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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맞이(2023.03.02~0315)

봄꽃마중5(지리산 피아골과 연곡사)

2023년 3월8일(수)
봄빛이 완연하다.
오늘은 섬진강을 따라 달리다
피아골 계곡을 따라가 피아골(직전마을)을 가기로 했다.
아침에 할일이 많아
10시 반 구례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마침 장날이라 장에서 이것 저것 군것질을 하면서 피아골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11시 40분 버스.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이 눈부시다. 햇살이 물위에 비추어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너무 좋다.
장날이라 버스안이 가득차 그 또한 좋다.
그러나 다들 중간 마을에서 내리고 종점인 직전 마을까지 가는 이는 없다. 버스안에는 나혼자다
버스에서 내려 피아골 산길로 들어가는 데 아무도 없다.
고로쇠 수액을 받고있는 사람둘 뿐.
단풍이 사라지고 꽃이 아직 피지않은 피아골에는 찾는이가 없어 마을 전체가 휴업 중이었다.

아무도 없는 산행길

고로쇠 수액 받는 통들 요즘이 고로쇠 수액 철이다
나도 여기와서 몇통째 마시고 있다.

산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조금 걷다가 그 적막함에 그리고 나의 시간없음에 되돌아 나왔다.
식당들도 다 문을 닫았고
아까 장에서 한 군것질이 잘한 짓이었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비상식량인 빵한개를 먹고있자니 으스스하다. 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경고판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서둘러 산길을 벗어나 되돌아 나오고 말았다.

아무도 없는 직전마을-깊은 산속에서 쌀대신 피를 심어 연명했다고 하서 피직자를 써서 직전마을이란다. 그래서 피아골이고.-을 등지고 20분 정도 걸어서 내려오니 연곡사다. 오늘의 주인공은 연곡사로!


이 연곡사에도 오늘은 아무도 없다.
나혼자만의 공간이다.
카페 연우당 앞 의자에 앉아 이 고즈녁함을 오롯이 즐겨보았다.

연곡사가 8세기 중엽  통일신라 경덕왕 때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유적들로 보면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창건된 절로 추정된단다.
임진왜란으로 다  소실되었다가 소요대사 태능이 인조 때 복구하였는데 사정으로 승려들이 떠나 폐쇄되었다가 구한말과 한국전쟁 때 다시 파괴되었다가 근래들어 중창불사가 크게 이루어졌다.
80년대 후반까지도 법당한채와 요사채 하나 그리고 동부도와 북부도 서부도 삼층석탑 등 석조물만 덩그렇게 놓여있어 산속의 고즈녁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단다.
지금은 건물들이 많아졌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아직도 고즈녁한 사찰이었다.
지리산의 품안에 폭 안겨있는..

천왕문


연곡사에도 봄이 왔다.
사람들이 없다보니
매화의 향기가 주변에  퍼지고 있었다.


동부도(국보53호)
'부도 중의 부도'라 할 만큼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기품을 간직한 동부도  누구의 탑인지 알 수 없으나 도선국사의 부도라는 말이 있긴하다.


동부도비(보물 153호)
주인을 알 수 없다.
비신없이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있다.




가릉빈가

북부도(국보 54호)
동부도의 양식을 모방하긴 했으나 나름대로의 멋이 뚜렸하다. 동부도 보다는 제작시기가 약간 뒤인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주인을 몰라 북부도라 부르고 있으나 돌의 재질과 제작시기로 보아 경내 서쪽에 있는 현각선사 부도비와의 관련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현감선사 부도비(보물 제 152호)
고려 초기의 부도비.


삼층석탑(보물 151호)

연곡사는 호젓함에 비해 국보와 보물을 많이 지닌 절이었다.
지리산의 넉넉한 품에 포옥 안겨있어 따스함과 안온함이 느껴지는 절
절구경을 다하고 입구로 나오니 아까 닫혀있던 연우당 카페가 열려있었다.
커피 한잔 들고 이 호젓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3시 20분 버스를 타고 돌아 오는 길. 섬진강의 윤슬이 반짝인다. 버스안에는 나밖에 없다.
도중에 토지 초등학교에서 내려 늦은 점심을 먹었다.
섬진강 다슬기 수제비  담백하고 쫄깃거리는 수제비가 맛나다.

이 동네에는 다슬기 관련 식당들이 많았다.


돌아온 내 동네. 산동에는 산수유가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세상이 다 노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