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고찰들이 가득했던 치앙마이를 다녀왔다.
오래된 고찰들이 즐비했건만
봄의 화전민들의 태우기와 오토바이와 낡은 차량들이 내뿜는 소음과 매연 덕분에 정신사나웠던 여행이기도
했었다.
물론 역사과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이기에 지적 충만이 함께 했지만...
언제부터일까? 우리나라 산천에 대한 애정이 물씬 물씬 생겨나고 있었다.
매화와 산수유를 맞이하러가기위해 난 또 다시 짐을 싸고 있었다.
광명역에서 기차를 타고 단숨에 남원으로 왔다.
남원역
내가 오늘 할일은 만복사지를 답사 하는 것.
짐을 남원역에 맡기고 걸어 가기로 했다.
아직 나뭇가지들이 앙상하지만 햇살과 바람만은 봄임이 분명했다.
인적없는 만복사지. 그래도 화사하다.
만복사는 지리산권에서는 보기힘든 평지 사찰이었다.
- 현재는 폐사터지만 고려 초기에는 남원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거찰이었단다
- 고려시대의 가람배치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절터이기도 하고
남원시내에서 순창으로 가는 왕정동 도로변에 있는 큰 절터 만복사지. 남원에서는 가장 큰 절이었단다(사적 349호) 부처님께 정성으로 기원하면 누구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뜻.
석인상 후면(이 두 구멍으로 당간지주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당간지주
발굴 조사결과 만복사는 고려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확인 되었으며. 창건 후 몇차례 중창되면서
탑을 중심으로 동.서 .북 쪽에 각각 금당이 들어선 1탑 3금당식의 둑특한 가람배치를 이루었음을 확인했단다
오층석탑 (보물 제30호)
1968년 탑을 보수하다가 1층 몸돌에서 사리장치를 발견하였단다. 당시 4층까지만 있었으나 발굴 당시에 5층부분을 발견하여 1979년에 복원해 놓았다고.
절터에 남아있는 석인상 당간지주,석대좌 오층석탑,석불입상 등으로 당시 화려했던 모습들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높이 2미터되는 화강암 하나를 그대로 이용하여 불상과 광배를 함께 만든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안상이 새겨진 팔각 기단석이 있는 연화대좌위에 서 있다. 무릎까지 파묻혀있었던 흔적이 보인다.
표정은 매우 온화하고 원만해 보인다.
만복사 저포기의 내용
아무도 없는 폐사지 만복사지에서 봄햇살을 받으며
번성했을 그 시절을 상상하며 돌아다녔다.
이제 절터를 나와 남원시내로 발길을 돌렸다
국밥 한 그릇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앞으로 보름동안의 먹거리를 마트에서 사들고 버스를 탔다. 다시 남원역으로!
짐을 찾아 택시를 타고 오는 길. 봄기운은 가득한데 꽃은 보이지 않는다. 산동면에 들어서서야 노란 몽우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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