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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탕트래킹 4일째(고데타벨라에서 랑탕빌리지까지)

1월 11일 (수)

고데타벨라는 얼음이 얼 정도ㅗ 추웠다. 어제 비록 따듯한 물로 샤워를 했지만 뒤어어 엄습해오는 추위때문에 후회를 많이 했었다.

일단 있는대로 껴입고 난로가 꺼지기 직전까지 식당에 있다가 방으로 갔다.

방에 들어가서 침낭속에 파묻혀 라이트펜에 의지하여 책을 읽는다. 10시 30분까지....

그러다 랜턴의 빛이 다할까 겁나 잠을 자다.

12시 40분쯤 화장실에 가려고 밖으로 나가니 달이 휘영청 떠올라 주변을 대낮처럼 밝게 만들어 놓았다.

깊은 산에 웨어싸인 동네, 정말로 정말로 신비로운 느낌이다.

다시 방에 들어와 시계속의 온도계를 보니 방안 온도 4도이다.

그래도 역시 침낭속은 따듯하다. 침낭속 온도 30도.

7시 기상. 짐꾸리고, 아침먹고 꼬마들 사진 찍어주고나니 9시.

9시 10분 출발. 출발한지 5분정도 가니 트래커의 Check post가 나왔다. 가네쉬가 대표로 체크하기로 하고 우리는 계속 걷는다.

여기에서 다시 50분정도 더 오르니 Thang syap였다. 이 곳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따망족  old women의 사진을 한장 찍었다.

물론 사진도 한장 뽑아주고....

오늘의 일정인 고데타벨라에서 랑탕빌리지까지는 약 400미터의 고도차이고 7km의 거리이다.

보통사람들이 3시간 걸리는 거리를 우리는 4시간에 걸쳐 랑탕빌리지까지왔다.

1시 20분 랑탕빌리지도착.  가네쉬가 잘 아는 집에 머물기로 했다. 이번에 모든 숙소를 그냥 가네쉬가 하자는 대로 결정하기로 마음 먹는다. 까다롭게 굴지 않기로...

집은 규모가 크고 방마다 전구도 있다.

우리방은 2층. 더블룸 두개다.

점심으로는 이 동네에서 유명한 야크지즈를 곁들인 삶은 감자를 먹었다.

점심 후.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야크치즈 공장을 방문하였으나 문이 닫혔다. 해가지자 급격하게 추워진다.

아래층 식당에서 난로불을 쬐며 책을 읽는데 라주가 들어와 자기 부인의 사진을 보여준다.  그 사진을 디카로 찍으니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다시 독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를 읽다.

그러다 6시. 부엌에 가서 계란 라면을 끓여다 먹고 야크지즈 감자를 시켜 또 먹었다.

우리는 난로의 장작이 사그러질때까지 난로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늘 이 롯지의 투숙객은 우리 뿐이다.

우리의 운반인 라주와 안내인 가네쉬와 난롯가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운반인 라주. 그는 힌두 카스트 제일계급인 브라만이다. 

그는 제일 계급으로서 가장 낮은 계급의 아내와 연애결혼을 했다. 그 때문에 부모님이 엄청 속상해서 울었다고...

인도의 델리에서 우리나라 기업 '현대'에서 직징생활을 하기도 했단다. 대학을 졸업했고... 이제 우리와 친해져서 제법 농담도 하고 가족사진도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가네쉬.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총각이다. 그는 많은 동생들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이다. 어릴 때부터 포터로 일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다고.. 그리고 이제 노력하여 가이드 자격증도 땄고.. 

우린 그들과 카스트제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도 그 제도의 부당함에 대해 아는 듯.

난로의 온기가 사그라져서 식당을 떠나 우리 방으로 올라갔다. 세수를 할 엄두를 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한기가 밀려온다. 물티슈와 가네쉬가 가져다준 따뜻한 물로 대충 씻고 침낭속에 들어갔다.

그리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를 계속 읽었다. 점점 차오르는 달이 훤하게 밝다.

오늘 이 랑탕빌리지는 꽤 큰 마을이다. 태양열을 이용한 전기도 충분해 전기를 밤늦도록 켜도 괜찮았다.

11시 가까이 독서.

 

▶ 오늘 오는 길에 얼굴과 온 몸에 고름이 넘쳐흐르는 부스럼투성이의 어린아이를 보았다. 그 어머니가 약을 달라고 해서 후시딘과 밴드를 주었는데 내내 그 참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의약품을 골고루 많이 가져올 걸 하는 후회가 많이 생긴다.

아. 뭐가 이리 불공평한가? 그들에게 최소한의 의료환경을 제공해주어야하지 않을까?

★ 오늘 쓴돈 : 3260루피.