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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가을 세자매의 느린여행2(스페인 산티아고로 향하여..)

그라뇽에서 벨로라도까지(까미노 14일차, 15.5km)


2026년 9월 19일(토)맑음


오늘은 그라뇽에서 벨로라도까지 걷는 날.

거리가 길지 않으니 모처럼 아침부터 서두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길을 나섰겠지만
오늘은 느긋하게 일어나 숙소에서 마련해준
과일과 커피 등으로 간단한 요기를하고
8시쯤 출발했다.

문득 뒤돌아 본 길위에
오늘의 태양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라뇽을 벗어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라 리오하(La Rioja)를 떠나 카스티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 지방의 부르고스 주로 들어서게 된다.

며칠 동안 우리 곁을 따라오던 라 리오하의 포도밭과도 이제 작별이다.

팜플로나를 지나면서부터
포도밭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고,
로그로뇨를 지나서는
정말 원 없이 포도밭 사이를 걸었다.
탐스럽게 열린 포도송이와 포도 향기,
끝없이 이어지던 포도밭은
이번 까미노에서 오래 기억에 남을 풍경이 될 것 같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지금 로그로뇨는 일주일간
와인 축제란다.
우리는 비껴왔지만
만났으면 즐거웠을거 같다.

로그로뇨 와인 축제 포스터

그리고 오늘부터는
조금씩 카스티야의 길로 들어선다.

그라뇽을 지나
레데시야 델 카미노(Redecilla del Camino)에 이르면 부르고스 주가 시작된다.
이 작은 마을은
예부터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들이 지나던 곳으로,
성모 승천 성당 안에는 커다란 돌 세례대가 남아 있다고 한다. 조개와 건축물 모양이 새겨진 이 세례대는 중세 순례길의 흔적을 간직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마을에 바가 있는 거로 표시되어 있었지만
없다.
그냥 스쳐지나가고.

레데시야 델 카미노 초입

그 뒤로 카스틸델가도,
비로리아 데 리오하,
비야마요르 델 리오
같은 작은 마을들을 차례로 지나 벨로라도로 향한다.

특히 세번째 마을 비로리아 데 리오하에서 만난
기부제 하우스는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신선한 음식이 가득.


https://maps.app.goo.gl/5Nv5wRHtjy8QCoXP6?g_st=ac

Inner Camino House - a place to to Rest, Reflect, Connect, Share. · Viloria de Rioja, Burgos

www.google.com

우리는 이 곳에서 삶은 달걀, 오렌지 쥬스, 치즈와 살리미. 빵 커피. 바나나 등으로 배부른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 길은 화려한 볼거리가 이어지는 길이라기보다
오래전부터
순례자들이 마을과 마을을 이어 걸었던 길이다.
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이 길을 걸어 산티아고를 향했을까.

오늘은 몸도 가볍고 거리도 짧아서인지 정말 순식간에 걸은 느낌이다.

태극기가 낡아 찢어진 상태로 걸려있어 마음이 좀 그랬다.


8시쯤 그라뇽을 출발했는데
12시가 조금 넘으니 벌써 벨로라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숙소 체크인은 1시 반부터.

딱히 서두를 일도 없으니
성당 앞 광장에 자리를 잡았다.
햇볕을 받으며 가만히 앉아 있으니 이것도 참 좋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씻고, 빨래하고, 밥 먹고,
다음 날 준비하기 바빴는데
오늘은 광장에 앉아
해바라기까지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숙소에 들어간 뒤에는
느긋하게 메뉴 델 디아로 점심도 먹었다.


그리고 DIA에 들러
내일 걸으면서 먹을 음식과 간식도 장만했다.

걷고, 먹고, 장을 보고, 쉬고.

별것 없는 하루 같지만
까미노를 걷다 보면
이런 평범한 하루가 참 귀하다.

오늘 우리는 라 리오하를 뒤로하고
카스티야 이 레온으로 들어왔다.

포도밭의 길이 조금씩 끝나고,
앞으로는 더 넓고 황량한 카스티야의 들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벨로라도에서 산 후안 데 오르테가까지.

오늘 충분히 쉬었으니 또 새로운 풍경 속으로 걸어가 보자.


오늘의 숙소
Hostel.B
3인실
7년전 유언니와 묵었던 숙소인데
그때는 계속 알베르게만 묵고 다녔던 때라
이 곳 2인실이 너무나 좋았었다.
지금도 아담하고 깨끗하고 친절하고
위치좋고 다 좋은데
그동안 우리가 좋고 분위기있는 숙소를
너무 많이 묵어 감격은 없었다.

없어봐야 조금 좋은 것이
얼마나 귀한 줄 아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