 깍어 55000루피에 흥정하였다.

방은 침대뿐으로 단순하였지만 깨끗하고 방앞에 의자와 탁자, 그리고 작은 마당이 있어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일단 조용하였다. 짐을 풀고 바로 옆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식당에서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면서 유쾌한 시간을 보낸 후 아까 숙소를 찾아 준 청년과 함께 바틱공방을 갔다. 어두운 골목 골목을 돌아가는데 약간은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바틱을 염색하는 방법-한가지 색을 염색할 때마다 다른색 부분에 왁스칠을 한 후 염색물에 담그는 방법을 쓰기 때문에 수공이 많이 든단다. 주로 면이나 실크에 염색을 하는데 실크가 염색하기 더 힘들단다. -을 설명듣고 민경샘이 하나를 샀다. 작은 신랑 신부 그림을 63000루피에 깍아 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백화점에 들러 아시쇼핑을 하고 열대과일을 잔뜩 사들고 들어왔다. 샤워 후 과일을 먹고나서-과일은 기대했던 것 보다 맛이 없다.- 일기를 쓰니 어느새 12시다. 방은 각오했던 후덥지근함이 없고 다소 쌀쌀하기까지 했다.

밤새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내렸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처음으로 잠다운 잠을 자다.

☆모든 사람들이 자카르타의 버스는 위험하다고 하며 타지 못하게 한다. 위험하다면 어느정도일까?



2003년 1월 2일 (목)

환전: 100불(887500루피)

쓴돈: 바틱-64000루피, 왕궁 입장료-2000루피, 사진 촬영료 1000루피, 점심-40000루피,

맥주 10000루피, 저녁 38500루피 와양꿀릭 입장료 5000루피

숙박비-14000루피


비소리를 들으면서도 꽤 곤하게 잘 수 있었다.

7시쯤 일어나 아침을 먹고- 아침은 생각했던 만큼 우습다. 차와 토스트 뿐

환전을 하려 9시가 넘어서 숙소를 나섰다.

가루다호텔에서 환전을 하고 -가루다 호텔은 족자에서 탁월하게 환율이 좋다.

친절하고 쾌적한 곳이다.- KRATON왕궁을 걸어서 갔다.

왕궁입구에서 만난 가이드가 왕궁의 이곳 저곳을 데리고 다니면서 무료가이드를 해준다. 넓은 왕궁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개방되어있었다. 공식홀과 왕족의 의상등을 볼 수 있었고 이슬람이 족자에서는 다른 종교를 융합하고 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홀 기둥이 있었다.

끄라톤은 1756년에 건설된 것으로 쟈바 건축의 정수를 모은 듯한 것이다. 최근까지 족자카르타 특별지구 지사인 술탄 라멘끄 부오노 9세(전부통령)가 살고 있었다.

끄라톤안에서 또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쟈바의 전통 민속의상을 입은 노인들인데 그들은 끄라톤을 지키는 ‘무사’로 허리 뒤춤에 끄리스를 차고 있다. 끄라톤의 충실한 병사이기도 하며 무보수로 왕궁을 보호.관리하고 있고 내부를 안내해 주는 것도 그들이란다.

우리를 안내해 준 가이드도 왕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인이 말하였다.

그에게서 바틱 공방을 소개 받고 저녁에 그와 만나 그가 수집한 인도네시아 전통 그림자 인형을 보고 그의 부인의 음악 연주를 감상하기로 하였다.

베짝을 타고 소스로 위자얀 거리에 있는 공방으로 갔다. 이번에 간 공방은 꽤 컸고 가격도 먼저번에 갔던 공방보다 저렴한 것 같았다. 라마야나가 그려져 있는 바틱 한 장을 사서 나오니 점심 시간이 지나 있었다.

숙소 근처까지 걸어와서 FM레스토랑에 갔다.

생각보다 FM레스토랑은 비싸고 맛은 별로였다. 처음으로 빙땅맥주를 마셨다. 맥주맛은 좋다. 숙소에 들어가서 쉬다가 3시 20분쯤 나와 투어-보르보두르, 프남빠남-를 예약하고 다시 가루다 호텔에 가서 환전을 하고 말리오보로 거리로 가서 아이쇼핑을 하면서 왕궁으로 갔다. 왕궁엔 중요한 사람들을 위한 공연이 있었으나 우리는 들어가지 못했다. 낮에 약속한 아이드는 오지 않고-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이럴수가?

8시에 박물관에서 하는 와양꿀릭 공연을 보기로하고 물어 물어 새시장속에 있는 워터캐슬 레스토랑으로 갔다. 새시장은 문을 닫아 컴컴했고 레스토랑도 컴컴한 채 문을 닫으려 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음식을 얻어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앉고 보니 젊은 부부가 아름답고 싹싹했다. 분위기도 좋고 음식맛도, 음식코디도 좋았다.

저녁을 먹고나서 베짝을 타고 박물관으로 가니 막 와양꿀릭 공연을 시작하려하고 있었다. “라마야나”이야기인 와양꿀릭은 지금은 쇠퇴해져가는 문화인 것 같았으나 인도네시아 특유의 가믈란 악기의 소리가 듣기좋고 인형을 조종하면서 변사 역할을 하는 젊은 청년이 인상적이었다. 저렴한 입장료가 미안할 정도이다. 긴 공연시간 탓일까? 악사들과 변사는 공연 도중에 차를 마시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오늘의 공연은 일부만 하는 데 완전한 공연은 저녁 8시에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 5시까지한단다. 우리의 완창 춘향전 정도랄까?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보는 공연맛도 괜찮았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훨 감칠 맛 날 거 같았다. 공연이 끝나고 젊은 변사한테 사진을 찍자고 하니 좋아한다.

숙소로 돌아오니 10시 30분.


쉬자고한 오늘도 쉬지 못한 거 같다. 내일은 새벽 4시에 일어나야한다.

 

1월 3일(금)

쓴돈:점심-11000루피, 물-5000루피, 투어비-40000루피, 저녁-8000루피

라마야나댄스-30000루피, 베짝-1000루피, 나무인형-15000루피, 브르모발리투어-250000루피

과일과 쿠키-12000루피

새벽 4시 30분. 주저없이 일어나 씻고 챙기려니까 50분쯤 여행사에서 깨우러 왔다.

5시. 7인승 봉고에 승차. 말리오보로 거리로 나가서 일본인 커플 2명을 태우고 길을 떠났다.

길을 떠난지 한시간이 채 못되어 보로보두르에 도착하였다. 일출은 끝났고 30000루피에 영어가이드를 사서 설명을 들으며 돌았다.

보로보두르는 화산 폭발로 무너진 것을 세차례에 걸쳐 유네스코에서 복구를 하였단다. 기본적인 것은 복구하였지만 조각등은 영혼이 손상된다하여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멀리 밀림이 보이고 전망이 탁트인다.

족자카르타에서 42Km떨어진 보로부두르는 야자수가 펼쳐진 게도우 분지에  솟아있는 세계최고의 불교유적지이다. 정교한 벽화가 새겨진 회랑도 불교 미술 최고의 질과 양을 자랑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오게 한다.

8세기 중반부터 9세기 중반에 지어진 이 대 건축물은 천년 이상이나 밀림 속에서 화산재로 뒤덮여 잠자고 있었단다. 역사적인 가지는 확실하지만 아직은 베일에 쌓여 많은 의혹이 남아 있는 유적지이다.

시간을 두고 조각하나하나를 감상하며 다니다 한 곳에 앉아 상념에 잠기면 좋을 듯하였다.

8시에 내려오라고 하니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8시쯤 되니 현지인들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한적하던 부르보드로의 분위기가 약간 술렁거려졌다. 그런 와중에서도 한명의 사두와 2명의 서양여인이 미동도 않고 명상에 잠겨있었다.

현지인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단체 기념사진), 행운의 부처에 손을 집어넣어 부처의 발가락을 만지며 소원을 빌어보기도 하였다.

여행 처음부터 시작한 요통이 나의 가장 괴로운 일인데 요통이 빨리 나아서 여행을 무사히 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소원을 빌고 난 후 가이드와 헤어져 한바퀴 돌아보는 데도 시간이 없어 쫒겨야 했다.

투어의 맹점을 다시 한번 절감하였다.

보로보르도 입구 식당에서 아침식사(과일, 토스트,커피 등)를 하고 다시 차를 타고 먼듯템플로 갔다. 먼 듯 템플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불상이 조면암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사원안에 들어가니 삼존 불상이 있다. 향을 피우고....

이 동네 마을은 람부딴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데 요즘이 한창 람부딴 수확철인 듯 싶다., 이 곳에서 나무로된 그림자 인형을 한쌍에 15000루피에 샀다. 다시 차를 타고 프람바난으로... 프람바난은 힌두 사원군이었다. 마치 앙코르와트를 생각나게 한다.

9세기 중부 쟈바의 북부는 불교 왕국 샤일랜드라 왕조에, 남부는 상자야 왕조 지배 하의 힌두교국 마따람 왕조에 의해 통치되었단다. 그리고 각각 보로부두르와 쁘람바난이라는 세계적인 사원을 건축했다.

고대 인도에서는 불교를 힌두교의 한 종파로 보고 있는데 쁘람바난 유적에서 볼 수 있는 두 종교의 융합은 그 사고방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운데 시바신전은 하늘에 타오르는 거대한 불꽃과 같은 모습으로 연기가 낀 머라삐 산에서 인도양에 걸쳐 펼쳐진 께우 평야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 수려한 사원들과 넓은 전원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이 곳에서도 시간의 여유를 두고 느긋하게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쁘람바난의 모습들이 진한 감상에 젖게 만들었다.

그러나 감상도 잠시 입구에서 우리를 태우고 온 기사가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로컬버스를 타고 한가지씩 다녔다면 좀 더 여유있게 느끼면서 다녔을 듯 싶다.  본의 아니게 강행군을 하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은세공 공장을 들러왔다. 요통이 심해서 괴롭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요통. 시작은 인천으로 가는 공항버스에 오를 때 배낭이 너무 무거워 삐꺽해서 였던거 같다.

소소로 위자얀 근처에 내려 부폐식 식당에서 깔끔한 나물 반찬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숙소에 돌아와 잠시 쉰다음 브르모 발리 투어를 예약하고 또 환전을 한 다음 말리오보로 거리로 가서 쇼핑을 한 다음- 정신없이 돌아다녔지만 산 것은 별로 없다.- 베짝을 타고 “라마야나 발리”공연을 보러 갔다. -여행사에서는 Purawisata에서 하는 9만루피나 하는 곳을 추천하였지만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에서는 DALEM PUJOKUSUMAN에서 하는 공연이 싸고 전문적이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공연을 선택하였다.

공연장은 뜻밖에도 꽤 멀었다. 5000루피에 계약한 베짝비가 미안할 정도였다. 공연은 너무 좋았다. 정지된 손동작, 발동작이 흥미롭다. 관객은 20여명 정도.. 내용은 어제의 그림자 극의 내용과 같다. 인도 등에서도 유명한 “라마야나”

가믈란 악단과 배우들이 진지하고 분장이 흥미로왔다. 공연도중 비가 억수로 내리는 데 베짝기사들은 비속에 비닐덮개를 덮고 않아 우리를 기다린다.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른 서양관객들은 우리가 배우들과 사진을 찍는 것을 볼 뿐 시도하진 않는다. 돌아오는 길엔 우리를 기다려 준 베짝을 타고 부슬 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연신 뿜어대는 매연에 목이 칼칼해지며 숙소로 왔다.  비를 맞고 기다려 준 베짝 기사가 미안해 10000루피라는 거금을 주며 “까리마 까시!”라고 하는 바람에 베짝기사가 어리둥절해 해서 우리는 한참을 배를 쥐어가며 웃었다. “뜨리마 까시!-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아직도 외워지지 않는다. 잠시 뜨악해졌었던 기사들도 막 웃는다.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0시 30분까지 초 강행군을 하고 말았다.

 인도네시아의 전통음악 가믈란(족자)

 라마야나공연(족자)

 열대과일

 쁘람바난1

 쁘람바난2

 쁘람바난3

쁘람바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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