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9일(토)맑음

오늘은 그라뇽에서 벨로라도까지 걷는 날.
거리가 길지 않으니 모처럼 아침부터 서두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길을 나섰겠지만
오늘은 느긋하게 일어나 숙소에서 마련해준
과일과 커피 등으로 간단한 요기를하고
8시쯤 출발했다.












문득 뒤돌아 본 길위에
오늘의 태양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라뇽을 벗어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라 리오하(La Rioja)를 떠나 카스티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 지방의 부르고스 주로 들어서게 된다.
며칠 동안 우리 곁을 따라오던 라 리오하의 포도밭과도 이제 작별이다.
팜플로나를 지나면서부터
포도밭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고,
로그로뇨를 지나서는
정말 원 없이 포도밭 사이를 걸었다.
탐스럽게 열린 포도송이와 포도 향기,
끝없이 이어지던 포도밭은
이번 까미노에서 오래 기억에 남을 풍경이 될 것 같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지금 로그로뇨는 일주일간
와인 축제란다.
우리는 비껴왔지만
만났으면 즐거웠을거 같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조금씩 카스티야의 길로 들어선다.
그라뇽을 지나
레데시야 델 카미노(Redecilla del Camino)에 이르면 부르고스 주가 시작된다.
이 작은 마을은
예부터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지나던 곳으로,
성모 승천 성당 안에는 커다란 돌 세례대가 남아 있다고 한다. 조개와 건축물 모양이 새겨진 이 세례대는 중세 순례길의 흔적을 간직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마을에 바가 있는 거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없다.
그냥 스쳐지나가고.












그 뒤로 카스틸델가도,
비로리아 데 리오하,
비야마요르 델 리오
같은 작은 마을들을 차례로 지나 벨로라도로 향한다.
특히 세번째 마을 비로리아 데 리오하에서 만난
기부제 하우스는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신선한 음식이 가득.




https://maps.app.goo.gl/5Nv5wRHtjy8QCoXP6?g_st=ac
Inner Camino House - a place to to Rest, Reflect, Connect, Share. · Viloria de Rioja, Burgos
www.google.com
우리는 이 곳에서 삶은 달걀, 오렌지 쥬스, 치즈와 살리미. 빵 커피. 바나나 등으로 배부른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 길은 화려한 볼거리가 이어지는 길이라기보다
오래전부터
순례자들이 마을과 마을을 이어 걸었던 길이다.
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이 길을 걸어 산티아고를 향했을까.
오늘은 몸도 가볍고 거리도 짧아서인지 정말 순식간에 걸은 느낌이다.










8시쯤 그라뇽을 출발했는데
12시가 조금 넘으니 벌써 벨로라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숙소 체크인은 1시 반부터.
딱히 서두를 일도 없으니
성당 앞 광장에 자리를 잡았다.
햇볕을 받으며 가만히 앉아 있으니 이것도 참 좋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씻고, 빨래하고, 밥 먹고,
다음 날 준비하기 바빴는데
오늘은 광장에 앉아
해바라기까지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숙소에 들어간 뒤에는
느긋하게 메뉴 델 디아로 점심도 먹었다.








그리고 DIA에 들러
내일 걸으면서 먹을 음식과 간식도 장만했다.
걷고, 먹고, 장을 보고, 쉬고.
별것 없는 하루 같지만
까미노를 걷다 보면
이런 평범한 하루가 참 귀하다.
오늘 우리는 라 리오하를 뒤로하고
카스티야 이 레온으로 들어왔다.
포도밭의 길이 조금씩 끝나고,
앞으로는 더 넓고 황량한 카스티야의 들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벨로라도에서 산 후안 데 오르테가까지.
오늘 충분히 쉬었으니 또 새로운 풍경 속으로 걸어가 보자.








오늘의 숙소
Hostel.B
3인실
7년전 유언니와 묵었던 숙소인데
그때는 계속 알베르게만 묵고 다녔던 때라
이 곳 2인실이 너무나 좋았었다.
지금도 아담하고 깨끗하고 친절하고
위치좋고 다 좋은데
그동안 우리가 좋고 분위기있는 숙소를
너무 많이 묵어 감격은 없었다.
없어봐야 조금 좋은 것이
얼마나 귀한 줄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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