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에 마음 먹었다가 못 간 지리산 둘레길을 이번 연휴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번 걷기의 컨셉은 빈몸과 빈 마음이었습니다. 무엇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버리자.. 자연을 소유하겠다는 마음도 버리자. 그럴려면 사진으로 찍어 가지겠다는 마음도 버리자. 그저 무념 무상으로 타박 타박 걸어 지리산의 공기와 지리산의 숨소리를 온몸으로 느끼고 오자. 뭐.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늘상 들고 다니던 카메라도 애써 외면한 채 갈아입을 옷가지만 덜렁 들고 떠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놈의 습관과 욕심이 어느새 슬쩍 쓸쩍 기어나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썩이더니 폰카에 손이 가고 말았습니다. 한번 찍고 애써 욕망을 누르다가는 어느새인가는 마구 찍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지리산 자락의 자연을 훔쳐다 이곳에 떨구어 놉니다. ㅋㅋㅋ~~~
짙은 푸르름이 벌써 지리산임을 느끼게 합니다.
매일같이 아침 7시가 다되어서야 부스스한 모습으로 간신히 일어나는 나. 이 모습이 출근할 때도 보이는 나의 모습인데 그것도 노는 날에 꼭두새벽(5시 30분)에 집을 나와 한참을 목빼고 기다려 독산역에서 첫차인 6시 전철을 탔습니다. 새벽 5시대, 놀랍게도 안양천엔 자전거 타는 사람 걷는 사람들이 꽤 있더군요. 그리고 전철에도 사람들이 벅석거리고 있었고.. 나 빼고 모두들 부지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용산역발 6시 40분, KTX를 타고 익산에서 내려 남원행 열차를 갈아타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행하였답니다. 시외버스를 타면 간단하게 인월까지 갈 수 있는데 굳이 이런 길을 택한 이유는 황금연휴라 버스길이 막힐거 같아서이고 또 함께 간 길동무가 KTX를 한번도 타보지 않았다 해서 태워주고 싶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10시 남원역에 내려 남원역은 5년전에 새로 준공한 새 건물이었습니다. 남원역을 빠져나온 우리는 의기 투합해서 택시를 타고 남원시외버스터미널로 갔습니다.
울 동네 광명시의 간판에서 본 "남원 추어탕"이 생각나 "흠 남원이 추어탕으로 유명한가 본데 그렇다면
본고장 남원에서 함 먹어보자"하여 터미널 근처 시골 밥상이란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추어탕을 시켜 먹었답니다. 아침과 점심겸.. 택시기사의 소개로 들어간 집이었지만 솔직히 그닥 매력있는 맛은 아니었습니다. 좀 진하지만 텁텁하고 약간 신맛도 나고 남쪽이라 간이 세고 뭐 그랬습니다.
밥집에서 나와 자판기 커피로 입가심을 하며 인월행 버스에 올라 출발하니 버스가 달린지 30분 만에 인월에 데려다 주네요. 곧바로 연결된 매동행 버스에 오르니 10분도 채 안되어 매동마을에 내려주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우리가 꼭 해야 할 일. 자외선으로부터 우리 피부를 지키는 일. 썬크림을 허옇게 바르고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안되 시작된 오르막길.
첫번째 오르막이 끝나는 곳에서 마을 청년이 방명록에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
그 방명록에서 어제밤에 매동마을에 도착하여 아침일찍 걷기 시작하였다는.. 그러나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는..용현과 경순의 흔적을 발견했답니다. 자기들이 길을 잃어서 못만날거라더니.. 흐흥 웃음이 나왔습니다. 바로 7분전에 떠난 그들... 생각할 것도 없이 전화 들어가고... 몇발자국 앞에 서있는 그녀들! 연초록의 숲길을 이런 저런 수다를 떨고 가다보니 막걸리와 도토리묵 등을 파는 간이 주막이 나타났죠.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리요? 막걸리 한잔 들이키고, 잘 모르지만 진짜임이 팍 느껴지는 도토리묵을 입안 가득 넣었답니다. 순박한 할머니는 지리산길이 알려져 어제 몸을 너무 많이 써서 걷기도 힘들다 합니다. 음식 가격이 생각외로 저렴해 웬지 아직 소박한 느낌을 주는 지리산길입니다.
느긋한 휴식과 느긋한 걸음걸이로 또 우린 길을 걸었습니다. 숲이 주는 향기에 취하면서...
상황마을을 뒤로하고 창원마을을 향해 조금 걷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비를 긋느라 길가 간이 식당에 들어가 커피를 한잔씩 마시며 쉬다가 그냥 오늘의 일정을 이 곳에서 마무리 하기로 결정합니다. 주인장이 소개해준 상황마을 민박집에 머물기로 했지요. 이곳에서 경순일행과는 빠이 빠이를 하고. 그녀들은 오던길을 다시 돌아가 매동 마을에서 하루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곳 민박을 예약했으므로.. 사실 어떻든 가는 길의 느낌과 오는 길의 느낌이 다를테니 별 문제는 아닐 겁니다.
이때까지는 서울에서 맘 먹은 대로 사진을 찍을 생각도 찍을 마음도 없이 빈마음으로 지리산과 그 둘레의 마을을 즐기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기록사진이 없네요.
아래 사진은 상황마을에 머물며 산책을 하다 찍은 것. 한가하니 딴짓이 생각나대요. 폰카라 화질은 그닥...
'지리산 둘레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계마을 민박집 겸 슈퍼 (0) | 2009.05.09 |
---|---|
금계마을 가는길..둘째날 (0) | 2009.05.09 |
지리산길 이정표 (0) | 2009.05.09 |
상황마을 입구.. (0) | 2009.05.09 |
지리산길 첫날 민박집 주변. (0) | 2009.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