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수)
홍그링 엘스→나담 축제→오쵸스→말우물→우브드항가이
7시 30분 기상. 김치찌개와 밥을 해먹고 9시 못 미쳐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향했다. 낙타는 주인 말만 듣고 우리 말은 전혀 안듣는다. 낙타를 재촉하는 이곳 말 ‘추욱’을 아무리 외쳐도 꿈적하지 않는다. 천천히 천천히 사막으로 가는 낙타. 성미급한 사람은 숨넘어갈 수준이다. 그러나 어차피 이동 수단이 아니라 즐기기로 한 것. 높은 낙타의 등잔에 앉아 세월을 낚으며 자연과 한 몸이 되기로 하였다.
질척한 늪을 건너는 데는 키큰 낙타가 제격이다. 사구 아래까지 간다. 흰 모래 사막은 푹푹 빠져 버려 오르기가 힘이 든다. 하늘빛과 바람이 만들어낸 모래선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웠다. 힘겹게 힘겹게 올라간 모래산 꼭대기엔 인류 최초의 장소인 듯 고요하고 아무도 없다. 주위를 휘 둘러보다 꼭대기 안쪽에서 급하게 볼 일을 보아 버리니 시원하다. 곧 바람이 불어와 나의 완전 범죄를 도와 주었다.
내려오는 길은 역시 빠르고 쉬웠다. 그렇게 느려 터졌던 낙타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걸음이 빠르고..
고등어 통조림을 넣은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고 떠날 채비를 하였다.
11명의 조지팀은 염소 한 마리를 사서 바베규 파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기사들과 우리들에게까지 염소 고기를 권하였다. 그들이 만든 샐러드와 염소 바비큐는 일품이었다. 마치 요리사가 요리를 한 듯...
조지팀과 헤어지려니 오랜만에 동료 기사들을 만나 즐길 수 있었던 가나가 더 섭섭해한다. 이 곳에서 안 일, 40세가 훌쩍 넘어 보였던 가나가 불과 32세밖에 안되었단다. 이 곳 조지팀의 기사들과 장난을 하며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을 보니 그 나이가 맞긴 하나보다.
13시 40분 출발. 떠들썩한 조지팀과 헤어져 달리니 갑자기 단촐한 해방감도 들었지만 쓸쓸함도 엄습해온다. 길은 여전히 확트이고 시야가 넓다.
2시간쯤 달렸을까? 언덕위에서 사람과 차량들이 몰려있었다. 잠시 정차하여 돌아다니며 구경하니 전통 델을 입은 몽골인들이 말 경주를 하고 있었다. 이 지역 나담 축제였다. 어린 소년들의 말타기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한 켠에선 레슬링을 한다는데 가나의 재촉으로 못 보고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순박하고 사진찍는 걸 좋아한다. 즉석사진기로 이사람 저사람 찍어주며 선사하니 순식간에 사람들이 엄청 몰려들었다. 필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빠져 나오고 말았다.
다시 한시간 정도 달리니 그랜드 캐년같은 멋진 전경이 나타났다. 산양(아이맥스)의 모형이 절벽 꼭대기에 있어 산양이 나타났는지 알고 잠시 흥분했었다. 이 곳이 오쵸스다. 마치 차강 소우르크밑을 달리는 기분이다. 이 곳에서 우리는 4명의 서양남자(래미, 데이빛 등)들이 타고 가는 짚과 프랑스 부부가 탄 짚 등 여행객 짚 두 대를 만났다. 우리가 고비에 들어 온지 처음으로 만나는 여행객 짚이다. 우리 기사는 말이 통하는 다른 기사와 만나니 아주 좋아한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세대의 찦이 같이 달리게 되었다.
우리가 앞장서고 그들이 따라온다.
한참을 달리다 사막의 말우물앞에서 차는 멈추더니 가나는 우리 물통의 물을 버리고 새 우물물을 퍼 담는다. 그 새 낙타들이 물을 마시러 몰려오고... 독일인 마티아스는 홍그링 엘스의 사구에서 익어버려 벌겋게 되어 버린 종아리에 물을 끼얹으며 식힌다.
다시 달리기 시작한 짚은 한시간 간격으로 휴식을 취한다. 짚이 쉴 때마다 중년의 프랑스 부부는 사막을 앞장서 걷고 있었다. 그 뒤를 뉴질랜드 남과 독일 남이 뒤따르고.. 처음엔 그들의 모습을 바라만 보던 우리도 사막에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해서 합류하여 걷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걸을 때 모자쓰고 선글라스 쓰고 마스크까지 쓰며 중무장하는 것을 본 그들이 나중에 무슨 일 있냐고 물어온다. 해를 철저하게 가리고 다니는 우리의 모습이 이상했나 보다.
오늘 8시가 되어서야 우브드항가이의 한 마을에 도착하여 짐을 풀 수가 있었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꽤 규모가 큰데 건물도 있었고 넓은 마당엔 게르도 있었다.
시멘트로 된 건물안이 오히려 지저분하다. 입구의 깨끗한 게르를 우리가 선점하고 4인의 서양남들은 건물안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이집은 손님들로 벅시글 거렸다. 우리 세팀과 나중에 온 한국인 한팀, 또 다른 서양인 팀들로 마당엔 짚차가 가득하고 기사들도 들뜬 분위기였다. 우리들도 모처럼 많은 사람들을 만나니 들뜨고..
건너편 마당 한구석에 펌푸가 있어 좀 씻어 볼까 했더니 너무 확트인 장소다. 간신히 머리만 감아주는데, 래미등 4인의 남들을 등목을 하면서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물은 머리가 띵할 정도로 차가웠다..
밤에 4인의 서양남들과 보드카를 마시며 이야기하기로해서 우리가 안주를 준비하였다. 보드카는 그들이 가져 오기로 하고..
안주는 너구리 우동과 오이 피클. 그리고 비상용 비스켓 등. 꽤 넓은 게르안에 초까지 이곳 저곳에 켜놓으니 분위기가 그럴 듯하다. 10시 넘어서 우리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한차례 건배를 하고 나서 이들도 또 묻는다. “왜 몽골에는 한국사람이 만어? 궁여지책으로 간신히 대답하는 나 ”몽골인들이 한국에 일하러 많이 와서 한국인들이 몽골에 대해 알게 되었어. 그래서 사업을 하러 많이 왔고“ 짧은 영어로 띄엄 띄엄 말한다. 그들은 진지하게 듣고... 그리고 나서 남북관계에 대해 또 묻는데 짧은 영어실력이 한스럽다. 그래도 이리저리 맞추어 이야기한다. 통일에 대해서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서.. 그들은 또 북한엘 가보고 싶단다. . 다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았다고 하고... 또 일본계 캐나다인인 래미는 내가 중학교 교사라니까 10대들 문제 없냐고 하고. 그냥 뭐라 그러기 그래서 문제 없고 좋다니까. 김빠진 얼굴들이다. 자기네 나라들은 문제가 많고 10대들 대하기가 가장 어렵단다.
다들 매너있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특히 래미는 분위기 메이커로 모든 행동이 마치 한국사람같다. 오사카가 고향인 그는 자주 오사카에 가서 많은 한국사람들을 만났단다. 그는 러브샷도 알고 한국 문화 특히 한국음식에 대해 많이 안다.
국경을 초월하여 술마시는 분위기가 비슷하다. 총 5개 나라의 사람들이 만났는데 어색함이 전혀 없다. 농담하는 수준도 비슷하고. 벽이 무너지는 분위기였다.
새벽 1시반 내일을 위해서 아쉬운 파장을 하여야만 하였다. 그동안 고비에 들어서면서부터 사람하나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외로운 여행. 외로워서 오히려 좋았던 여행. 그러나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 노니 그도 흥겹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외국인이 아닌 그냥 사람이었다. 좀 더 고비의 생활을 연장한다면 사람이 아닌 그저 살아있는 생명이라도 반가울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대충 그릇을 치우고 화장실을 가고 양치질을 하고나서 밤하늘의 은하수와 별들을 쳐다보다 잠이든다.
아직도 기사들은 들뜬 분위기로 술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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